14. 분업과 공장제 수공업

 

14-1. 공장제 수공업의 두 가지 기원

 

공장제 수공업은 분업을 토대로 하는 협업의 전형이다. 이 형태는 대 16세기 중엽부터 18세기 마지막 1/3에 이르는 진정한 공장제 수공업 시기부터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특징적 지배 형태였다.

 

공장제 수공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형성된다.

 

1. 여러 종류의 독립적 수공업 종사 노동자들이 하나의 생산물이 완성하고자 동일한 자본가의 통제 아래 한 작업장에 모인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수레바퀴 제조업자, 마구 제조공, 재봉공, 자물쇠공 등 수많은 독립 수공업자들의 노동 생산물이었던 마차가 이제는 이들 모두가 하나의 작업장에 모여 미완성품을 차례로 넘기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이는 초기에는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이 준비된 단순 협업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중요한 변화가 발생한다. 각 수공업자(: 재봉공, 자물쇠공, 가구공 등)는 마차 제작만을 전업하게 되며, 이들은 자신의 종전 수공업을 전체 범위에서 수행하는 습관과 능력을 점차 상실한다. 그 대신, 이들의 활동은 완전히 일면화되어 협소해진 영역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전문화된다. 최초에는 다양한 독립 수공업들의 결합으로 시작되었던, 마차 공장제 수공업은 점차 마차 생산의 각종 부분 과정들로 세분되며, 각각의 부분 과정은 특정 노동자의 전문 기능으로 고정된다. 최종적으로, 공장제 수공업은 이와 같이 분화된 부분 노동자들의 결합으로부터 전체 작업을 수행한다. 직조 공장제 수공업이나 다른 모든 공장제 수공업들도 한 자본가의 통제 아래 여러 종류의 수공업들을 결합시키면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발생한다.

 

2. 공장제 수공업은 앞서 언급된 방식과는 반대의 방식으로도 발생한다. 하나의 자본가가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수행하는 (예컨대 종이, 활자, 바늘 등을 만드는) 수많은 수공업자들을 동시에 동일한 작업장에 고용한다. 이것이 가장 단순한 형태의 협업이다. 초기에는 이 수공업자들 각각이 (때로는 한두 명의 도제와 함께) 하나의 완전한 상품을 만들며, 그 상품 제조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차례로 수행한다. , 그는 여전히 자신의 종전 수공업적 방식대로 작업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외부 사정으로 인해, 동일한 장소에 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과 그들의 노동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게 된다. 이는 단순 협업 상태에서 생산 과정을 세분화하고 특정 작업에 전문화시키는, 곧 분업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정한 기한 내에 더 많은 양의 완성 상품을 공급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 작업이 분할된다. 동일한 수공업자에게 다양한 여러 가지 작업을 차례로 시키는 대신, 그 작업들을 분리·고립시키고 공간적으로 나란히 세워 각각의 작업을 서로 다른 수공업장에게 할당한다. 그 결과, 전체 작업이 협업하는 노동자들로부터 동시에 수행된다. 이러한 우연적인 분할이 반복되고 발전하면서 점차 체계적인 분업으로 굳어진다. 상품은 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하던 하나의 독립 수공업자의 개인적 생산물로부터, 각자가 언제나 단 한 가지 부분 작업만을 수행하는 수공업자 연합의 사회적 생산물로 변모한다. 예를 들어, 독일 길드의 제지업에서 하나의 수공업자가 행하던 일련의 순차적 작업들은, 네덜란드의 제지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다수의 협업 노동자들이 동시에 나란히 수행하는 수많은 부분 작업으로 독립된다. 또한, 뉘른베르크 길드적 바늘 제조업은 20가지나 되는 일련의 작업을 하나씩 차례로 수행했지만, 영국 바늘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20명의 수공업자가 각각 그중 한 가지 작업만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런 작업들은 경험 축적으로부터 더욱 세분되고 고립되며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 발전하여 개별 노동자들의 전문 기능으로 정착된다.

 

공장제 수공업이 생기고 발달하는 방식은 이와 같이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공장제 수공업은 각종 독립적 수공업의 결합에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독립적 수공업은 그들의 독립성을 잃고 (하나의 특수한 상품 생산에서 상호 보완적인) 부분 작업으로 전환될 정도로 전문화한다. 다른 한편으로, 공장제 수공업은 같은 종류의 수공업자들의 협업에서 발생한다. 이 경우, 공장제 수공업은 그 수공업을 여러 가지 부분 작업들로 분해하고 고립시켜, 이 부분 작업들이 각각 한 노동자의 전문 기능이 될 정도로까지 독립한다. 공장제 수공업은 한편으로, 생산 과정에 분업을 도입하거나 분업을 한층 더 발전시키며, 다른 한편으로, 이전에는 서로 분리되어 있던 수공업을 결합시킨다. 그러나 그것의 출발점이 무엇이든, 공장제 수공업의 최종적 형태는 항상 동일하다. , 인간을 그것의 기관으로 하는 생산 공장제 수공업이다.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다음의 점을 명심해야 한다.

 

1. 생산 과정을 그 특수 국면으로 분할하는 것은 수공업을 각종 부분 작업으로 분할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 작업이 복잡하든, 단순하든, 각각의 작업은 언제나 손으로 수행하며 수공업적 성격을 보존한다.

 

따라서 각각의 작업은 각 노동자가 자신의 도구를 사용할 때 발휘하는 힘, 기교, 민첩성, 정확성에 의존한다. 수공업이 여전히 그 토대이며 기술적 토대가 협소하기 때문에 생산 과정을 그 구성 부분들로 과학적으로 분할할 수는 없다. 생산물이 통과하는 각각의 부분 과정은 손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하나의 독립된 수공업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수공업자의 숙련이 여전히 생산 과정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각 노동자는 오로지 하나의 부분 기능만을 수행하게 되고, 그의 노동력은 이 부분 기능의 평생 기관으로 전환된다.

 

2. 이 분업은 하나의 특수한 종류의 협업이다. 따라서 분업의 이점 중 상당수는 협업 일반의 성질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협업의 이 특수한 형태로부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14-2. 부분 노동자와 그의 도구

 

더욱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일생 동안 하나의 동일한 단순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신체를 그 작업을 위한 자동적이고 일면적인 도구로 전환시킨다. 따라서 그 작업을 하는 데, 그는 작업 전체를 순차적으로 수행하는 수공업자보다 적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공장제 수공업의 살아 있는 원리를 형성하는 집단적 노동자는 순전히 이와 같이 일면적으로 전문화된 부분 노동자들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독립적 수공업장에 비해 더 적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이 생산된다. 다시 말해, 노동 생산성이 향상된다. 더욱이 이 부분 노동이 한 사람의 전문 기능으로 확립되면 부분 노동 방법도 개선된다. 동일한 단순 작업을 계속 반복하고 그 작업에 주의를 집중하기 때문에, 힘을 가장 적게 들이면서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방법을 경험으로부터 체득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세대가 어떤 일정한 상품의 공장제 수공업 안에서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이렇게 체득한 기술과 작업 요령은 확립되고 축적되며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공장제 수공업은 이미 사회에 존재하던 직업의 자연 발생적 분화를 작업장 안에서 재생산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끝까지 추진하며 부분 노동자들의 숙련을 생산해낸다. 다른 한편으로, 공장제 수공업이 부분 노동을 한 사람의 평생 직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이전 사회들에서 볼 수 있는 직업의 세습화 경향과 맥을 같이 한다. 옛날에는 직업이 카스트(인도의 세습적 신분)로 화석화되었거나, 또는 일정한 역사적 조건이 카스트 제도와 양립할 수 없는 변화를 낳는 경우, 직업이 길드로 굳어버렸다. 카스트나 길드는 동식물의 종이나 아종(亞種)으로의 분화를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자연 법칙의 작용에서 발생한다. 다만,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카스트의 세습성이나 길드의 배타성이 사회의 법률로 규정된다는 차이가 있다.

 

다카(현재는 방글라데시의 수도)에서 생산되는 모슬린은 그 섬세한 점에서, 또 코로만델에서 생산되는 캘리코(옥양목)와 기타 직물은 그 화려하고 오래가는 색채에서 아직까지 최고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본, 기계, 분업 없이 생산되며, 유럽 제조업에 많은 편익을 제공하는 수단 중 어느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다. 직조공은 개인 단독으로 고객의 주문에 따라 제조하며, 사용하는 기계라고는 몇 개의 나뭇가지나 막대기로 엉성하게 얽은 가장 단순한 구조의 직기이다. 그 직기에는 심지어 날실(經絲)을 감아두는 장치조차 없어, 직기는 언제나 전체 길이대로 늘어놓아야 한다. 결국 직기는 생산자의 오두막 안에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따라서 생산자는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일해야 하며, 날씨가 변할 때마다 일을 중단하게 된다.’

 

대대로 축적되어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전해지는 독특한 기술이 이 인도 사람들에게 거미와도 같은 기교를 제공한다. 그런데도 이런 인도 직조공의 작업은 대다수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들의 작업에 비해 대단히 복잡하다. 이는 분업 없이 한 사람이 작업 전체를 숙련된 방식으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완성품 생산에서 여러 부분 과정을 혼자 차례로 수행하는 수공인은, 때로는 장소를 이동하거나 도구를 바꾸어야 한다. 어떤 하나의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옮기는 것은 그의 노동 연속을 중단시키며, 그의 노동일에 이를테면 틈을 만들어낸다. 그가 하루 종일 하나의 동일한 작업을 계속한다면, 이러한 틈은 좁아지고, 작업 전환이 감소하는 것에 비례해 그 틈은 없어진다. 이 경우, 노동 생산성 상승은 주어진 시간 안에 노동력 지출의 증대(노동 강도의 강화) 때문이거나, 또는 노동력의 비생산적 소비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 정지에서 운동으로 이행할 때마다, 필요했던 힘의 추가적 지출은 달성된 표준 속도의 작업 지속 시간을 연장하는 것으로부터 보상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단조로운 노동의 연속은 활동의 전환 자체로부터 조성되는 기분 전환과 자극이 없어지기 때문에 노동자의 긴장감과 활기를 약화시킨다.

 

노동 생산성은 노동자의 숙련뿐 아니라 도구의 질에도 달려 있다. , 천공기, 송곳, 망치 등의 도구들은 서로 다른 노동 과정에서 사용되기도 하고, 또는 같은 도구들이 동일한 노동 과정에서 서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노동 과정에서 서로 다른 작업들이 분리되고 각각의 부분 작업이 특색있는 형태를 취하게 되면, 이전에는 여러 가지 목적에 사용되던 도구들에 변화가 일어난다. 도구의 이와 같은 형태 변화의 방향은 종래의 도구가 노동자에게 어떤 곤란을 주었는지로부터 결정된다. , 전문화된 부분 노동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도구가 개선된다.

 

공장제 수공업의 특징은 노동 도구의 분화와 특수화이다. 노동 도구의 분화로부터 도구는 특수한 용도에 맞는 형태로 고정되며, 노동 도구의 특수화로부터 각각의 특수한 도구들은 특수한 부분 노동자의 손에서만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버밍엄에서만 약 500종에 달하는 망치들이 생산되는데, 그 각각 모두 하나의 특수한 노동 과정에만 사용될 뿐 아니라, 가끔 여러 가지 망치들이 하나의 동일한 노동 과정에서 상이한 작업들에 사용된다. 공장제 수공업 시대는 노동 도구를 각 부분 노동자들의 전문적인 특수 기능에 적합하게 만들면서 그것을 단순화하고 개량하며 다양하게 한다. 그래서 또한 이 시대는 (다수의 간단한 도구들의 결합으로 구성되는) 기계의 출현을 위한 물질적 조건의 하나를 창조한다. 부분 노동자와 그의 도구는 공장제 수공업의 가장 단순한 요소들이다. 이제 우리는 공장제 수공업의 전체 모습을 본다.

 

14-3. 공장제 수공업의 두 가지 형태: 조립형 공장제 수공업과 연속 공정형 공장제 수공업

 

공장제 수공업의 조직에는 두 가지 기본 형태가 존재하며, 이들은 때로는 뒤섞여이지만,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이다. 더욱이 공장제 수공업이 기계로부터 근대적 공업으로 전환될 때 전혀 상이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 두 형태는 생산되는 제품의 성질로부터 발생한다. , 그 제품이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부품들의 단순한 기계적 조립으로부터 완성되는가, 또는 그 완성 형태가 상호 관련된 일련의 과정과 조작으로 주어지는가에 따라 구별된다.

 

한 대의 기관차는 5,000대 이상의 독립적인 부품들로 구성되지만, 이는 대공업의 생산물이므로 진정한 공장제 수공업의 첫 번째 종류의 실례로 들 수는 없다. 하지만 시계는 그 실례로 적합하다. 윌리엄 페티도 일찍이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을 설명하고자 시계를 예로 들었다. 이전에는 뉘른베르크에서 한 수공업자의 개인적 생산물이었던 시계는 다음과 같은 무수한 부분 노동자들의 사회적 생산물로 전환되었다.

 

시계 생산에서 전문화된 부분 노동

 

· 부품 제조: 큰 태엽 제조공, 지침반 제조공, 나선형 용수철 제조공, 루비로 된 레버 제조공, 시계 바늘 제조공, 시계 케이스 제조공, 나사못 제조공, 도금공.

 

· 톱니 바퀴 관련 세부 구분: 톱니바퀴 제조공, 시계핀 제조공, 시계추 제조공, 연동 장치 완성공, 추축 제조공, 조립공, 태엽바퀴 완성공.

 

· 지동기 및 정밀 부품: 지동기 제조공, 실린더 지동기인 경우 실린더 제조공, 지동륜 제조공, 평형륜 제조공, 완급침 제조공, 지동기 설치공.

 

· 마감 및 외장: 태엽통 완성공, 강철 연마공, 톱니바퀴 연마공, 나사못 연마공, 문자 기입공, 에나멜공, 용두 제조공, 접철 완성공, 뚜껑 스프링 장치공, 조각공, 시계 케이스 연공 등.

 

이 모든 전문화된 노동 이후, 마지막으로 시계 전체를 최종적으로 조립해 시계가 돌아가도록 하는 완성공이 작업을 마무리한다.

 

시계 부품 중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으며, 이 모든 분산된 부품들은 그것을 하나의 기계적 전체로 결합시키는 한 사람의 손으로 집합한다. 완성된 생산물과 그 다종다양한 구성 요소들 사이의 이러한 외적인 관계는 시계 생산의 경우, (이와 비슷한 다른 제품의 경우도 마찬가지), 부분 노동자들이 동일한 작업장 안에 함께 모이는 일을 우연적으로 만든다. 실제로 세부화된 작업들은 한편으로 스위스의 보 주와 누샤텔 주에서처럼 개별적인 독립적 수공업으로 수행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제네바에 있는 대규모 시계 공장제 수공업처럼 한 자본가의 지휘 아래 부분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협업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도 지침반, 태엽, 케이스와 같은 부품은 공장제 수공업 자체에서 만들지 않는다.

 

시계 공업의 경우, 노동자들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공장제 수공업적 제작 방식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유리하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 경쟁과 가격 인하: 자기 집에서 일하고자 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이 매우 치열하기 때문에 그들이 만드는 부품의 가격을 인하할 수 있다.

 

· 도구 공동 이용의 어려움: 수많은 상이한 과정으로 작업이 분할되면서 노동 도구의 공동 이용을 허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 자본가의 비용 절약: 자본가는 작업을 분산시키면서 작업용 건물 등에 대한 비용을 절약한다.

 

그러나 비록 자택에서 노동한다 하더라도, 자본가(제조업자, 기업가)를 위해 노동하는 이 부분 노동자들의 지위는, 자기 자신의 고객을 위해 노동하는 독립 수공업자(자영업주)의 지위와는 전혀 다르다.

 

두 번째 종류의 공장제 수공업의 완성 형태는 서로 연관된 전후 단계들을 통과하는, 곧 일련의 과정들을 한 단계씩 차례로 통과하는 제품을 생산한다. 예를 들어, 바늘 공장제 수공업에서 철사는 72, 때로는 92명의 특수한 부분 노동자의 손을 거친다. 이런 공장제 수공업은 원래 분산되어 있던 수공업들을 결합시키는 만큼, 여러 생산 단계들을 서로 분리시키던 공간적 거리를 단축시킨다. 이와 동시에 제품이 한 단계로부터 다른 단계로 이동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줄어들고, 이 이동을 매개하는 노동도 절약된다. 결과적으로, 수공업에 비해 노동 생산성이 증대하는데, 이러한 증대는 공장제 수공업의 일반적인 협업적 성격에서 발생한다. 다른 한편으로, 공장제 수공업의 특유한 원칙인 분업은 상이한 생산 단계들의 고립화와 상호 독립화를 요구한다. 고립화된 기능들 사이의 관련을 확립하고 유지하려면,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으로, 한 과정으로부터 다른 과정으로 제품이 끊임없이 운반될 필요가 있다. 대공업의 처지에서 볼 때, 이것은 하나의 특징적이며, 비용이 드는, 그리고 또 공장제 수공업의 원칙에 내재하는 약점이다.

 

어떤 일정한 양의 원료(: 제지 공장제 수공업의 넝마나 바늘 공장제 수공업의 철사)에 관심을 국한시키면, 그것은 최종적 형태로 완성될 때까지 다양한 부분 노동자들의 손을 거쳐 일련의 생산 단계를 차례로 통과한다. 이와는 반대로, 작업장 전체를 보면, 원료는 생산의 모든 단계에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많은 부분 노동자들의 결합으로 구성된 집단적 노동자는 어떤 한 종류의 도구로 무장한 하나의 손으로 철사를 뽑고, 동시에 다른 종류의 도구로 무장한 다른 손으로 이 철사를 곧게 펴고, 또 다른 손으로 그것을 끊으며, 또 다른 손으로 그 끝을 뾰족하게 하는 등의 일을 동시적으로 수행한다. 이전에는 시간상 차례로 수행한 서로 다른 부분 과정들이 이제는 공간상 병행해서 동시에 수행된다. 그러므로 동일한 기간에 더 많은 완성품이 생산된다. 이러한 동시성이 총과정의 일반적 협업 형태에서 생긴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은 협업의 기존 조건들을 이용할 뿐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는 수공업적 노동을 다시 세분화하면서 협업의 조건들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공장제 수공업은 각각의 노동자들을 단 한 가지의 세부 작업에 묶어 두면서만 노동 과정에서 사회적 조직을 이룩한다.

 

부분 노동자 각각의 부분 생산물은 동시에 하나의 동일한 완성품을 만드는 특정 진행 단계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각각의 노동자(또는 노동자 집단)는 다른 노동자(또는 노동자 집단)에게 원료를 공급한다. 한 노동자의 노동 결과는 다른 노동자의 노동 출발점이 되며, 그래서 한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에게 직접 일거리를 제공한다. 각 부분 과정에서 원하는 효과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은 경험으로부터 확정되며, 공장제 수공업의 기구 전체는 일정한 노동 시간 안에 일정한 결과가 달성되리라는 전제에 의거한다. 오직 이 전제에서만 상호 보완적인 각종 노동 과정은 동시에 병행해 중단 없이 수행될 수 있다.

 

개별 작업들 (그리고 개별 노동자들) 사이의 직접적인 상호 의존성이 각각의 노동자로 하여금 자기 작업에 필요 시간만을 지출하도록 강요한다. 그 결과, 독립적 수공업이나 단순 협업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노동의 연속성, 일률성, 규칙성, 질서, 그리고 특히 노동의 강도가 생긴다. 어떤 한 상품 생산에 지출되는 노동 시간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은 상품 생산 일반에서는 경쟁의 외적 강제로 나타나며, 이는 개별 생산자는 누구든지 자기 상품을 시장 가격으로 판매해야 한다는 것으로 피상적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일정한 노동 시간에 일정한 양의 생산물을 생산한다는 일이 생산 과정 그 자체의 기술적 법칙이 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작업에 드는 시간은 서로 같지 않아,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양의 부분 생산물이 생산된다. 따라서 같은 노동자가 날마다 같은 작업을 해야 한다면, 각각의 작업에는 상이한 수의 노동자가 고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활자 공장제 수공업에서 주자공 한 사람이 한 시간에 활자 2,000개를 주조하고, 절단공 한 사람은 4,000개를 끊고, 연마공 한 사람은 8,000개를 연마한다. 이 경우, 연마공 1명에 대해 주자공 4명과 절단공 2명이 고용되어야 한다.

 

여기서 또다시 동일한 종류의 작업을 하는 많은 사람의 동시 취업이라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협업 원칙이 나타나지만, 이는 이제 하나의 유기적 관계를 표현한다. 그래서 공장제 수공업 제도의 분업은 사회의 집단적 노동자의 질적으로 상이한 부분을 단순화시키고 증가시킬 뿐 아니라, 이 부분들의 양적 규모를 규정하는 고정된 수학적 비율 (곧 각각의 전문 기능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수 또는 노동자 집단의 상대적 크기)도 만들어 낸다. 결국,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은 사회적 노동 과정에서 질적 편성과 더불어 그 과정의 양적 규칙과 비례성까지도 발전시킨다.

 

일정한 생산 규모에서 각 집단 사이에 부분 노동자 수의 가장 적합한 비율이 경험적으로 일단 확정되면, 생산 규모는 오직 각 개별 집단 노동자 수의 배수를 고용하면서만 확대될 수 있다. 여기서 덧붙여, 어떤 종류의 작업은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동일한 개인으로부터 마찬가지로 잘 수행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감독이라는 노동이나 부분 생산물을 한 생산 단계에서 다른 생산 단계로 운반하는 노동 등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런 기능을 분리시켜 특정한 노동자에게 할당하는 일은 사용 노동자의 수가 증가할 때만 비로소 유리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증가는 각각의 노동자 집단에게 비례적으로 영향을 미쳐야 한다.

(어떤 특정한 전문 기능을 수행하는) 각각의 노동자 집단은 동질적인 요소들로 구성되며, 전체 기구의 한 특수 기관을 이룬다. 그러나 많은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노동자 집단 자체가 하나의 편성된 노동 조직이며, 전체 기구는 이러한 기본적 생산 유기체의 중복 또는 배가로부터 형성된다. 한 예로, 유리병 공장제 수공업을 보자. 그것은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유리병 공장제 수공업 단계

 

· 준비 단계: 유리의 구성 요소들을 준비하고, 모래와 석회 등을 혼합하며, 이 혼합물을 유동 상태의 유리액으로 용해한다.

 

· 중간 단계(제조): 유동 상태의 유리액을 조작하는 단계다.

 

· 마지막 단계: 건조로에서 유리병을 끄집어내고, 그들을 품종별로 분류하고, 포장하는 일 등이다.

 

첫째 단계와 마지막 단계에서는 각종 부분 노동자들이 작업을 수행한다. 이 두 단계의 중간 단계인 진정한 유리병 제조에서는 유리 화로의 아궁이마다 한 집단의 노동자(‘구멍이라고 부름)가 작업을 한다. 이들은 1명의 병 제조공 또는 마무리공, 1명의 취공(blower), 1명의 모음공, 1명의 쌓음공 또는 닦음공, 1명의 운반공으로 이루어진다.

 

5명의 부분 노동자들은 단일 노동 유기체의 다섯 개 특수한 기관이며, 이 노동 유기체는 하나의 통일체로만 활동할 수 있다. 따라서 오직 다섯 사람의 직접적 협업으로부터만 활동이 이루어지며, 이 노동 유기체는 그 다섯 개 기관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마비되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의 유리 화로에는 몇 개의 아궁이 (영국에서는 4개 내지 6)가 있는데, 그 각각의 아궁이마다 액체 상태의 유리가 들어 있는 내화 도가니가 묻혀 있다. 각 아궁이마다 5명으로 이루어진 노동자 집단이 노동하고 있다. 이때 각 집단의 편성은 분업에 의거하고 있으나, 서로 다른 집단들 사이의 관계는 단순 협업으로 생산 수단의 하나인 유리 화로를 공동 사용하면서 더 경제적으로 이용한다. 이와 같은 유리 화로 하나와 그에 부속된 4-6개 노동자 집단이 하나의 유리 제조장을 구성한다. 최종적으로, 유리 공장제 수공업은 몇 개의 이러한 제조장과 준비 단계 및 마지막 단계를 위한 설비와 노동자를 포괄한다.

 

끝으로, 공장제 수공업 중 일부가 각종 수공업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하듯이, 다양한 공장제 수공업의 결합으로 발전해 가기도 한다.

 

결합 유형

 

1. 생산 수단과 생산과의 결합: 영국의 대규모 유리 공장들이 내화 도가니를 자체에서 제조하는 일이 그 예다. 이는 도가니의 품질 여하에 따라 생산 과정의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생산 수단을 생산하는 공장제 수공업이 생산물을 생산하는 공장제 수공업과 결합되어 있다.

 

2. 원료/혼합물 사용 공장과의 결합: 생산물을 생산하는 공장제 수공업은 그 생산물 자체를 다시 원료로 쓰는 다른 공장제 수공업, 또는 그 생산물을 자기의 생산물과 혼합시키는 다른 공장제 수공업과 결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납유리 공장제 수공업은 유리 가공 공장제 수공업이나 황동 주조 공장제 수공업과 결합하는데, 황동은 여러 가지 유리 제품의 금속 장식에 필요하다.

 

이와 같이 결합된 각종 공장제 수공업은 하나의 전체 공장제 수공업의 다소 분리된 부문들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 각각은 자기 고유의 분업을 가진 독립된 생산 과정이다. 공장제 수공업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이점에도, 이 결합은 그 자체의 토대 위에서는 완벽한 기술적 통일성을 달성할 수 없다. 이 통일성은 공장제 수공업이 기계로부터 생산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발생한다.

 

공장제 수공업 시대 초기에,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의 단축이라는 원칙이 의식적으로 공식화되고 표명되었다. 기계의 사용도 특히 거대한 힘이 요구되며 대규모로 수행해야 하는 단순한 기초 과정을 위해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초기 제지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넝마의 분쇄가 제지의 분쇄기로부터 수행되었으며, 야금업에서는 광석 분쇄가 쇄광기로부터 수행되었다. 로마 제국은 물레방아의 형태로 모든 기계의 기초적인 형태를 물려주었다.

