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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의 식탁 - 최재천 교수가 초대하는 풍성한 지식의 만찬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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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최재천 교수의 책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를 읽다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그냥 덮어버린 적이 있다. 나는 과학에 문외한이고 너무 따분한 책은 잘 읽지 않는 그냥 재밌고 편안한 책만을 즐겨 읽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달라진 것일까?  아님 최재천 교수의 글쓰기가 달라진 것일까? 나는 책을 읽으며 지루하고 따분하기는커녕 무척 흥미롭고 내 안에서 과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꿈틀꿈틀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차려 높은 통섭의 식탁은 풍성하다. 그가 소개하는 과학 책들을 다 읽어 볼 순 없다하더라도 이 책을 읽어봄으로써 현대 과학의 흐름과 넓게는 사회의 지적 흐름을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내가 잘 접근하지 않던 낯선 과학이라는 분야를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이 책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나의 독서 편식을 조금 고쳐 최재천 교수가 추천하는 과학도서를 읽어 보려 한다. 그래서 마이리스트도 작성하고, 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강조하는 <이기적 유전자>를 구입했다. 책을 보니 엄청 두꺼운데 처음으로 이렇게 두꺼운 과학책에 도전해 보려 한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도저히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나는 최재천 교수가 우리 사회의 저명한 과학자로서 자신의 소임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고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시피 교수는  2005년 각각의 독자적인 학문간   서로 다른 영역을 넘나드는, 혹은 아우르는 "통섭" 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하였고 사회 곳곳으로 전파시켰다. 실제로 통섭의 개념은 이젠 어느 정도 우리 사회 알만한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학계나 기업들도 통섭을 받아들이고 있다. 분업화사회에서 학문마저 너무나 잘게 쪼개져 과학 한 분야에서만도  자기 분야가 아니면 다른 과학 분야에는 문외한이 되고 마는 어이없는 상황에서 인문학과 과학의 넘나듦, 아우름 같은 학문간의 자기 고집이나 경계를 허무는 통섭의 개념을 제시하고 강조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 학문 분야만을 강조하거나 다른 학문에 대해서 무관심한 상황은 사회적인 소통이나 지적 담론을 풍성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재천 교수가 우리 사회에 통섭이라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교수는 또한 많은 책을 써서 과학을 대중화시켜 나 같은 과학문외한에게 과학책을 읽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가르침를 주며 생명 존중과 공존,지속가능한 발전, 소통의 중요성 등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화두를 지속적으로 던져주고 있다.

물론 스타학자로서 잘 나가는 인생을 사는 성공한 학자로서 그가 보이는 자기과시 같은 것이 독자에게 거부감 내지는 불편함을 줄 수는 있다고 본다. 나도 책을 읽으며 그런 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최재천 교수의 그런 작은 단점보다는 우리 사회에 이바지한 그 장점들이 더 크게 보여서 그 정도는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이 사회에서 잘 나가는 성공한 학자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자. 별것도 아닌 것으로 흠집을 내지 말자. 편협하고 권력에 곡학아세하는 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면 나는 오히려 최재천 교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최재천 교수가 동물학만 연구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학자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런 통섭의 개념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싶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깊이 있는 꾸준한 독서를 통해 최재천 교수 같은 통섭형 인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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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서랍 - 이정록 산문집
이정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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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정록이라는 시인을 몰랐는데 글샘의 서재에서 이 책의 리뷰를 읽고 뭔가 사람냄새가 나는, 내 정서와 맞는 책일 것 같아서 구입하게 되었다.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밥상머리에서는 주로 시인의 가족사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시인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누나 등 시인의 정신세계와 시에 영향을 미쳤을 가족사가 나온다. 어떤 대목에선 구수하고 어떤 대목에선 뭉클하기도 한 이야기들이었다.

시인의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은 어떤 철학자의 말보다 우리를 사색하게 한다.

 

"인생 농사도 그늘 농사라고 혔지. 아내 그늘, 자식 그늘, 지 가슴속 그늘! 그 그늘을 잘 경작혀야 풍성한 가을이 온다고 말이여."

