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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그로칼랭>을 읽고 로맹 가리란 작가의 글력에 이끌려 이 책을 들었다. 16편이나 되는 단편들은 퍼즐 조각처럼 분명히 각각의 모양이 있었는데 아무리 조합하려 해도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했다. 작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읽을 수 있는게 단편인가, 단편으로 미루어 작가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가에 대해 헷갈렸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보다 더 난해하다. 그의 사고와 철학적 울타리를 넘어 가기엔 내 다리가, 머리가 조금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장편들로 충분히 로맹 가리를 이해한 후였다면 달라졌을까?
<몰락> 위선과 거짓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이란 것들이 실은 왜곡된 것일수도 있다는, 아니 진실은 없다 어디에도 없다, 라고 말하는 듯하다. 헐리우드 영화에서처럼 현실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영웅’이 등장한다.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영웅은 만들어진것이라고 믿기에는 우리가 영웅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너무 크다. 인간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가짜.>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어떤 휴머니스트> 자신이 맹신하는 철학적 근거에 균열을 일으키는 작품들이다. 진품에 대한 분명한 소유욕과 안목을 과신하는 S, 순수에 목말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솔물적 근성에 묶여 자, 그리고 무모하리만큼 낙천적 믿음을 간직한 칼뢰비는 각각의 작품들 속에서 스스로의 굴레에 발목이 붙들린다. 이들이 가진, 독단적이며 우회하지 못하는 고집스러움에 대해 경고한다. 이 세 작품은 분명 경고이지 비난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들은 작가의,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지상의 주민들>은 씁쓸하면서도 성냥팔이 소녀를 보는 듯, 조금 시린 얘기다. 세상에 대해 눈을 감아버린 소녀와 도붓장수 아돌프의 방랑, 여기서 아돌프는 자신을 태워준 운전사에게 봇물처럼 독백을 쏟아낸다. 로맹 가리는 외로움과 늘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그의 일생이 그를 외로움과 동행하게 했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서 아돌프의 끝도 없는 독백은 로맹 가리의 말처럼 들린다. 굳게 입을 다물고 세상과는 소통되지 못하는 고독에 비관하면서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계속 쏟아내는 그, 그를 닮았다. 지상의 주민들은 어쩐지 슬프다. 그리고 외롭다.
드문히 이해 되지않는, 그러니까 표제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비롯한 <본능의 기쁨> <고상함과 위대함> 등의 작품을 제외하고 다른 단편들에서 로맹 가리가 주로 사용하는 언어들은 낙천적(스스로 너무 강조한 나머지 비관적으로 보이는),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조소와 연민이다. 마지막의 조소는 타인을 향한, 연민은 자신을 향한 마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밑바탕에 깔려 있는 지독한 외로움이다. 그 언어들로 조합된, 인간에 대한 쓸쓸한, 로맹 가리의 생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