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허스트

FOR THE LOVE OF GOD 제발, 2007

 

 

보안 검사를 잽싸게 마치고 안내 요원의 지시에 따라 어두운 방으로 들어선다. 검은 벨벳과 사치스러운 카펫으로 꾸며진 공간이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둘 내지 셋으로 짝을 이루고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이곳은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FOR THE LOVE OF GOD 제발"이 처음 소개되는 자리이다. 좌대 위에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 있는 해골이 놓여 있다. 햄릿이 오필리아의 무덤에서 발견한 요릭의 해골 같다. 2007년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이 작품은 조명 속에서 더욱 극적으로 빛난다. 해골을 마주한 채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어떤 깨달음이 찾아오길 기다려 본다. 혹은 다이아몬드 8,601개에서 비롯되는 흥분이나 감동이 찾아오길 기다려 본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해골의 공허함이 자아내는 암울하고 공포스러운 메시지는, 그것을 둘러싼 터무니없이 값비싼 다이아몬드 갑옷 때문에 다소 희미해진다. 휑하니 뚫린 눈구멍 속에서도 존재론적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다만 요릭의 이마에 박힌 핑크색 눈물 모양 다이아몬드에 감탄을 하고, 다이아몬드 장식이 되어 있지 않은 치아와 미소에 시선을 빼앗길 뿐이다. 허스트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집착하면서, 엄숙함과 부박함을 결합하는 방식을 채택해 왔다. 본래 누더기 망토를 두르는 죽음의 신에게 몹시 화려한 옷을 입히는 식으로 말이다. 이와 같은 모순적 결합은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1991)"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그는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서 거대한 상어의 시체를 넣어 마치 영원히 헤엄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 해골 작품은 단순히 흥미로운 시각적 농담에 그치지 않고, 미술 시장의 모든 악덕을 상징하는 문제적 형상으로 기능한다. 어쩌면 작가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은행가의 부패나 연예계의 몰취향 같은 일반 시장의 악덕까지도 한꺼번에 문제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허스트의 해골은 이 사치스러운 시대에 생산되는 미술작품의 전형인 동시에, 금전적 가치가 높은 오브제를 생산하도록 미술 시장을 충동질하는 갑부 컬렉터들의 탐욕을 보여 준다. 허스트는 미술계를 위험도 높은 노름판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인 것이다.

 

오늘날 미술작품은 가격을 기준으로 평가된다.금전적 가치가 미학적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것이다. 미술가는 시합에 출전하는 선수처럼 잠재적 수익성을 평가받는다.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가정 형편이 변변치 못했던 빈센트 반 고흐나 수수한 풍경을 소재로 삼은 폴 세잔은 역사상 가장 부유한 화가에 속한다. 이들만큼 높은 경매 기록을 세운 작가가 없기 때문이다. 허스트의 해골은 대략 5천만 파운드에 낙찰되었는데, 이 정도 기록이면 허스트 역시 고흐나 세잔과 마찬가지로 '미술기업가'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이 그토록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강력한 설득력과 매력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비싼 가격 때문이 아니다. 이 작품은, 어차피 죽으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치품들을 강박적으로 수집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마야 시대의 유물이라고 믿었으나 결국 19세기 위조품으로 밝혀진 대영박물관의 수정 해골

과 마찬가지로, 허스트의 빛나는 해골 역시 왠지 상상의 가공물이나 모조품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은 미술작품인 동시에 미친 장신구 제작자의 발명품 같기도 하며, 과잉의 상징인 동시에 허영의 구현물 같기도 하다. 갖가지  소문과 불화, 그리고 논쟁은 오히려 이 작품에 신비감을 더해 준다 (러시아 작가들은 이것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할 것인지의 여부를 놓고 모의 재판까지 열었다고 한다). 해골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정신 나간 시장 체계와 부유한 폭군들이 지배하는 이 얄팍한 세상, 이길 수 없으면 합류하는 수밖에.  122 -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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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ime / 시간

A ssociation / 관계

B ackground / 배경

U nderstand / 이해

L ook again / 다시 보기

A ssessment / 판단

 

 

오늘날 우리는 모더니즘을 이어받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자취 속에서 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일종의 비-운동으로서, 이전 시대가 표방했던 뚜렷한 양식 구분을 거부하고, 그것을 점차적으로 해체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8

 

 

현대미술은 공격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미술작품에 아주 단순한 태도로 대응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 책은 근래에 제작된 각양각색의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경험 공식'을 소개한다. 이 공식을 활용하면, 소외감과 복잡한 심정을 일으키는 작품에 간단하고 쉽게 대응할 수 있다.

