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인지 과학자 스티븐 핑커가 모르는 것,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인간 정신의 부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처럼 명확한 답을 내기 어려운 흐물흐물한 문제에 직면할 때면 우리의 정신은 그 불편함을 감추려고 헛소리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31

 

 

최근에 심리학자 제임스 커팅은 사람들을 특정한 이미지에 노출하는 것만으로도 동일한 이미지에 대한 선호를 형성하게 한다는 것을 몇 가지 연구를 통해 증명했다. 그는 인상주의 회화를 담은 사진들을 활용한 일련의 실험에서 실험 참가자들이 자기가 좀 더 정기적으로 노출되었던 그림들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참가자들은 상당히 비슷한 그림이나 심지어 더 유명한 그림들에 대해서도 더 강한 선호를 보였다. 31-32

 

 

 

예술의 질을 결정하는 척도 가운데는 아주 황당한 것도 있다. 소더비에서 일하는 필립 후크의 말에 따르면 항상 빨간 그림들이 가장 잘 팔리고 그 뒤를 이어 흰 그림, 파란 그림, 노란 그림, 초록 그림, 검은 그림 순서로 팔린다고 한다. 물론 오래된 빨간 그림이라는 점만으로 가장 비싼 그림이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어떤 미술 작품이 소더비의 경매대에 올랐다는 건 그 예술가가 이미 가치를 입증받은 사람이라는 의미다. 36

 

 

 

수집가들은 예술로써 위신을 살 수 있는 면이 있다, 그들의 부는 뭔가 의심스러운 출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가치가 확실한 예술품이나 문화적으로 매우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난해한 예술품을 사들이면, 오래전 후원자들이 대성당의 예배당 건축에 돈을 댐으로써 이미지에 광을 냈듯이 그들의 이미지도 덩달아 좋아질 수 있다. 41

 

 

 

재능있는 신진 예술가는 유명한 예술가와 같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만으로도 혜택을 입는다. 2012년에 나는 거물급인 화이트 큐브에서 아직 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에디 피크의 전시회를 보았다. 그는 경력의 중반에 이르러 존경받고 있던 게리 흄, 현대 미술의 노장 척 클로스와 나란히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41

 

 

 

에디 피크 , romance and cigarrettes

 

 

 

 

에디 피크,  Girlfriends-and-Boyfriends

 

 

 

 

 

 

 

게리 흄의 작품들

 

 

 

 

 

 

 

 

 

 

 

 

척 클로스의 작품들

 

 

 

 

 

 

물론 한 번 쌓인 명성이 계속 유지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2003년에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큐레이션을 맡았던 프란체스코 보나미는 극사실주의 인물상으로 유명한 예술가의 이름을 따서 '두에인 핸슨 신드롬'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이런 이론을 갖고 있다. 어떤 예술 작품이 만들어질 때 그것이 중요한 작품인지 아닌지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작품에는 먼지가 쌓이고 어떤 작품에는 파티나가 낀다. 내가 보기에 두에인 핸슨한테는 먼지가 수북이 쌓였다. 특정 시기에 속하는 조각상들을 보면 한때는 중요한 작품이었지만 이제는 먼지만 앉은 게 보인다. 거기에는 파티나가 끼지 않은 것이다."

파티나 : 금속 표면에 세월이 지나면서 쌓이는 녹색 녹(녹청)이나 나무나 가죽을 오래 사용하여 생기는 윤기로, 오래될수록 더 가치 있어 보이게 하는 은근한 고색이라는 의미다.48

 

 

 

 

 

두에인 핸슨의 극사실주의 조각들

 

 

 

 

 

 

진지함을 부여하고 지키는 방법 중 하나는 언어를 통하는 것이다. ... 그런데 원래 예술계는 일상 언어의 명료성을 몹시 꺼리는 것같은 모습을 자주 보인다.

