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치있는 일러스트 말고는 도판이 하나도 실려있지 않은 책이라

언급되는 작가 중 낯설다 싶은 작가는 검색하며 보다 보니, 얇은 책이지만 시간이 제법 걸렸다.

 

 

먼저 최초로 도예로 터너 프라이즈를 수상한 크로스드레서 예술가 그레이슨 페리와 그의 도예작품들부터..

 

 

 

 

 

 

 

 

 

 

 

 

 

 

 

 

 

 

 

 

민주주의는 취향이 후지다라는 챕터에서

 

이번에는 1990년대 중반에 코마르와 멜라미드라는 아주 짓궂고 웃긴 러시아 예술가 콤비가 한 일을 살펴보자.

 

코마르 & 멜라미드 -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원

 

 

그들은 인기라는 개념의 의미를 글자 그대로 취하여, 사람들이 예술에서 가장 원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몇몇 나라에서 전문 여론조사 기관에 설문 조사를 의뢰했다. 그리고 설문조사 결과대로 그림을 그렸다.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주변에 사람이 몇 명 있고 전경에는 동물들이 있으며 파란색이 주조를 이루는 풍경화였던 것이다.

참 맥빠지는 일이다. 그런 경험을 한 뒤 코마르와 멜라미드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를 찾으려다가 노예 상태를 발견했다." 24

 

 

 

 

지나가는 이야기 하나 소개하겠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2013년에 L.S.로리의 전시회인 "로리, 현대 삶을 그리다"를 연 것은 대중의 요란한 항의에 굴복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착각인 것 같지만, 로리는 오랫동안 미술에서 엘리트의 취향에 맞서는 대중적 취향의 기수로 여겨져 왔고, 그의 작품들은 좀처럼 전시회에 걸리지 않는다는 불평이 많았다. 테이트 브리튼에서는 로리의 대중적 호소력에 지적인 광택을 더하기 위해 존경받는 거물급 미술 평론가 T.J.클라크와 앤 와그너를 데려다 그 전시의 큐레이팅을 맡겼다. 이것이 로리의 반복적인 창작물들에 로스코의 반복적 창작물들이 지닌 수준의 신뢰성을 부여하게 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24-25

 

(L.S.Lowry의 그림들을 찾아보니 낯익은 그림이 나왔다. 김혜리 기자의 책 <그림과 그림자>에 실린 그림이었다. 맨 위 이미지 )

 

 

 

 

 

 

 

 

 

 

 

 

 

 

 

어떤 작품을 미적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성차별주의와 인종차별주의, 식민주의, 계급적 특권으로 더럽혀져 불명예스럽고 곰팡내 풍기는 모종의 위계질서에 넘어가는 것이다. 그런 식의 미 개념은 배후에 다른 의미들을 잔뜩 숨기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미 개념이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해 보라.

 마르셀 프루스트는 '우리는 화려하게 장식된 황금색 액자를 통해서 볼 때만 아름다움을 본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은 아름다운 것에 관한 우리의 생각이 완전히 조건화되어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그것이 어떤 고유한 아름다움의 특질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거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그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데 익숙해진 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아름다움은 익숙함, 그러니까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생각을 강화해주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바뀌는 충돌 위에 구축된 것이다. .... 가족, 친구, 교육, 국적, 인종, 종교, 정치,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아름다움에 관한 관념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 26

 

 

 

자신이 소비하는 문화에 관해 말하는 것은 자기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자기도 모르게 은근히 드러내는 행위일 때가 많다. 우리가 즐기는 것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가 반영되는 것이다. .... 무언가를  칭송하는 것보다는 혹평하는 것이 언제나 더 안전하다. 27

 

 

 

초등학생 때 나는 빅토리아 시대의 서사회화를 좋아했고, 그때 이후로 그런 그림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왜곡을 거쳐야 했다. 나는 윌리엄 파웰 프리스와 조지 엘가 힉스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대체 왜 그 그림들을 좋아하는 걸까? 그건 그 그림들이 아주 잉글랜드적이고 사랑스러운 장인정신이 돋보이며 사회사와 좋은 옷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의 그 취향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없이 이랬다 저랬다 했다. 초기에는 재수용자의 입장을 취하여 "아, 그 그림들도 그들의 시대에는 현대적인 작품이었다니까.", "나는 그 그림들을 반어적으로 좋아하는 거야.", "이제 그 그림들은 거의 이국적이라고." 하는 식으로 말했고 결국에는 "그 그림들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인기가 높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그 그림들이 갑자기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더니, 그 인기는 정말 멋진 유행인 것처럼 번져 나갔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아, 안 돼. 내 취향이 더 이상 괴짜 취향이 아니잖아. 빅토리아 시대의 서사회화를 좋아하다니, 꼭 내가 시류에 편승한 것 같잖아!' 29

 

 

윌리엄 파웰 프리스 - The crossing sweeper

 

 

 

 

윌리엄 파웰 프리스 - A sick doll

 

 

 

 

조지 엘가 힉스 - Woman's mission

 

 

 

 

조지 엘가 힉스 - The wedding breakfast

 

 

 

 

열세 살이 되어서 나는 포토리얼리즘 회화를 좋아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실력인지 척 봐도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 학교에 가서는 포토리얼리즘이 좀 유행에 뒤떨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그러한 인식을 견뎌 냈고, 예술을 바라보며 40년을 보낸 지금도 여전히 리처드 에스테스 같은 예술가의 포토리얼리즘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서정적 특징들만을, 미술사에서 1960년대가 지닌 진정성의 틀 안에서 볼 때만 좋아하는 것 같다. 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