이처럼 현대미술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하게 된 것은, 1972년에 출간된 'Ways of seeing 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저자 존 버거 덕분이다. 버거는 작품을 감상하려면 면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거장의 명작을 대상으로 미술의 탈신비화 작업을 시도하고, 작품을 미술사적 의의로부터 분리하고자 했다. 작품에 부여된 가치를 넘어 단순한 바라보기 행위로만 이루어지는 감상법을 제시한 것이다. 8~9

 

현대미술을 경험할 때는 고정된 견해가 없는 백지상태, 즉 Tabula Rasa타뷸라 라사(빈 서판)접근법이 필요하다. 9

 

 

A는 관계를 의미한다. "도대체 이 작품이 나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 어쨌든 작품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피상적이나마 그 작품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작가의 숨은 의도보다는 그런 관계 맺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일단 흥미를 갖고 작품과 관계를 맺어야만 비로소 우리는 작품의 의미와 배경을 탐구할 수 있다. 15

 

현대미술의 가치를 전혀 믿지 않고 오직 적개심만 갖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도발적이거나 낯선 작품을 접하면 아무런 고민도 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태만과 고집만으로 버틸 뿐이다.

 

현대미술이 지적 우월함을 내세우는 복잡한 문화 현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게으른 선입견이다. 또한 현대미술이 특정한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는 멤버십 클럽이라는 고정관념 역시 꼭 바로잡고 싶다. 21

 

 

 

오늘날 미술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본능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그런 미술의 오브제는 대체로 불확실하고 일시적이다. 결국 남는 것은 미술에 대한 기억, 미술의 잔재, 혹은 사진과 비디오뿐인지도 모른다. 74

 

현대미술은 점차 하이브리드의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감상자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바라봐야 한다. 갤러리에서든 극장에서든, 혹은 길거리에서든 간에, 미술이 전달해 주는 의미와 그 매체를 접할 때는 선입견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미술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한다. 84-85

 

우리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미술작품을 힐끗 보기만 한다. 관심이 있는 척만 할 뿐, 제대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과 미술의 대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88

 

기억할 만하고 의미 있는 미술작품은 하나의 고정된 메시지에 얽매이지 않으며, 다양한 답을 제시해 준다. 94

 

현대미술은 대체로 모호해서 감상자를 당혹케 한다. 작가는 마음대로 애매한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감상자는 그것을 두고 판사, 배심원, 집행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모호한 작품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하고 질문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태도를 통해 우리는 작품의 요점과 주제, 그리고 철학을 보다 미묘한 차원까지 이해하게 된다. 97

 

 

우리가 블록버스터 작품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거기서 미학적 끌림뿐 아니라 물리적 끌림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것은 시각적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현상이다. 4장 사건과 현대미술과 달리, 스펙터클한 작품에는 사람도 등장하지 않고 퍼포먼스 요소도 없다. 대신에 우리는 보다 압도적인 오브제들과의 육체적 상호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미술작품은 이미지나 개념이 아니라 경험으로서 기억에 남는다. 자세히 바라볼 사이도 없이, 그저 놀랄 뿐이다. 127

 

 