.... 사회학자 알릭스 룰과 예술가 데이비드 리바인은 공공기관들에서 개최한 동시대 미술 전시회의 수천 가지 보도자료 텍스트들을 언어 분석 프로그램에 넣어 돌린 후, 그들이 '국제 예술 영어'라고 명명한 것에 관한 논평을 내놓았다.

"국제 예술 영어는 평범한 영어에는 명사가 부족하다는 점을 비판한다. '시각적인'은 '시각성'이 된다. '전 지구적'은 '전 지구성'이 되고, '잠재적인'은 '잠재성'이 된다. 그리고 '경험'은 물론 '경험 가능성'이 된다." 그들은 어딘지 비전문가가 프랑스어 문장을 번역해 놓은 것처럼 들리는 이런 종류의 텍스트들을 읽을 때 우리가 느끼는 형이상학적 멀미를 묘사했다. (ㅋㅋㅋㅋ)

 

1960년대 미술 비평에서 시작된 이 국제 예술 영어는 예술을 평가하는 일부 저술가들의 권위를 부풀려 주었다. 우리도 읽어 봐서 알지만 그런 언어를 구사하는 건 아주 진귀한 능력이다.

.... 국제 예술 영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내리는 평가는 충분한 교육을 바탕으로 나온 게 아니므로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평가를 내리려면 그 언어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꼭 말하고 싶다. 전혀 그럴 필요 없다고 말이다. 49-51

 

 

 

 

1960년대 팝아트는  소비주의를 미술에 접목시킨 것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떤 면에서는 전통적인 예술처럼 보였다. 오늘날에는 데이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다카시 등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새로운 예술 브랜드가 하나 생겨났는데 그 특징은 호사스러운 마무리, 이해하기 쉬운 형상,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52-53

 

 

 

 

제프 쿤스의 작품들

 

 

 

 

 

 

 

 

은행들도 예술이 견고한 자산군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금고에 예술품을 위한 작은 공간도 따로 마련해 두고 있다. 은행들은 당신의 은과 와인과 예술품과 금을 흔쾌히 관리해 줄 것이다 (이미 SWAG라고 그것들을 아우르는 두문자어도 있다). 54-55

 

 

 

 

 

그러므로 예술일 수 없는 게 어떤 것인지 단언하는 것은 꽤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오늘날에는 그 경계선들이 끊임없이 이동한다. 우리는 예술의 탈역사적 상태, 무엇이든 허용되는 상태에 있다. 그러나 예술의 한계들이 더 유연하고 더 흐릿해졌을 뿐, 예술일 수 있는 것과 예술일 수 없는 것을 가르는 경계선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 내가 지적인 기억과 정서적 기억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는 이유는 예술일 수 있는 것의 경계선들에 대한 지적 이해와 정서적 이해가 다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새롭게 이뤄졌는지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순식간에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서적 수준에서 큰 변화를 충분히 이해하는 데는 몇 년, 심지어 몇 세대가 걸릴 수도 있다. 62-63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을 가르는 여덟 가지 경계

 

1. 그것은 갤러리 혹은 예술의 맥락 속에 있는가?

 

...터너 상 수상자인 키스 타이슨은 언젠가, 이미 갤러리에 있는 물건들을 그 스스로 '마법적 활성화'라고 부르는 자신의 힘을 써서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시킨 적이 있다. 이를테면 전등 스위치를 보고는 '묵시록적 스위치'라고 부르고, 전구를 보고는 '인식의 전구'라고 부르는 식이다. 그는 자신이 예술가로서 지닌, 사물들을 예술로 지정할 수 있는 힘을 사용한 것이지만, 그것은 예술의 맥락 안에서 행해진 일이었다. 86-87

 

 

2. 그것은 다른 무언가의 따분한 버전인가?

 

3. 그것은 예술가가 만든 것인가?

 

4. 사진

 

1990년대에는 전시회들 둘 중 하나는  사진 전시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떤 사진이 예술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분하는 걸까?