"그늘이 짙으면, 노을도 되고 단풍도 되는 거여. 사과도 홍시도 다 그늘이 고여서 여무는 거여. 뭣도 모르는 것들이 햇살에 익는다고 허지. "

 

내 눈이 번쩍 뜨인 부분은 3부 <시 줍는 사람>인데 이 글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라고 하는 걸 봐서 시문학 공부를 하는 후배들을 위해 쓴 글인데, 작가의 언어 하나하나가 살아 있고 깊이가 있음에 놀랐다. 처음엔 작가가 일상적인 소소한 삶의 단상을 시로 쓰는 소박한 시인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정말 작가의 시정신의 깊이가 깊고 날카롭다.

작가는 '시인은 설렘과 그늘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데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늘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목탁 속 어둠 같은 것.

뻥뚫린 고목의 내부에 서려 있는 어떤, 없음의 두께

텅 빈 부재의 숨소리.

벌레 먹은 나뭇잎을 막 빠져나온 햇살이 아래 잎에 하염없이 부딪치다가 어쩔 수 없이 나무 밑에 내려놓는 것.

먼 길 달려온 햇살이 자신의 무릎을 접어서 한 그루 나무 앞에서 기도할 때, 그 햇살과 고목이 한꺼번에 뽑아내는 한숨 같은 것.아, 뜬구름 잡고 비를 만드는 이 물컹거리는 언어들에도 그늘은 있죠. 어둠의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면, 세상 모든 그늘은 내 발밑으로 수렴되지요 내 발바닥에서 발산되는 어둔 햇살들.

 

다음과 같은 고백에서 결코 무뎌디지 않으려는 시인의 시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결의를 놓치면 흩어져버리는 게 마음이지요 좋은 게 좋다고 느끼는 순간, 타락의 수챗구멍에 처박히고 말죠. 모나게 살자! 다짐해도 세상에 모서리가 가장 부드러운 곳이라서 금세 어쭈구리가 되지요. 하지만 냉기만으로는 안 되죠. 서리 매운 새벽의 차고 맑은 모래를 감싸는 샘물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솟죠.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느 나무에 붙은 커다란 흠집인가? 어느 하늘의 샘 줄기에서 떨어져 나온 잔모래인가? 내 시가 내 그림자와 그늘의 테두리 안에서 잔물결로 번져나가길 바라죠.

 

모나게 살자

샘이 솟는 곳

차고 맑은 모래처럼

 

모서리마다

빛나는 작은 칼날

찬물로 세수를 하며

 

서리 매운 새벽

샘이 솟는 곳

차고 맑은 모래처럼

 

      <나에게 쓰는 편지> 전문

 

작가의 글에는 작가의 소망대로  충청도 사투리처럼 '능청과 해학이 의뭉하게 넘실거리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작고 평범한 것들을 '물끄러미' 관조하며 느끼는 따스함과 서늘함의 통찰이 있고, 그 속에서 작은 우주를 발견하는 시인의 날카로움과 동양철학적 깊이가 있다.

<시인의 서랍>엔 무엇이 들어 있나 대강이나마 살펴 보았으니 이젠 같이 산 시집, <정말>과 <의자>도 빨리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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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가지 행동 - 김형경 심리훈습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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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엔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내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게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곤혹스러워졌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불안의 감정이 불쑥불쑥 치솟고 늘 내마음은 화가 나 있는 상태였으며, 그것은 큰 아이를 향해 퍼부어졌다. 별것도 아닌 일로  아이에게 자주 분노하고 화를 내곤 나선 난 무기력해지고 허탈했으며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해야 했다. 아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는 행동들을 되풀이하는 것. 그것은 참 괴로운 일이었다.

내가 왜 그러는지 처음엔 몰랐다. 그러다 40대가 되어 알게 되었다. 어린시절에 내가 받은 상처와 욕구 불만이 고스란히 내 맘 속에 불안과 분노로 쌓여 있고 부모님에 대한 분노를 아이에게 대신 투사하고 있다는 것을.