 

수공업 시대는 나침반, 화약, 인쇄술, 자동 시계와 같은 위대한 발명을 남겼다. 그러나 대체로 기계는 분업과 대비할 때 부차적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애덤 스미스로부터 잘 알 수 있다. 17세기에 일정한 시간을 두고 나타난 기계의 사용이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된 일은, 그것이 그 당시의 위대한 수학자들에게 근대적 역학의 발명을 위한 실질적인 토대와 자극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공장제 수공업 시대의 특징적 기계는 바로 수많은 부분 노동자들의 결합으로부터 형성되는 집단적 노동자 자신이다. 노동 과정에서 한 상품의 생산자가 차례로 수행하는 각종 작업들은 그 생산자에게 여러 가지 능력을 발휘하기를 요구한다. 그는 한 작업에서는 더 많은 힘을, 다른 작업에서는 더 많은 숙련을, 3의 작업에서는 더 많은 주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이러한 모든 자질을 같은 정도로 갖추지는 못한다. 각종 작업이 분리, 독립, 고립된 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자질에 따라 구분, 분류, 편성된다.

 

노동자들이 타고난 재능이 분업의 토대라고 하더라도, 공장제 수공업은 일단 도입된 뒤에는 일면적이고 특수한 기능에만 적합한 새로운 능력(노동자 능력)을 발전시킨다. 이제 집단적 노동자는 생산에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같은 정도로 우수하게 구비하게 된다. 그리고 집단적 노동자는 자기의 모든 기관(개별 노동자나 노동자 집단)을 오직 그 기관의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만 사용하면서 그 자질을 가장 경제적으로 사용한다. 부분 노동자의 일면성과 불완전성조차도 그가 집단적 노동자의 한 기관일 때는 장점으로 된다. 한 가지 일만을 수행하는 습관은 부분 노동자를 결코 실수하는 일이 없는 기관으로 만들며, 전체 기구와의 관련은 그로 하여금 기계의 일부와 같은 규칙성을 가지고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집단적 노동자가 수행하는 각종 기능에는 단순한 것과 복잡한 것, 저급의 것과 고급의 것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 구성원인 개별 노동력은 정도가 서로 다른 훈련을 필요로 하며, 각각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공장제 수공업은 노동력의 등급제를 발전시키며, 이것에 임금의 등급이 대응하게 된다. 개별 노동자는 한정된 기능에 일생 동안 묶이고, 등급이 매겨진 각종 작업이 선천적, 후천적 능력에 따라 노동자들 사이에 할당된다. 그러나 어떤 생산 과정에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조작들이 있기 마련이며, 그런 조작들도 이제는 내용이 더 풍부한 활동과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에서 분리되어 특수한 개인의 배타적인 기능으로 굳어져 버린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은 자기가 장악하는 모든 업종에서 이른바 미숙련 노동자라는 하나의 부류를 만들어낸다. 수공업은 그 설정상 이런 부류를 엄격히 물리친다. 공장제 수공업이 인간의 전반적 노동 능력의 희생 위에서 일면적 전문성을 완벽한 경지에까지 발전시킨다면, 그것은 또한 미숙련 노동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혀 발전하지 않은 것을 하나의 전문성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등급제의 등급과 나란히 숙련공과 미숙련공이라는 단순한 구분이 나타난다. 미숙련공은 수련비가 들지 않고, 숙련공은 자기 기능이 단순하게 된 결과, 수련비가 수공업 노동자의 경우에 비해 줄어든다. 어느 경우에나 노동력의 가치는 떨어진다. 물론 이 법칙의 예외는 수공업적 경영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거나, 동일한 정도로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포괄적 기능들이 노동 과정의 분할로 말미암아 생기는 경우이다. 수련비의 소멸 또는 감소로 말미암은 노동력의 상대적 가치 저하는 자본의 가치 증식 정도가 더 높아지는 것을 직접적으로 가리킨다. 왜냐하면, 노동력의 재생산에 드는 필요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모든 것은 잉여 노동의 영역을 연장하기 때문이다.

 

14-4.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과 사회 내의 분업

 

우리는 먼저 공장제 수공업의 기원을 고찰했고, 다음에는 그 단순한 요소들 (부분 노동자와 그 도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전체 공장제 수공업을 고찰했다. 이제는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과 (모든 상품 생산의 토대를 형성하는) 사회 안의 분업 사이의 관계를 간단히 고찰한다. 우리가 노동을 그 자체만 염두에 둔다면, 다음과 같이 분업을 구분할 수 있다.

 

분업의 구분

 

· 일반적 분업: 농업, 공업 등과 같은 주요 부문들로 생산이 분할하는 것.

· 특수한 분업: 이들 생산 부문이 종()이나 아종(亞種)으로 분할하는 것.

· 개별적 분업: 한 작업장 내의 분업.

 

사회 안의 분업과 이것에 대응해 개인이 특수한 직업에 묶이게 되는 일은 공장제 수공업 안의 분업처럼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출발점에서 발전한다. 한 가족 안에서, 그리고 더욱 발전해 한 종족 안에서 남녀와 나이 차이로 말미암아 (곧 순전히 생리적 토대 위에서) 자연 발생적 분업이 나타난다. 이러한 분업은 공동체의 확대, 인구의 증가, 그리고 특히 서로 다른 종족 사이의 충돌과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을 예속하는 일과 더불어 발전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생산물의 교환은 서로 다른 가족, 종족들이나 공동체들이 상호 접촉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인류 문명 초기에는 독립된 단위로 상호 관계를 맺는 일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나 종족 등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공동체들은 그들의 자연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생산 수단과 생활 수단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그 공동체들의 생산 방식, 생활 양식, 생산물은 서로 다르다. 바로 이 자연 발생적 차이 때문에 공동체가 서로 접촉할 때 생산물이 서로 교환되고, 따라서 이 생산물들이 점차 상품으로 전환된다.

 

교환이 생산 영역들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교환은 기존의 상이한 영역들을 서로 관련 맺게 한다. 그들을 확대된 사회적 총생산의 다소 상호 의존적인 부문들로 전환시킨다.

 

사회적 분업의 발전 경로

 

· 독립적 영역의 의존성: 사회적 분업(사회 내의 분업)은 본래부터 상이하며 상호 독립적인 생산 영역들 사이의 교환에서 성립한다. 이 경우, 이전에는 독립적이었던 것이 교환으로부터 의존적으로 된다.

 

· 의존적 기관의 독립성: 이와 반대로, 생리적 분업이 출발점인 경우, 긴밀하게 결합된 전체의 특수한 기관들이 분열된다 (다른 공동체와 상품을 교환하는 것이 이 분열에 큰 자극을 준다). 이 기관들이 상당한 정도의 독립성을 획득하게 되면서, 각종 작업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유대 관계는 생산물을 상품으로 교환하는 것이 된다. 이 경우, 이전에는 의존적이었던 것이 독립적으로 된다.

 

일정한 발전 수준에 도달하고 상품 교환으로부터 생긴 모든 분업의 토대는 도시와 농촌의 분리다. 사회의 경제사 전체는 이 대립의 운동으로 요약될 수 있으나, 여기서는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는다. 동시에 고용되는 노동자의 일정한 수가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을 위한 물질적 전제 조건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구의 크기와 밀도(이것은 하나의 작업장으로 노동자들이 밀집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사회 내의 분업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이 밀도는 다소 상대적이다. 인구는 비교적 희박하나 발전한 교통 수단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인구는 더 많으나 교통 수단이 발전하지 못한 나라에 비해 인구 밀도가 더 높다. 이런 의미에서 예를 들어, 미국 북부의 주들은 인도에 비해 인구 밀도가 더 높다.

 

상품 생산과 상품 유통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일반적 전제이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은 사회 내의 분업이 이미 일정한 정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필요로 한다. 또한 거꾸로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은 사회적 분업에 반작용하여 그것을 발전시키며 증가시킨다. 노동 도구의 분화에 따라 이 도구를 생산하는 산업들도 더욱 분화된다. 이때까지는 동일한 생산자가 본업 또는 부업이라는 형태로 함께 경영해 오던 업종들은, 공장제 수공업적 경영이 장악하고 나면 즉시 분리되고 독립한다. 공장제 수공업적 경영이 어떤 상품에서 하나의 특수한 생산 단계를 장악하게 되면, 그 상품의 다른 생산 단계들은 각각 독립 산업으로 전환된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다수의 부품이 조립되어 제품을 만드는 경우에는, 부분 작업 그 자체가 다시 독자적인 수공업으로 독립할 수 있다.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을 더욱 완전하게 달성하고자, 하나의 생산 부문은 원료의 차이나 동일한 원료가 취하는 형태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수많은 공장제 수공업 (부분적으로는 전혀 새로운 공장제 수공업)으로 분할된다. 예를 들어, 이미 18세기 전반, 프랑스에서는 100종 이상의 견직물이 생산되었다. 또 아비뇽에서는 모든 도제들은 각각 한 종류의 직물에만 전념해야 하며, 여러 가지 직물의 제조 방법을 동시에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법적으로 규정했다.

 

특정의 생산 부문을 국내의 특정 지역에 국한시키는 지역적 분업은 자연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공장제 수공업적 경영으로부터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세계 시장의 확대와 식민 제도 (공장제 수공업 시대를 탄생시킨 일반적 조건의 일부를 형성)는 사회 내 분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분업이 사회의 경제 영역뿐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을 장악하며, 도처에서 한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모든 능력을 희생시키면서, 단 한 가지의 능력만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점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 다만 후자의 사실은 이미 애덤 스미스의 스승인 퍼거슨으로 하여금 우리는 노예들로만 이루어진 국민이며, 우리 가운데 자유로운 인간은 하나도 없다.”고 외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 내의 분업과 작업장 내의 분업은, 비록 그들 사이에 수많은 공통점과 연관성이 있기는 하나, 정도에서뿐 아니라 본질에서도 서로 다르다. 공통점이 가장 잘 나타나는 일은 하나의 내적 유대로부터 여러 가지 업종이 결합되어 있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목축업자는 날가죽을 생산하고, 피혁업자는 그것을 가죽으로 전환시키며, 제화업자는 그것을 구두로 전환시킨다. 이 경우, 각자의 생산물은 완성품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며, 이 마지막의 완성품은 부분 노동들의 결합 생산물이다. 그밖에도 목축업자, 피혁업자, 제화업자에게 생산 수단을 제공하는 각종 산업 부문이 있다.

 

애덤 스미스와 같이 사회적 분업과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 사이의 차이는 오직 주관적이며 관찰자에게만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한 장소에서 수행되는 수많은 작업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지만, 사회적 분업에서는 작업이 넓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고, 각 노동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 그 상호 관련성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축업자·피혁업자·제화업자의 독립된 노동들 사이의 유대를 형성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 각각의 생산물이 상품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분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품으로 되는 것은 모든 부분 노동자들의 공동 생산물뿐이다.

 

사회 내의 분업은 서로 다른 산업 부문들 사이에서 생산물 매매로부터 매개된다. 반면, 공장제 수공업 내의 여러 부분 노동들 사이의 관련은 여러 노동력이 동일한 자본가에게 판매되어 그로부터 결합 노동력으로 사용된다는 것으로부터 매개된다.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은 한 자본가의 수중에 생산 수단이 집적되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사회 내의 분업은 서로 독립된 다수의 상품 생산자 사이로 생산 수단이 분산되는 것을 전제한다. 공장제 수공업 내에서는 비례성의 철칙이 일정한 수의 노동자들을 일정한 기능들에 종속시킨다. 이와 달리, 공장제 수공업 밖의 사회에서는 우연과 변덕이 작용하여 사회적 노동의 각종 부문들 사이에 생산자들과 그들의 생산 수단이 제멋대로 분배된다.

 

여러 가지 생산 영역들이 끊임없이 균형을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한편으로 각각의 상품 생산자가 어떤 사용 가치를 생산하여 일정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욕구들의 크기는 양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이 상이한 크기의 욕구들을 하나의 자연 발생적 체계에 연결하는 내적 유대가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 상품의 가치 법칙은 사회가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전체 노동 시간 중 얼마만큼을 각각의 상품 종류 생산에 지출할 수 있는지를 궁극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생산 영역들이 균형으로 향하는 이 끊임없는 경향은 이 균형의 끊임없는 파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작용할 뿐이다.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이 의거하고 있는 계획되고 규제되는 사전적 체계는, 사회 내의 분업에서는 생산자들의 규제받지 않는 변덕을 통제해야 하는 자연적인 사후적 필연성 (이는 시장 가격의 변동에서 알 수 있다)으로 변한다.

 

공장제 수공업 내의 분업은 자본가에게 속하는 전체 기구의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의 무조건적 권위를 내포한다. 그러나 사회 내의 분업은 경쟁이라는 권위 밖에는, 곧 상품 생산자들 상호 간의 이익 대립이 자기들에게 가하는 강제 외에는 다른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독립적 상품 생산자들을 서로 대립시킨다. 이것은 동물계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대체로 모든 종의 생존 조건으로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작업장 내의 분업과 노동자를 평생 하나의 부분 작업에 묶어두는 것,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완전한 종속 등을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노동의 조직화라고 찬양하는 바로 그 부르주아적 의식은, 생산 과정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고 조정하려는 온갖 의식적 시도를 개별 자본가의 소유권, 자유, 자율적 독창성등과 같은 신성한 것에 대한 침해라고 열렬히 비난한다. 공장 제도의 열광적 변호인들이 사회적 노동의 일반적 조직화를 반대하면서, 이것은 사회 전체를 하나의 공장으로 전환시킨다고 비난하는 일은 매우 모순적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분업의 무정부 상태와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의 독재가 서로 다른 것의 조건으로 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직업의 분화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 응고되고 최후로 법률로부터 고정된 이전의 사회 형태에서는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볼 수 있다.

 

사회 노동의 조직: 사회의 노동이 공인된 권위적인 계획에 따라 조직된다.

 

작업장의 분업: 작업장에서는 분업을 완전히 배제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작은 규모로 이따금 우연적으로만 발전시킨다.

 

예를 들어, 인도의 매우 오래된 자급자족 공동체 (부분적으로는 지금까지도 존속)는 토지의 공동 소유, 농업과 수공업의 직접적 결합, 그리고 고정 불변의 분업에 기반을 둔다. 이 분업은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할 때마다 완전한 계획서와 설계도로 기능한다. 이와 같은 공동체는 자급자족적인 완결된 생산 조직을 이루며, 그 영역은 100에이커에서 수천 에이커에 달한다. 생산물의 대부분은 공동체 자체의 직접적인 수요를 위한 것이고 상품은 아니다. 따라서 여기의 생산은 상품 교환으로부터 매개되는 인도 사회 전체의 분업과는 무관하다. 오직 생산물의 잉여만이 상품으로 되며, 그리고 그 잉여의 일부는 국가의 수중에서 비로소 상품으로 된다. (국가는 옛날부터 현물 지대의 형태로 생산물의 일정한 양을 징수해 왔다.)

 

공동체의 형태는 인도 지방에 따라 다르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공동체에서는 토지가 공동으로 경작되며, 생산물은 그 구성원들에게 분배된다. 동시에 방적 및 직조는 각 가정의 부업으로 경영된다. 이와 같이 하나의 동일한 작업에 종사하는 주민들 이외에 다음과 같은 전문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공동체 전체의 비용으로 부양된다.

 

공동체 구성원과 전문 역할

 

· 공동체의 우두머리: 재판관, 경찰관, 징세관을 겸임

· 부기 담당자: 농경 계산 및 관련 기록 담당

· 관리: 범죄인 추적, 여행자 보호 및 안내

· 경계선 경비원: 이웃 공동체 사이의 경계선 경비

· 저수지 감시인: 농경을 위한 공동 저수지 물 분배

· 브라만: 종교적 의식 수행

· 교사: 모래 위에서 아동들에게 쓰기와 읽기 교육

· 역술 브라만 또는 점성가: 파종 및 수확 시기 등 농사일에 좋은 날과 나쁜 날을 예언

· 대장장이와 목수: 모든 농기구 제작 및 수리

· 도자기공: 촌락에서 쓰는 모든 그릇 제조

· 이발사

· 세탁사: 의복 세탁

· 은 세공인

 

어떤 공동체에서는 은 세공인이, 또 다른 공동체에서는 교사가 시인으로 대체되기도 함.

 

인구가 증가하면 새로운 공동체가 원래의 것을 본떠 미개간지에 세워진다. 이 공동체의 전체 기구는 체계적인 분업을 보여주고 있으나, 공장제 수공업에서와 같은 분업은 있을 수 없다. 이는 대장장이나 목수 등이 변하지 않는 시장과 대면하고 있으며, 촌락의 크기에 따라 대장장이나 목수 등은 1명이 아니면 기껏해야 두세 명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분업을 규제하는 법칙은 자연 법칙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권위를 가지고 작용한다. 그러나 대장장이나 목수 등과 같은 각 개별 수공업자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그러나 독립적으로,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작업장 안에서 자기의 모든 작업을 수행한다. (끊임없이 동일한 형태로 자기를 재생산하며 어쩌다가 파괴되더라도 동일한 장소에 동일한 명칭으로 재건하는) 자급자족적인 공동체의 단순한 생산 유기체는 (아시아 국가들의 끊임없는 흥망, 왕조의 쉴 새 없는 교체와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아시아 사회의 불변성이라는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이 사회의 경제적 기본 요소들의 구조는 정치라는 상공에서 일어나는 폭풍우로부터는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길드 규약은 장인이 고용할 수 있는 직인과 도제의 수를 엄격히 제안, 장인의 자본가화를 의식적으로 견제했다. 장인은 자신이 종사하는 수공업에서만 직인을 고용할 수 있었다. 길드는 유일한 자유 자본 형태인 상인 자본의 침투를 적극적으로 막았다. 상인은 상품 구매는 허용되었지만, 노동력은 상품으로 살 수 없었고, 오직 수공업 생산물의 매매상으로만 허용되었다. 시장 요구에 따라 분업이 세분화될 경우, 기존 길드가 분열되거나 새 길드가 병설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수공업이 단일 작업장에 집중되는 일은 없었다. 따라서 길드 조직은 수공업의 분리, 고립, 개선으로부터 공장제 수공업의 물질적 조건을 형성 하는 데 크게 기여했음에도, 공장제 수공업의 특징인 작업장 내 분업은 허용하지 않았다.

 

길드 조직에서 노동자와 생산 수단은 달팽이와 달팽이집처럼 긴밀히 통합되어 있었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의 제1토대, 곧 생산 수단이 노동자로부터 자본으로 독립하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 전반의 분업은 상품 교환 여부와 무관하게, 다양한 경제 사회 구성체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에서 실현되는 작업장 내 분업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고유한 산물이다.

 

14-5. 공장제 수공업의 자본주의적 성격

 

협업 일반과 공장제 수공업의 자연 발생적 출발점은 동일 자본가 지휘 아래 많은 노동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에서는 노동자 수의 증가가 기술적 필연성을 띤다. 자본가가 고용해야 할 최소 한도의 노동자 수는 기존 분업으로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 나아가, 분업에서 진전된 이익은 오직 노동자 수를 증가시켜야만 얻을 수 있으며, 이는 각 부분 집단이 일정한 비율로 배가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진다.

 

이러한 자본의 가변적 구성 부분(노동자) 증가는 그 불변적 구성 부분의 증가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이는 건물, 용광로 등 공동 생산 조건의 규모 확대뿐 아니라, 특히 노동자 수 증가보다 훨씬 급속하게 수요가 증가하는 원료의 증가를 의미한다. 분업으로 노동 생산성이 향상함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일정한 노동량으로 소비되는 원료량은 비례적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의 기술적 성격상, 개별 자본가가 보유해야 할 최소 한도의 자본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대해야 하며, 이는 사회적 생산 수단 및 생활 수단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규모가 계속 커저야 한다는 법칙을 낳는다.

 

집단적 노동 유기체는 단순 협업과 마찬가지로 공장제 수공업에서도 자본의 존재 형태이다. 다수의 개별 부분 노동자로 구성된 이 사회적 생산 조직은 자본가에게 귀속되며, 따라서 각종 노동의 결합에서 비롯되는 생산력은 자본의 생산력으로 발현된다. 진정한 공장제 수공업은 이전에 독립적이었던 노동자들을 자본의 지휘와 규율에 복종시킬 뿐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에 등급적 계급을 형성한다. 단순 협업이 개개인의 노동 방식을 대체로 바꾸지 않는 데 반해, 공장제 수공업은 그것을 철저히 변혁시키고 개별 노동력을 완전히 장악한다. 공장제 수공업은 노동자의 모든 생산적 능력과 소질을 억압하고 특수한 기능만을 촉진하여 노동자를 기형적인 불구자로 만든다.

 

이는 라플라타 강 유역 국가들에서 가죽이나 지방을 얻고자 동물을 통째로 도살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부분 노동이 서로 다른 개인들에게 분배될 뿐 아니라, 개인 자체가 분할되어 부분 노동의 자동 장치로 전락한다. 따라서 위장을 귀족, 손발을 평민으로 묘사하며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메네니우스 아그리파의 우화가 현실화된다.

 

노동자가 처음에는 상품 생산을 위한 물질적 수단 부재로 노동력을 자본에 판매했지만, 이제는 그의 개별 노동력 자체가 자본에 판매되지 않으면 쓸모없게 된다. 개별 노동력은 오직 다른 노동력들과의 연관 속에서만 기능하며, 이 연관은 노동력이 판매된 후 자본가의 작업장에서 비로소 형성된다. 독립적인 물품 생산에 부적합해진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는 오직 자본가 작업장의 부속물로만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있다. 여호와가 선택한 민족이 몸에 소유의 증표(할례)를 지니듯, 분업은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에게 자본의 소유물이라는 낙인을 새긴다.

 

야만인이 모든 전쟁 기술을 개인의 책략으로 발휘하듯, 독립적 농민이나 수공업자는 비록 작은 규모라도 지식, 판단력, 의지를 발휘했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이러한 능력이 오직 작업장 전체를 위해서만 필요하다. 생산상의 정신적 능력이 한 방면에서 확대되는 동시에, 다른 여러 방면에서는 완전히 소멸된다. 부분 노동자들이 잃는 능력은 그들과 대립하는 자본에 집적된다.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의 결과, 부분 노동자들은 물질적 생산 과정에서 정신적 능력을 타인의 소유물이자 자기를 지배하는 힘으로 대하게 된다.

 

이 분리 과정(지식과 노동의 분리), 자본가가 결합된 노동의 통일성과 의지를 대변하는 단순 협업에서 시작된다. 이는 노동자를 부분 노동자로 전락시켜 불구자로 만드는 공장제 수공업에서 더욱 발전한다. 최종적으로, 이 과정은 과학을 자립적 생산력으로 노동과 분리시켜 자본에 봉사하게 하는 대공업에서 완성된다. 공장제 수공업은 집단적 노동자와 이로부터 나오는 자본의 사회적 생산력을 풍부하게 하고자 노동자의 개인적 생산력을 빈약하게 만들어야 한다.

 

무지는 미신의 어머니인 동시에 근면의 어머니이다. 숙고와 사변은 과오를 범하기 쉽지만, 손발을 움직이는 습관은 숙고나 사변과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공장제 수공업이 가장 번창하는 곳은 인간이 거의 정신을 쓰지 않는 곳이며, 작업장이 인간을 그 부품으로 하는 기계로 간주되는 곳이다.’

 

18세기 중엽, 일부 공장제 수공업은 단순하지만, 기업 비밀로 취급되는 특정 작업에 지적 능력이 미비한 자를 고용하는 일을 선호했다. 이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이해력은 그들의 일상적 업무로부터 필연적으로 형성된다. 일생을 결과물이 항상 같거나, 거의 같은 단순하 작업 몇 가지에 소비하는 이들은,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제거하는 방법을 발견하거나, 이해력을 발휘하거나, 창조력을 행사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자연히 그러한 노력을 하는 습관을 잃고, 일반적으로, 인간으로는 가장 둔해지고, 무지해진다.’

 

앞서 부분 노동자가 어리석고 둔해지는 것을 묘사한 후, 애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생활이 단조롭고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그는 자연히 용기도 잃고, 불규칙적이고, 불안정하며, 모험적인 군인 생활을 꺼리게 된다. 또한, 육체의 활발한 활동이 제한되어, 그가 배워 온 직업 외의 어떤 직업에서도 활기차고, 참을성 있게 그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의 특수한 직무상의 기교는 지적, 사회적, 군사적 덕목을 희생하며 얻어지는 듯하다. 발달한 모든 문명 사회에서 정부의 방지 노력이 없다면, 노동 빈민, 곧 대다수 국민은 이런 상황에 필연적으로 빠지게 된다.’

 

분업으로 인해 국민 대중이 완전히 퇴화하는 일을 방지하고자, 스미스는 국가가 최소한의 국민 교육을 신중하게 시행하기를 주장한다. 이에 대해 그의 저서 불어 역자이자 주석자인 가르니에는 이를 철저히 반대한다. 가르니에는 국민 교육이 분업의 제1법칙을 위반하며, 그 실시가 우리의 사회 제도 전체가 폐지될 것이다.’라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다른 모든 분업들과 마찬가지로 손 노동과 두뇌 노동 사이의 분업도 사회(그는 이 용어를 자본, 토지 소유와 이 둘에 속하는 국가를 가리키는 의미로 옳게 사용하고 있다)가 부유해짐에 따라 더욱 명백해지고 결정적으로 된다. 다른 모든 분업과 마찬가지로, 이 분업도 과거 진보의 결과이며, 또 장래 발전의 원인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 분업을 방해하고, 그 자연적 진행을 저지해야 한단 말인가. 분할과 분리를 지향하는 이 두 종류의 노동을 혼합하고 뒤섞어 놓기 위한 시도에 정부가 국고금의 일부를 지출해야 한단 말인가.’