1990년대에 예술 사진을 분간하는 법은, 첫째 사진 속에서 아무도 미소 짓지 않을 것, 둘째 사진 속 인물들이 되도록 연극적인 태도로 거들먹거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예술 사진임을 알려주는 더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사진의 크기였다. 당시에 예술 사진들은 엄청나게 컸는데, 그 큰 크기 때문에 그 사진들은 스냅사진이나 포토저널리즘보다는 회화와 더 비슷하게 보였다. 92-93

 

나는 아주 유명하고 탁월한 사진가 마틴 파에게 다른 종류의 사진들과 구분되는 예술 사진의 정의를 알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거의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흠, 2미터가 넘고 가격이 다섯 자리수가 넘는 거요."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실제로 아주 정확한 정의 같았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같은 유명한 사진가들은 그렇게 거대한 사진을  만드는데, 그중에는 가로 4미터 세로 2미터나 되는 것도 있다. 구르스키가 촬영한 라인강 사진의 가격은 역대 모든 사진 중 가장 비싼 450만 달러다.

 

구르스키, 라인 강

 

 

 

구르스키, 99센트 스토어

 

 

 

 

 

 

5. 한정판 검증법

 

 

6. 핸드백과 힙스터 테스트

 

 

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쓰고 싱글스피드 자전거를 끌고 온 사람들이나 커다랗고 멋진 핸드백을 든 특권층 사모님들이 무언가를 쳐다보면서 자기가 보고 있는 것 때문에 뭔가 어리둥절하거나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 예술 작품일 것이다.

 

 

...또 하나 유심히 살펴야 하는 것은 줄이다.

요즘 사람들은 예술을 보러, 특히 아이들이 주위에서 기어다닐 수 있고 당신이 그 앞에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셀카를 찍을 수 있는 참여예술을 보러 줄 서는 걸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다.

구경거리, 그것도 공공의  구경거리에 대한 수요가 있다. 나는 이를 '테마공원 더하기 스도쿠'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우선 예술에서 매우 특이하고 흥미진진한 경험을 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만족되면 그다음에는 그 예술이 무엇을 다루는가, 라는 수수께끼도 좀 풀어 보고 싶어 한다. 96

 

 

이런 유형의 예술을 떠올릴 때 종종 연상되는 또 한 명의 예술가는 리암 길릭이다. 색색깔의 투명 아크릴판으로 만든 그의 구조물들은 관객의 상호작용을 촉진할 의도를 품고 있다. 97

 

 

 

 

리암 길릭의 작품들

 

 

 

7. 쓰레기 하치장 테스트  

 

테스트 대상인 예술 작품을 쓰레기 하치장에 두었을 때, 지나가던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는 왜 예술품이 버려져 있는지 궁금해하는 경우에만 그것은 예술 작품의 자격을 갖춘 것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좋은 예술 작품들이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것인데, 그것은 쓰레기 하치장 자체가 예술 작품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ㅋ)

1960년에 장 팅겔리는 <뉴욕에 대한 오마주>라는 작품을 만들었따. 그것은 금속을 조립해 만든 커다란 기계 구조물이 스스로 파괴하여 고철더미가 되어 버리는 작품이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파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니 이 테스트는 그리 믿을 만한 게 못 되지만 그래도 나는 아주 마음에 든다. 100

 

 

 

 

 

8. 컴퓨터 아트 테스트

 

....예술은 우리를 답답함과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함의 상태 속에 가둬서 그러한 만족을 유예시키며, 그럼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단순히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다. 101-102

 

 

 

 

 

예술은 여전히 창의력의 각축장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혁명과 반란과 대격변이 예술을 정의하는 개념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100년 전에 예술은 혁명이라는 개념과 거의 동의어였다. 현대미술 전시회에 간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불쾌함을 느꼈으며 그림을 '야수'라고 불렀다.