내 안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가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 분노를 나는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알고 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의 괴리 속에서 나는 늘 자책하고 또다시 되풀이되고 또 자책하고. 이렇게 내 마음에 휘둘리다간 나는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마저 엄습해왔다. 내 불안과 분노의 뿌리는 너무 깊은 것 같았고 그것을 내 머리는 의식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의 분노는 머리보다 언제나 빨리 제멋대로 솟구쳐 올랐다. 분노가 휩쓸고 간 자리는 황폐하고 쓸쓸했다. 내 마음은 시인과 촌장이라는 가수가 불렀던 가시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자리 없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릴 뺏고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외로운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아직도 나는 내 마음의 주인이 아닌 노예처럼 휘둘리며 살 때가 많다. 내 마음이 불편할 때 내 마음이 왜 그러는지 무엇때문인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음공부를 난 평생 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는 만큼 실천하진 못하지만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천지차이다. 모르면 영원히 그대로지만 적어도 알고 노력해 나가면 조금씩이나마 아주 더디게라고 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가지 행동>은 마음공부를 위해 읽은 책이다. 소설가에서 이제는 심리에세이 작가로 자리를 굳힌 듯 보이는 소설가 김형경의 전작 <사람풍경>, <천개의 공감>, <좋은 이별> 등이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춘 거라면 이 책은 '행동'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자기 변화 매뉴얼'이란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은 공감이 가고 어떤  부분에선 지나치게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하고 끼워맞추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작가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한 자세한 언급에는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작가의 소설 <새들도 제 이름을 불며 운다>는 소설만 읽었고 심리에세이는 이번이 처음인데, 작가의 전작 심리에세이 <사람풍경>, <천개의 공감>, <좋은 이별> 등을 먼저 읽었어야 맞았을 것 같다.

그러함에도 이 책은 나의 마음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충고, 탐색, 해석, 비판'이라는 나의 특성이기도 한 그것들로부터  좀 자유로워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인 '정신분석을 넘어서' 부분이 공감이 많이 갔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성과 속의 통합을 언급하며 영성, 영적인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도 엉터리긴 하지만 신앙이 있기에 이 부분에 공감이 더 간 것 같다. 알콜 중독자가 신의 자비가 없이는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분노 역시 신의 자비가없이는 제거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마음의 주인으로 서는 것도 인간의 지식과 지혜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느끼지만 그것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앞으로도 마음공부를 하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 마음의 주인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이 모든 우주를 아우르시는 거룩하신 분께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캄캄한 어둠,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시나무와 서늘하게 불고 있는 바람의 울음소리를 잠재워달라고 자비를 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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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며느리다] 아랫동서, 확 발라버릴 수도 없고!!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0-24 10:43 
    안녕하세요. 북드라망입니다. 오늘은 체해도 너~무 자주 체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녀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특별히 과식한 것도 없는데 명치 밑이 답답해지다가 속이 울렁거려요.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어지럼증까지 동반됩니다.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손발이 싸늘해집니다. 남편이 바늘로 손을 따 줘도 소용없어요. 물만 먹어도 토할 것 같고, 이젠 소화제까지 체합니다. 명절과 시어머니 생신이 1주일 간격으로 있는 이즈음..
 
 
 
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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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부가 팔렸다는 이 베스트셀러의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우선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인문고전을 읽고 필사하며 공부를 했던 저자의 열정이 놀랍고, 인문고전을 읽지 않던 독자들에게 인문고전 독서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인문고전에 관심을 넘어선 열풍을 몰고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좀 걱정이 된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제목부터가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제목이다. 자식을 0.1%의 리더로 키우고 싶은 교육열에 불타는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이 이 책을 보고 어떻게 행동할까?

