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 (キュア) - 할인행사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도구치 요리코 외 출연 / 엔터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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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DVD를 잃어버려 다시 보지 못했는데 최근 개봉했나 보네요. 구로사와 기요시의 다른 작품들, 카리스마, 강령, 회로, 절규와 함께 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납니다. 한때 유행하던 컬트영화의 범주에 속할 수 있는 스릴러입니다. 범죄물 형식의 공포영화로 본다면, 굉장히 조용하고 싱거운 영화일 수 있습니다. 예전에 느꼈던 전율이 다시 떠오릅니다. TV로 보는데 화질이 FHD(시리즈온, 웨이브, 티빙 등)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번에 4K 블루레이로 출시될 수도 있겠네요.

처음에 큐어가 뭔지 아무 생각없이 봤습니다. 말 그대로 큐어란 치유, 상대방의 말을 통해 최면에 걸리게 되고 무의적인 살인이 일어납니다. 1898년 히스테리 환자에 대한 의식 장면부터 마지막에 타카베 형사가 낡은 축음기에서 듣는 대사, 칼을 들어 치유하라까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죽음의 의식이 소리 없이 퍼져 갑니다. 이 치유는 소통을 통한 사회적 치유가 아니라 (컬트영화에서 흔히 보는) 사회를 파괴하는 악마적 치유입니다. 마치 소통 불능의 현대 사회를 은유하고 있는 듯합니다. 큐어는 일련의 공포 스릴러 중 절망의 전주곡에 해당하며 (초기의 B급 영화에도 불구하고) 야심찬 데뷔작처럼 느껴집니다. 이후 도쿄소나타와 더불어 대표작으로 꼽을 만합니다.

기요시 영화는 공포 장르로는 큐어부터 시작해서 강령, 회로, 절규까지 아우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공포영화와는 다르게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큐어나 회로에서는 종말론적 세계관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런 까닭에 큐어가 20년이 지나서야 극장에 걸릴 수 있었겠죠. 뒤이은 카리스마는 공포 장르는 아니지만 상당히 문명비판적 상징으로 가득해 예술적으로는 이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절규에서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유령이 창문으로 빠져나가 공중에서 사라지는 장면이 압권으로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킵니다. 나카타니 미키가 나온 로프트는 미스터리 공포 장르인데 완성도가 떨어져 아쉬운 작품입니다.

공포 장르에서 한껏 빛을 발한 후 드라마인 도쿄소나타에서 현대 일본사회의 모습을 잘 표현합니다. 실직한 중년 가장이 겪는 낯선 일상은 공포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입니다. 한자와 나오키와 기업 영화에서 비즈니스맨을 연기한 카가와 테루야키여서 더 설득력 있게 보입니다. 가장 사사키의 에피소드에서 오히려 현실이 더 공포스럽다는 걸 소름돋치게 표현합니다. 이를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2022년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은 형식적인 복지제도로는 어쩔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 당사자의 일상은 그 자체가 공포입니다. 국가가 스스로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입니다. 심지어 가습제 살균제 사건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아직도 국가와 가해자인 옥시, 애경 등 기업들, 어느 쪽으로부터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실정입니다. 현 정부가 주장하는 법과 원칙은 그들의 공포 앞에서 바람만도 못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특이하게 OST가 돋보이는데,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은 영화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합니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의 아기 탄생을 축하하는 파티처럼 조용히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피아노를 치는 켄지를 따듯하게 지켜봅니다. 이는 해체되어 가던 가족 관계가 다시 치유되고 복원됨을 의미합니다. 앞서 인간합격 같은 드라마를 선보인 바 있으나 이 작품에서 비로소 성공합니다.

기요시의 공포영화에서 인간과 유령은 일상 속에서 공존하는데, 양자가 만나는 순간 공포를 일으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안가로의 여행은 어느날 자살한 남편이 돌아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금오신화에나 나올 법한 애틋한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진행합니다. 남편은 아내 미츠키에게 짧은 여행으로나마 아무 말 없이 떠난 미안함을 보상하겠다는 겁니다. 미츠키는 해안가, 좋은 곳에서 기원문을 태우며 남편을 보내고 자신이 치유됨을 확인합니다. 이 치유의 여행은 큐어와 반대로 파괴된 인관 관계의 복원을 의미합니다. 멜로드라마답게 남녀의 애틋한 사랑은 음악으로 애틋함을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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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회 133호 - 2022.봄
비판사회학회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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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법치주의는 법가의 법치주의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권력의 크기에 비례해 사법정의의 칼을 피해 간다. 경찰국이 생겨서 그런 건지, 검찰이 그랬듯이 스스로 고개 숙이며 불송치한다. 국민대 논문 재심사 논란도 그렇다. 공정이니 법치주의니 세상을 도배하다가 못내 거짓말로 쉬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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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도시 - 격차가 거리를 침식한다
하시모토 겐지 지음, 김영진.정예지 옮김 / 킹콩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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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폭탄을 맞은 반지하는 도시 서울과 제도의 이중성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도쿄가 그러하듯 서울의 강남과 다른 지역은 천지차이고 서울과 지방도시도 그렇다.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가 그렇고 5급 공무원과 9급 공무원이 그렇다. 버블 경제가 서울을 쓰나미처럼 쓸고지나가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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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 중기의 호민관 - 공화 정치의 조정자 知의 회랑 26
김경현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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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소멸에 맞서 검찰과 법무부의 움직임은 필사적이다. 새 법과 반대로 직접수사를 확대하고 수사공백을 막겠다며 법률과 따로 노는 시행령을 만든다. 특히 정치인을 겨냥하여 사문난적의 칼을 휘두를 수 있다. 악다구니 권한쟁의심판으로 국민의 대의인 법률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겠다는 굳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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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격차 2 - 역사와 구조 다중격차 2
황규성.강병익 엮음 / 페이퍼로드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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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침수된 격차사회가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이 비인간적인 구조물의 제도적 발상에 분노를 느껴야 한다. 누군가 죽어야 비로소 그곳으로 가보고 병주고 약주듯이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한다. 한국의 정치와 행정은 물바다를 만나 반지하의 격차로 용솟음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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