 

...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개념으로부터 1세기나 지난 시점에 있다.  .... "이제 아방가르드는 특정 시대에 속한 양식이 되었다." 113 -114

 

 

 

 

한 전시실에서는 전성기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 알마타데마가 1909년에 그림 그림과, 팝아티스트들보다 훨씬 오래전에 신문에 실린 사진들을 그림에 사용한 선구적 예술가 발터 지커르트가 1906년에 그린 거친 인체 소묘가 가까이 걸려 있었다.

 

 

 

 

 

알마 타데마의 그림들

 

 

 

 

 

 

 

 

 

 

 

발터 지커트의 그림들

 

 

 

 

 

 

 

1990년대 전시실에는 레온 코소프의 물감을 두껍게 칠한 불안한 도시 풍경과, 브리짓 라일리의 색색이 알록달록 다채로운 기하학적 회화, 한 벽 가득 썩어 가는 꽃들로 장식한 안야 갈락시오의 개념 예술 작품, 그리고 볼프강 틸만스의 겉으로는 일반적으로 보이는 사진이 한데 모여 있었다.  121-122

 

 

 

 

 

 

 

 

레온 코소프의 그림들

 

 

 

 

 

 

 

 

브리짓 라일리의 그림들

 

 

 

 

 

 

 

 

안야 갈라치오의 설치 작품

 

 

 

 

 

 

 

볼프강 틸만스의 사진들

 

 

 

 

 

한편 예술계에서 전복적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기도 하다. 최근에 예술가가 한 가장 반항적인 행위가 있다면 트레이시 에민이 보수당을 지지한 것을 꼽을 수 있다. 125 ㅋㅋㅋ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들 (마지막 텐트 안에는 1963-1995까지 자신과 같이 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음) 

 

 

 

 

 

과거의 충격적인 몸짓들도 금세 상품으로 변모한다. 1960년에 프랑스의 개념예술가 이브 클랭은 <인간측정학>이라는, 지금은 아주 유명해진 퍼포먼스를 했는데 당시로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시도였다. 그는 누드모델들의 몸에 자신이 만든 유명한 파란 물감을 바르고 그들의 몸을 캔버스에 찍어 작품을 만들었다. 이것은 당시에 굉장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금도 그럴까?

'러브 이즈 아트'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바디페인트와 캔버스가 포함된 키트를 파는데, 사랑을 나누면서 그 키트를 이용해 예술 작품도 만들 수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한마디로 1960년대의 급진적 미술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세대를 위한 난잡한 유희적 라이프스타일 소품이 된 것이다. 126-127

 

 

 

 

 

 

이브 클랭의 '인체 측정' 

 

 

 

 

 

아이러니가 문제인 건, 그것이 모든 관점에서 살펴보고 온갖 것을 무척 정교하게 헤아려 본 뒤에 나온 최종 결과인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를 삼가려 하면당신은 그 대상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해 보지도 않은, 다소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되는 위험에 처한다. 134

 

 

어찌되었든 예술가는 진짜여야 한다. 다시 말해 예술가는 견실하고 진지하고 진실하게 작품에 임해야 하며 그 자질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137

 

 

그들은 자신들이 후원하던 테이트 갤러리가 모빌 오일의 기업 정책에 비판적인 관점을 취한 뉴욕의 예술가 한스 하케의 작품들을 전시하자 법정 소송으로 위협했다. 141

 

 

 

 

 

 

한스 하케의 작품들 

 

 

 

 

후원자의 심기를 거스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기관들에게, 나아가 예술가들에게 자기검열을 유도할 수 있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은 이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예술가는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손을 물어야 한다. ... 단, 너무 세게 물진 말고." 141

 

 

 

 

그러나 만약 우리가 정말로 예술의 최종단계에 와 있는 거라면, 나는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의 말을 인용하며 긍적적인 분위기로 마무리하고 있다.