 

사회의 전반적 분업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의 정신적·육체적 불구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은 이러한 노동 부문들의 사회적 분할을 더욱 심화시키고, 공장제 수공업 특유의 분업으로부터 개인 생명의 근원을 공격한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은 산업 병리학에 재료와 자극을 제공한 첫 번째 장본인이다.

 

인간을 세분(subdivide)하는 행위는, 그에게 세분 선고가 내려진다면 사형에 처하는 것이고, 세분 선고를 받지 않는다면 암살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의 세분은 국민의 암살이다.’

 

분업에 기반을 둔 협업, 곧 공장제 수공업은 초기에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었다. 이것이 어느 정도의 일관성과 적용 범위를 갖추자, 곧 자본주의적 생산의 의식적, 규칙적, 체계적 형태로 변모했다. 진정한 공장제 수공업의 역사는, 그 특유의 분업이 처음에는 경험으로부터 가장 적합한 형태를 자연스럽게 찾았음을 보여준다. 그 후 (길드적 수공업처럼) 일단 찾아낸 그 형태를 고수하려 했고,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수세기 동안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 형태에 작은 변화를 제외한 주요 변동이 발생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노동 도구의 혁명 때문이다.

 

근대적 공장제 수공업(기계 기반의 대공업은 제외)은 두 가지 방식으로 형성된다. 예를 들어, 대도시의 의복 공장제 수공업처럼 이미 분산되어 있는 사지(四肢)(각종 부분 노동자들)를 단순히 모으기만 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제본업의 경우처럼, 수공업의 각종 작업을 개별 노동자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면서 분업의 원리를 쉽게 적용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각 기능에 필요한 노동자 수 사이의 비율을 결정하는 데는 일주일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수공업 활동의 분해, 노동 도구의 전문화, 부분 노동자의 형성, 그리고 이들을 분류해 단일 기구로 결합시키는 과정으로부터,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은 사회적 생산 과정에 질적 편성과 양적 비례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은 사회적 노동의 일정한 조직을 창조하며, 동시에 노동의 새로운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분업은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독특한 자본주의적 형태(주어진 조건에서 필연적이었던)로 나타나며, 결국 상대적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특수한 방법, 곧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자본(일반적으로 사회적 부, 또는 국민의 부라 불리는)의 자기 증식을 증대시키는 특수한 수단에 불과하다.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닌 자본가를 위해 증대시키며, 이 과정에서 개별 노동자를 불구로 만든다. 이 분업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는 새로운 조건을 조성한다. 이처럼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은 역사적으로, 한편에서는 사회의 경제 발전에서 필연적인 단계로, 다른 한편에서는 더 문명화되고 세련된 착취의 한 방법으로 나타난다.

 

공장제 수공업 시대에 비로소 독립된 과학으로 등장한 경제학은, 사회 내 분업을 공장제 수공업 내 분업의 관점에서 고찰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사회 분업을 같은 양의 노동으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수단, 곧 상품 가격을 낮추고, 자본 축적을 촉진하는 수단으로만 파악했다. 이러한 양과 교환 가치를 강조하는 시각은 오직 질과 사용 가치에만 주목했던 고대 저술가들의 태도와는 정반대이다. 고대 저술가들은 사회적 생산 부문 분리의 결과로, 상품이 개선되어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성향과 재능에 적합한 활동 분야를 선택하며, 활동 분야가 어느 정도 제한되지 않고서는 훌륭한 성과가 얻어질 수 없다고 보았다. , 분업으로부터 생산물과 생산자 모두가 개선된다는 시각이다.

 

고대 저술가들이 때로 생산량 증가를 언급할 때도, 이는 단지 사용 가치가 더욱 풍부해지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을 뿐, 교화 가치나 상품의 저렴화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용 가치의 시각은 분업을 사회의 신분적 구분 토대로 간주한 플라톤이나, 부르주아적 본능으로 이미 작업장 내 분업에 접근했던 크세노폰도 채택했다.

 

플라톤,공화국은 상이한 시민 신분 사이의 분업을 국가의 형성 원리로 여긴다는 점에서, 이집트식 신분 제도를 아테네 사람이 이상화한 것에 불과하다. 이집트는 플라톤과 동시대 저술가들(: 이소크라테스)과 로마 제국 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 산업상의 모범국으로 여겨졌다.

 

진정한 공장제 수공업 시대(자본주의적 생산을 지배하던 시기)에는 공장제 수공업 특유의 경향들이 완전히 발전하는 데 여러 장애에 부딪쳤다. 공장제 수공업은 노동자를 숙련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로 구분해 등급 구조에 편입시켰으나, 숙련 노동자의 압도적 우세로 미숙련 노동자 수는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또한, 공장제 수공업이 여러 부분 작업을 노동 도구(노동자)의 성숙도, , 발달 정도에 맞추면서 부녀자와 아동 착취의 길을 열었지만, 이러한 경향은 관습과 성인 남성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대체로 좌절되었다.

 

수공업의 분할이 노동자의 육성비를 저하시켜 그의 가치를 낮추었음에도, 비교적 어려운 부분 노동은 여전히 긴 수련 기간을 필요로 했으며, 불필요한 경우에도 노동자들은 이를 고집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7년간의 수련 기간을 규정한 도제법이 공장제 수공업 시대 말기까지 완전히 유효했고, 대공업의 출현 후에야 비로소 폐지되었다. 수공업적 훈련은 여전히 공장제 수공업의 토대이며, 공장제 수공업의 원리 전체가 노동자 자신들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골격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자의 불복종 행위와 싸워야 했다. 우리가 잘 아는 유어는,공장 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인간성이 가진 결함 때문에, 노동자는 숙련될수록 더욱 제멋대로 되고, 다루기 어렵게 되며, 이는 당연히 기계적 체계의 부품으로 잘 맞지 않게 된다. 그는 전체 기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된다.’

 

공장제 수공업 시대 전체로부터 노동자의 규율 부족에 대한 불평이 끊이지 않는다. 당시 저술가들의 증언이 없더라도, 다음 두 가지 사실이 이를 충분히 입증한다. 자본은 16세기부터 대공업 시대까지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들의 확보할 수 있는 노동 시간 전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공장제 수공업은 노동자들의 이동에 따라 소재지를 옮기면서 수명이 짧았다.

 

1770,상공업에 관한 평론저자는 어떻게 해서든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로부터 66년 뒤 유어는, ‘분업의 형식에 얽매인 (스콜라적) 교리에 기반을 둔 공장제 수공업에서, 부족했던 이 질서를 이제 아크라이트(방적 기계 발명자)가 창조했다.’고 단언한다.

 

공장제 수공업은 사회의 생산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거나, 근본적으로 변혁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도시의 수공업과 농촌의 가내 공업이라는 폭넓은 기반 위에 세워진 인위적 경제 조직이었다. 공장제 수공업이 일정 발전 단계에 도달하자, 그 협소한 기술적 토대는 스스로 창출한 생산상의 여러 가지 필요(: 대량 생산)와 모순을 일으키게 되었다. 공장제 수공업의 가장 완벽한 성과 중 하나는 노동 도구 자체, 특히 이미 사용 중인 복잡한 기계적 장치를 생산하는 작업장이었다. 이에 대해 유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계 공장(노동 도구 자체를 생산하는 작업장)은 수많은 단계의 분업을 보여주었다. 절단기, 착공기, 선반은 각각 숙련 등급에 따라 편성된 노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의 성과인 이 작업장은 결국 기계를 생산했다. 이 기계는 수공업적 노동자가 사회적 생산에서 규제 원리로 기능하는 것을 철폐한다. 그 결과, 한편으로 노동자를 일정한 부분적 기능에 평생 얽매어 두던 기술적 이유가 소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규제 원리가 자본의 지배에 가한 장애물들 역시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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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협업

 

자본주의적 생산은 개별 자본이 다수의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고, 노동 과정이 대규모로 이루어져 대량의 생산물을 공급하는 시점부터 본격화된다. 많은 노동자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자본가의 지휘 하에 같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형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적·개념적 토대를 구성한다. 생산 방식 자체만 놓고 보면, 초기 공장제 수공업은 동일 자본에 동시 고용된 노동자 수의 증가 외에는 길드 수공업과 큰 차이가 없으며, 사실상 길드 장인의 작업장이 확대된 형태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단지 양적 차이만 존재했다. 이미 확인했듯이, 특정 자본이 생산하는 잉여 가치의 총량은 개별 노동자가 산출하는 잉여 가치에 동시 고용된 노동자의 수를 곱한 값과 동일하다. 이 노동자 수는 그 자체만으로는 잉여 가치율이나 노동력의 착취도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상품 가치 일반의 생산에 있어서도 노동 과정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듯 보인다.

 

12시간의 노동일이 6원으로 대상화된다면, 1,200노동일은 6×1,200으로 대상화된다. 1,200명의 노동자가 함께 작업할 경우, 개별 노동자의 12시간 노동이 합산되어 총 12×1,200 노동 시간이 생산물에 집약된다. 가치 생산의 측면에서 볼 때, 다수의 노동자는 언제나 개별 노동자의 단순한 총합으로만 계산된다. 따라서 1,200명의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생산하든, 또는 자본의 지휘 아래 통합되어 생산하든, 그 결과로 생산되는 가치의 총량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일정한 한계 내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발생한다. 가치로 대상화되는 노동은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질의 노동, 곧 평균적 노동력이 지출된다. 평균량이란 크기만 다를 뿐 종류가 같은 다수 개별량의 평균에 불과하다. 각 산업 부문에서 개별 노동자는 평균적 노동자와 다소 차이를 보인다. 수학에서 오차또는 편차라 부르는 이러한 개별적 차이는 최소한도의 노동자를 함께 고용하는 순간, 서로 상쇄되어 사라진다. 유명한 궤변가이자 아첨꾼인 버크는 자신의 차지 농업 경험을 근거로 주장한다. 5명으로 구성된 그처럼 작은 집단에서도 이미 노동에서의 모든 개인적 차이는 상쇄되어 소멸하며, 따라서 어떤 5명의 성인 농업 노동자도 동일한 시간 안에 다른 임의의 5명의 성인 농업 노동자가 수행하는 노동과 똑같은 노동을 한다.

 

동시에 고용되는 많은 노동자의 집단적 노동일을 그 노동자의 수로 나눈 값이 곧 하루의 사회적 평균 노동이다 1인 노동일이 12시간일 경우, 12명의 동시 고용 노동자의 집단적 노동일은 144시간이다. 개개인의 노동이 사회적 평균 노동과 다소 차이가 있어 동일 작업에 상이한 시간이 소요될지라도, 각 개인의 노동은 이 144시간 집단적 노동일의 1/12,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질을 갖는다. 12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일은 오직 12명 전체의 노동일로만 존재한다. 각 개별 노동자의 노동일은 이들이 서로 협력하든, 단순히 동일 자본가를 위해 노동하든 관계없이 집단적 노동일의 구성 부분으로만 의미를 가진다.

 

12명의 노동자가 2명씩 나뉘어 각각 6명의 소경영주에게 고용된다면, 각 소경영주가 동일한 가치량을 생산하고 일반적 잉여 가치율을 얻게 될지는 불확실하다. 이러한 분할된 조건에서는 개별적 편차가 명확히 나타난다. 어떤 노동자가 상품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간보다 현저히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그의 개별 노동 시간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평균적 노동 시간)과 현저히 차이가 난다. 결과적으로, 그의 노동은 평균적 노동으로 인정될 수 없고, 그의 노동력 또한 평균적 노동력으로 평가될 수 없다.

 

이러한 노동력은 아예 팔리지 않거나 또는 노동력의 평균 가치 이하로 팔린다. 모든 노동에는 노동 능률의 일정한 최저 한도가 전제되며,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 최저 한도를 설정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성과급). 그럼에도, 이 최저 한도는 평균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자본가는 노동력에 대해 그 평균 가치를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6명의 소경영주 중 일부는 일반적 잉여 가치율보다 더 많은 것, 다른 일부는 더 적은 것을 추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균등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상쇄되지만, 개별 소경영주들에게는 그대로 남아 경제적 편차를 야기한다. 그러므로 개별 생산자에게 가치 증식의 법칙이 완전히 실현되는 일은, 그가 자본가로 생산하며 다수의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고, 그들의 노동이 집단적 성격에서 곧 사회적 평균 노동으로 간주될 때뿐이다.

 

작업 방식에 변동이 없더라도, 다수 노동자의 동시적 고용은 노동 과정의 객체적 조건에 혁명을 일으킨다.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건물, 원료 창고, 공동으로 사용하거나 번갈아 쓰는 용기, 기구, 장치 등, 생산 수단의 일부가 이제 노동 과정에서 공동으로 소비된다. 이로 인해 한편으로, 이러한 생산 수단의 교환 가치가 상승하지는 않는다. 상품의 교환 가치는 사용 가치가 더 철저하게 이용된다고 해서 높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생산 수단은 공동으로 사용되며, 이전보다 대규모로 사용된다.

 

20명의 직조공이 20대의 직조기를 사용하는 작업장은 1명의 직조공이 2명의 도제를 거느리는 작업장보다 넓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 20명을 수용하는 작업장 하나를 짓는 노동은 2명씩 수용하는 10개의 작업장을 짓는 노동보다 적게 든다. 따라서 대규모로 공동 사용하는 거대한 생산 수단의 가치는 그 규모와 유용한 효과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는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생산 수단은 개개의 생산물에 자기 가치의 더 적은 부분을 이전한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 이 생산 수단의 총가치가 더 많은 양의 생산물에 분배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 생산 수단은 개별적으로 사용될 때보다 절대적으로는 더 큰 가치를 가질지라도, 그 적용 범위를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더 적은 가치를 가지고 생산 과정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과로 인해 각 상품의 총가치에 포함되는 불변 자본 일부의 가치는 저하하며, 그 저하의 크기에 비례해 상품의 총가치도 역시 저하한다. 그 경제적 효과는 상품의 생산 수단이 더 싸게 생산되는 일과 동일하다. 이러한 생산 수단 사용의 절약은 전적으로 노동 과정에서 다수 인원이 생산 수단을 공동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이 생산 수단이 사회적 노동의 필요 조건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은, 노동자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고 단순히 공간적으로 한 곳에 모여 일하는 경우에도 이루어진다. 노동 수단의 일부는 노동 과정 자체가 사회적 성격을 획득하기 이전에 벌써 이러한 사회적 성격(: 큰 건물에 많은 노동가가 모이는 일)을 획득한다.

 

생산 수단의 절약은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해야 한다.

 

1. 절약이 상품을 값싸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노동력의 가치까지 저하시키는 측면이다.

 

2. 절약이 총 투하 자본(불변 부분과 가변 부분의 가치 총액)에 대한 잉여 가치의 비율(이윤율)을 변동시키는 측면이다.

 

이 두 번째 측면은 이 책 제3권 제1편 제5장에서 비로소 고찰한다. 또한, 여기서 다루어야 할 다른 많은 문제들 역시 서술의 적절한 내적 연관성을 위해 해당 부분으로 미룬다.

 

이러한 연구 대상의 분할은 분석 진행상 불가피하며, 동시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자들은 노동 수단을 자신과 독립된 타인의 소유물로 대면한다. 이로 인해 노동 수단 사용상의 절약 역시 노동자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따라서 자신의 생산성 향상 방법과도 관련이 없는 별개의 조작으로 나타난다. 하나의 동일한 생산 과정이나 서로 다르지만 상호 연관된 생산 과정에 많은 사람이 계획적으로 함께 협력해 일하는 노동 형태를 협업이라 부른다.

 

기병 1개 중대의 공격력이나 보병 1개 연대의 방어력이 개별 군인의 능력 총합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듯, 개별 노동자들의 기계적 힘의 총계 역시 사회적 역량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불가분의 작업(: 무거운 짐을 드는 일, 윈치 회전, 장애물 제거)에 참가할 때 이 사회적 역량이 발휘된다. 이 경우, 결합된 노동의 성과는 고립된 개별 노동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거나,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매우 작은 규모로만 달성할 수 있다. 이처럼 협업은 개인의 생산력을 높일 뿐 아니라, 집단적인 힘이라는 새로운 생산력을 창조한다.

 

다수의 힘이 하나의 총력으로 융합되는 데서 생기는 새로운 역량을 제외하고도, 대부분의 생산적 노동에서는 단순한 사회적 접촉만으로도 각 개별 노동자의 작업 능률을 증대시키는 경쟁심이나 혈기와 같은 자극이 발생한다. 그 결과, 함께 일하는 12명의 노동자는 144시간이라는 집단적 1노동일 동안, 각각 12시간씩 일하는 12명의 고립된 노동자나 12일 동안 계속 일하는 1명의 노동자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생산해 낸다. 이는 인간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동물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비록 다수가 동일한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에 동시적으로 협동할지라도, 각 개인의 노동은 총노동의 일부로 그 노동 과정에서 상이한 국면을 이룬다. 이로 인해 노동 대상은 협업의 결과 이 국면들을 더 빠르게 통과하게 된다. 예를 들어, 12명의 벽돌공이 벽돌을 사다리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운반하기 위해 열을 지어 선다면, 그들 각 개인은 동일한 일을 하지만, 그들 개개의 행위는 하나의 전체적인 작업의 연속된 부분을 구성한다. 곧 각자의 행위는 각 벽돌이 노동 과정에서 통과해야 할 특수한 국면들이다. 결과적으로, 벽돌은 전체 노동자에 24개의 손을 통과하면서, 각 개별 노동자가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운반할 때보다 더 빠르게 운반된다.

 

노동 대상은 동일한 거리를 더 짧은 시간 안에 통과한다. 또한, 건물을 지을 때처럼 여러 방면에서 동시에 착수하는 경우, 비록 협업하는 사람들은 이때에도 같은 작업이나 같은 종류의 작업을 수행하지만, 노동의 결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짓는 데 있어 1명의 벽돌공이 12일간(144시간) 작업하는 것보다 12명의 벽돌공이 144시간의 집단적 1노동일에 작업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그 이유는 협력해 작업하는 노동자 집단은 앞뒤로 팔과 눈을 가진 것처럼 어느 정도까지 다각적인 동시 작업 능력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물의 상이한 부분들이 동시에 완성되어 간다.

 

우리가 많은 노동자가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수행한다는 점을 강조한 이유는, 이러한 공동 노동의 가장 단순한 형태가 협업에서 (심지어 가장 발달한 형태에서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 과정이 복잡해지면, 함께 일하는 사람이 다수라는 사실만으로도 상이한 작업을 각각의 노동자에게 배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그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되며, 결과적으로, 전체 작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은 단축된다.

 

많은 생산 부문에는 결정적 순간(노동 과정의 성질상 규정되며 일정 성과가 달성되어야 하는 시기)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양 털 깎기나 곡물 추수처럼, 생산물의 양과 질은 이 작업이 일정한 시간 안에 시작되고 끝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경우, 노동 과정이 수행되어야 할 기간은 청어잡이의 경우처럼 미리 정해져 있다. 각 개인이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일을 창출할 수 없지만, 100명의 협업은 1노동일을 1,200시간으로 확대할 수 있다. 작업에 허용되는 기간이 짧다는 젱약은 결정적 순간에 생산 장소에 투입되는 노동의 커다란 규모로부터 보충된다. 이 경우, 제때에 작업을 마무리 짓는 것은 다수의 결합된 노동일 동시 사용에 달려 있으며, 유용한 효과의 크기는 노동자의 수로부터 결정된다. 그러나 이때 노동자의 수는 (동일한 기간에 동일한 규모의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고립된 노동자의 수보다 언제나 적다. 이런 종류의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서부에서는 매년 많은 곡물이, 그리고 영국의 통치로 옛 공동체가 파괴된 인도의 동부 지역에서는 매년 대량의 면화가 낭비되고 있다.

 

협업은 한편으로, 배수, , 관개, 운하, 도로, 철도 건설과 같이 노동 대상의 물리적 구조 자체가 요구하는 노동 과정에서는 작업을 넓은 공간에서 수행할 수 있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협업은 생산 규모를 확대하면서도 생산의 공간적 영역을 상대적으로 축소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생산 규모 확대와 동시에 노동의 공간적 범위가 축소되는 현상은 거액의 공비(空費, 간접 비용)를 절약하게 하며, 이는 많은 노동자의 밀집, 각종 노동 과정의 집합, 그리고 생산 수단의 집적에서 비롯된다.

 

결합된 노동일은 동일한 크기에 개별 노동일의 단순 합계에 비해 더 많은 양의 사용 가치를 생산하며, 결과적으로 주어진 유용 효과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을 감소시킨다. 결합된 노동일이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원인이 무엇이건, 곧 기계적 힘의 증대, 공간적 작용 범위의 확대, 생산 공간의 상대적 축소, 결정적 순간의 노동 동원, 개인의 경쟁심 자극, 같은 종류 작업의 연속성 및 다면성 부여, 서로 다른 작업의 동시 수행, 공동 사용으로부터 생산 수단 절약, 또는 개개인 노동에 사회적 평균 노동의 성격 부여 때문이건, 어떤 경우라도 결합된 노동일의 특수한 생산력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다. 이 생산력은 협업 그 자체로부터 발생한다. 다른 노동자들과 체계적으로 협력하는 노동자는 자기 개별성의 족쇄를 벗어 던지고, 자기 종족(인류)의 능력을 발전시킨다.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함께 모여야만 협력할 수 있으며, 일정한 장소에 집결하는 것이 협업의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임금 노동자는 동일한 자본가에게 동시에 고용되고, 노동력이 동시에 구매되는 경우에만 협업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들의 노동력의 총가치(하루 또는 1주일 등의 임금 총액)가 생산 과정 개시 전에 자본가의 주머니에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300명의 노동자에게 단 하루분을 지불하는데도 소수의 노동자에게 1주일에 한 번씩 1년간 지불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본 지출이 필요할 수 있다. 결국, 협업 노동자의 수(협업의 규모)는 개별 자본가가 노동력 구매에 지출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 곧 각 개별 자본가가 다수 노동자의 생활 수단을 구매할 수 있는 정도에 의존한다.

 

이러한 자본 규모의 의존성은 가변 자본뿐 아니라 불변 자본에도 해당한다. 3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가 원료에 지불하는 금액은 10명을 고용하는 자본가 지출의 30배에 달한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노동 수단의 가치나 양은 노동자 수와 같은 비율로 증가하지 않더라도 현저하게 증가한다. 따라서 개별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대량의 생산 수단이 집적되는 것은 임금 노동자들의 협업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며, 협업의 범위 또는 생산의 규모는 이러한 집적의 정도에 의존한다.

 

앞 장에서 확인했듯이, 고용주를 육체 노동에서 해방하고, 소경영주에서 자본가로 전환시키며, 자본 관계를 형태적으로 성립시키려면 일정한 최소 한도의 자본액이 필수적이었다. 이제 이 최소 한도의 자본은 다수의 분산되고 상호 독립적인 노동 과정들을 하나의 결합된 사회적 노동 과정으로 전환시키는 물질적 조건으로 나타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동의 자본에 대한 종속은 처음에는 노동자가 자신이 아닌 자본가에게 노동한다는 형태적 결과에 불과했다. 그러나 많은 임금 노동자의 협업에 따라 자본의 지휘는 노동 과정 그 자체의 수행을 위한 필요 조건, 곧 생산의 현실적 조건으로 발전한다. 생산 장소에서 자본가의 지휘는 이제 전쟁터에서 장군의 지휘와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대규모로 수행되는 모든 직접적인 사회적 노동 또는 공동 노동은 개인들의 활동을 조화시키고 일반적 기능(생산 유기체 전체의 운동에서 발생하는)을 수행하고자 지휘자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바이올린 독주자는 자신이 직접 지휘자가 될 수 있지만, 교향악단은 독립적인 지휘자를 필요로 한다. 지휘, 감독, 조절의 기능은 노동이 자본의 지배 아래에서 협업적으로 되자마자 곧바로 자본의 한 기능이 된다. 자본의 독자적인 기능으로 지휘 기능은 자기 자신의 특수한 성격을 획득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추진하는 동기와 규정하는 목적은 자본을 최대 한도로 증식시키는 것, , 최대의 잉여 가치를 생산하고 최대한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협업하는 노동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자본의 지배에 대한 그들의 요구도 증대하며, 이 요구를 억누르기 위한 자본의 압력 또한 필연적으로 증대한다. 자본가로부터의 통제는 단순히 사회적 노동 과정의 성질에서 유래하는 특수 기능일 뿐 아니라, 동시에 이 사회적 노동 과정을 착취하는 기능이며, 따라서 착취자와 그의 착취 대상(노동자) 사이의 불가피한 적대 관계에 뿌리를 둔다.

 

타인의 소유물로 임금 노동자와 대립하는 생산 수단의 규모가 증대함에 따라, 생산 수단이 적절하게 사용되도록 효과적으로 통제할 필요성도 커진다. 더욱이 임금 노동자들의 협업은 전적으로 그들을 고용하는 자본으로부터 발생한다. 노동자들 스스로는 그들을 단일의 생산체로 통일시키거나 개별 기능들 사이에 관련을 형성할 능력이 없다. 이는 그들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그들을 모아 함께 일하도록 만든 자본의 행위에 속한다. 따라서 그들의 다양한 노동 사이의 상호 관련은 관념적으로는 자본가의 계획으로, 실무적으로는 노동자들의 활동을 자본가의 목적에 종속시키는 권위(타인의 강력한 의지)로 노동자들과 대립한다. 그래서 자본가의 지휘는 그 내용에서 이중의 성격을 갖는다. 그가 지휘하는 생산 과정 자체가 생산물의 생산을 위한 사회적 노동 과정인 동시에 자본의 가치 증식 과정이라는 이중의 성격 때문이다. 자본가의 지휘는 그 형식상 독재적이다. 협업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이 독재 또한 특유한 형태들을 발전시킨다. 자본가는 자신의 자본이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을 개시할 최소 한도에 도달하자마자, 먼저 육체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개별 노동자 및 노동자 집단에 대한 직접적이고 끊임없는 감독 업무를 특수한 종류의 임금 노동자들에게 위임한다.