리처드 세라는 지난 반세기를 대표하는 기념비 조각가이지만, 단순히 '클수록 좋다'는 강령만으로는 그의 작가적 명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 뜻밖에도 그는 기념비성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세라는 선, 형태, 공백을 비롯해, 구조물 제작의 다양한 기술적 측면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부실 공사로 인해 바닥과 돔이 고르지 못한 어느 로마 교회에 들어가 보고서는 그 흥미로운 불균형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세라는 자신의 작품들이 "공간을 통과하는 육체의 지속적 움직임,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런던에서 전시된 그의 구조물은 10-20미터 길이의 강철로 제작되어 거대하고 무겁지만,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마치 흐르는 물 사이를 지나다니는 느낌이 든다. 가공된 벽 표면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안으로 굽어 들거나 밖으로 휘기도 하며, 마치 절벽처럼 가파르게 솟아오르기도 한다. 이곳에 더 있다가는 폐소 공포증이 엄습해 올 것 같지만, 그래도 계속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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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독서 정리도 해 보고 싶지만, 읽은 책 제목 정리조차 10월부터 겨우 시작한 참이라..
(나이를 먹을 수록 절감하는 바, 기록하지 않은 독서는 모조리. 깡그리. 휘발된다...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며 내가 대체 이 책을 읽었던가 말았던가 고민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보니, 제목만이라도 적어둬야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 10월..
12월까지 3개월간 적어보니, 이 정도도 꾸준히 하는 것에는 만만찮은 품이 든다.. 읽은 책 한 권 한 권 충실한 리뷰를 남기시는 많은 분들이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올해 말에는 2020년의 독서 정리 및 베스트10 같은 글을 남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ㅡ3개월 98권 중 베스트를 꼽아보자면 베스트 문학으로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베스트 저자로 마틴 게이퍼드, 

 

 

 

 

 

 

 

 

 

 

 

 

 

 

 

 

 

 

 

 

 

 

 

 

 

 

 

 

 

 

 

베스트 비문학으로 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가 되겠다ㅡ

 

 

 

 

 

 

 

 

 

 

 

 

 

 

 



2019년 12월 31일에 이어 전쟁과 평화 3권을 읽고 4권을 집어 든 참이다. 에필로그와 덧붙이는 말, 작품해설을 제외한 4권의 순수 본문은 불과 461페이지. 살짝 아쉽기도 하다. 

 

 

 

 

 

 

 

 

 

 

 

 

 

 

 


3권은 전쟁 장면이 주를 이뤄서 약간 지루한 부분도 있고
나타샤와 안드레이, 나타샤와 피에르가 나오는 분량이 너무 적어 좀 급하게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흰 벽의 모스크바'가 점령되고 피에르가 프랑스군의 포로가 되면서 끝난 3권.
 안드레이의 죽음과 나타샤와 피에르의 결합, 니콜라이와 마리야 공작영애의 결합까지 흥미로운 부분이 가득할 장편의 결말부. 4권은 더욱 기대가 크다 ^-^

다음 책으로는 그림이 너무 예쁜 이 책을 골라두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이 강아지는 알라딘 중고서점 들어가도 되겠네.
우리 강아지도 책을 좋아하긴 하는데
양장본 모서리 물어뜯기를 좋아해서 ㅠㅠ  벌써 여러권 해 드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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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까레니나 하권을 읽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평 3권이 도착해서 레빈과 키티에게 안녕을 고하고 얼른 펼쳤는데. 100쪽까지도 나타샤는 나오지 않고..
(하긴 안나 까레니나에서도 안나는 100쪽을 훌쩍 넘겨서 나왔지)
(134쪽에서 나타샤 등장)

2019년의 마지막 책도 2020년의 첫 책도 전쟁과 평화.
2년에 걸쳐 마저 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ㅡ


오직 독일인만이 추상적 관념, 다시 말해 과학, 즉 완전한 진리에 대한 가상의 앎에 근거하여 자신만만해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은 자신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리고 남자들에 대해서나 여자들에 대해서나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자신만만해한다. 영국인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 정비된 국가의 국민이고, 언제나 영국인으로서 행하는 모든 것이 명백하게 훌륭함을 안다는 것을 근거로 자신만만해한다. 이탈리아인은 쉽게 흥분하고 쉽게 자신과 타들을 잊어버리는 사람들이라 자신만만해한다. 러시아인은 다름아니라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또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점, 무언가를 충분히 안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자신만만해한다. ㅡ 전쟁과 평화 3, p.97
톨스토이의 전유럽 돌려까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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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문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 비참한 상황을 읽는 고통이 결말의 카타르시스(가 존재하는 스토리라면)를 훨씬 능가하는지라..
피터 헬러의 <도그 스타>는 작가의 다른 책 <셀린>으로 미뤄 짐작컨대 문장이 아름다울 것이라 예상하고 읽어볼까 하고 손에 들었고 역시나 좋았던 아주 드문 케이스이고,