"선언문들의 시대가 정치적으로 인종청소와 나란히 갔다면, 다원주의의 시대에는 우리에게 관용적 다문화주의라는 모델이 있다." 148

 

 

 

 

 

동시대 예술 작품을 마주할 때 아직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내가 종종 활용하는 사고 운동을 시도해 보시라. 1세기쯤 지나서 누군가가 그 작품을 감정받으려고 22세기판 <진품명품>에 내놓았을 때 어떤 대화가 오고갈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나는 이 방법으로 톡톡히 효과를 봤다.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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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있는 일러스트 말고는 도판이 하나도 실려있지 않은 책이라

언급되는 작가 중 낯설다 싶은 작가는 검색하며 보다 보니, 얇은 책이지만 시간이 제법 걸렸다.

 

 

먼저 최초로 도예로 터너 프라이즈를 수상한 크로스드레서 예술가 그레이슨 페리와 그의 도예작품들부터..

 

 

 

 

 

 

 

 

 

 

 

 

 

 

 

 

 

 

 

 

민주주의는 취향이 후지다라는 챕터에서

 

이번에는 1990년대 중반에 코마르와 멜라미드라는 아주 짓궂고 웃긴 러시아 예술가 콤비가 한 일을 살펴보자.

 

코마르 & 멜라미드 -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원

 

 

그들은 인기라는 개념의 의미를 글자 그대로 취하여, 사람들이 예술에서 가장 원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몇몇 나라에서 전문 여론조사 기관에 설문 조사를 의뢰했다. 그리고 설문조사 결과대로 그림을 그렸다.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주변에 사람이 몇 명 있고 전경에는 동물들이 있으며 파란색이 주조를 이루는 풍경화였던 것이다.

참 맥빠지는 일이다. 그런 경험을 한 뒤 코마르와 멜라미드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를 찾으려다가 노예 상태를 발견했다." 24

 

 

 

 

지나가는 이야기 하나 소개하겠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2013년에 L.S.로리의 전시회인 "로리, 현대 삶을 그리다"를 연 것은 대중의 요란한 항의에 굴복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착각인 것 같지만, 로리는 오랫동안 미술에서 엘리트의 취향에 맞서는 대중적 취향의 기수로 여겨져 왔고, 그의 작품들은 좀처럼 전시회에 걸리지 않는다는 불평이 많았다. 테이트 브리튼에서는 로리의 대중적 호소력에 지적인 광택을 더하기 위해 존경받는 거물급 미술 평론가 T.J.클라크와 앤 와그너를 데려다 그 전시의 큐레이팅을 맡겼다. 이것이 로리의 반복적인 창작물들에 로스코의 반복적 창작물들이 지닌 수준의 신뢰성을 부여하게 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24-25

 

(L.S.Lowry의 그림들을 찾아보니 낯익은 그림이 나왔다. 김혜리 기자의 책 <그림과 그림자>에 실린 그림이었다. 맨 위 이미지 )

 

 

 

 

 

 

 

 

 

 

 

 

 

 

 

어떤 작품을 미적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성차별주의와 인종차별주의, 식민주의, 계급적 특권으로 더럽혀져 불명예스럽고 곰팡내 풍기는 모종의 위계질서에 넘어가는 것이다. 그런 식의 미 개념은 배후에 다른 의미들을 잔뜩 숨기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미 개념이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해 보라.

 마르셀 프루스트는 '우리는 화려하게 장식된 황금색 액자를 통해서 볼 때만 아름다움을 본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은 아름다운 것에 관한 우리의 생각이 완전히 조건화되어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그것이 어떤 고유한 아름다움의 특질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거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그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데 익숙해진 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아름다움은 익숙함, 그러니까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생각을 강화해주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바뀌는 충돌 위에 구축된 것이다. .... 가족, 친구, 교육, 국적, 인종, 종교, 정치,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아름다움에 관한 관념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 26

 

 

 