 

군대가 장교와 하사관을 필요로 하듯, 동일 자본의 지휘 아래 있는 산업 노동자 집단 역시 노동 과정 중에 자본의 이름으로 지휘할 장교(지배인)와 하사관(십장, 감시자)을 필요로 한다. 이들에게 감독 업무가 전문적인 기능으로 확정된다. 경제학자들은 분산된 농민이나 독립적 수공업자의 생산 방식과 노예 제도를 비교할 때, 노예 제도의 감독 노동을 생산상의 공비로 계산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고찰할 때는 이와 달리, 집단적 노동 과정의 성질에서 발생하는 지휘 기능과 노동 과정의 자본주의적·적대적 성격에서 필요해지는 감독 기능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 산업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자본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본가이기 때문에 산업의 지도자가 된다. 봉건 시대에 장군이나 판사의 기능이 토지 소유의 속성이었던 것처럼, 이제산업의 지도 기능은 자본의 속성으로 확립된다.

 

노동자는 자기 노동력의 판매 계약을 체결할 때까지는 그 노동력의 소유자이며, 그는 오직 자신이 소유한 개인적이고 고립된 노동력만을 판매할 수 있다. 자본가가 1명의 노동력이 아닌 100명의 노동력을 구입하고,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100명의 노동자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체결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상황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자본가는 이 100명의 노동자를 협업시키지 않고도 일을 시킬 수 있다. 자본가는 100명의 독립적인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이지, 100명의 결합된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독립한 인격으로 노동자들은 제각각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자본가와 관계를 맺을 뿐 자기들 서로 간에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협업은 노동 과정에서 비로소 시작되며, 그때에는 이미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 과정에 편입되자마자 그들은 자본에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협업하는 사람으로, 또는 하나의 활동적인 유기체의 구성원으로 노동자들은 자본의 특수한 존재 양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협업에서 발휘하는 생산력은 자본의 생산력으로 간주된다.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은 노동자들이 일정한 조건 아래 놓일 때마다 무상으로 발휘되는데, 자본은 바로 이 조건을 조성한다. 이 사회적 생산력은 자본에게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 것이며, 노동자의 노동이 자본에 속하기 전에는 노동자 자신으로부터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생산력은 자본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또는 자본에 내재하는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단순 협업의 엄청난 효과는 고대 아시아, 이집트, 에트루리아인 등이 건설한 거대한 건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이 아시아 국가들은 행정비와 군사비를 충당하고도 생활 수단의 잉여를 가졌으며, 이를 호화로운 건축물이나 유용한 토목 공사에 활용할 수 있었다. 그 국가들은 거의 모든 비농업 인구의 노동을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그 위력을 과시하는 거대한 기념물들을 건설할 수 있었다. 비옥한 나일강 유역은 수많은 비농업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을 생산했으며, 왕과 승려가 소유하던 식량은 국토 전역에 거대한 기념비들을 세울 수단을 제공했던 것이다. 거대한 석상과 대량의 자재가 운송된 것은 그 자체로 불가사의하며, 이는 거의 전적으로 인간 노동의 아낌없는 사용으로부터 이뤄졌다. 이러한 공사에는 수많은 일꾼들과 그들의 노력의 집중만으로 충분했다. 거대한 산호초가 바다 깊은 곳에서 솟아 섬이나 육지가 되는 과정에서 개개의 침전물이 보잘것없는 것에 지나지 않듯, 아시아 왕국의 비농업 일꾼들은 개인적인 육체적 힘 외에 공사에 기여할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들의 수가 곧 그들의 힘이었다. 그리고 이 큰 무리들을 지휘하는 권력이 오늘날까지 남아 우리를 놀라게 하고 황홀하게 만드는 궁전, 사원, 피라미드, 거대한 석상들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종류의 사업은 일꾼들을 먹여 살릴 만한 소득이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현될 수 있었다.’

 

아시아와 이집트의 왕들 그리고 에트루리아의 승려들이 가졌던 이와 같은 지휘 권력은 근대 사회에서는 자본가에게로 이양되었다. 여기서 자본가가 개별 자본가로 등장하든, 또는 주식 회사처럼 집단적 자본가로 등장하든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인류 문명의 초기 수렵 민족이나 인도 공동체의 농업에서 볼 수 있는 노동 과정의 협업은,

 

1. 생산 조건의 공동 소유에 기반을 둔다.

 

2. 개개인이 씨족 또는 공동체의 탯줄을 끊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기반을 둔다.

 

이러한 두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이 협업은 자본주의적 협업과 구별된다. 고대, 중세 및 근대 식민지에서 때때로 이용된 대규모 협업은 직접적인 지배와 예속의 관계(대부분의 경우 노예 제도)에 기반을 두었다. 이와 달리, 자본주의적 형태의 협업은 처음부터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자신의 노동력을 자본에 판매하는)를 전제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적 협업은 소농민적 경영과 독립적 수공업(길드 형태 여부와 무관하게)에 대립하며 발전한다. 소농민과 수공업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적 협업이 협업의 특수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협업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특유하고 독특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난다.

 

협업으로부터 발휘되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나듯이, 협업 그 자체도 분산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자나 소경영주가 수행하는 생산 과정과 대립하며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현실의 노동 과정이 자본에 종속될 때 경험하는 최초의 변화이며, 이 변화는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난다. 동일한 노동 과정에 많은 임금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는 것이 이 변화의 전제 조건이자 자본주의적 생산의 출발점이다. 이 출발점은 자본 자체의 출현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은 노동 과정을 사회적 과정으로 전환시키고자 역사적으로 필요한 조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 과정에서 이러한 사회적 형태는 자본이 노동의 생산력을 높여 노동을 더 유리하게 착취하는 방법이다.

 

위에서 분석한 단순 형태의 협업은 모든 대규모 생산의 필연적 부수물이다. 하지만 단순 협업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특수한 발전 단계를 특징짓는 고정된 형태는 아니다. 단순 협업이 대략이나마 이러한 형태로 나타났던 것은 공장제 수공업의 초기 단계와, (주로 동시 고용 노동자 수와 생산 수단 집적의 규모로 농민 경영과 구별되는) 대규모 농업에서였다. 자본이 큰 규모로 사용되지만, 분업과 기계가 아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생산 부문에서는 단순 협업이 언제나 지배적인 형태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단순 협업은 더욱 발전된 형태들과 나란히 하나의 특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협업은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기본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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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

 

12. 상대적 잉여 가치 개념

 

필요 노동 시간은 노동력 가치의 등가물이 생산되는, 자본이 지불한 노동 부분으로, 주어진 생산 조건 아래에서는 그 크기가 불변이다. 노동자는 이 불변의 필요 노동 시간을 넘어 2시간, 3시간, 4시간, 6시간 등 더 노동할 수 있으며, 이 연장된 노동의 크기가 잉여 가치율과 노동일의 총 길이를 결정한다. , 필요 노동 시간은 고정적이지만, 노동일 전체의 길이는 가변적이다. 이제 노동일의 길이와, 그 내부의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 사이의 분할이 주어진 조건임을 가정한다.

 

노동일 A-C의 전체 길이는 12시간으로 불변한다. 잉여 가치 증대의 과제는 노동일 A-C를 연장하지 않고, 곧 절대적 잉여 가치 생산 방식이 아닌 다른 경로를 찾는 데 있다. 이는 필요 노동 시간(A-B)를 단축하고, 그만큼 잉여 노동 시간(B-C)을 상대적으로 연장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필요 노동 시간 A-B10시간에서 A-B´(9시간)으로 1시간 단축된다고 가정하자. 이 단축은 노동자의 생존 수단 가치의 하락, 곧 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서 이뤄진다. 이때, 노동일 A-C12시간으로 유지되므로, 잉여 노동 시간 B-CB´-C로 상대적으로 연장된다.

 

· B’C = ACAB’

· B’C = 12시간 9시간 = 3시간

 

결과적으로, 잉여 노동은 B-C(2시간)에서 B´-C(3시간)으로 1시간 증대한다. 이 증가는 B-B´ 구간에 해당하며, 이는 B-C의 절반(1시간)과 같다. 이처럼 노동일의 길이 자체는 변하지 않으면서 잉여 노동 시간을 연장하여 잉여 가치를 증대시키는 방식을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이라 한다.

 

노동일 A-C의 총 길이(12시간)가 고정된 상태에서 잉여 가치를 증대하는 방식은 상대적 이여 가치 생산으로 규정된다. 필요 노동(A-B)10시간에서 A-B´(9시간)으로 1시간 단축되면, 그 단축된 1시간만큼 잉여 노동(B-C)B´-C(3시간)로 상대적으로 연장된다. 잉여 노동은 2시간에서 3시간으로 50% 증가하며, 이는 정확한 필요 노동의 단축분과 일치한다. 이 변화는 노동일의 절대적 길이(A-C)를 건드리지 않는다. 다만,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필요했던 노동 시간의 일부가 자본가를 위한 노동 시간으로 전환될 뿐이다. 결국, 노동일의 총량은 불변하지만,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 간 분할 비율이 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한다. , 잉여 노동 시간의 증가는 노동 생산성 증대로부터 필요 노동 시간 단축을 전제한다.

 

 

노동일의 총 길이와 노동력의 가치가 확정되면, 잉여 노동의 크기 또한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노동력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그 노동력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생활 수단의 가치로 규정된다. 이 생활 수단 가치의 등가물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곧 필요 노동 시간이다. 구체적인 예로, 노동 시간 1시간이 금량 0.5원에 해당하고, 노동력의 일일 가치가 5원이라하자.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받은 노동력 대가로 5원을 재생산하고자 다음과 같이 10시간을 노동해야 한다.

 

노동력의 일일 가치 (5)/ 노동 1시간의 가치 (0.5) = 필요 노동 시간 (10시간)

 

따라서 생활 수단의 가치(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지면, 필요 노동 시간이 확정되고, 노동일의 총 길이에서 이 필요 노동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가 잉여 노동 시간으로 명확히 규정된다. 이 관계는 잉여 노동 크기가 외적 요인으로 주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동일 A-C12시간과 필요 노동 10시간이 주어지면, 잉여 노동은 2시간으로 고정된다. (12시간 10시간 = 2시간). 주어진 조건 내에서 이 잉여 노동을 증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본가가 노동자의 가치(5)보다 낮은 임금(: 4.5)을 지급하는 방법이 존재한다. 1시간 노동이 0.5원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할 때, 4.5원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은 다음과 같다.

 

지급된 임금 (4.5) / 노동 1시간의 가치 (0.5) 새로운 필요 노동 시간 (9시간)

 

이 경우, 12시간 노동일 중 필요 노동이 9시간으로 줄어들면서, 잉여 노동은 3시간 (12시간 9시간 = 3시간)으로 증가한다. 이에 따라 잉여 가치도 1원에서 1.5으로 증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잉여 노동의 증가는 노동자의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인하하는, 곧 착취의 정도(착취도)를 높이는 방식으로만 달성된다. 이는 노동력에 대한 불완전한 지불로부터 잉여 가치를 증대시키는 방법이다.

 

노동자가 9시간 노동으로 생산하는 4.5원의 임금을 받을 경우, 이는 이전 노동력 가치(5)에 비해 1/10만큼 감소한 금액이다. 이로 인해 노동자는 이전보다 적은 양의 생활 수단을 획득하게 되고, 그의 노동력 재생산은 위축된 상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잉여 노동은 정상적인 한계를 벗어나 연장되며, 잉여 노동 영역은 필요 노동 시간 영역을 강탈하면서 확대된다. 노동력에 대한 가치 이하의 임금 지불로부터 잉여 가치 증대 방식은 현실적으로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고찰 대상에서 제외한다. 우리는 모든 상품이 완전한 가치대로 매매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 전제 하에서, 노동력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은 노동자의 임금이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하락하는 방식으로 감소될 수 없다. 오직 노동력의 가치 그 자체가 하락하는 경우에만 필요 노동 시간이 감소하며, 이는 곧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의 전제가 된다.

   

노동일의 총 길이가 고정된 상황에서, 잉여 노동의 연장은 필요 노동 시간이 단축된 결과로 발생하며,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 필요 노동 시간의 단축이 잉여 노동 연장의 선행 조건이다. 앞선 예에서, 필요 노동 시간이 10시간에서 9시간으로 1/10만큼 축소되고, 그 결과, 잉여 노동이 2시간에서 3시간으로 연장되려면, 노동력의 가치가 실제로 1/10만큼 하락해야 한다. 노동력 가치의 하락은 주로 노동 생산성 증대로 인해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생활 수단의 가치가 하락할 때 발생한다. 이는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에서 핵심 원리를 구성한다.

 

노동력의 가치가 1/10만큼 하락한다는 것은,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동일한 양의 생활 수단이 이제 10시간이 아닌 9시간에 생산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 생산성의 향상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예를 들어, 제화공이 12시간 노동일에 한 켤레의 장화를 생산한다고 가정하자. 그가 동일한 12시간 동안 두 켤레의 장화를 생산하게 된다면, 그의 노동 생산성은 두 배로 증가한다. 이러한 생산성 증대는 노동 수단이나 노동 방법의 변화, 또는 이 둘의 결합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상대적 잉여 가치를 생산하려면 노동의 생산 조건, 곧 생산 방식과 노동 과정 자체에 혁명적 변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노동 생산성의 상승은 노동 과정에 질적 변화가 발생하여 상품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이 단축됨을 의미한다. 그 결과, 주어진 양의 노동이 더 많은 양의 사용 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과거 절대적 잉여 가치 생산을 위해 노동일 연장을 고찰했을 때는, 생산 방식이 고정되어 불변하는 것으로 전제되었다. 그러나 필요 노동이 잉여 노동으로 전환되며 상대적 잉여 가치가 생산되어야 하는 현 단계에서는, 자본이 전통적인 노동 과정을 단순히 계승하고 그 지속 시간만을 연장하는 일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잉여 가치의 증대를 위해서는 생산 방식 자체의 변혁이 필수적이다.

 

노동 생산성의 증가는 노동 과정에서 기술적, 사회적 조건, 곧 생산 방식 자체가 변혁될 때 비로소 이뤄진다. 이러한 변혁으로만 노동력의 가치는 저하되고, 노동일 중 이 가치의 재생산에 필요한 부분(필요 노동 시간) 역시 단축될 수 있다. 필자는 노동일의 연장으로부터 생산되는 잉여 가치를 절대적 잉여 가치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필요 노동 시간의 단축과 그에 따라 노동일의 두 부분(필요 노동, 잉여 노동) 길이 변화로부터 발생하는 잉여 가치를 상대적 잉여 가치라고 부른다. 이는 잉여 가치 증대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경로를 명확히 구분한다.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키려면, 그 가치를 직접 결정하는 생산물(일상적 생활 수단 또는 그 대체품)이 생산되는 산업 부문에서 노동 생산성이 상승해야 한다. 상품 가치는 그 상품을 최종 형태로 만드는 노동의 양뿐만 아니라, 그 상품 생산에 투입되는 생산 수단(불변 자본)에 들어 있는 노동의 양에서도 결정된다. 예를 들어, 장화의 가치는 제화공의 노동 외에 가죽, 왁스, 실 등의 가치에서도 규정된다. 따라서 생활 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불변 자본의 물질적 요소들(노동 수단과 노동 재료)을 공급하는 산업 부문들에서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상품 가격이 하락하는 일 또한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필요한 생활 수단을 직접 공급하지도 않거나, 또는 생활 수단의 생산을 위한 생산 수단을 공급하지 않는 부문들에서 노동 생산성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노동력의 가치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이는 노동력 가치와 상대적 잉여 가치의 연관 관계가 특정 산업 부문에 한정됨을 시사한다.

   

특정 상품의 가격 하락은 그 상품이 노동력 재생산에 기여하는 비율만큼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킨다. 예를 들어, 속옷은 필수적인 생활 수단이지만, 이는 노동자가 소비하는 수많은 생활 필수품 중 일부에 불과하다. 속옷 가격이 하락하면, 이는 노동자의 속옷 구입 지출을 줄이는 데 그친다. 생활 필수품의 총량은 여러 산업 부문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상품들로 구성되며, 이 상품들 각각의 가치가 노동력 가치의 특정 부분을 이룬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이 감소함에 따라 저하한다. 이때 필요 노동 시간의 총감소량은 노동력 재생산에 관련된 상이한 모든 생산 부문에서 발생한 노동 시간 단축의 총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이 폭넓은 생산성 향상을 전제함을 명확히 한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력 가치 저하라는 일반적 결과를 각 개별 자본이 직접 목표로 삼아 달성하는 결과처럼 취급한다. 하지만 개별 자본가가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켜 예를 들어, 속옷의 가치를 저하시킬 때, 그의 직접적인 목표는 반드시 노동력 가치를 저하시키고 필요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일이 아니다. 개별 자본가가 속옷 가치를 저하시켜 결과적으로, 노동력 가치 저하와 필요 노동 시간 단축에 기여하는 한, 그는 일반적 잉여 가치율의 상승에 기여하게 된다. 자본의 일반적이고 필연적인 경향들은 그것들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 형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별 자본의 동기는 상대적 잉여 가치 창출이라는 자본의 일반적 운동 법칙과 구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이 개별 자본들의 외적 운동으로 발현되어 경쟁이 강제하는 법칙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개별 자본가의 동기로 의식에 도달하는 방식은 여기서 직접적인 고찰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경쟁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자본의 내적 본성을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이뤄진다. 이는 천체의 외관상 운동이 그 진정한 운동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해석되는 일과 같다. 다만,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을 이해하고 이미 얻어진 결과들을 토대로, 다음의 사실을 추가하여 논리를 진전할 수 있다.

 

노동 1시간이 6원의 가치를 구현한다면, 12시간 노동일에는 총 72원의 새로운 가치가 생산된다.

 

· 생산성 향상 이전

 

현재 지배적인 노동 생산성 하에서, 12시간 노동에 12개의 상품이 생산된다고 가정한다. 상품 1개당 소비되는 원료 및 기타 생산 수단(불변 자본)의 가치는 6원이다.

이때 상품 1개의 총 가치는 다음과 같다.

 

· [생산 수단의 총 가치 + 12시간의 새로 생산된 가치] / 총 생산량 = 상품 1개의 가치

 

· [(6× 12) + 72] / 12 = [72+ 72] / 12 = 12

 

· 생산 수단(c) 가치: 6

· 새로 첨가된 노동(v+s) 가치: 6

 

· 생산성 향상 이후

 

어떤 자본가가 노동 생산성을 2배로 향상시켜 12시간 노동일에 24개의 상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생산 수단 가치는 변동 없이 유지된다.

 

상품 1개의 총 가치는 다음과 같이 하락했다.

 

· [생산 수단의 총 가치 + 12시간의 새로 창조된 가치] / 총 생산량

= 상품 1개의 새로운 가치

 

· [(6× 24) + 72] / 24 = [144+ 72] / 24 = 9

 

· 생산 수단(c) 가치: 6(불변)

· 새로 첨가된 노동(v+s) 가치: 3

 

결론적으로, 노동 생산성이 2배가 되었음에도, 1노동일이 생산하는 새로운 가치 총량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72원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생산량 증가로 인해 상품 1개당 가치는 12원에서 9원으로 하락한다.

 

12시간 노동일 동안 생산되는 72원의 새로운 가치는 이제 2배로 증가한 24개의 생산물에 분할된다. 결과적으로, 생산물 1개가 포함하는 새로운 가치는 종전의 1/12(6) 대신 1/24(3)으로 하락한다. 달리 말해, 생산 수단을 가공하는 데 투입되는 노동, 곧 상품 1개당 첨가되는 노동 시간은 이전의 1시간이 아닌 1/2시간으로 단축된다. 이때, 해당 상품의 개별 가치는 9(6+3)으로, 여전히 12원인 사회적 평균 가치보다 낮다. 이는 생산성 향상에 성공한 개별 자본가의 상품에 사회적 평균 조건에서 생산된 대다수 동종 상품보다 적은 노동 시간이 응고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상품 1개의 사회적 평균 가치는 12원이며, 이는 2시간의 사회적 필요 노동을 대표한다. 그러나 노동 생산성 향상을 이룬 변경된 생산 방식에서는, 상품 1개의 개별 가치는 9, 투입된 노동 시간은 1.5시간(1시간 30)으로 감소했다. 상품의 현실적 가치는 그 개별 가치가 아닌 사회적 가치로부터 결정된다. , 상품 가치는 개별적인 실제 투입 노동 시간이 아닌, 그 상품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으로부터 측정되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을 채택한 자본가가 자신의 상품을 사회적 가치인 12원에 판매할 경우, 그는 상품을 개별 가치(9)보다 3원 더 비싸게 판매하는 일과 같다. 3원은 특별(특수) 잉여 가치로 자본가에게 귀속된다.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킨 자본가에게는 12시간 노동일의 생산물이 종전의 12개에 24개로 증가하여 나타난다. 2배의 생산물을 판매하려면 판로가 2배로 확장되어야 하며, 이는 곧 시장 확대를 요구한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자본가는 가격 인하로부터만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상품을 개별 가치(9)보다는 비싸게, 그러나 사회적 가치(12)보다는 싸게 판매하는 전략을 취한다. 예를 들어, 상품을 10원에 판매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자본가는 상품 1개당 1원의 특별 잉여 가치(10-9=1)를 얻게 된다. 이 특별 잉여 가치로부터 잉여 가치의 증대는 그가 생산하는 상품이 노동력의 일반적 가치를 결정하는 생활 필수품에 속하든, 속하지 않든, 개별 자본가 자신에게 귀속된다. 결국, 각 개별 자본가는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상품 가치를 저렴하게 만들려는 직접적인 동기를 가지게 된다. 이는 특별 잉여 가치 획득을 위한 경쟁 원리에서 비롯한다.

 

노동 생산성 향상으로부터 잉여 가치 증대는 본질적으로 필요 노동 시간의 단축과 이에 따른 잉여 노동의 연장에서 비롯한다. 원래의 조건은 필요 노동 시간 10시간(노동력의 하루 가치 60)과 잉여 노동 2시간(매일 생산되는 잉여 가치 12)이다.

 

자본가는 생산성 향상 이 24개의 상품을 생산해 이를 1개당 10원에 판매하여, 240원의 판매액을 실현한다. 상품 24개에 투하된 생산 수단(불변 자본)의 총 가치는 144(=6×24)이다. 판매액 240원 중 투하된 불변 자본의 가치 144원을 대체하는 데 필요한 상품 수량은 다음과 같다.

 

불변 상품의 총 가치(144) / 상품 개당 판매 가격(10) = 14.4(142/5)

 

결과적으로, 생산물 중 14.4개의 판매액이 투하된 불변 자본을 회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12시간 노동일 동안 생산된 24개의 상품 중 불변 자본(생산 수단 가치)을 대체하고 남은 생산물은 9.6(9= 2414.4), 이는 새로 생산된 가치의 물질적 표현이다.

 

주어진 조건

 

· 노동력의 가격(노동자가 임금으로 받는 가치): 60

· 생산성 향상 후 상품 1개당 판매 가격: 10

· 12시간 동안 새로 생산된 가치에 해당하는 총 생산물: 9.6(93/5)

 

· 필요 노동의 생산물(임금 회수분)

 

필요 노동은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노동력 가격 60)을 상쇄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이며, 이느 곧 해당 가치만큼의 상품 수량으로 표현된다.

 

· 필요 노동 생산물 수량 = 노동력 가격 / 상품 1개 판매 가격

 

· 필요 노동 생산물 수량 = 60/ 10= 6

 

따라서 노동자는 자신의 임금 60원에 해당하는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6개의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

 

· 잉여 노동의 생산물(잉여 가치분)

 

잉여 노동은 전체 노동일 중 필요 노동을 초과하는 부분이며, 이는 새로 생산된 총 가치를 표현하는 생산물(9.6)에서 필요 노동에 해당하는 생산물을 제외한 나머지 수량이다.

 

· 잉여 노동 생산물 수량 = 총 창조 가치 생산물 필요 노동 생산물

 

· 잉여 노동 생산물 수량 = 9.66= 3.6

 

, 노동자가 생산성 향상 후 12시간 동안 새로 만들어낸 9.6개의 상품 중에서 6개는 노동자 자신(임금)을 위해, 나머지 3.6개는 자본가(잉여 가치)를 위해 생산된다. 결과적으로,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의 비율은 6 : 3.6(5 : 3)으로 변화한다. 이는 사회적 평균 조건의 5 : 1(10시간 : 2시간) 비율보다 잉여 노동에 유리하게 증가한다.

 

12시간 노동일 생산물 24개를 10원에 판매하여 얻는 총 가치는 240(240=10×24)이다. 이 중 생산 수단의 가치(144)를 제외한 나머지 96원이 1노동일 동안 새로 생산된 가치의 화폐적 표현이다. 96원은 동일한 종류의 사회적 평균 노동(12시간)이 생산하는 가치인 72원보다 더 크다. 이는 생산성이 예외적으로 높은 노동이 강화된 노동으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 이 노동은 동일한 시간 안에 사회적 평균 노동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한다.

 

자본가는 노동력의 하루 가치에 대해 이전과 동일한 60원을 지급한다. 앞서 생산성이 향상된 노동은 12시간 동안 96원의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며 강화된 노동으로 작용했다. 12시간 노동 중 60원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다음과 같이 산출된다.

 

생산된 총 가치(96) / 총 노동 시간(12시간) = 시간당 생산 가치(8)

 

노동력 가치(60) / 시간당 생산 가치(8) = 새로운 필요 노동 시간(7.5시간=7시간 30)

 

따라서 노동자는 이제 60원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종전의 10시간이 아닌 7.5시간만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그의 잉여 노동은 12시간 7.5시간 = 4.5시간이 되며, 이는 종전 2시간에서 2.5시간만큼 증가한다.