저자가 계속 주장하는 것처럼 인문고전을 읽으면 뇌가 완전히 바껴서 천재가 된다는 그 말에만 꽂혀서 당장이라도 아이들에게 인문고전 독서 스터디를 조직할 것만 같다.  좀 지나친 표현이긴 하지만 저자의 말이 인문고전만 읽으면 무조건 뇌가 천재 뇌로 완전히 바뀐다며 인문고전 약을 파는 약장수의 목소리로 들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실제로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맘이 흥분되며 당장이라도 인문고전을 내 자식들에게 읽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솔직히 들었다.

저자의 말대로  인문고전 독서,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조금 부족하거나 평범한 뇌를 천재로 만들기 위해 인문고전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한다. 인문고전 독서를 한다고 해서 천재가 되는지(저자는 제대로 해야한다고 했고 인문고전 전문가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냥 하면 안된다)  안되는지 신빙성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리더가 되기 위해서 소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인문고전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불편하다.

인문고전 독서는 독서 영역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인문고전 독서만이 아니라 독서 자체는 독자에게 기쁨을 줌과 동시에 사유를 하게 해서 뇌를 자극하게 하니까 추측하건대 뇌가 좋아지긴 할 것이다.  그러나 뇌를 발전시키기 위해 독서를 해야 하나?

나에게 독서는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며, 기쁨을 주고 위안을 주는 인생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호품 같은 한 부분이다.  머리가 좋아지기 위해서도, 돈을 잘 벌기 위해서도, 리더가 되기 위해서도 독서를 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 초등학생 5-6학년을 대상으로 인문고전 논술 수업을 하는 팀이 만들어진다는 소릴 들었다. 학교에서도 인문고전을 읽힌다며 난리다. 인문고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으나 저자도 20살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힘들게 읽어낸 인문고전을 초등학교 5-6학년뿐이 안된 어린애들에게 읽길 강요하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독서는 꾸준히 읽다 보면 점점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쪽으로 확장되기 마련이다. 학생시절엔 너무 좋아하는 쪽만 읽지 않게 편식하지 않도록 되도록 다양하게 읽게 해주는 정도로만 지도해주면 충분하다고 본다.

리더로 만들기 위해 리딩을 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가뜩이나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인문고전 독서를 강조하며 또다른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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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도종환 지음, 이철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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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그리곤 하루만에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를 쓴 베스트셀러 시인으로만 알려진 도종환 선생님.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시는 자신의 삶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내 가슴도 젖어들었다.

난 선생님을 그냥 시 잘 쓰는 시인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의 시가 왜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젖게 할 수 있는지, 절망으로 눈물 흘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될 수 있는지 이 책을 읽고야 알게 되었다. 도종환, 그 자신 또한 인생이라는 길에서 모진 비바람, 눈보라 맞아가며 절망에 부딪혀 한없이 눈물 흘리고, 넘어져 또다시 일어나고, 또 눈물 흘리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삶이었고 그것이 그의 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생님은 울면서 시를 썼고 자신이 울면서 쓰지 않는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외로움에 사무친 삶을 살아야 했고, 가난 때문에 화가가 되고 싶었던 꿈은 접어야 했다. 결혼한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암에 걸려 세상을 뜨는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 전교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해직을 당하고 10여년을 교단 밖에서 온갖 모욕을 겪으며 철창에 갇히고 경찰들의 곤봉에 맞으며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10년 만에 겨우 복직이 되어 시골 중학교로 가서 교사로서 소임을 다하려 애쓰며 살고 있는 그에게 또다시 병마가 찾아들었다.

신은 그에게 어떻게 이렇게 가혹할 수 있을까 왜 그렇게 시인에게 절망을 주신 것일까?

 

 

강으로 오라 하셔서 강으로 나갔습니다.