자신이 소비하는 문화에 관해 말하는 것은 자기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자기도 모르게 은근히 드러내는 행위일 때가 많다. 우리가 즐기는 것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가 반영되는 것이다. .... 무언가를  칭송하는 것보다는 혹평하는 것이 언제나 더 안전하다. 27

 

 

 

초등학생 때 나는 빅토리아 시대의 서사회화를 좋아했고, 그때 이후로 그런 그림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왜곡을 거쳐야 했다. 나는 윌리엄 파웰 프리스와 조지 엘가 힉스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대체 왜 그 그림들을 좋아하는 걸까? 그건 그 그림들이 아주 잉글랜드적이고 사랑스러운 장인정신이 돋보이며 사회사와 좋은 옷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의 그 취향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없이 이랬다 저랬다 했다. 초기에는 재수용자의 입장을 취하여 "아, 그 그림들도 그들의 시대에는 현대적인 작품이었다니까.", "나는 그 그림들을 반어적으로 좋아하는 거야.", "이제 그 그림들은 거의 이국적이라고." 하는 식으로 말했고 결국에는 "그 그림들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인기가 높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그 그림들이 갑자기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더니, 그 인기는 정말 멋진 유행인 것처럼 번져 나갔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아, 안 돼. 내 취향이 더 이상 괴짜 취향이 아니잖아. 빅토리아 시대의 서사회화를 좋아하다니, 꼭 내가 시류에 편승한 것 같잖아!' 29

 

 

윌리엄 파웰 프리스 - The crossing sweeper

 

 

 

 

윌리엄 파웰 프리스 - A sick doll

 

 

 

 

조지 엘가 힉스 - Woman's mission

 

 

 

 

조지 엘가 힉스 - The wedding breakfast

 

 

 

 

열세 살이 되어서 나는 포토리얼리즘 회화를 좋아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실력인지 척 봐도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 학교에 가서는 포토리얼리즘이 좀 유행에 뒤떨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그러한 인식을 견뎌 냈고, 예술을 바라보며 40년을 보낸 지금도 여전히 리처드 에스테스 같은 예술가의 포토리얼리즘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서정적 특징들만을, 미술사에서 1960년대가 지닌 진정성의 틀 안에서 볼 때만 좋아하는 것 같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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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들어가며)에서부터 어찌나 공감가는 부분이 많던지 전부 밑줄 긋고 싶었다. ㅎㅎ

 

나도 "책 사놓으니 내 집 딸은 안 읽고 남의 집 딸이 읽는다"는 친구 엄마의 한탄(4)을 많이 들었는데 ㅋ

(엄마의 잔소리에 지친 친구가 책을 더 이상 빌려주지 않겠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지식을 쌓지도 못했고 깨달음이나 통찰력을 얻지도 못했다. 물론 이렇게라도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더 형편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5)

저자는 겸손의 말을 한 것이겠지만, 정말 공감 백배..

 

그 외에도

 

그래도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 딱히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를 때는 그냥 하던 대로 책이나 읽자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길게, 오래 해왔고 그나마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6)

 

"주머니나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는 것은, 특히 불행한 시기에,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다른 세계를 넣고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오르한 파묵의 이야기처럼 가끔씩 책 속으로 도망치는 것은 도움이 된다. (8)

 

출간된 책은 영원히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기 소개하는 책 중 절판돼 이제 구하기 어려운 책들도 많았다. 책의 유통 기한은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관심 가고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다음번에'하고 미루지 말고 그냥 사야 한다. 책은 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사놓은 책 중 골라 읽는 것이니까. (9)

 

전부 맞아맞아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었다.

 

하루키를 원문으로 읽고 싶어 일본어를 배웠다는 부분을 읽고는 놀라웠다.

나도 하루키를 읽고 싶어서,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웠지만 히라가나조차 기억나지 않던 일본어를 다시 공부했는데!

나도 하루키의 책과 하루키를 다룬 책만 따로 모아서 서가에 꽂아두었는데~~

 

밥보다 책 2권을 기다려본다.