 

그가 생산하는 잉여 가치는 96(총 생산 가치)에서 60(노동력 가치)을 제외한 36원으로 증가한다. 이는 종전 12원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개선된 생산 방식을 채택한 자본가는 동일 생산 부문의 다른 자본가에 비해 1노동일 중 더 큰 부분을 잉여 노동으로 확보한다. 그는 총체적 자본이 상대적 잉여 가치를 생산할 때, 집단적으로 수행하는 일을 개별적으로 선취하는 셈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산 방식이 일반화되어 상품의 개별 가치와 사회적 가치 사이의 차이가 해소되는 즉시, 기존에 존재했던 특별 잉여 가치는 소멸한다. 노동 시간으로 가치를 결정하는 법칙은 이제 새로운 방법을 채택한 자본가에게 자신의 상품을 그 사회적 가치 이하로 판매하도록 강요하는 형태로 발현된다. 동시에 바로 이 법칙이 경쟁의 강제 법칙으로 기능하며, 경쟁자들 역시 새로운 생산 방법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과정은 상대적 잉여 가치의 일반화를 위한 자본의 끊임없는 생산성 혁신을 촉진한다. 이러한 과정으로부터 궁극적으로, 일반적 잉여 가치율이 상승하는 현상은, 노동 생산성의 증가가 생활 필수품 생산 산업에서 발생하여 노동력의 가치를 구성하는 상품들의 가격을 하락시켰을 때 비로소 현실화된다. 이 관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상품 가치는 노동 생산성에 반비례 한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상품 가치는 하락한다.

 

2. 노동력의 가치는 그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상품의 가치로부터 규정되므로, 노동력의 가치 역시 노동 생산성에 반비례한다.

 

3. 반면에, 상대적 잉여 가치는 노동 생산성에 정비례한다.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면 필요 노동 시간이 단축되어 상대적 잉여 가치는 증가하고, 생산성이 저하하면 잉여 가치도 저하한다.

 

화폐 가치가 불변하다는 전제 하에, 12시간의 사회적 평균 노동일은 72원이라는 동일한 새로운 가치를 언제나 창출한다. 이 가치 총액이 임금(가변 자본)과 잉여 가치로 어떻게 분할되는지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여 생산 수단의 가치가 저하되고 그 결과, 노동력의 하루 가치가 60원에서 36원으로 하락한다고 가정한다. 이 경우, 잉여 가치는 12원에서 7236= 36원으로 증가한다. 노동력 가치 36원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필요 노동 시간은 다음과 같이 산출된다.

 

· 노동일의 총 생산 가치(72) / 총 노동 시간(12시간) = 시간당 생산 가치(6)

 

· 노동력 가치(36) / 시간당 생산 가치(6) = 새로운 필요 노동 시간(6시간)

 

따라서 노동력 가치 재생산에 10시간이 필요했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6시간의 노동만이 요구된다. 결과적으로, 4시간의 노동이 필요 노동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와 잉여 노동의 영역에 편입된다. 이러한 상대적 잉여 가치 증대를 위해 상품을 값싸게 하고, 나아가 노동자 자체(노동력 가치)를 값싸게 하려는 노동 생산성 증가는 자본의 내재적 충동이자 끊임없는 경향이다.

 

상품을 생산하는 자본가는 상품의 절대적 가치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자본가의 관심은 오직 상품에 내포되어 판매로부터 실현되는 잉여 가치에만 집중된다. 잉여 가치의 실현은 투하된 가치의 회수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상품 가치는 노동 생산성의 발전에 반비례하는 반면, 상대적 잉여 가치는 노동 생산성의 발전에 정비례하여 증가한다. 결국, 동일한 과정(노동 생산성의 발전)이 상품을 값싸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상품에 내재된 잉여 가치를 증대시킨다. 이로부터 교환 가치의 생산만을 추구하는 자본가가 왜 상품의 교환 가치를 끊임없이 떨어뜨리려 노력하는가 하는 수수께끼가 해명된다. 이 수수께끼는 경제학 창시자 가운데 한 명인 케네가 논적들을 괴롭혔으나 아무런 해답을 얻지 못했던 문제다. 케네는상업과 수공업자의 노동에 대한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당신들 스스로 인정하듯, 공산품 제조에서는 생산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노동 지출 또는 노동 비율을 감축할수록 이익은 증대한다. 이는 곧 제품 가격을 인하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노동자의 노동에서 생기는 부의 생산이 그들의 생산물에서 교환 가치가 증대하는 데 있다고 믿고 있다.”

 

케네의 이 발언은 상업과 수공업의 가치 생산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들의 논리가 노동 절약(가치 하락)의 유용성을 인정하면서도 가치 증대를 부의 원천으로 본다는 모순을 지적한다. 이는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의 해명으로부터 비로소 해결되는 핵심적인 역설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 생산성의 발전에 따른 노동의 절약은 결코 노동일의 단축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 절약이 겨냥하는 것은 오직 일정한 양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의 단축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켜 1시간에 종전의 10배의 상품을 생산하게 되고, 따라서 상품 1개당 투입되는 노동 시간이 이전의 1/10로 단축된다 해도, 이는 그가 종전과 마찬가지로 하루 12시간 노동하면서 120개가 아닌 1,200개의 상품을 생산하는 일을 막지 않는다. 노동 절약의 목적은 상대적 잉여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지, 노동자에게 여가 시간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다. 노동자의 노동일은 단축되지 않고 오히려 연장되어, 14시간 동안 1,400개의 상품을 생산하도록 강요받을 여지까지 존재한다.

 

매컬록, 유어, 시니어와 같은 부류의 경제학자들 저서에서 발견되는 모순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생산력 발전으로 필요 노동 시간이 단축되었으므로, 노동자는 이에 대해 자본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쪽에서는 노동자가 그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앞으로는 하루 10시간이 아닌 15시간 동안 노동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의 절약이 필요 노동 단축으로부터 잉여 노동 연장을 목적으로 하며, 결코 노동자의 개선이나 노동일 단축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안에서 노동 생산성의 상승은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노동해야 할 부분(필요 노동 시간)을 단축한다. 이 과정은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해 공짜로 노동할 수 있는 나머지 부분(잉여 노동 시간)을 연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상품의 가격을 하락시키지 않고도 이러한 결과(잉여 노동 연장)를 어느 정도까지 달성할 수 있는지는, 우리가 다음 단계에서 검토할 상대적 잉여 가치의 여러 특수한 생산 방식들을 분석할 때 비로소 명확히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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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잉여 가치율과 잉여 가치량

 

본 장에서도 이전과 동일하게, 노동력의 가치와, 이에 따른 노동일 중 노동력의 재생산 또는 유지에 필요한 부분은 주어진 불변의크기라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 하에서, 잉여 가치율은 개별 노동자가 일정 기간 자본가에게 제공하는 잉여 가치량을 직접적으로 지시한다. 예를 들어, 필요 노동이 하루 6시간이고 이를 금량으로 표현한 것이 3원이라면, 3원은 1노동력의 하루 가치 또는 1노동력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자본의 가치이다. 나아가, 잉여 가치율이 100%일 경우, 3원의 가변 자본은 3원의 잉여 가치량을 생산한다. , 노동자는 매일 6시간의 잉여 노동량을 제공한다. 가변 자본은 자본가가 동시에 고용하는 모든 노동력의 총가치를 화폐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투하 가변 자본의 가치는 1노동력의 평균 가치에 고용된 노동력의 수를 곱한 값과 같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진 경우, 가변 자본의 크기는 동시에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에 정비례한다. 예를 들어, 1노동력의 하루 가치가 3원이라면, 매일 100노동력을 착취하려면 300원의 자본을, 매일 n노동력을 착취하려면 3n원의 자본을 투하해야 한다.

 

1노동력의 하루 가치인 3원의 가변 자본이 매일 3원의 잉여 가치를 창출한다면, 300원의 가변 자본은 매일 300원의 잉여 가치를, 3n원의 가변 자본은 매일 3n원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 그러므로 총 잉여 가치량은 개별 노동자의 1노동일이 산출하는 잉여 가치에 고용된 총 노동자 수를 곱한 값과 일치한다. 나아가, 개별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 가치량은 (노동력의 가치가 확정된 경우) 잉여 가치율로부터 결정되므로, 1법칙이 도출된다. , 생산되는 총 잉여 가치량은 투하한 가변 자본의 크기에 잉여 가치율을 곱한 것과 같다. 이는 동일한 자본가에게 동시 착취되는 노동력의 수와 (1노동력의 평균 가치 및) 개별 노동력 착취도의 곱으로 결정된다.

 

잉여 가치량은 S, 개별 노동자가 하루에 평균적으로 제공하는 잉여 가치는 s, 1노동력 구매에 매일 투하되는 가변 자본은 v, 가변 자본의 총액은 V, 평균 노동력의 가치는 P, 그 착취도(잉여노동/평균노동)a´/a, 그리고 고용되는 노동자 수는 n으로 각각 표시할 경우, 다음 공식이 성립한다.

 

잉여 가치율(m´)

 

= 잉여 가치(s) / 가변 자본(v)

 

잉여 가치량(S)

 

= 잉여 가치(s) × 고용된 노동자 수(n)

= [잉여 가치(s) / 가변 자본(v)] × 가변 자본 총액(V)

= 평균 노동력 가치(P) × [잉여 노동(a´) / 평균 노동(a)] × 고용된 노동자 수(n)

 

본 논의는 하나의 평균 노동력 가치가 불변하며, 자본가가 고용하는 노동자들 모두가 평균적 노동자로 환원되었다는 전제를 지속적으로 바탕에 둔다. 생산되는 잉여 가치가 착취되는 노동자 수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나, 그러한 경우에는 노동력의 가치도 역시 불변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일정한 잉여 가치량을 산출할 때, 한 요인의 감소는 다른 요인의 증대로부터 상쇄될 수 있다. 특히, 가변 자본이 감소하는 동시에 잉여 가치율이 동일 비율로 증대된다면,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은 불변으로 유지된다. 이전 가정에 따르면, 자본가가 하루 100명의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 300원을 투자하고, 잉여 가치율이 50%일 경우, 300원의 가변 자본은 150(1.5× 100)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

 

잉여 가치율이 2배인 100%로 증가하고 (노동일이 6시간에서 12시간으로 연장되며), 동시에 가변 자본이 절반인 150원으로 감소하더라도, 이때 역시 150(3× 50)의 잉여 가치가 생산된다. 따라서 가변 자본의 감소는 이와 비례하는 노동력 착취도의 증가로 상쇄되며, 고용 노동자 수의 감소는 이와 비례하는 노동일의 연장으로 보상된다. 그러므로 일정한 한계 내에서는 자본이 착취한 노동의 공급은 노동자의 공급과 무관할 수 있다. 반대로, 잉여 가치율의 감소는 가변 자본의 크기 또는 고용 노동자 수가 이에 비례하여 증가한다면,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을 불변으로 유지된다.

 

노동자 수(또는 투하된 가변 자본의 크기)의 감소를 잉여 가치율 증대(노동일의 연장)로 보상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노동력의 가치와 무관하게, 노동자의 생활 유지에 필요한 노동 시간이 2시간이든, 10시간이든, 한 노동자가 매일 생산할 수 있는 총 가치는 24시간의 노동이 대상화되는 가치보다 항상 적다. 이 대상화된 24시간 노동의 화폐적 표현이 12원이라면, 생산되는 총가치는 언제나 12원 미만이다.

 

노동력 자체를 생산하거나 노동력 구매에 투하한 자본 가치를 대체하기 위해, 매일 6시간의 노동이 필요하다는 앞선 가정에 근거할 때, 100%의 잉여 가치율(12시간 노동일)5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1,500원의 가변 자본은 매일 1,500원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 그러나 200%의 잉여 가치율(18시간 노동일)1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300원의 가변 자본은 기껏해야 600원의 잉여 가치만 생산할 수 있다. 이는 노동일의 절대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평균 노동일의 절대적 한계는 본래 24시간보다 짧으며, 이는 가변 자본 감소를 잉여 가치율 증대로 보상하는 행위, 곧 착취 노동자 수 감소를 노동력 착취도 상승으로 보상하는 행위의 절대적 한계를 규정한다. 이 자명한 제2법칙은 고용 노동자 수(가변 자본 부분)를 최대한 축소시키려는 자본의 경향과, 최대한 많은 잉여 가치량을 생산하려는 또 다른 경향과 모순된다. 이 모순은 다수의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이다. 반면, 고용 노동력의 양(가변 자본의 크기)이 잉여 가치율 감소와 같은 비율로 증대되지 못한다면,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은 감소한다.

 

3법칙은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이 잉여 가치율과 투하되는 가변 자본량이라는 두 가지 요인으로 결정된다는 사실로부터 도출된다. 잉여 가치율(노동력의 착취도)과 노동력의 가치(필요 노동 시간)가 주어진다면, 가변 자본이 클수록 생산되는 총 가치량과 잉여 가치량 또한 커진다는 것은 자명하다. 노동일의 한계와 필요 노동 부분의 한계가 주어진 상황에서는, 개별 자본가가 생산하는 가치와 잉여 가치의 양은 전적으로 그가 동원하는 노동량으로부터 규정된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그러나 이 노동량은 앞선 가정에서 그가 착취하는 노동력의 양 또는 노동자의 수로부터 결정되며, 이 수는 또한 그가 투하하는 가변 자본의 크기로부터 결정된다. 그러므로 잉여 가치율과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다면,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은 투하 가변 자본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자본가는 자신의 자본을 두 부분으로 분할한다. 한 부분은 생산 수단에 지출되며, 이는 자본의 불변 부분을 이룬다. 다른 부분은 살아 있는 노동력에 지출되며, 이 부분이 그의 가변 자본을 형성한다.

 

동일한 생산 방식 하에서도 생산 부문에 따라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 사이의 자본 분할은 상이해지며, 동일 부문 내에서도 생산 과정의 기술적 토대와 사회적 결합의 변화에 따라 그 분할은 달라진다. 그러나 주어진 자본의 불변 부분과 가변 부분 사이의 비율(1:2, 1:10, 1:x)이 어떠하든, 바로 앞에서 정립한 법칙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는 앞선 분석에 근거할 때, 불변 자본의 가치는 비록 생산물의 가치에 재현되더라도, 새로 생산되는 가치(새로 창조되는 가치 생산물) 속에는 편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1,000명의 방적공을 고용하려면 100명의 방적공을 고용할 때보다 더 많은 원료와 방추 등이 필요하지만, 이 추가 생산 수단의 가치는 (등귀, 하락, 불변, 크기 등과 무관하게) 생산 수단을 움직이는 노동력으로부터 수행되는 가치 증식 과정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확인된 제3법칙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제시된다.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고 노동력의 착취도가 동일할 경우, 서로 다른 자본이 창조하는 가치 및 잉여 가치의 양은, 이들 자본에서 가변 자본의 크기(살아 있는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부분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이 제3법칙은 평균 이윤율의 형성과 같은 현상의 겉모습에 근거한 모든 경험적 관찰과 명확히 모순된다. 주지하다시피, 사용된 총자본에 대한 백분율을 고려할 때, 비교적 많은 불변 자본과 적은 가변 자본을 사용하는 방적업자가, 비교적 적은 불변 자본과 많은 가변 자본을 사용하는 빵 제조업자보다 더 적은 이윤(잉여 가치)를 얻지는 않는다. 이 겉모습의 모순을 해결하려면 아직 다수의 매개항이 필요하며, 이는 초등 대수학의 입장에서 0/0이 현실적인 크기를 표시할 수 있음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매개항이 요구되는 것과 비슷하다.

 

고전파 경제학은 이 제3법칙을 공식화하지는 못했으나, 가치 법칙의 필연적 결론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를 견지했다. 그들은 이 법칙을 무리한 추상으로부터 현상의 모순을 구출하려 시도했다. 리카도 학파가 이 난관에 어떻게 봉착했는지는 추후 논의된다. ‘아무것도 학습하지 못한속류 경제학은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현상을 규제하고 설명하는 법칙을 무시하고 현상의 외관에 집착한다. 스피노자의 발언, 무지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와는 대조적으로, 속류 경제학은 무지가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믿는다.

 

한 사회 내에서 총자본이 매일 동원하는 노동은 하나의 단일 노동일로 간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 수가 백만 명이고, 평균 노동일이 10시간이라면, 사회적 노동일은 1,000만 시간이 된다. 개별 노동자의 평균 노동일의 길이가 주어진 경우(그 한계가 육체적 또는 사회적 조건으로 설정되든), 잉여 가치량은 오직 노동자 수(노동 인구)의 증가로부터만 증대한다. 이 경우, 인구 증가는 사회적 총자본의 잉여 가치 생산을 결정하는 수학적 한계가 된다. 반대로, 인구 크기가 고정된 경우, 그 한계는 노동일 연장의 범위로부터 규정된다. 다음 장에서 다루겠지만, 이 법칙은 오직 지금까지 고찰된 형태의 잉여 가치(절대적 잉여 가치)에만 해당된다.

 

지금까지의 잉여 가치 생산 고찰로부터, 임의의 화폐액(가치액)이 모두 자본으로 전환될 수는 없으며, 특정한 최소 한도의 화폐(교환 가치)가 개별 화폐 소유자 또는 상품 소유자의 수중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가변 자본의 최소 한도는 잉여 가치의 생산을 위해 1년 내내 고용되는 1노동력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금액이다.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로 사는 일에 만족한다면, 그는 자신의 생활 수단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 하루 8시간)만 노동하면 충분하며, 그에게 필요한 생산 수단도 이 8시간의 노동분에 상응하는 양이면 충분하다. 이와 반대로, 이 노동자에게 8시간 외에 추가로 4시간의 잉여 노동을 하게 만드는 자본가는 추가적 생산 수단을 마련하고자 추가적 화폐액을 필요로 한다. 앞선 가정에 의거할 때, 자본가가 매일 취득하는 잉여 가치로 노동장와 동등한 수준의 생활, 곧 필수적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최소한 두 사람의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

 

(노동자 한 명이 4시간의 잉여 노동을 제공하므로, 두 노동자는 총 8시간의 잉여 노동을 제공하며, 8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필요 노동과 동일하다.) 이 경우, 자본가의 생산 목적은 단순한 생활 유지일 뿐, 부의 증대는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본질적으로 부의 증대를 전제한다. 자본가가 일반 노동자보다 겨우 2배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고, 생산된 잉여 가치의 절반을 자본으로 재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그는 노동자의 수와 투하 자본의 최소 한도를 8배로 증대시켜야 한다. (이는 그가 32시간의 잉여 노동을 획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스스로 노동자와 동일하게 직접 생산 과정에 참여할 수 있으나, 그러한 경우, 그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혼합형인 소경영주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일정한 발전 단계에 도달하면, 자본가는 인격화된 자본으로 기능하는 시간 전체를 타인 노동의 취득 및 감독과 노동 생산물의 판매에 전념해야 한다.

 

중세의 길드 제도는 개별 장인(마스터)이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 수의 최대 한도를 극히 적게 제한하면서, 수공업적 장인이 자본가로 전환하는 과정을 강제적으로 저지하려 했다. 화폐 소유자 또는 상품 소유자는 (생산을 위해 투하하는 최소 금액이 중세의 최대 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시점에서) 비로소 현실적으로 자본가로 변모한다. 여기에서도 헤겔이논리학에서 정립한 법칙, 곧 단순한 양적 차이가 일정한 지점에 도달하면 질적 차이로 이행한다는 법칙의 정당성이 자연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입증된다.

 

개별 화폐 소유자 또는 상품 소유자가 자본가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가치액의 최소 한도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 단계에 따라 변화하며, 동일 발전 단계에서도 각 생산 분야의 특수한 기술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일부 생산 분야는 이미 자본주의적 생산 초기부터 개인이 소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규모의 최소 자본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한편으로는 콜베르 시대의 프랑스나 현재의 여러 독일 주에서처럼 국가가 개인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공업 및 상업 부문의 경영에 법률상의 독점권을 갖는 회사, 곧 근대적 주식 회사의 선구자가 설립되었다 우리는 생산 과정의 진행 중에 발생하는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 사이의 관계 변화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더 이상 다루지 않으며, 따라서 자본 그 자체의 특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멈추려 한다. 다만, 몇 가지 요점만을 강조한다.

 

생산 과정의 내부에서 자본은 노동(활동 중인 노동력 또는 노동자 그 자체)을 지휘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인격화된 자본인 자본가는 노동자가 작업을 규칙적이며 상당한 강도로 수행하도록 감시한다. 더 나아가, 자본은 노동자 계급에게 그들 자신의 좁은 범위의 욕구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동을 강제로 수행하게 만드는 관계로까지 심화되었다. 그리고 타인에게 노동을 시키고, 잉여 노동을 착취하며,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은 그 정력, 탐욕, 능률 면에서 직접적 강제 노동에 기반을 둔 종전의 모든 생산 제도를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자본은 우선 역사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기술적 조건을 그대로 활용하여 노동을 자신에게 예속시킨다. 따라서 자본은 생산 방식을 즉각적으로 변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까지 고찰한 형태의 잉여 가치 생산(노동일의 단순한 연장으로부터 잉여 가치 생산)은 생산 방식 자체의 어떠한 변화와도 무관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잉여 가치의 생산은 구식 빵 제조업에서나 근대적 면공장에서나 동일하게 효력을 발휘했다.

 

생산 과정을 단순한 노동 과정의 관점에서 고찰하면, 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자본이 아닌 자신의 합목적적 생산 활동을 위한 단순한 수단과 재료로 대한다. 예를 들어, 가죽 공장 노동자는 가죽을 자신의 노동 대상으로 취급할 뿐이며, 그의 무두질 작업은 자본가를 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생산 과정을 가치 증식 과정의 관점에서 고찰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생산 수단은 즉시 타인의 노동을 흡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환된다. 이제 노동자가 생산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수단이 노동자를 사용하는 역전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생산 수단을 자신의 생산 활동을 위한 소재적 요소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수단이 노동자를 자기 자신의 생활 과정에 필요한 효모로 소비한다. 이때 자본의 생활 과정은 자기 증식하는 가치로서의 자본 운동에 불과하다.

 

야간에 가동이 중단되어 살아 있는 노동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는 용광로나 작업장은 자본가의 관점에서 볼 때 순전한 손실이다. 따라서 용광로와 작업장은 노동력의 야간 노동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 화폐가 생산 과정에서 객체적 요소(생산 수단)로 전환되자마자, 생산 수단은 당연한 권리와 힘을 부여받아 타인 노동과 잉여 노동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이처럼 죽은 노동과 살아 있는 노동 (가치와 가치 창조력)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도 또는 왜곡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고유한 특징이며, 이것이 자본가들의 의식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하나의 사례로부터 최종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영국의 공장주들이 반발했던 1848-1850년 당시, 서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유서 깊고 명망 있는 회사 중 하나인 칼라인 부자회사(1752년부터 1세기 동안 존속하며, 동일 가족으로부터 4대째 경영된 페이즐리의 아마 및 면화 방적 공장)의 사장인 한 박식한 신사가 1849425일자글래스고 데일리 매일지에 교대 제도라는 제하의 편지를 기고했는데, 그 내용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소박한 다음 구절이 담겨 있다.

 

이제 노동 시간을 12시간에서 10시간으로 단축하는 데서 발생하는 해악을 고찰하자. 이는 공장주의 기대와 재산에 가장 중대한 손상을 초래한다. (공장주, 곧 그의 직공들)가 과거 12시간 작업했으나, 앞으로 10시간으로 제한된다면, 그의 공장에 있는 기계나 방추의 수는 12개당 10개로 축소되며, 그가 공장 매각을 고려하더라도 10개로만 평가될 것이다. 따라서 전국 모든 공장은 그 가치의 1/6을 상실하게 된다.’

 

‘4세대 자본가적 속성을 물려받은 이 서부 스코틀랜드인의 자본가적 두뇌 속에서는, 방추 등 생산 수단의 가치와, 생산 수단이 자본으로 갖는 속성(, 자기 자신의 가치를 증식시키며 매일 타인의 지불받지 않는 노동을 일정량 흡수하는 속성)이 구별 없이 혼재되어 있다. 결국, 이 칼라일 회사 사장은 공장을 매각할 경우, 방추 등 생산 수단의 가치뿐 아니라, 그 위에 덧붙여 방추 등의 잉여 가치 취득에 대해서까지도 대가를 지급받는다고 실제로 예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방추 등 생산 수단에 체현된 노동(방추 등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에 대해서뿐 아니라, 방추 등의 도움으로 매일 페이즐리의 용감한 서부 스코틀랜드인들로부터 짜내는 잉여 노동에 대해서까지도 대가를 지불받을거라 망상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노동일이 2시간으로 단축되면(12시간에서 10시간으로), 방적 기계 12대의 판매 가격이 10대의 판매 가격으로 축소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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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주간 노동과 야간 노동: 교대제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생산 수단은 가치 증식 과정에서 노동을 흡수하고, 그에 비례하는 잉여 노동을 취하고자 존재한다. 이러한 기능이 정지될 경우, 생산 수단은 자본가에게 소극적인 손실을 의미하는데, 이는 미사용된 채로 투하된 자본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생산 재개를 위한 추가 지출이 발생할 때는 적극적인 손실로 전환된다. 노동일의 야간 연장은 일시적인 방편이며, 흡혈귀의 갈증처럼 자본의 착취적 욕구를 해소하는 데 불과하다. 따라서 노동을 24시간 내내 착취하려는 충동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내재적 속성이다.

 

동일한 노동력을 주야로 지속적으로 착취하는 일은 육체적으로 제한적이기에,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간 노동력과 야간 노동력을 교대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 교대 방식은 다양하며, 일례로, 노동 인원의 일부가 특정 주에는 주간 노동을, 다음 주에는 야간 노동을 수행하는 교대제(윤번제)가 있다. 이러한 방식은 과거 영국 면공업의 급발달기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현재에도 특히 모스크바의 면방적 공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24시간제 생산 과정은 영국에서 공장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자유로운’) 다수의 산업 분야, 곧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의 용광로, 단철 공장, 압연 공장, 기타 금속 가공 공장 등에서 여전히 제도화되어 있다. 이들 공장에서는 노동 과정이 주 6일 동안, 매일 24시간 지속될 뿐 아니라, 심지어 일요일에도 거의 24시간 계속된다. 노동자는 성인 남녀는 물론, 8세부터(일부 6)부터 18세까지 의 모든 연령층에서 아동 및 소녀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산업 부문에서는 소녀와 부인도 남자 종업원과 함께 야간 노동에 참가한다. 야간 노동의 일반적인 폐해를 차지하고라도, 24시간 중단 없이 생산 과정은, 특히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고도로 긴장된 노동을 요구하는 산업(대부분의 노동자에게 주야 12시간의 노동일이 공인됨)에서 표준 노동일의 한계를 초과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 노동은, 다수의 경우, 영국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참으로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실태를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다.

