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몇몇 예술가들이 이런 피곤하고 눈 먼 실존에서 우리를 구해 내, 바로 코앞에 있는 것에 눈을 뜨도록 해 준다. 예를 들어 웨인 티보는 1960년대 초부터 그런 역할을 해 왔다. 그는 바로 그 검볼머신이 파란 윤곽선을 후광처럼 두르고 신비로운 빛에 빛나고 있는 그림이나 사탕 색깔의 풍경화, 스파게티가 꼬인 것 같은 고속도로 그림들을 그려 왔다. 우리가 보았다면 아무것도 아니라서 지나쳤을 일상적 광경을 티보는 마치 천상의 것처럼 표현해 냈다. 284
샤르댕이 18세기에 오지그릇과 죽은 토끼로 하던 일을, 오늘날 티보는 검볼머신과 호박파이, 고기와 치즈를 파는 델리의 카운터, 립스틱, 그리고 핫도그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티보의 그림 역시 상실한 것들을 추억한다. 그림 속의 사물들은 아무 무게도 없는 듯 텅 빈 공간 속에 고립되어 있다. 이들은 너무나 특이한 방식으로 빛나고 있어서 거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데 천상의 빛이 아니면 수술실의 빛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한참 보다 보면 티보의 그림은 단순한 즐거움보다는 뭔가 복잡한 걸 전해 준다는 걸 알 수 있다. 샤르댕처럼 티보의 것도 본질적으로 기억에 가까운 이미지이고 이는 언제나 복잡한 양상을 띤다. 티보의 그림에 대한 반응은 실제의 세상과 우리가 바라던 세상 사이의 틈에서 천천히 우리 머릿속에 입력된다.
언젠가 작가 애덤 고프닉이 표현했던 대로 티보는 우리에게 진짜 치즈가 아니라 플라톤적인 치즈를 제공한다. 티보의 작품에서 현실과 욕망의 차이는 어쩌면 샤르댕의 그림에서보다 강도가 높아서, 그림을 처음 보고 즐거움을 느낀 후엔 슬픔이 물려오는 걸 맛보게 된다. 티보의 작품은 완벽한 세상에 관한 그림이 아니다. 그보단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 아직도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 관한 것이고, 우리는 그저 그림이 갖고 있는 가상적인 면에 잠시 기대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298-299
우리가 그림 속 핫도그나 립스틱을 보고 웃는 건 이들이 묘지의 비석처럼 비장하게 줄줄이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복 그 자체 때문이기도 하다. ....
동시에 그의 그림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주를 우리는 눈치채지 않을 수 없다. 파이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고 이는 표현적이고 즉흥적인 손놀림을 보여 준다. 티보는 주변 세상을 감상할 때는 신중하게 분별해서 보라고 제안한다. 다 똑같은 파이지만 똑같이 그리진 않았다. 300
웨인 티보, 진열된 케이크(7개)
샤르댕의 그림처럼 그의 그림도 행복감을 주는데, 다른 이유보다도 그림이 그 자체로 자족적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는 더 나아가 그림에서 묘사되는 보잘것없는 사물과 사람에 대한 어떤 메시지이기도 하다.
가느다란 다리가 받치고 있는 원판 위의 케이크들을 그린 그림들을 보자. 뒷줄에 있는 프로스팅 케이크의 수직선이 앞에 있는 초콜릿 케이크 안에 든 크림의 결이 그리는 수평선과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지, 엔젤 케이크 가운데 뻥 뚫린 원형과 레몬 커스터드 파이의 노란 동그라미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케이크들의 수가 모두 일곱이라는 것과 양 옆에 세 개씩 케이크가 있는, 가운데 케이크 위엔 빨간색 아이싱으로 그려진 하트도 놓치지 말자.
맛있다.
음악은 시간을 통해 전개되는 예술이고, 그 경험 자체가 무척 강렬하면서도 긴박해서 감동을 주었던 음조차 듣는 순간 사라져 버리지요, 미술은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제외하면) 물러났다가 돌아와서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을 다른 식으로 움직이게 하지요. 아니면 적어도 나는 다른 식으로 움직인다고 할까요. 317
눈을 뜬다는 것은 실제로 생각보다 훨씬 힘들어요. 어쩌면 우리는 자라면서 보지 못하도록 훈련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어요. 주변에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각적으로 정지되어 있도록,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가 보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도록(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기 전에 설명을 먼저 읽는 것처럼) 훈련되어 온 거죠. 본다는 건 때로 그저 믿는 걸 뜻해요. 봐야 하는 방식대로 보는 것에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고 자기만의 감각으로, 자신에게 의미 있는 뭔가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해요.
대개 미술에 관한 글들은 눈을 뜨고 있으라고 권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라고 지시할 뿐이죠. 하지만 가장 값진 교훈은 예술가들로부터 얻을 수 있어요. 그들은 그냥 보는 행위를 즐길 뿐, '옳게' 노는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죠. 319
많은 동시대 미술들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도록 고안된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 사람들이 미술을 보며 따돌림을 당하는 느낌을 갖는 건 이해할 만해요. 그런 예술에 대한 글들은 아주 거만할 때가 많지요. 부와 권력과 배타적인 인상을 주는 이런 글들은 단순히 불쾌할 뿐 아니라 아주 역겨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삶에서 쉬운 건 없듯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우리 자신이 노력을 해야 해요. .... 동시대 미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회의는 건전하지만 냉소는 그렇지 않아요. 이런 정신만 있다면 누구나 동시대 미술을 즐기고 이해할 수 있어요.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