 

 

전자책이 아무리 대중화되었다고 해도 서가에 꽂힌 책등을 쑥 훑어보는 즐거움을 대신할 수는 없다. 도서관이나 서점의 서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구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하이퍼 텍스트다. 책을 살피다 비슷한 분야의 다른 책을 우연히 찾아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주제의 책으로 점프하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만남과 연상이 우리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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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0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표지는 살바도르 달리의 집

 

 

 

 

 

저자는 서문에서 모란디의 집을 가 보고서

조르조 모란디의 그림은 그가 이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해했다고 한다.

 

책 속의 많은 예술가 하우스 사진을 보고 나니, 완벽한 일대일 대응은 아닐지라도
예술가가 살던 집과 예술가의 작품의 분위기에는 조응하는 것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모란디의 그림과 모란디의 집

 

 

 

 

 

 

 

 

 

 

 

 

 

 

 

 

 

이런 집에서 산 예술가는

 

 

 

 

 

 

 

 

 

이런 그림을 그렸고 (모네)

 

 

 

 

 

 

 

 

 

 

 

 

 

 

 

이런 집에서 산 예술가는

 

 

 

 

 

 

 

 

 

 

 

이런 그림을 그렸다는 것. (귀스타브 모로)

 

 

 

 

 

 

 

 

 

 

 

 

르네 마그리트도..

 

 

 

책에는 화가의 그림은 실려있지 않으니, 잘 모르는 화가의 경우라면 구글에서 이미지 찾아가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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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20-01-30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잔의 집도 인상적이었는데 아틀리에 벽의 회색 색조가 창밖의 자연과 이어지도록 신중하게 골랐다는 것이 참으로 세잔답게 느껴짐 ^^ 르누아르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식당의 하얀 가구들도 예뻤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몇몇 예술가들이 이런 피곤하고 눈 먼 실존에서 우리를 구해 내, 바로 코앞에 있는 것에 눈을 뜨도록 해 준다. 예를 들어 웨인 티보는 1960년대 초부터 그런 역할을 해 왔다. 그는 바로 그 검볼머신이 파란 윤곽선을 후광처럼 두르고 신비로운 빛에 빛나고 있는 그림이나 사탕 색깔의 풍경화, 스파게티가 꼬인 것 같은 고속도로 그림들을 그려 왔다. 우리가 보았다면 아무것도 아니라서 지나쳤을 일상적 광경을 티보는 마치 천상의 것처럼 표현해 냈다. 284

 

 

 

 

 

 

 

 

 

 

 

 

 

 

 

 

 

 

 

 

 

 

 

 

샤르댕이 18세기에 오지그릇과 죽은 토끼로 하던 일을, 오늘날 티보는 검볼머신과 호박파이, 고기와 치즈를 파는 델리의 카운터, 립스틱, 그리고 핫도그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티보의 그림 역시 상실한 것들을 추억한다. 그림 속의 사물들은 아무 무게도 없는 듯 텅 빈 공간 속에 고립되어 있다. 이들은 너무나 특이한 방식으로 빛나고 있어서 거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데 천상의 빛이 아니면 수술실의 빛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한참 보다 보면 티보의 그림은 단순한 즐거움보다는 뭔가 복잡한 걸 전해 준다는 걸 알 수 있다. 샤르댕처럼 티보의 것도 본질적으로 기억에 가까운 이미지이고 이는 언제나 복잡한 양상을 띤다. 티보의 그림에 대한 반응은 실제의 세상과 우리가 바라던 세상 사이의 틈에서 천천히 우리 머릿속에 입력된다.