 

‘9세부터 12세 소년들이 수행하는 노동량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처럼 부모나 고용주의 권력 남용은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누구나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소년들을 주야 고대로 노동시키는 방식은, 사업의 활황기나 통상적인 진행 상황을 막론하고, 지나치게 긴 노동 시간을 필연적으로 초래하며, 이는 대다수 소년들에게 잔혹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시간에 달한다. 소녀들 중 일부가 결근할 경우, 자신의 노동일을 마친 소년 중 한 명 또는 다수가 결근자의 일까지 대행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며, 한 압연 공장 지배인은 결근 소년의 대체 방안에 대한 질문에, “그것은 아마 당신도 나와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을 텐데요.”라고 답변하며, 이 실태를 인정하였다.’

  

‘ · 정상적인 노동일(오전 6오후 530)을 가진, 어느 압연 공장의 소년은 6개월간 일주일에 나흘 밤을 오후 830분까지 추가 노동했다.

 

· 다른 소년은 9세에 때때로 12시간 교대 노동을 3회 연속하였으며, 10세에는 이틀 낮, 이틀 밤을 연속하여 노동했다.

 

· 또 다른 10세 소년은 일주일에 사흘 밤을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나머지 밤은 오후 9시까지 노동했다.

 

· 13세 소년은 일주일 내내 오후 6시부터 다음날 낮 12시까지 노동했으며, 때로는 월요일 아침부터 화요일 밤까지와 같이 3교대 분을 연속으로 작업했다.

 

· 마지막으로, 12세 소년은 스테이블리 주물 공장에서 2주일간 연속으로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노동한 끝에 결국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9세 소년, 조지 올린즈 워스는 자신의 노동 경험을 진술했다.

 

나는 지난 주 금요일 출근하여, 다음날 새벽 3시 작업 시작을 위해 밤새도록 공장에 머물렀다. 집이 여기서 5마일 떨어져 있어, 나는 가죽 앞치마를 밑에 깔고 조그만 재킷을 덮은 채, 마루 위에서 잠을 잤다. 이후 이틀은 오전 6시에 출근했다. 여기는 정말로 더운 곳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나는 약 1년간 농촌에 있는 용광로에서 노동했다. 그곳에서도 토요일에는 새벽 3시에 작업을 시작했지만, 집이 가까워 귀가하여 취침할 수 있었다. 다른 날은 보통 오전 6시에 시작해 저녁 6시 또는 7시에 끝마쳤다.”

 

이제 자본이 24시간 노동 제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살펴볼 차례이다. 자본은 물론 이 제도의 극단적 형태, 곧 노동일의 잔인하고 믿을 수 없는연장을 위한 이 제도의 남용에 대해서는 무지한 태도를 취한다. 자본이 논하는 일은 오직 이 제도의 정상적형태뿐이다.

 

네일러 앤드 빅커즈 제강 공장의 공장주는 600-700명의 종업원 가운데 18세 미만이 10% 미만이고, 야간 교대반에는 20명만이 노동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아이들은 더위를 조금도 타지 않는다. 작업장의 온도는 화씨 86-90(섭씨 30-32)에 달한다. 단철 공장과 압연 공장의 직공들은 주야 교대로 노동하지만, 그 외 모든 작업장에서는 오전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간 작업만 시행된다. 단철 공장의 노동 시간은 12시간 교대이며, 일부 직공은 주야 교대 없이 항상 야간 노동만을 수행한다. 규칙적으로 주간 노동만을 수행하는 직공과 야간 노동만을 수행하는 직공 간 건강상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람들이 밤낮의 교대 없이 일정한 규칙을 유지할 때, 수면을 더 잘 취할 수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현재 약 20명의 18세 미만 소년들이 야간 교대반에서 작업하고 있다. 18세 미만 소년들의 야간 노동 없이는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없다. 기업의 주요 반대 이유는 생산비 증가에 있다. 숙련공이나 부서 책임자를 확보하는 일은 어렵지만, 소년들은 쉽게 충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간 노동을 하는 소년들의 비율이 낮으므로, 야간 노동을 제한하는 일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고, 이해 관계도 없다.’

 

존 브라운 제강 제철 공장은 성인 남자와 소년 3,00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일부 중노동을 요하는 제강 제철 작업에서 주야 교대를 시행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 엘리스는 힘든 제강 작업의 인력 구성이 성인 2명 대 소년 1-2명의 비율로 되어 있다고 밝혔다. 전체 고용 인원 가운데 18세 미만 소년은 500명이며, 그 중 약 1/3에 해당하는 170명이 13세 미만이다. 엘리스는 법률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8세 미만 종업원에게 하루 24시간 중 1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을 금지하는 일에 대해서는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성년자의 야간 노동 면제 기준 연령을 12세 이상의 특정 나이로 규정하는 일은 어렵다고 본다. 이미 고용 중인 소년공들의 야간 노동을 금지하기보다는, 차라리 13세 미만 또는 14세 미만 소년의 고용 자체를 금지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주간 교대반의 소년들은 야간 교대반에서도 순번을 바꿔 노동해야 하는데, 이는 성인 남성이 밤일만을 계속할 경우, 건강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1주일마다 교대하는 야간 노동은 해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견해는 네일러 앤드 빅커즈사가 연속적인 야간 노동보다 주기적 교대 야간 노동이 더 해롭다고 주장한 것과 상반된다. 이는 각자의 사업상 이익을 고려한 발언으로 추정된다.) 주야 교대 노동자들이 주간 노동자들과 건강 상태가 동일하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 18세 미만 소년들의 야간 노동을 금지하는 데 반대하는 유일한 이유는 비용 증가이다. 이러한 비용 증가는 기업이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초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법률 규제가 도입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확보하기 어려운 노동력은 더욱 부족해지며, 이는 곧 회사가 노동력의 완전한 가치를 지급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됨을 의미한다.’

 

캄멜사의 거인 제강 제철 공장은 존 브라운사와 비슷하게 대규모로 경영된다. 이 회사의 전무는 정부 위원회 위원인 화이트에게 제출했던 자신의 증언 초고를 나중에 은폐하려 시도했으나, 화이트는 그 내용을 정확히 기억했다. 화이트의 기억에 따르면, 이 거대 공장은 아동 및 미성년자의 야간 노동 금지를 불가능하며, 이는 곧 공장 폐쇄와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회사에서 18세 미만의 소년은 전체 종업원의 6%를 약간 상회할 뿐이며, 13세 미만 소년은 1% 미만에 불과했다.

 

애터클리프의 샌더슨 압연 단철 공장 소유주 샌더슨은 동일한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8세 미만 소년들의 야간 노동 금지가 막대한 곤란이 생길 것이다. 최대 난관은 소년 대신 성인을 고용하면서 발생하는 비용 증가이다. 나는 구체적인 금액은 알 수 없으나, 이 증가분은 강철 가격을 인상할 정도는 아니므로, 공장주의 손실로 귀결될 것이다. 그 이유는 성인 노동자들이 이 손실을 분담하기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샌더슨은 자신이 아동들에게 얼마를 지급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소년들의 임금은 매주 4실링 내지 5실링 수준일 것이다. 소년들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힘으로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종류이기에, 성인의 더 큰 힘을 사용할 경우, 비용을 보상할 만한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무거운 금속을 다루는 일부 경우에만 성인 고용이 이익이 될 수 있다. 성인 노동자들 또한 소년공을 부하로 두지 못하게 되는 일을 원치 않는데, 이는 성인공이 소년공보다 순종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소년들은 일을 배우기 위해 어려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이 목적을 위해서는 소년들을 주간 노동에만 국한시킨다는 것이 부적합하다.’

 

소년들이 낮에 일을 배울 수 없는 이유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다.

 

매주 교대로 주간 및 야간 노동을 하는 성인 노동자들은, 야간 노동 시 소년들과 분리되므로, 소년들로부터 얻는 이득의 절반을 상실하게 된다. 성인 노동자들이 소년들에게 제공하는 지도는, 소년들의 임금 일부로 산정되며, 이로부터 성인 노동자들은 소년들의 노동을 비교적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야간 노동이 금지된다면, 각 성인 노동자는 자신의 이득 절반을 잃게 될 것이다.’

 

, 샌더슨사는 소년들의 야간 노동으로부터 성인 노동자들의 임금 일부를 보전하는 방식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그 비용을 자신의 이윤에서 직접 충당해야 한다. 이로 인해, 이윤이 감소하는 사실이야말로, 샌더슨사가 소년들이 낮에 일을 배울 수 없다고 주장하는 주된 이유이다. 더 나아가, 야간 노동이 성인들에게 전적으로 전가될 경우, 성인 노동자들은 이를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라는 문제도 발생한다. 야간 노동이 완전히 폐지될 경우, 수많은 곤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샌더슨 판단이다. 그는 강철 생산 자체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라고 인정하면서도, 강철 생산 이상의 목적이 있음을 시사한다. , 핵심은 강철 생산이 아니라 이윤 획득이 문제이다. 용광로, 압연 공장, 건물, 기계 설비, , 석탄 등 불변 자본은 단순한 강철 생산을 넘어 가치 증식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생산 수단은 잉여 노동을 흡수하고자 존재하며, 당연히 12시간보다 24시간 동안 더 많은 잉여 노동을 흡수할 수 있다. 이는 생산 수단이 샌더슨사에 하루 24시간 동안 일정 수의 직공들을 동원하기를 요구하는 일과 같다. 노동을 흡수하는 기능이 중단되는 순간, 생산 수단은 자본으로의 성격을 상실하고, 샌더슨사에 순수한 손실로 전환된다.

 

야간 노동이 폐지될 경우, 매우 비싼 기계들이 하루의 절반 동안 놀게 되어,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또한, 현행 제도와 동일한 작업량을 유지하려면, 건물 규모와 기계 설비를 두 배로 확장해야 하며, 이는 지출을 두 배로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른 자본가들이 주간 작업만을 수행하며 건물, 기계 설비, 원료가 야간에 유휴 상태에 놓이는 상황에서, 샌더슨사가 특별한 권리를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주간 작업만 하는 공장에서도 기계 설비 유휴로 인한 손실은 발생하지만, 샌더슨사의 경우 용광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 큰 손실이 초래된다. 용광로의 불을 끄지 않으면 연료가 낭비되며, 불을 끌 경우 재점화하여 필요 온도를 얻기까지 시간적 손실이 발생한다. 또한 용광로 자체가 온도 변화로 인해 손상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샌더슨사가 값비싼 용광로와 기계 설비의 손상에는 극도로 민감하면서도, 8세 아동의 수면 시간 손실은 노동 시간의 이득이 되는 반면, 용광로가 온도 변화로 손상될 우려는 제기되나, 노동자는 주야 교대에도 불구하고 손상되지 않는다는 모순된 전제가 깔려 있다.

 

10-5. 노동일 단축 투쟁 : 노동일 강제 입법(14세기 중엽에서 17세기 말)

 

노동일이란 무엇인가. 자본은 하루분의 가치를 주고 구매한 노동력을 얼마 동안 소비할 권리가 있는가. 노동일은 노동력 그 자체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을 넘어 얼마나 더 연장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자본은 노동일이 하루 24시간 전체를 포괄하며, 단지 노동력이 다시 봉사하는 데, 절대로 필요한 최소한의 휴식 시간만을 제외한다고 응답한다. 명백한 사실은 노동자가 전 생애에 걸쳐 노동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며, 이에 따라, 그가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은 본래부터, 그리고 법적으로 자본의 가치 증식을 위해 전용되어야 할 노동 시간으로 귀결된다.

 

교육, 정신적 발달, 사회적 기능의 수행, 사교, 육체적 · 정신적 생명력의 자유로운 활동 등을 위한 시간, 그리고 심지어 일요일의 안식 시간까지도(안식일을 엄수하는 이 나라에서) 모두 자본가의 것이라는 말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자본의 잉여 노동에 대한 무제한적이고 맹목적인 충동, 곧 채워질 수 없는 탐욕으로 말미암아 노동일을 그 사회적 한계는 물론 순전히 육체적 한계마저 넘어선다. 자본은 신체의 성장, 발육, 건강한 유지에 필수적인 시간을 빼앗고,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이용할 기회까지도 도둑질한다. 식사 시간은 삭감되고,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생산 과정 자체에 편입되어 (보일러에 석탄을 공급하고, 기계에 윤활유나 석유를 주입하듯)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처럼 자본은 노동자의 시간을 완전히 착취하여 자신의 가치 증식만을 추구한다.

 

자본은 생명력을 회복하고 갱신하며 활력을 부여하는 건전한 수면을, 기진맥진한 유기체가 소생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불과 몇 시간의 무감각 상태로 감축시킨다. 노동력의 정상적인 유지가 노동일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력에서 최대 한도의 일상적 지출 (그 지출이 아무리 병적이고, 강제적이며,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이 노동자의 휴식 시간의 한계를 규정한다. 자본은 노동력의 수명을 문제 삼지 않으며, 오로지 일일 노동 과정에서 동원할 수 있는 노동력의 최대 한도에만 관심을 둔다.

 

자본은 노동력의 수면을 단축하며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는 탐욕스러운 농업 경영자가 토지의 비옥도를 약탈하며, 수확량을 증대시키려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같다. 따라서 잉여 가치의 생산이자 잉여 노동의 흡수인, 자본주의적 생산은 노동일의 연장으로 노동력의 정상적인 도덕적, 육체적 발전 및 활동 조건을 박탈한다. 따라서 인간 노동력의 위축을 초래할 뿐 아니라, 노동력 자체의 조기 소모와 사망을 야기한다. 이는 노동자의 수명을 단축하면서도, 주어진 기간 내에 생산에 전념하는 시간을 연장시키려는 기제이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의 재생산, 곧 노동자 계급의 지속적 존재에 필요한 상품 가치를 포함한다. 자본이 자기 증식에 대한 무제한의 충동에서 필연적으로 추구하는 노동일의 반()자연적 연장이 개별 노동자의 수명과 노동력의 생존 기간을 단축시킨다면, 소모된 노동력의 보다 신속한 보충이 요구되며, 이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비용을 증대시킨다. 이는 기계 소모가 빠를수록, 기계 가치 중 매일 재생산되어야 할 부분이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자본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표준 노동일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노예 소유자가 노예를 구매하는 행위는 말을 사는 일과 다를 바 없다. 그가 노예를 잃으면, 자본을 상실하는 일이며, 노예 시장에서 새로운 지출로부터 이 자본을 보충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 사항에 주목해야 한다.

 

 

조지아 주의 논이나 미시시피 주의 늪지는 인간의 육체에 매우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 지역 경작에 필요한 인간 생명의 낭비는 버지니아 주와 켄터키 주의 풍부한 흑인 보관 창고에서 보충받지 못할 정도로 크지는 않다. 노예를 보호하는 일이 노예 소유자의 이익과 합치될 때, 노예는 인간적으로 취급되나, 노예 무역이 실시됨에 따라 경제적 타산은 노예를 가장 무자비하게 혹사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는 노예를 외국의 흑인 사육장에서 값싸게 보충할 수 있게 되면서, 노예의 수명이 그의 생존 시 생산성보다 덜 중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예 수입국의 노예 관리 원칙은, 노예로부터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노동을 짜내는 일이 가장 효과적인 경제적 이용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열대 지방 경작에서 1년간의 이윤이 농장 투하 총자본과 같아지는 일이 드물지 않기 때문에 흑인의 생명은 극도로 무자비하게 희생당한다. 수백 년간 거대한 부를 창출한 서인도 농업은 수백만 아프리카 인종을 삼켜버렸다. 오늘날 쿠바에서 농장주는 파운드 스털링에 달하는 소득으로 왕자와 다름없이 생활하지만, 노예들은 형편없는 음식물과 극도의 쉴 새 없는 혹사로 해마다 상당수가 죽어간다.’

 

이름만 다를 뿐, 이것은 임금 노동자, 당신에게 하는 말이다. 노예 무역을 노동 시장으로, 켄터키와 버지니아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의 농업 지방과 아일랜드로, 아프리카를 독일로 바꾸어 읽어보라. 이미 과도 노동이 런던 빵 제조공들의 수를 어떻게 감소시켰는지 확인했다. 그런데도 런던의 노동 시장은 빵 제조업에서 죽기를 각오한 독일인들과 기타 지원자들로 언제나 넘쳐난다.

 

도자기 제조업은 이미 확인했듯이, 노동자 수명이 가장 짧은 산업 부문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도자기공들이 부족한가. 현대적 도자기 생산의 발명자이자, 일반 노동자 출신인, 조사이아 웨지우드는 1785년 하원에서 해당 제종업에 종사하는 전체 노동자가 15,000명에서 20,000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861년에는 영국에서 이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도시 중심지에서만 101,302명에 달했다.

 

면공업은 이미 90년간 존재했다. 이 기간은 영국 사람의 3세대에 해당하며, 이 면공업이 노동자들의 9세대를 삼켜버렸다고 장담할 수 있다.’

 

물론 몇 차례의 열광적 호황기에는 노동 시장에서 노동 인력의 공급이 대단히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1834년이 그러했다. 그러나 당시 공장주들은 구빈법 위원회에 농업 지방의 과잉 인구를 북부로 보낼 것을 제의하며, 그렇게 하면 공장주들이 그들을 흡수하고 소비해 버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빈법 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알선인들이 임명되었다. 맨체스터에 사무소가 개설되었고, 알선인들은 취업 희망 농촌 노동자들의 명부를 작성하여 사무소로 보냈다. 공장주들은 사무소에서 필요한 사람을 선택하고, 그들을 맨체스터로 보낼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이 인간 화물은 짐짝처럼 꼬리표가 붙어 운하로 또는 짐마차로 송달되었다. 그중 걸어서 온 일부는 길을 잃고 반쯤 굶주린 빈사 상태로 공장 지대를 헤매었다. 이러한 제도는 하나의 정규적인 상업 부문으로 발전했다. 하원은 이를 거의 믿겠으나, 분명히 이러한 인신매매가 끊임없이 지속되었으며, 이 사람들은 흑인 노예들이 미국의 면화 재배업자에게 판매되는 일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으로 맨체스터의 공장주들에게 판매되었다. 1860년은 면공업이 절정에 달한 해였으며, 또다시 도시 노동자가 부족해졌다. 공장주들은 인신 알선인을 다시 찾았고, 이 알선인들은 잉글랜드 남부 저지, 도싯셔의 초원, 데본셔의 구릉, 윌트셔의 목축지를 샅샅이 뒤졌으나, 과잉 인구는 이미 전부 흡수되어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베리 가디언(Bury Guardian)지는 영불 통상 조약의 체결(1860) 이후, ‘1만 명의 추가적 노동자가 랭커셔에 흡수될 수 있으며, 3-4만 명이 더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인신매매의 알선인들과 하청인들1860년 농업 지방을 돌아다녔으나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한 이후,

 

공장주들의 한 대표는 런던까지 와서 구빈국 대표인 빌리어즈에게 청원했다. 그 내용은 구빈원으로부터 가난한 아동들을 랭커셔의 방적 공장으로 공급하는 일을 허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경험이 자본가에게 보여주는 일은 과잉 인구, 자본의 가치 증식에 필요한 수보다 많은 인구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과잉 인구는 발육부진의, 단명한, 신속히 교체되는 인간들, 곧 익기도 전에 따먹히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적 생산이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민 생명력의 근원을 얼마나 급속하고 확고하게 장악했는지, 그리고 공업 인구의 퇴화가 농촌으로부터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생명 요소들을 끊임없이 흡수하는 일로부터 얼마나 저지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농촌 노동자들까지도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가장 강한 개체만이 살아남는 자연 도태의 원칙이 강력하게 작용함에도, 벌써 얼마나 많이 쇠약해지기 시작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자본은 자신 주위 노동자 세대의 고난을 부인하기에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인류의 장래 퇴화나 결국 사멸할 것이라는 예상으로부터는 그 실천적 활동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는 지구가 태양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으로부터 자본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일과 같다. 주식 투기의 경우, 언젠가는 벼락이 떨어지리라는 것(가격 폭락)을 누구나 알지만, 모두가 자기 자신은 황금의 비를 모아 안전한 장소에 옮겨놓은 뒤에 그 벼락이 이웃 사람의 머리 위에 떨어지기를 바란다. 뒷일은 될 대로 되라!

 

이것이 모든 자본가와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표어이다. 따라서 자본은 사회적으로 강제되지 않는 한,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육체적·정신적 퇴화, 조기 사망, 과도 노동의 고통 등에 대한 불평에 대해 자본은,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쾌락(이윤)을 증가시키는데, 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가하고 응수한다.

 

사태를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모든 일은 개별 자본가의 선의나 악의 때문이 아니다. 자유 경쟁 아래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이 개별 자본가에게 외부적인 강제 법칙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표준 노동일의 제정은 자본가와 노동자가 수세기에 걸쳐 투쟁한 결과다. 그러나 이 투쟁의 역사는 상반되는 두 가지 경향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현대 영국 공장법과 14세기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영국 노동 법규를 비교해 보라. 현대 공장법은 노동일을 강제적으로 단축시키지만, 이전 노동 법규들은 노동일을 강제적으로 연장시키려 했다. 다만, 자본이 생성되던 초기 상태, 곧 경제적 관계의 힘만으로는 충분한 잉여 노동을 취득할 수 없어 국가 권력의 도움이 불가피했던 상태에서, 자본이 요구했던 것은, 자본이 성년기에 내심 불만을 품으면서도 마지못해 하는 양보와 비교할 때 매우 겸소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발전한 결과로, ‘자유로운노동자가 사회적 조건에 강제되어 일상적 생활 수단의 가격을 받고 자신의 활동적인 생활 시간 전체, 또는 노동 능력 자체를 팔아넘기게 되기까지, 곧 한 접시의 팥죽에 자기의 장자 권리를 팔아넘기게 되기까지(구약성서, 창세기, 2529절 이하) 수세기가 소요되었다. 따라서 14세기 중엽부터 17세기 말까지 자본이 국가 권력에 의존하여 성인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려 했던 노동일의 길이는, 19세기 후반에 아동들의 피를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일을 막고자, 국가가 설정한 노동일의 길이와 대체로 일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컨대, 최근까지 미국의 가장 자유로운 주인 매사추세츠 주에서 12세 미만 아동 노동에 대한 법적 한계가 선포되었는데, 이는 17세기 중엽, 영국에서 원기왕성한 수공업 노동자, 건장한 노동자, 또는 장사와 같은 대장장이들에게 적용되었던 표준 노동일과 같았다.

 

최초의 노동자 규제법’(에드워드 3세 제23, 1349)은 그 직접적인 구실이지만, 구실일 뿐이지 원인은 아니다. 이러한 입법은 구실이 사라진 후에도 수세기 동안 존속했기 때문에 그 이유를 당시 만연한 흑사병에서 찾았다. 이 병으로 인구가 너무 격감하여 토리당의 한 저술가는 노동자들을 적당한 가격으로’(, 고용주에게 상당한 양의 잉여 노동을 남겨줄 가격으로) ‘고용할 수 없어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노동일의 한계와 적절한 노동 임금이 법률로 제정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노동일의 한계에 관한 조항뿐이다. 이는 1496(헨리 7세 치하) 법률에서도 반복되었는데, 모든 수공업 및 농업 노동자의 노동일은 3월부터 9월까지, 아침 5시부터 저녁 7-8시까지로 정해졌으나, 엄수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식사 시간은 아침 식사 1시간, 점심 1.5시간, 오후 4시 간식 0.5시간으로, 이는 현행 공장법에 규정된 것의 정확히 두 배였다.

 

겨울에는 식사 시간이 동일했으나, 노동은 아침 5시부터 어두울 때까지였다. 1562, 엘리자베스 법령은 일당이나 주당 임금으로 고용되는노동자의 노동일 길이는 그대로 두고, 중간 휴식 시간을 여름에는 2시간 반, 겨울에는 2시간으로 제한하려 했다. 이 법령은 점심 시간을 1시간으로 한정하고, ‘0.5시간의 낮잠5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만 허가했다. 결근 또는 지각 시에는 1시간마다 1페니씩 임금에서 공제하도록 규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령의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노동력 시장의 실제 상황 때문에 노동 조건은 법령에 규정된 것보다 노동자에게 훨씬 더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경제학의 시조이자 통계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윌리엄 페티는 17세기 최후 1/3에 출간한 한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노동자, 당시에는 농업 노동자를 의미하고, 하루 10시간씩 노동하며, 1주일에 20회의 식사를 한다(평일 3, 일요일 2). 노동자들은 금요일 저녁에 단식하고, 현재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2시간을 소비하는 점심 식사 시간을 1시간 반으로 줄인다면, 이것만으로도 앞에서 언급한 세금을 징수할 수 있을 것이다.’

 

앤드류 유어가 1833, 12시간 노동 법안을 가리켜 암흑 시대로 후퇴하는 것이라고 규탄한 일은 정당하지 않은가. (이는 노동 시간을 과거보다 연장시키지 않고 과거와 동일하게 하려 했기 때문에 나온 불만이다.) 이 법에 포함된 (페티가 언급한) 규정들이 도제에게도 적용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17세기 말엽까지 아동 노동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다음의 불평으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에서처럼 7년 동안 도제로 묶어두는 일은 (독일에서는) 관습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3-4년이 일반적이다. 이는 아동들이 요람에서부터 일에 대한 훈련을 받아 민첩하고, 유순하여 사업에 빨리 적응하고 기능을 빨리 습득하기 때문이다. 반면, 잉글랜드에서는 아동들이 도제가 되기 전까지 아무 일도 배우지 않으므로, 완전한 수공업 노동자가 되기까지는 훨씬 더 긴 세월이 필요하다.’