처음엔 수천 개 햇살을 불러내어 찬란하게 하시더니

산그늘로 모조리 거두시고 바람이 가리키는

아무도 없는 강 끝으로 따라오라 하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숲으로 오라 하셔서 숲속으로 당신을 만나러 갔습니다

만나자 하시던 자리엔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를 대신 보내곤

몇 날 몇 밤을 붉은 나뭇잎과 함께 새우게 하시는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

상처와 고통을 더 먼저 주셨습니다 당신은

상처를 씻을 한 접시의 소금과 빈 갯벌 앞에 놓고

당신은 어둠 속에서 이 세상의 의미 없이 오는 고통은 없다고

그렇게 써놓고 말이 없으셨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지금 풀벌레 울음으로도 흔들리는 여린 촛불입니다

당신이 붙이신 불이라 온몸을 태우고 있으나

제 작은 영혼의 일만팔천 갑절 더 많은 어둠을 함께 보내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본문 231쪽 <당신은 누구십니까> 중에서

 

 

그러나 시인은 절망이라는 컴컴한 벽 앞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지 않았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내어 놓은 삶을 살았다. 그의 시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처럼 그도 순간 순간 흔들렸으리라. 그러나 그는 흔들리며 나약하게 눈물 흘리면서도 결코 변절하지 않았다. 엄마도 없는 두 남매를 부모님께 맡기고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으로 철창에 갇힌 신세가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가 찾아와 전교조 탈퇴서를 쓰면 풀어주겠노라는 말을 전하며 쓰지 않으면 의절을 하겠노라고 한다. 그때 그도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교조를 탈퇴하지 않았다. 경찰서 담에 이마를 대고 울고 계시는 어머니를 보았을 때 자식으로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어두워 오는 하늘을 봅니다

벽에 어린 내 그림자는 미동도 않습니다.

어두워 오는 하늘 먼 곳을 불안한 천둥소리가 질러갑니다.

장마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지금쯤 아이들은 울음을 그쳤을까

하루아침에 고아가 돼버린 내 아이들

며칠째 울먹였다던 학교의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

 

그러나 이 세상에 가장 버리기 힘든 게 마음이어서 가슴 아픕니다

명예는 버릴 수 있어도 못 버리는 게 마음이어 아픕니다.

목숨까지 버릴 수 있어도 못 버리는 게 마음이어 아픕니다.

평생 눈물밖에 드린 게 없는 어머님께

두 아이와 눈물 한 무더기들을 더 얹어드리고 돌아오면서도

버릴 수 없는 게 마음이어 아픕니다.

 

본문 167쪽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참교육을 위해 그 큰 고통 감내하고 10년 만에 시골학교 교사로 다시 복직해서 열정을 다해 가르치는 시인의 모습은 참 아름답게 보였다. 그런데 너무 몸과 마음을 혹사한 탓일까? 그에게 병마가 찾아오고 결국 교단을 떠나 산방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그는 더 깊어진 눈으로 자신과 자연을 응시하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게 된다.

 

이른 봄 내 곁에 와 피는

봄꽃만 축복이 아니다

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

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

뼈저리게 외롭고 가난하던 어린 날도

내 발을 붙들며 떨어지지 않던

스무 살 무렵을 진흙덩이 같던 절망도

생각해보니 축복이었다

그 절망 아니었으면 내 뼈가 튼튼하지 않았으리라

세상이 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

길바닥에 내팽개치고 굴속에 가둔 것도

생각해보니 영혼의 담금질이었다.

한 시대가 다 참혹하였거늘

거인 같은, 바위 같은 편견과 어리석음과 탐욕의

방파제에 맞서다 목숨을 잃은 이가 헤아릴 수 없거늘

이렇게 작게라도 물결치며 살아 있는 게

복 아니고 무엇이랴

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

내게 오는 건 통증조차도 축복이다

죽음도 통곡도 축복으로 바꾸며 오지 않았는가

이 봄 어이 매화꽃만 축복이랴

내게 오는 건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이다.

 

본문 320쪽 <축복>

 

 

시인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와 시를 읽으면서 지나간 한 시대를 되돌아보며 촉촉이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의원으로 시인이 국회의원이 된단다. 시인은 이제 건강이 회복되어 산방을 나오신 것일까? 도종환 시인과 정치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다. 앞으로도 시인의 삶은 이제껏 살아왔던 삶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더 좋은 세상을 위하여 노력하는 삶을 살아갈 시인이자 정치인이 될 거라고.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본문 208쪽 <담쟁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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