언젠가 작가 애덤 고프닉이 표현했던 대로 티보는 우리에게 진짜 치즈가 아니라 플라톤적인 치즈를 제공한다. 티보의 작품에서 현실과 욕망의 차이는 어쩌면 샤르댕의 그림에서보다 강도가 높아서, 그림을 처음 보고 즐거움을 느낀 후엔 슬픔이 물려오는 걸 맛보게 된다. 티보의 작품은 완벽한 세상에 관한 그림이 아니다. 그보단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 아직도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 관한 것이고, 우리는 그저 그림이 갖고 있는 가상적인 면에 잠시 기대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298-299

 

 

 

 

 

우리가 그림 속 핫도그나 립스틱을 보고 웃는 건 이들이 묘지의 비석처럼 비장하게 줄줄이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복 그 자체 때문이기도 하다. ....

동시에 그의 그림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주를 우리는 눈치채지 않을 수 없다. 파이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고 이는 표현적이고 즉흥적인 손놀림을 보여 준다. 티보는 주변 세상을 감상할 때는 신중하게 분별해서 보라고 제안한다. 다 똑같은 파이지만 똑같이 그리진 않았다. 300

 

 

 

 

 

 

웨인 티보, 진열된 케이크(7개)

 

샤르댕의 그림처럼 그의 그림도 행복감을 주는데, 다른 이유보다도 그림이 그 자체로 자족적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는 더 나아가 그림에서 묘사되는 보잘것없는 사물과 사람에 대한 어떤 메시지이기도 하다.

 가느다란 다리가 받치고 있는 원판 위의 케이크들을 그린 그림들을 보자. 뒷줄에 있는 프로스팅 케이크의 수직선이 앞에 있는 초콜릿 케이크 안에 든 크림의 결이 그리는 수평선과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지, 엔젤 케이크 가운데 뻥 뚫린 원형과 레몬 커스터드 파이의 노란 동그라미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케이크들의 수가 모두 일곱이라는 것과 양 옆에 세 개씩 케이크가 있는, 가운데 케이크 위엔 빨간색 아이싱으로 그려진 하트도 놓치지 말자.

맛있다.

 

 

 

 

 

 

음악은 시간을 통해 전개되는 예술이고, 그 경험 자체가 무척 강렬하면서도 긴박해서 감동을 주었던 음조차 듣는 순간 사라져 버리지요, 미술은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제외하면) 물러났다가 돌아와서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을 다른 식으로 움직이게 하지요. 아니면 적어도 나는 다른 식으로 움직인다고 할까요. 317

 

 

 

눈을 뜬다는 것은 실제로 생각보다 훨씬 힘들어요. 어쩌면 우리는 자라면서 보지 못하도록 훈련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어요. 주변에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각적으로 정지되어 있도록,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가 보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도록(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기 전에 설명을 먼저 읽는 것처럼) 훈련되어 온 거죠. 본다는 건 때로 그저 믿는 걸 뜻해요. 봐야 하는 방식대로 보는 것에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고 자기만의 감각으로, 자신에게 의미 있는 뭔가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해요.

대개 미술에 관한 글들은 눈을 뜨고 있으라고 권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라고 지시할 뿐이죠. 하지만 가장 값진 교훈은 예술가들로부터 얻을 수 있어요. 그들은 그냥 보는 행위를 즐길 뿐, '옳게' 노는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죠. 319

 

 

 

 

 

많은 동시대 미술들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도록 고안된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 사람들이 미술을 보며 따돌림을 당하는 느낌을 갖는 건 이해할 만해요. 그런 예술에 대한 글들은 아주 거만할 때가 많지요. 부와 권력과 배타적인 인상을 주는 이런 글들은 단순히 불쾌할 뿐 아니라 아주 역겨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삶에서 쉬운 건 없듯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우리 자신이 노력을 해야 해요. .... 동시대 미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회의는 건전하지만 냉소는 그렇지 않아요. 이런 정신만 있다면 누구나 동시대 미술을 즐기고 이해할 수 있어요.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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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28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성스레 미술작품 사진 올려주셔서 눈이 배부르고 갑니다.

slobe00 2020-01-28 18:13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