 

이러한 낮은 숙련도와 더불어, 18세기 대부분에 걸쳐 영국 자본은 노동자를 온전히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 대공업 시대에 이르기까지, 자본은 노동력의 일주일 임금을 지불하고도 노동자의 일주일 전체 노동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농업 노동자는 예외). 노동자들은 4일분의 임금으로 일주일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자본가를 위해 나머지 이틀도 일해야 할 충분한 이유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문제는 영국 경제학자들 중 일부는 자본의 이익을 옹호하며 노동자들의 이러한 고집을 통렬히 비난했으나, 다른 일부는 노동자들을 옹호했다. 예를 들어, 포슬스웨이트는 자신의 저서인 상업 사전(1751)에서 노동자 비판자인상공업에 관한 논문(1770) 저자와의 논쟁을 검토하고, 노동자 옹호의 구체적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특히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노동자가 5일간에 1주일 생활에 충분한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그는 6일 전체를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는 진부한 말이므로, 이에 대한 언급 없이 이 간략한 서술을 끝낼 수 없다. 그들은 수공업 및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들로 하여금 1주일에 6일 동안 쉬지 않고 노동하도록 만들고자 (세금이나 다른 수단으로) 생활 필수품의 가격까지도 비싸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나는 이 나라 노동자들의 영원한 노예 상태를 목적으로 투쟁하는 위대한 정치가들과는 의견을 달리한다. 오히려 그들은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격언을 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영국 상품 일반에 신용과 명성을 보장해 준 영국 수공업 및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들의 재능과 기교는 영국인들이 자랑하는 바가 아닌가. 이러한 재능과 기교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아마도 노동자들이 자기들 특유의 방식으로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1주일에 6일 전체를 동일한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1년 내내 일만 하도록 강요당한다면, 이것은 그들의 창의성을 무디게 하고, 민첩하고 재주있는 그들을 우둔한 바보로 만들지 않겠는가. 또한, 노동자들은 그러한 영원한 노예 상태의 결과로 자신들의 명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혹사당하는 동물들로부터 그 무슨 솜씨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 중 다수는 프랑스 사람이 5-6일 걸릴 일을 4일에 해치운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이 영원히 힘들고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면, 그들은 프랑스 사람들보다 퇴화할 우려가 있다. 국민이 전쟁에서 용맹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 한편으로 그들이 먹는 훌륭한 소고기와 푸딩의 덕택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못지않게 헌법상의 자유 정신의 덕택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수공업 및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들의 우수한 재능과 기교가 그들 특유의 방식으로 즐기는 자유의 덕택이라고 어째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인가. 나는 그들로부터 이 특권을 빼앗지 말 것과, 그들의 용기와 창의성의 원천인 좋은 생활을 결코 빼앗지 않을 것을 바라는 바이다.’

 

이에 대해상공업에 관한 논문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7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신의 제도라면, 이는 나머지 6일이 노동(여기서는 자본을 의미함)에 속한다는 것을 암시하며, 이러한 신의 명령을 강행하는 일을 잔인하다고 할 수 없다. 인간이 일반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안일과 나태에 빠지기 쉬운 경향을 가진다는 것을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들의 행동에서 불행하게도 경험한다. 그들은 생활 수단의 가격이 등귀하지 않는 한, 1주일에 평균 4일 이상 일하지 않는다. 이제 1부셸의 밀이 노동자의 1주일 생활 수단 전체를 대표하며, 그 가격이 5실링이고 노동자는 하루 노동으로 1실링을 번다고 가정해 본다. 이 경우, 그는 1주일에 5일만 일하면 된다. 1부셸의 밀이 4실링이라면, 그는 4일만 일하면 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임금이 생활 수단의 가격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에, 4일 노동하는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는 나머지 날을 놀고 지낼 수 있는 여분의 돈을 가지게 된다. 6일간의 적당한 노동은 결코 노예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본다. 우리의 농업 노동자들은 주 6일 노동하며, 모든 면에서 노동자들 중 가장 행복하다. 네덜란드 사람들 역시 공장제 수공업에서 6일간 노동하는데도 매우 행복한 국민으로 보인다. 프랑스 사람들 또한 공휴일이 끼어 있지 않은 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은 영국인으로 타고난 권리로부터 유럽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많은 자유와 독립을 향유할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러한 관념은 우리나라 병사들의 용감성에는 어느 정도 유익하겠으나, 공장제 수공업 노동자들은 이런 관념을 적게 가질수록, 그들 자신과 나라를 위해 더 좋을 것이다. 노동자는 결코 자기 윗사람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총인구의 7/8이 재산을 거의 소유하지 못했거나 전혀 소유하지 않은 우리나라와 같은 상업국에서 국민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현재 나흘에 받고 있는 임금액으로 기꺼이 엿새를 일하게 될 때까지는 해결책은 완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목적, 나태, 방탕, 자유를 근절하고 근면의 정신을 함양하고자, 그리고 구빈세 경감과 공장제 수공업 노동 가격 인하를 위해, 자본의 충실한 대변인은 공적 부조에 의존하는 노동자들(극빈자들)이상적 구빈원’(노동 수용소)에 감금하는 확실한 대책을 제안한다. 이러한 구빈원은 잘 먹이고 잘 입히면서도 노동을 거의 시키지 않는빈민 보호원이 되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공포의 집이 되어야 한다. 공포의 집’, 이상적 구빈원에서는 하루 14시간을 노동 시간으로 설정해야 하며, 여기에 적당한 식사 시간을 포함하여 온전한 12시간을 실제 노동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1770년에 이상적 구빈원’, 공포의 집에서 1 노동일은 12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63년 뒤인 1833, 영국 의회가 4개 공업 부문에서 13-18세 아동의 노동일을 온전한 12시간으로 단축시켰을 때, 영국 공업의 마지막 심판의 날이 닥쳐온 것처럼 떠들었다. 1852, 루이 보나파르트가 부르주아지의 지지 기반을 다지고자, 법정 노동일을 연장하려 했을 때, 프랑스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노동일을 12시간으로 단축시킨 법률, 이것만이 공화국의 입법 중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하게 좋은 것이다.”라고 외쳤다.

 

취리히에서는 10세 이상 아동 노동이 12시간으로 제한되었다. 아르가우(스위스 주)에서는 1862년에 13-16세 아동 노동 시간이 12시간 반에서 12시간으로 단축되었으며, 오스트리아에서는 1860년에 14-16세 아동의 노동 시간이 역시 12시간으로 단축되었다. 1770년 이래 발전(진보)얼마나 훌륭한가!”라고 매콜리는 기쁨에 넘쳐소리칠지도 모른다. 1770년에 자본가들이 꿈에서만 갈망하던 극빈자들을 위한 공포의 집은 몇 해 지나서 않아 공장 노동자 자신들을 위한 거대한 구빈원으로 등장했다. 그것이 바로 공장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현실이 자본가들의 이상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10-6. 노동일 단축 투쟁 : 공장법 제한 (1833-1864)

 

자본은 노동일의 정상적인 최대 한계를 수세기에 걸쳐 12시간의 자연적 낮 시간까지 늘리는 데 성공했으나, 18세기 후반 대공업이 출현하며 상황은 급변했다. 노동일은 눈사태처럼 기존의 모든 제약을 허물며 무한정 연장되기 시작했다. 도덕적, 자연적 한계는 물론, 나이, 성별, 낮과 밤의 구별까지 모조리 파괴됐다. 이전 법률에서 명확했던 낮과 밤의 개념조차 극도로 모호해져, 심지어 1860년 영국 재판관은 유대 율법 해설가에 비견될 통찰력을 동원해 낮과 밤의 정의를 판결로 규명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자본은 이처럼 모든 한계를 돌파한 향연 속에서 스스로의 성과를 만끽했다.

 

새로운 생산 체계의 소음에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던 노동자 계급이 자각하기 시작하자, 그들의 반항은 대공업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곧바로 터져 나왔다. 그러나 초기 30년간 노동자 계급이 쟁취한 일은 명목적인 양보에 불과했다. 의회는 1802년부터 1833년까지 다섯 차례의 노동 관계법을 제정했지만, 교활하게도 이러한 법률의 강제적 이행이나 집행에 필요한 인력 및 경비는 단 한 푼도 예산에 의결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법률들은 사문화된 문서에 지나지 않았다.

 

‘1833년 법률이 제정되기 전에는, 아동과 미성년자들이 사실상 강요된 노동 조건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때로는 꼬박 하루 이틀 동안, 시키는 대로 노동해야 했다.’

 

근대적 산업에서 표준 노동일 개념은 면, 1833년 공장법에 이르러 비로소 등장했다. 이 법은 면, , 아마, 비단 공장을 포괄했다. 1833년부터 1864년까지 영국 공장법 역사는 자본의 정신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1933년 법률은 공장의 통상 노동 시간을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로 15시간의 범위로 규정했다. 이 시간대 안에서는 미성년자(13-18)를 하루 중 언제 고용하든 합법적이었다. 다만, 특별히 명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일 미성년자를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시켜서는 안 되었다. 해당 법률 제6조는 노동 시간이 제한된 각 개인에게 하루 최소 1시간 반의 식사 시간을 의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뒤에서 언급할 예외를 제외하고는, 9세 미만 아동 고용을 금지했으며, 9세에서 13세 아동 노동은 하루 8시간으로 제한했다. 야간 노동, 곧 법률상 저녁 8시 반부터 아침 5시 반까지 노동은 9세부터 18세까지 모든 사람에게 금지되었다. 입법자들은 성인 노동력 착취에 대한 자본의 자유, 곧 그들이 노동의 자유라 칭하는 것을 침해할 의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공장법이 그 자유를 저해하지 않도록 특이한 제도를 고안해냈다. 이 사실은 1833628, 조사 위원회 중앙위 제1차 보고서에 명확히 서술되어 있다.

 

현재 시행되는 공장 제도의 가장 큰 폐해는 아동 노동을 성인 노동일의 최대 한도까지 필연적으로 연장시키는 점에 있다. 성인 노동을 규제하지 않으면서, (이는 우리가 제거하려는 폐해보다 더 큰 악영향을 낳을 수 있으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안은 아동 2교대제를 도입하는 계획이라 판단된다.’

 

계획교대 제도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시행되었다. (‘릴레이는 프랑스어나 영어에서 역마다 역마를 교체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9세부터 13세까지의 아동으로 구성된 한 교대반이 차임 5시 반부터 오후 1시 반까지 노동하면, 다른 교대반이 오후 1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 연이어 노동했다.

 

그 이전에 22년간 제정된 모든 아동 노동 법률을 공장주들이 뻔뻔하게 무시해온 일에 대한 보상으로, 이 법은 그들에게 쓴 알약에 설탕을 발라준 격이었다. 의회는 183431일 이후에는 11세 미만, 183531일 이후에는 12세 미만, 그리고 183631일 이후에는 13세 미만 아동이 한 공장에서 8시간 이상 노동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러한 자유주의자본에 대한 관대함은 특히 주목할 만한데, 이는 파, 칼라일, 브로디, , 거스리 등 런던의 가장 저명한 내과 및 외과 의사들이 하원 증언에서 지체하면 위험하다.”고 천명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특히 의사 파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노골적으로 밝혔다.

 

조기 사망(요절)이 어떤 형태로 발생하든, 이를 예방하려면 반드시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이 특정 방식(공장의 작업 방식)은 확실히 가장 잔인하게 조기 사망을 유발하는 형태로 간주되어야 한다.’

 

1832년 선거법 개정 이후 개혁된 의회는 공장주들에 대한 섬세한 배려를 보이며 13세 미만 아동들을 그 후 수년간 일주일에 72시간에 달하는 공장 노동이라는 지옥에 방치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의회가 시행한 노예 해방령에서는 자유를 조금씩 베풀어 주면서도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이 흑인 노예에게 일주일에 45시간 이상 노동시키는 것을 처음부터 금지하는 조항을 두었다. 그러나 자본은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수년 동안 시끄러운 선동을 시작했다. 그 주요 목표는 노동이 8시간으로 제한되고 의무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동의 나이 규정이었다. 자본가의 인류학적 관점에 따르면, 아동기는 10세나 11세에 끝났다. 공장법의 완전한 실시가 예정된 1836년이 다가올수록, 공장주들의 분노는 더욱 맹렬해졌다. 이들이 정부를 심하게 협박한 결과, 1835년 정부는 아동의 나이를 13세에서 12세로 낮출 것을 제의하기까지 했다. 그러는 사이 외부 압력 역시 더욱 위협적으로 거세졌다. 결국 하원은 용기를 잃지 않고 13세 아동들을 하루 8시간 이상 자본이라는 자거노트 수레 바퀴 아래 던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하여 1833년 법률은 완전한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18446월까지 변경되지 않았다.

 

이 법률이 처음에는 부분적으로, 다음에는 전체적으로 공장 노동을 규제하던 10년간, 공장 감독관들의 공식 보고서는 이 법률 집행의 난맥에 대한 고충으로 가득 찼다. 1833년 법률은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의 15시간 범위 내에서, 각 미성년자와 아동의 12시간 또는 8시간 노동의 시작, 중단, 재시작, 종료 시간 결정권을 자본가에게 위임했다. 또한, 서로 다른 노동자들에게, 상이한 식사 시간을 지정하는 일도 전적으로 자본가이었다. 이로 인해 자본가들은 곧바로 새로운 교대 제도를 고안했는데, 이는 노동자를 고정된 역에서 교대시키는 대신, 언제나 다른 시점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교체하는 방식이었다. 이 제도의 교묘함은 추후에 다시 논의하므로, 여기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제도가 공장법 전체의 정신과 규정을 무효화시켰다는 점은 명백하다. 각 아동과 미성년자에 관한 그토록 복잡한 장부를 두고, 공장 감독관들이 어떻게 공장주들에게 법정 노동 시간과 식사 시간을 준수를 강요할 수 있었겠는가. 대부분의 공장에서는 곧바로 이전에 잔인한 만행이 처벌 없이 다시 횡행하게 되었다.

 

1844년 내무 장관과의 회견에서 공장 감독관들은 새로 고안된 교대 제도 하에서는 통제할 수 없음을 증언했다. 그러나 그 사이 상황은 크게 변했다. 공장 노동자들은 1838년 이후부터 10시간 노동 법안을 자신드릐 경제적 구호로 삼았으며, 이와 더불어 인민 헌장(보통 선거권 및 각종 선거 제도 개혁 요구 성명서)을 정치적 구호로 내세웠다.

 

1833년 법률을 준수했던 일부 공장주들조차도, 법률을 위반한 불성실한 동료들의 비도덕적 인 경쟁에 대해 의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 동료들은 극도의 철면피함이나 비교적 유리한 지역 사정 덕분에 법망을 피할 수 있었다. 더욱이 개별 공장주들이 자신의 오래된 탐욕을 채우려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었을지라도, 공장주 계급의 대변인과 정치적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와 말씨를 고치도록 명령했다. 이는 공장주들이 당시 곡물법(외국 곡물 수입을 규제하여 지주 지대를 올리고 산업 자본가의 이윤을 감소시키는 법) 폐지 투쟁을 시작했고, 이 승리를 위해 노동자들의 협력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장주들은 자유 무역의 도래로 임금이 두 배가 될 뿐 아니라, 10시간 노동 법안까지도 채택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므로 공장주들은 1833년 법률의 실현에 불과한 조치들에 감히 반대할 수 없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신성불가침 이익인 지대가 위협받자, 토리당(지주 계급 당)은 자신들의 적(공장주)의 흉악한 술책을 의분에 넘쳐 통렬히 비난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84467, 추가적 공장법이 성립되었고, 1844910일부터 발효되었다. 이 법은 18세 이상의 부녀자라는 새로운 노동자 범주를 법적 보호 하에 두었다. 이들의 노동 시간은 12시간으로 제한되었고, 야간 노동이 금지되는 등 모든 면에서 미성년자와 동등하게 취급되었다. 이 입법으로부터 성인 노동까지도 직접적이고 공식적인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다. 1844-1845년 공장 보고서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풍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성인 여성이 이 법률로 인해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불평한 사례를 단 한 건도 알지 못한다.’

 

13세 미만 아동의 노동 시간은 하루 6시간 반으로 단축되었으며, 특정 조건에서는 7시간까지 허용되었다.

 

허위에 찬 교대 제도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이 법률은 특히 다음과 같은 중요한 세칙들을 제정하게 되었다.

 

아동과 미성년자의 노동일은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아침에 공장에서 노동을 개시하는 시점부터 계산되어야 한다.’

 

따라서 예를 들어, A가 아침 8시에, 그리고 B10시에 노동을 시작하더라도, B의 노동일은 A와 동일한 시각에 끝나야 한다. 시간 측정은 공공 기관이 설치한 시계’(가령 근처 철도 시계)를 기준으로 해야 하며, 공장 시계는 여기에 맞춰야 한다. 공장주는 작업 개시, 종료 및 식사 시간을 알리는 크게 인쇄된 공고를 공장 내에 개시해야 한다. 또한, 오전 작업을 12시 이전에 시작한 아동들에게는 오후 1시 이후에 다시 일을 시킬 수 없다. 결과적으로, 오후 교대반은 오전 교대반과는 다른 아동들로 구성되어야 했다. 점심 시간으로 배정되는 1시간 반은,

 

1시간 반의 점심 시간 중 적어도 한 시간은 오후 3시 이전에 주어져야 하며, 매일 같은 시간에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아동이나 미성년자에게 최소 30분의 휴식을 주지 않은 채, 오후 1시 이전에 5시간 이상의 노동을 시켜서는 안 된다. 아동, 미성년자, 또는 부녀자는 식사 시간 동안 노동 과정이 진행되는 공장 작업실 안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우리가 앞서 보았듯이, 노동 시간의 한계, 중단, 군대식의 일률적인 시계에 맞춘 규제 같은 세부 규정들은 의회가 독자적으로 고안한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세칙들은 근대적 생산 양식의 자연 법칙으로, 당시 상황에 따라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국가로부터 이 규정들의 제정, 공식 인정, 선포는 장기간에 걸친 계급 투쟁의 결과였다. 이 규정들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난 결과 중 하나는 성인 남성 노동자의 노동일 역시 동일한 제한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다수 생산 과정에서 아동, 미성년자, 부녀자의 협력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체로 1844년부터 1847년까지 12시간 노동일은 공장법 적용을 받는 모든 산업 부문에서 전반적으로 균일하게 실시되었다. 공장주들은 그러나 이러한 진보를 보상할 만한 퇴보없이는 허용하지 않았다. 이들의 선동에 따라 하원은 공장 아동의 추가 공급을 확보하고자, 착취되는 아동의 최저 연령을 9세에서 8세로 인하했다. (이는 신과 인간의 법률로부터 자본에 바쳐진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1846년에서 1847년은 영국 경제사에서 획기적인 시기를 형성한다. 이 기간 곡물법이 폐지되고, 면화 및 기타 원료에 대한 관세가 폐지되었으며, 자유 무역이 입법의 기본 방침으로 선포되었다. 한 마디로, 천년 왕국이 불리던 시대가 시작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해들은 차티스트 운동과 10시간 노동일 쟁취 노동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이다. 이 노동 운동들은 복수심에 불타던 토리당을 동맹자로 확보했다. 브라이트와 콥덴을 필두로 한 배신적인 자유 무역주의자들의 격렬한 반항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투쟁해 온 10시간 노동 법안이 마침내 의회를 통과했다.

 

184768일 신공장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184771일부터 소년’(13세에서 18)과 전체 여성 노동자의 노동일을 우선 11시간으로 단축하고, 184851일부터는 최종적으로 10시간으로 제한한다. 나머지 조항들은 1833년과 1844년 법률의 단순한 수정 및 증보였다. 자본은 184851, 이 법률의 완전한 시행을 저지하고자 예비 전쟁을 시도했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경험에서 배운 것처럼 위장하여, 자신들의 성취(공장법)를 파괴하는 행위에 가담하도록 유도했다. 이 시도는 교묘하게 선택되었다.

 

‘1846년에서 1847년의 심각한 공황으로 인해, 다수 공장이 조업을 단축하거나 완전히 폐쇄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로 인해, 공장 노동자들은 2년간 극심한 고통을 겪었으며, 상당수가 궁핍해지고 빚을 지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이 과거의 손실을 보충하고, 빚을 갚거나, 전당 잡힌 가구를 되찾고, 팔았던 가구를 새것으로 바꾸거나, 자신과 가족의 새 옷을 장만하고자 더 긴 노동 시간을 차라리 선택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공장주들은 10%의 일반적 임금 인하로부터 이러한 사태의 자연적인 영향을 강화하려 했다. 이 임금 인하는 새로운 자유 무역 시대의 개막을 축하하는 행위와 같았다. 다음으로, 노동일이 11시간으로 단축되자마자 임금을 8.33% 더 인하했으며, 최종적으로, 노동일이 10시간으로 단축되자마자, 그 두 배에 해당하는 임금을 추가로 삭감했다. 결과적으로, 상황이 허락하는 모든 곳에서 임금은 최소 25% 인하되었다. 이처럼 유리한 기회를 이용하여 1847년 법률을 폐지하고자 공장 노동자 대상의 선동이 개시되었다. 사기, 유혹, 협박 등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으나, 이는 모두 허사였다. 노동자들이 법률로 인해 겪는 고난에 대해 불평하도록 강요당해 제출된 6건의 청원서와 관련하여, 청원자들 스스로 구두 심문에서 자신들의 서명이 강압에 못 이겨 이루어졌음을 자백했다. 그들은 억압을 느끼고 있었으나, 그 억압은 공장법 때문이 아니었다.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발언하게 하는 데 실패하자, 공장주들은 이번에는 신문과 의회에서 노동자의 이름으로 더욱 소란스럽게 선동했다. 그들은 공장 감독관들을 (세상을 개선하려는 망상 때문에 불행한 노동자를 무자비하게 희생시키는) 프랑스 국민 의회의 혁명 위원과 같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러한 술책 또한 성공하지 못했다. 공장 감독관 레너드 호너는 자신과 부감독관들로부터 랭커셔 공장들의 다수 증인을 심문했다. 심문을 받은 노동자 가운데 약 70%10시간 노동일을 지지했고, 훨씬 적은 비율이 11시간 노동일을, 그리고 극소수만이 종전의 12시간 노동일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온건한술책은 성인 남성 노동자들을 12시간에서 15시간까지 노동하게 만든 다음,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정한 염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이라고 공표했다. 그러나 무자비한공장 감독관 레너드 호너가 다시 현장에 등장했다. ‘시간외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다음과 같이 언명했다.

 

그들은 더 적은 임금을 받고 10시간 일하는 쪽을 훨씬 선호하지만, 그들에게는 선택의 권리가 없다. 현재 많은 사람이 실업 상태에 있으며(방적공 가운데는 실을 잇는 노동자가 되어 아주 낮은 임금을 받는 이들도 많다), 그들이 노동 시간 연장을 거부하면 다른 사람들이 즉시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선택은 더 오래 노동하느냐, 아니면 해고되느냐에 놓여 있다.’

 

이로부터 자본의 예비 전쟁은 실패로 끝났고, 10시간 노동법은 184851일 마침내 시행되었다. 그러나 그사이 차티스트 운동은 지도자들의 투옥과 조직 해체라는 대실패를 겪으며 영국 노동자 계급의 자신감을 뒤흔들었다. 이어서 발생한 파리 6월 봉기와 그 피비린내 나는 진압은 유럽 대륙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지배 계급의 모든 분파를 통합시켰다. 이들은 지주와 자본가, 투기업자와 소매상인, 보호무역주의자와 자유무역주의자, 정부와 야당, 성직자와 무신론자, 젊은 창녀와 늙은 수녀에 이르기까지 재산, 종교, 가족, 사회의 구원이라는 공동의 구호 아래 하나가 되었다.

 

노동자 계급은 모든 곳에서 법의 보호를 박탈당했고, 교회로부터 파문되었으며, 각종 탄압법의 단속을 받았다. 그 결과, 공장주들은 더 이상 자제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들은 10시간 노동법뿐만 아니라, 1833년 이후 노동력의 자유로운착취를 제한하려던 모든 입법에 대해 공공연한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미국 남북 전쟁의 노예 제도 옹호 반란을 축소한 형태로, 냉소적인 무자비함과 테러리스트적 정력으로 2년 이상 감행되었다. 반란자인 자본가들이 도박에 걸었던 것은 자기 노동자들의 가죽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성공은 그만큼 쉬웠다.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이해하려면, 다음 사항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833, 1844, 1847년의 공장법들은 서로 수정을 가하지 않는 한, 법률상 효력을 모두 유지했다. 이 법들 중 어느 것도 18세 이상 남성 노동자의 노동일을 제한하지 않았다. 또한, 1833년 이후에도 여전히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의 15시간이 법정 하루였으며, 그 범위 내에서 미성년자와 부녀자들은 법이 정한 조건에 따라 12시간, 그리고 나중에는 10시간 노동을 수행했다. 공장주들은 곳곳에서 고용하던 미성년자와 여성 노동자의 일부를, 심지어 절반가량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그 대신, 거의 폐지되었던 성인 남성 노동자의 야간 노동을 부활시켰다. 이들은 10시간 노동법 때문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조치는 식사를 위한 법정 휴식 시간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공장 감독관의 말을 들어보자.

 

노동 시간이 10시간으로 제한된 후, 공장주들은 예를 들어,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작업할 경우, 아침 9시 이전에 1시간, 저녁 7시 이후에 30, 1시간 반의 식사 시간만 제공하면 법률 규정을 충분히 준수하는 셈이라고 주장한다(아직 철저히 실행되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현재 점심 식사에 30분이나 1시간을 제공할지라도, 동시에 10시간 노동일의 경과 중에는 1시간 반 중 어떤 부분도 허용해 줄 의무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공장주들의 주장은 1844년 법률의 식사 시간 규제가 단순히 노동자가 출퇴근 전후 자택에서 식사하는 일을 허용하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린다. 더 나아가, 그들은 오전 9시 이전에 점심 식사를 금지하는 규정이 과연 합리적인지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형사 재판소는 이 규정된 식사 시간의 진정한 의미와 적용 범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작업 시간 중 휴식 시간에 식사가 반드시 제공되어야 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10시간의 연속 노동은 위법이다.’