 

 

 

 

 

팟캐스트 등에서 여러 번 접한 매카시의 <로드>마저도 끌리긴 했지만 겁나서 보지 못했다.
문명의 종말이 온다면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은혜로운 무지 속에서 빨리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그래서 이 스테이션 일레븐도 설정은 매혹적이었지만
(문명이 끝났는데도 그 황폐한 세상에서 셰익스피어 극을 연기하며 떠돌아다니는 유랑극단이라니!)
종말문학 특유의 비참한 상황 묘사를 읽을 자신이 없어 도서관에서 자주 눈에 띄어도 집어들게 되지 않았는데..
최근에야 알고 듣기 시작한 팟캐스트 '책걸상'에 이 책이 나오는데
어찌나 책 소개를 귀가 솔깃하게 잘 하시던지(문명이 종말을 맞이하는 과정이 아주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해서 더 끌렸다)
읽어봐야겠다 맘먹고보니..
리디셀렉트에 있었다. ^^
얼른 다운받아 읽기 시작. 
오. 읽기 힘든 부분이 하나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참을 만하고. 밑줄도 제법 그었다. 마지막 희망적인 마무리까지..좋아좋아.  별 넷~
ㅡㅡㅡㅡㅡㅡㅡ

낮은 나뭇가지에선 이끼가 자라고,  삼나무 숲 사이로 한숨 소리같은 바람이 분다.


생각이 사라지는 별들처럼 하나둘씩 사라졌고, 걷고는 있지만 의식은 몽롱한 상태가 되어 중요한 것이라고는 혹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이 나무들과 이 길, 인간의 발자국과 말발굽의 대조적인 리듬, 달빛이 스러지며 천천히 어두워지다가 해가 떠오르는 풍경,더위 속애서 유령처럼 일렁이는 마차들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숲은 그늘에 잠겨 있지만, 아직도 하늘에는 좁은 복도처럼 빛이 길게 지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석양빛이 구름 사이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달빛이 유리에 반사돼 반짝일 뿐 다른 빛은 전혀 없었다. 황량하고 예상치 못했던 아름다움, 고요한 대도시, 인기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호수 위 하늘에 떠 있던 별들이 하나둘씩 구름의 장막 뒤로 숨고 있었다. 그는 공기 중에서 눈 냄새를 맡았다.
 
 
더 많은 걸 기억할수록 더 많은 걸 잃은 거라는 얘기예요.
 
 
자작나무 가지들이 산들바람에 흔들렸고 초록 이파리들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왔다. 커스틴이 눈을 감자 눈꺼풀 밑에서 나뭇잎들의 검은 윤곽이 둥둥 떠다녔다.
 
 
그들이 뭘 보고 있든, 클라크는 차를 한 잔 마시지 않고는 그 뉴스를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테러 공격이 벌어진 것일까? 그는 매점에서 얼 그레이를 한 잔 사서 천천히 우유를 부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채 홍차에 우유를 섞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클라크는 지금 이 순간을 미리 그리워했다.
 
 
그는 아침을 먹으면서 소설을 즐겨 읽었다. 이제까지 클라크가 본 것 중에 가장 세련된 습관이었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낡아버린 주변 풍경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었다. 햇빛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진입로의 자갈 사이로 튀어 올라온 꽃들을 비췄고, 앞베란다는 이끼가 잔뜩 깔려 밝은 초록색으로 변했으며, 흰 꽃이 핀 관목에는 나비들이 날아들었다. 이 찬란한 세상, 커스틴은 갑자기 목이 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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