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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 내겐 처음인 작가다.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더라도 보통은 작가의 다른 장편을 먼저 읽는다. 나만의 우매한지도 모르는 이 고집스러움을 깨뜨린데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김영하니까, 그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복잡한거야?", 라며
은근히 내 속에 있던 집요한 생각들을 핀잔하는 듯한 그의 단편들은,
그러나, 될대로 되라는 식의 우격다짐은 절대 아니다. 체념적이지도, 그렇다고 낙관적이지만도 않다.
이런 표현조차 거추장스러울만큼, 그의 단편들은 신선하고 깔끔하다. 그 신선함은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앳된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변성기를 거치고도 맑은 목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맑은 목소리라는 것에, 그의 글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느낌상일뿐이므로. 실력있는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탄탄한 보컬이라고 해야할까, 암튼, 그의 글을 읽는 동안 그런 느낌을 받았다. 섬세한 문체나 수식어구의 미려함도 없고,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스토리도 아니지만
마음에 묵직하게 무언가 들어앉는다.
"무슨 일이?"
<로봇>, <퀴즈쇼>에서 묻는다.
오래된 연인에게서만 움트는게 사랑일까, 스치듯 만나는, 우연처럼 찾아오는 갑작스런 느낌, 연민..이런 것들에 대한 채색이다. 분홍빛, 선홍빛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빛 바랜 갈색이거나 우울한 회색처럼, 혹은 로봇의 차가운 금속성이라도 어쩌면 사랑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걸 사랑이 아니라면 달리 무어라 불러야 할지..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영하 작가는 ’사랑따윈...’이라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사랑따윈 아무렇게나, 아무렇지도, 가 아니라 ’사랑’따윈...’사랑’이란 단어에 의존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의 글에 대한 느낌을 단어로 표현하기가, 그래서 어렵다.
"내가 뭘 어쨌는데?"
보편적 사랑에 뒤이어 이별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흔한 얘기, 옛 사랑을 두고 다른 사람과의 또 다른 사랑을 찾아가는, 그래서 남겨진 사랑을 아프다, 라는 식상한 테마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새롭다.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얘기도 아닌데 그럴 수 있다고 느끼는건 김영하식 시니컬이다. 그러나 작가 이전에 남자 김영하는 여자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듯한...원망에 가까운 미련을 품고, 또 뱉어낸다. 어떻게 그럴수 있지? 여자는..?
그리고 <약속>에서 짧게 덧붙인다. 내가 뭘?
"그의 이름만으로도 이미 소름이 돋았을 독자들이 널리고 널렸을 테니까"
라고 소설가 박인규는 추천사에 언급한다. 글쎄...아직은 소름이 돋지 않는걸 보니 김영하 작가의 다른 작품을 곧 다시 만나야 할듯하다. <악어>의 노래를, 김영하의, 소름이 돋을만큼의 노래를 듣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