 

이러한 통쾌한 시위 운동에 직면하자, 자본은 1844년 법률 조문에 합치하는 합법적 조치를 강구하는 방식으로 진정한 반란을 개시했다. 1844년 법률은 정오 이전에 작업한 8세부터 13세 아동을 오후 1시 이후에 재고용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이 법은 노동 시간이 정오 또는 그보다 늦게 시작되는 아동들의 6시간 30분 노동에 대해서는 전혀 규제하지 않았다. 따라서 8세 아동들이 정오에 노동을 시작할 경우, 정오부터 오후 1(1시간), 오후 2시부터 4(2시간), 그리고 오후 5시부터 830(3시간 30)까지 분할하여 법정 노동 시간인 6시간 30분을 채우도록 할 수 있었다. 더 교묘한 방법도 있었다. 아동 노동을 저녁 830분까지 일하는 성인 남성 노동자의 노동 시간에 맞추기 위해, 공장주들은 아동들에게 오후 2시 이전에는 일거리를 주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그 후, 아동들을 저녁 830분까지 중단 없이 공장 안에 붙들어 둘 수 있었다.

 

기계 설비를 하루 10시간 이상 가동하려는 공장주들의 욕망으로 인해, 아동들을 (미성년자 및 부녀자 퇴근 후) 오직 성인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저녁 830분까지 노동시키는 관행이 영국 내에 공공연히 수립되었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과 공장 감독관들은 위생 및 도덕상 이유를 들어 항의했다. 그러나 자본은 셰익스피어,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의 말처럼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내 행동의 결과는 감수하겠다. 어서 재판을 진행하라.

채무 증서에 쓰인 대로 벌금을 받을테니.”

 

실제로 1850726, 하원에 제출된 통계 자료에 따르면, 모든 항의에도 불구하고, 1850715, 당시 257개 공장에서 3,742명의 아동이 이 관행에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자본은 만족하지 못했다. 자본의 교활함은 1844년 법률이 오전 노동에 대해서는 최소 30분 휴식 시간 없이는 5시간 연속 노동을 허용하지 않지만, 오후 노동에 대해서는 그러한 규정이 전혀 없다는 점을 포착했다. 결과적으로, 자본은 8세 어린 노동자를 오후 2시부터 저녁 830분까지 쉴 새 없이 혹사할 뿐만 아니라, 굶기기까지 하는 쾌락을 요구했고, 결국 이를 관철했다. 샤일록의 말처럼,

 

, 가슴입니다. 증서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공장주들은 1844년 법률이 아동 노동을 규제하는 한, 그 법 문구에 샤일록처럼 집착했다. 그러나 법이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노동을 규제하는 영역에서는 법률 자체를 반대하는 공공연한 반란을 준비했다. 우리는 허위에 찬 교대 제도의 폐지가 이 법률의 주요 목적이자 핵심 내용이었음을 기억한다. 공장주들은 간단한 선언으로 반란을 시작했다. , 1844년 법률에는 15시간의 공장 노동일 중에서 공장주들이 임의로 시간을 분할하여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일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는데, 이는 노동 시간이 12시간으로 제한되던 시기에는 비교적 해롭지 않았으나, 10시간 노동법 하에서는 매우 큰 곤란을 초래했다. 이에, 공장주들은 감독관들에게 법률 조문을 무시하고 옛 제도(교대 제도)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냉정하게 통보했다. 그들은 이것이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하므로 분별없는 노동자들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공장주들은 이를 두고,

 

“10시간 노동법 아래에서 영국의 공업상 패권을 유지하는 단 하나의 유일한 방안이다.”

 

그들은 교대 제도에서 불법 행위 적발이 다소 곤란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공장 감독관 및 부감독관의 수고를 약간 덜어주고자, 이 나라의 크나큰 공업적 이익이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어도 좋단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러한 모든 술책은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공장 감독관들은 즉시 법정에 고발했다. 이에 공장주들의 탄원서가 내무 장관 조지 그레이에게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그 결과, 그는 184885일자 공람으로부터 공장 감독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미성년자들에게 법에서 허용한 시간 이상으로 실제로 일을 시켰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는 경우, 법 조문 위반이나 교대 제도에 따라 미성년자를 고용했다는 이유만으로는 공장주들을 고발하지 말 것.’

 

이에 따라 공장 감독관 스튜어트는 15시간 공장 노동일 범위 내에서 소위 교대 제도를 스코틀랜드 전역에 허가했고, 그 결과, 그곳에서는 오래지 않아 이 제도가 예전과 같이 다시 성행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잉글랜드의 공장 감독관들은 장관에게 법률의 효력을 정지시킬 독재권이 없다고 선언하며, ‘노예 제도 옹호 반란에 대한 법적 조치를 이어갔다.

 

그러나 재판관들(또는 주의 치안판사들)이 자본가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다면, 그들을 고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러한 법정에서는 사실상 공장주들이 자기 자신을 재판하는 상황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커쇼 · 리즈 회사의 방적업자인 에스크리지는 자신이 고안한 교대 제도 계획표를 지방 공장 감독관에게 제출했다. 거절 회신을 받은 후, 그는 한동한 잠잠했다. 몇 달 뒤, 역시 방적업자이며 에스크리지의 충복이거나 적어도 친척으로 보이는 로빈슨이라는 인물이, 에스크리지가 고안했던 것과 동일한 교대 제도를 채택했다는 이유로 고발되어, 스톡포트시의 치안 판사 앞에 소환되었다. 재판에는 4명의 판사가 참석했는데, 그중 3명이 방적업자였으며, 수석에는 다름 아닌 에스크리지 본인이 앉아 있었다. 에스크리지는 로빈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이후 로빈슨에게 정당한 것은 에스크리지 자신에게도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의 합법적인 판결을 근거로 삼아 즉시 이 제도를 자기 자신의 공장에도 채택했다. 물론 그 법정의 구성 자체가 이미 하나의 법률 위반이었다. 이 상황에 대해 감독관 하우엘은 다음과 같이 외쳤다.

 

재판에서 이와 같은 광대극은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이러한 소송 사건이 재판에 회부될 경우, 판결에 일치하도록 법률을 개정하든지, 아니면 결함이 적은 법정이 재판하여 판결이 법률에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 유급 판사가 절실히 요망되는 상황이다.”

 

형사 재판소는 1848, 법률에 대한 공장주들의 해석을 부당하다고 선언했지만, ‘사회의 구제자를 자처하는 그 재판소조차 공장주들의 목적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레너드 호너는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나는 일곱 군데의 서로 다른 재판 관할구에서 10건을 고발하며 법률 집행을 시도했으나, 단 한 건에 대해서만 치안 판사의 지지를 받았다. 더 이상 법률 위반으로 고발하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1848년 법률 중 노동 시간을 획일적으로 만들고자 제정한 부분은 내 지역 (랭커셔)에서는 더 이상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 나와 내 보조관들은 교대 제도를 실시하는 공장에서 미성년자와 부녀자를 10시간 이상 노동시키지 않는다고 확증할 아무런 수단도 없다. 18494월 말에는 114개의 공장이 이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으며, 그 수는 최근 급격히 증가했다. 이 공장들은 일반적으로 아침 6시부터 저녁 730분까지 13시간 30분을 작업하고 있으며, 일부는 아침 530분부터, 저녁 830분까지 15시간 작업하고 있다.’

 

이미 184812, 레너드 호너는 이와 같은 교대 제도 하에서는 어떤 감독 제도도 극도의 과도 노동을 결코 방지할 수 없다고 한결같이 충고하는 공장주 65명과 공장 관리인 29명의 명단을 확보하고 있었다. 동일한 아동들과 미성년자들이 15시간 동안 방적실에서 직조실로, 또는 한 공장에서 다른 공장으로 교대되곤 했다. 과연 다음과 같은 제도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는가.

 

그 제도는 교대제라는 구실로 노동자들을 카드처럼 한없이 다양하게 뒤섞고, 개개인의 노동 시간과 휴식 시간을 매일 변동시키며, 동일한 작업반에 속하는 노동자 전원이 결코 전과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함께 작업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실의 과도 노동을 완전히 무시하더라도, 이 소위 교대 제도는 푸리에식 유머 넘치는 단기복무’ (노동자들이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다양한 노동에 짧은 시간씩 일하게 하는 것)조차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자본 망상의 산물이다. 물론 이 경우, ‘노동의 즐거움자본의 즐거움으로 치환된다. 한 존경받는 신문이 적당한 배려와 순서가 달성할 수 있는 일의 모범이라고 찬양했던 공장주들의 교대 계획을 살펴보자.

 

노동자 전원은 대개 12개에서 14개 부류로 나뉘었고, 그 구성원은 끊임없이 교체되었다. 15시간의 공장 노동일 동안, 자본은 노동자를 때로는 30, 때로는 1시간씩 이 부류로 끌어들였다가 밀어내고, 다시 저 부류로 끌어들였다가 또다시 밀어내면서, 10시간 노동이 끝날 때까지 놓아주지 않고, 분산된 토막 시간으로 노동자들을 이리저리 몰아댔다. 이는 무대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인물이 번갈아 가며 다른 막, 다른 장면에 등장해야 하는 상황과 같았다. 그러나 연극이 계속되는 동안 배우가 무대를 떠날 수 없듯이, 이제 노동자들은 공장에 오고 가는 데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고도 15시간 동안 공장에서 떠날 수 없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휴식 시간은 억지로 쉬지 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변질되었으며, 이로 인해 소년 노동자들은 술집으로, 젊은 여공들은 창녀촌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가가 노동자 수를 증가시키지 않고 자신의 기계 설비를 12시간 내지 15시간 가동시키고자 날마다 새로운 계획을 고안해낼 때마다, 노동자는 자신의 식사를 때로는 이 자투리 시간에, 또는 저 자투리 시간에 삼킬 수밖에 없었다.

 

10시간 노동일 쟁취 투쟁 당시, 공장주들은 노동자 무리가 10시간 노동에 대해 12시간 분의 임금을 청원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제는 공장주들이 바로 그 일을 실행하고 있다. 그들은 노동력을 12시간 내지 15시간 동안 마음대로 이용하면서도, 10시간분의 임금만을 지급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었으며, 이것이 10시간 노동법의 공장주 판이었다. 이 공장주들은 다름 아닌, 과거 노동자들을 동정하며 아양을 떨던 자유 무역론자들이었다. 그들은 곡물법 반대 운동이 전개된 10년 동안 노동자들에게 곡물 수입이 자유화되기만 한다면, 영국 산업에서 자본력으로 자본가를 부유하게 만드는 데 10시간 노동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1실링, 1페니까지 계산해 가며 증명했던 자들이다.

 

2년간에 걸친 자본의 반란은 영국의 4대 최고 재판사 가운데 하나인 재무 재판소의 판결로부터 드디어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재판소는 185028일 제기된 한 소송 사건에서, 공장주들이 1844년 법률 취지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으나, 이 법률 자체가 스스로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몇 개의 어구를 포함하고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인해 10시간 노동법은 사실상 폐지된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이때까지 미성년자와 부녀자에 대한 교대 제도 적용을 꺼리던 다수의 공장주들조차 이제는 이를 대대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본의 외견상 결정적 승리 직후 반격이 뒤따랐다. 이때까지 완강하고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던 노동자들의 저항은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이제 이들은 랭커셔와 오크셔에서 위협적인 집회를 열고 큰 소리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장은 10시간 노동법은 단순한 사기이자 의회의 기만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장 감독관들은 계급적 적대 관계가 들어보지 못한 수준의 긴장 상태에 도달했음을 정부에 긴급히 경고했다. 심지어 일부 공장주들까지도 다음과 같이 불만을 토로했다.

 

치안 판사들의 모순된 판결로 인해 매우 비정상적인 무정부 상태가 지배하게 되었다. 요크셔에서 시행되는 법률과 랭커셔에서 시행되는 법률이 서로 다르며, 같은 랭커셔 안에서도 어떤 교구의 법률은 그 인접 교구의 법률과 다르다는 점이다. 대도시에서는 공장주가 법망을 피할 수 있지만, 농촌 지방에서는 공장주가 교대 제도에 필요한 인원, 더 나아가, 노동자들을 한 공장에서 다른 공장으로 이동시키는 제도에 필요한 인원을 구할 수 없다는 불만이었다.’

 

노동력 착취의 평등은 자본의 법이 규정하는 자본가들의 기본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장주와 노동자 사이에 타협이 성립되었고, 이는 185085일의 새로운 추가적 공장법으로 의회 승인을 받았다.

 

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노동일은 주중 첫 5일간 10시간에서 10시간 30분으로 연장되었고, 토요일에는 7시간 30분으로 제한되었다. 작업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이루어져야 하며, 1시간 30분의 식사 휴식이 허용되었다. 중요한 점은 이 식사 시간은 전원에게 동시에 제공되어야 했고, 1844년의 규정을 따라야 했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교대 제도는 영구히 폐지되었다. 아동 노동에 대해서는 1844년의 법률이 계속해서 효력을 유지했다.

 

일부 공장주 부류는 이번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 아동에 대한 특권을 확보했는데, 그들은 바로 견직물 공장주들이었다. 이들은 1833년에 온갖 나이의 아동들에게 하루 10시간씩 일을 시킬 자유가 박탈되면, 우리들의 사업은 중단될 것.”이라 협박조로 외쳤다. 그들은 충분한 수의 13세 이상 아동을 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결국 원하던 특권을 쟁취했다. 이러한 구실은 나중의 조사에서 새빨간 거짓말임이 판명되었다. 그럼에도 그 뒤 10년 동안, 의자에 앉혀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린 아동들의 피로 매일 10시간씩 명주실을 뽑아내도록 방치되었다. 1844년 법률은 견직물 공장으로부터 11세 미만 아동을 하루 6시간 30분 이상 일시키지 않을 자유를 박탈하는 대신, 그들에게 11세에서 13세 아동을 하루 10시간씩 노동시킬 특권을 보장했다. 아울러 다른 모든 아동들에게 강제되던 취학 의무까지 면제해 주었다.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특권의 구실로 사용되었다.

 

섬세한 견직물을 만들려면 부드러운 손끝이 필수적인데, 이는 어려서부터 공장에 들어와 일하면서만 확보할 수 있다.’

 

남부 러시아에서 뿔 달린 가축들이 가죽과 기름 때문에 도살되는 일과 마찬가지로, 아동들은 그들의 부드러운 손끝 때문에 도살되었다. 결국 1850, 1844년에 허용된 특권은 명주실 꼬는 부문과 감는 부문에서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자유를 박탈당한 자본의 손해를 보상하기 위해, 11세에서 13세 아동의 노동 시간은 10시간에서 1030분으로 연장되었다. 그 구실은 견직물 공장의 노동이 다른 섬유 공장 노동보다 쉬우며, 건강에 덜 해롭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뒤, 정부의 의학적 조사가 증명한 바에 따르면, 이와는 반대로,

 

견공업 지방의 평균 사망률은 매우 높고, 특히 여성 주민들의 사망률은 심지어 랭커셔의 면공업 지방보다도 더 높다.’

 

공장 감독관들의 반년마다 반복되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폐해는 현재까지도 지속된다. 1850년 법률은 다만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노동 시간을 오전 530분부터 오후 830분까지의 15시간에서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12시간으로 변경시켰을 뿐이다. 이 법률은 아동들에 대해서는 달라진 것이 없으며, 비록 아동들의 총 노동 시간은 6시간 30분을 초과할 수 없었지만, 앞에서 언급된 12시간이 시작되기 전 30분과 끝난 뒤 2시간 30분 동안에는 아동을 여전히 고용할 수 있었다.

 

이 법률 심의 당시, 공장 감독관들은 이러한 변칙적 상황의 파렴치한 남용에 관한 통계 자료를 의회에 제출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배후에는 경기가 좋은 해에 아동들을 보조로 삼아 성인 노동자의 노동일을 15시간까지 연장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그 뒤 3년간의 경험은 그러한 시도가 성인 남성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좌절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1850년 법률은 185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미성년자와 부녀자 노동이 시작되기 전 아침 시간과, 이들의 노동이 끝난 뒤 저녁 시간에 아동을 고용하는 일을 금지하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이때부터 1850년 공장법은 그것이 적용되는 산업 부문들에서 거의 예외 없이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일을 규제하게 되었다. 이는 최초 공장법이 제정된 이래 이미 반세기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

 

공장법은 1845년 날염 공장법에서 처음으로 본래의 적용 영역을 넘어섰다. 자본이 이 새로운 탈선 행위를 용인할 때의 불만은 이 법률의 한 자, 한 구에 명백히 드러난다. 이 법률은 8세부터 13세까지의 아동과 부녀자의 노동일을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6시간으로 제한하면서도, 그 사이에 식사를 위한 법정 휴식 시간은 전혀 규정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13세 이상의 남성 노동자를 밤낮으로 임의로 노동시키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 법률은 곧 의회가 낳은 기형아였다.

 

그러나 공장법의 원칙은 현대적 생산 방식의 독특한 창조물인 대공업 부문들을 통제하며 승리했다. 1853년부터 1860년 사이에 대공업 부문들이 보인 놀라운 발전과 공장 노동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재건은 아무리 아둔한 사람의 눈에도 선명했다. 반세기 동안의 내전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투쟁)으로부터 노동일의 법률적 제한과 규제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공장주들은 이제, 자신들의 공업 부문과 아직도 자유로운 착취가 남아 있는 공업 부문 사이의 현저한 대조를 자랑스럽게 지적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치경제학의 바리새인들(위선자들)은 새삼스럽게 노동일의 법적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통찰이 자신들 과학의 특징적인 성과라고 선언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대공장주들이 불가피한 대세에 체념하고 순응하게 된 후, 자본의 저항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이에 반해, 노동자 계급의 공격력은 공장법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회층 속에서 동맹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강화되었다. 따라서 1860년 이래 공장법은 비교적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다.

 

1860년에는 염색 공장과 표백 공장이, 1861년에는 레이스 공장과 양말 공장이 각각 1850년 공장법의 적용을 받았다.아동 노동 조사 위원회의 제1차 보고 (1863) 결과, 모든 토기 (도자기 포함), 성냥, 뇌관, 탄약, 카펫, 능직포 제조 공장, 그리고 마무리 작업이라는 명칭 아래 총괄되는 수많은 과정에 노동자를 고용하는 공장들 역시 동일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1863년에는 야외 표백업과 빵 제조업이 특별법의 적용을 받았다. 이 법에 따라, 전자에서는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야간 노동 (오후 8시부터, 오전 6시까지)이 금지되었고, 후자에서는 오후 9시부터, 오전 5시 사이 18세 미만 빵 제조업 직인의 고용이 금지되었다. 아동 노동 조사 위원회는 농업, 광산업, 운수업을 제외한 영국의 모든 중요한 산업 부문들로부터 착취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제안들을 내놓았으며, 이에 대해서는 이후 논의된다.

 

10-7. 노동일 단축 투쟁 : 영국 공장법이 타국에 준 영향

 

생산 방식의 변화를 일단 제쳐두더라도, 자본주의적 생산의 독특한 내용과 목적은 잉여 가치의 생산, 곧 잉여 노동의 착취임을 독자는 기억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지금까지 전개한 관점에서는 오직 자립적인 노동자, 다시 말해, 법률적으로 성년에 이른 노동자만이 상품 판매자로 자본가와 계약을 맺는다는 점 역시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사적 개관에서 근대적 산업이 한편으로, 그리고 육체적, 법률적 미성년자의 노동이 다른 한편으로 주요 역할을 했다면, 전자는 단순히 노동 착취의 특수한 분야로, 후자는 오직 노동 착취의 특히 주목할 만한 실례로만 의의를 지녔다. 앞으로 연구 전개를 예상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역사적 사실들을 단순히 결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첫째로, 노동일을 무제한적이고 무자비하게 연장하려는 자본의 충동은 수력, 증기, 기계로부터 최초 혁명이 발생한 산업 부문, 곧 근대적 생산 방식의 최초 창조물인 면화, 양모, 아마, 명주의 방적업과 직조업에서 먼저 충족되었다. 물질적 생산 방식의 변화와 이에 따른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 변화는, 처음에는 노동일의 한계를 무제한적으로 확대시켰고, 다음에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휴식 시간을 포함하는 노동일을 법률로 제한, 규제, 균일화하는 사회적 통제를 초래했다. 따라서 19세기 전반기에는 이러한 통제가 다만 예외적인 입법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공장법이 새로운 생산 방식의 이 최초 영역을 정복하자마자, 그 사이 다른 수많은 생산 부문에서 이미 동일한 공장 제도를 채택했음이 판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도자기 공업, 유리 공업 등과 같이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 방식을 가진 공장제 수공업, 빵 제조업과 같은 구식 수공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못 제조업 등과 같은 분산적인 소위 가내 공업까지도 벌써 오래전부터 공장 공업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자본주의적 착취 아래에 있음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공장법은 그 예외법적 성격에서 점차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또는 영국에서와 같이 입법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결의법 (보편적인 도덕 법칙을 개개의 행위나 양심 문제에 적용하는 법)의 방식을 따르는 곳에서는 노동이 수행되는 모든 가옥을 공장이라고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어떤 생산 부문에서 발생했던 노동일 규제의 역사와, 다른 생산 부문에서 지금도 계속되는 이 규제를 둘러싼 투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일정한 성숙 단계에 도달하면, 개별 노동자 (자기 노동력의 자유로운 판매자)는 아무런 저항 없이 굴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따라서 표준 노동일의 제정은 장기간에 걸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의 산물이다. 이 투쟁은 근대 산업의 영역에서 개시되었으므로, 먼저 근대 산업의 모국인 잉글랜드에서 발발했다. 영국에서 공장 노동자들은 그들의 이론가가 자본가들의 이론에 대한 최초의 도전자였듯이, 영국의 노동자 계급뿐 아니라 근대적 노동자 계급 일반의 투사였다. 그러므로 공장 철학자 유어는, 노동 (자본)의 완전한 자유를 위해 당당하게 싸우는 자본에 대항해 영국 노동자 계급이 공장법이라는 노예 제도를 자기들의 기치로 삼았던 것은 노동자 계급의 씻을 수 없는 치욕이라고 비난했다.

 

프랑스는 영국의 뒤를 천천히 따라고 있다. 프랑스의 12시간 노동법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2월 혁명 (1848)이 필요했으며, 이 법률조차 그 원형인 영국의 12시간 노동법에 비해 결함투성이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혁명적 방법은 그 나름의 장점을 지닌다. 영국의 입법이 이런저런 사태의 압력에 마지못해 굴복한 결과, 서로 모순되는 법 조항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하는 데 반해, 프랑스의 혁명적 방법은 한꺼번에 전체 작업장과 공장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동일한 노동일 제한을 부과했다. 더욱이 영국에서 오직 아동, 미성년자, 부녀자의 이름으로 쟁취했을 뿐이고,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일반적 권리로 요구하기 시작한 일을, 프랑스 법률은 원칙으로 선언했다.

 

미국에서는 노예 제도가 공화국의 일부를 망가뜨리는 동안, 독립적인 노동 운동은 마비 상태에 빠져 있었다. 검은 피부의 노동자에게 낙인을 찍는 곳에서는 흰 피부의 노동자도 해방될 수 없다. 그러나 노예 제도의 폐지와 함께 곧바로 새로운 생명의 싹이 돋아났다. 남북 전쟁의 첫 번째 성과는 8시간 노동일 운동이었는데, 이 운동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뉴잉글랜드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천리마 기세로 확산되었다. 볼티모어에서 열린 전국 노동자 대회(General Congress of Labour, 18668)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이 나라의 노동을 자본주의적 노예 제도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필요한 최대의 급선무는 아메리카 연방의 모든 주에서 표준 노동일을 8시간으로 만드는 법률의 제정이다. 우리는 이 영예로운 성과를 달성하기까지 전력을 다할 것을 결의한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18669월 초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자협회 총회 (1인터내셔널 총회)는 런던 총무 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총회는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이 결의는 마르크스 자신이 기초했다.)

 

우리는 노동일의 제한이야말로, 그것 없이는 개선과 해방을 위한 앞으로의 모든 노력이 좌절될 수밖에 없는 예비 조건이라고 선언한다. 우리는 8시간을 노동일의 법정 한도로 제안한다.’

 

이와 같이, 대서양의 양쪽에서 생산 관계 그 자체로부터 자연적으로 성장한 노동 운동은 영국 공장 감독관 손더즈의 다음과 같은 진술이 정당하다는 것을 확증한다. 손더즈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노동 시간이 제한되지 않고, 또 제정된 그 한계가 엄격히 준수되지 않는다면, 사회 개혁에서 더 이상의 진전은 기대할 수 없다.’

 

우리의 노동자는 생산 과정에 들어갈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생산 과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시장에서 그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소유자로 다른 상품 (화폐)의 소유자와 상대했다. , 상품 소유자에 대해 상품 소유자로 상대했다. 그가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했을 때의 계약은 그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처분한다는 사실을, 이를테면,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증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거래가 완결된 뒤에야 비로소 그는 자유로운 행위자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가 자유롭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은, 그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판매해야만 하는 기간이라는 것, 그리고 사실상 흡혈귀는 착취할 수 있는 한 조각의 근육, 한 가닥의 힘줄, 한 방울의 피라도 남아 있는 한,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폭로된다. 노동자들은 자기들을 괴롭히는 뱀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자 이마를 맞대고 논의해야 하며, 계급으로 하나의 법률을, 곧 자기 자신이 자본과의 자발적인 계약으로부터 자신과 자기 가족을 죽음가 노예 상태로 팔아넘기는 일을 방지해줄 매우 강력한 사회적 장벽을 제정하도록 강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이라는 화려한 목록 대신, 법적으로 제한된 노동일이라는 겸손한 대헌장이 등장한다. 이것은 비로소 노동자가 판매하는 시간은 언제 끝나며, 자기 자신의 시간은 언제 되는가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이는 이전과 비교해 얼마나 큰 변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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