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
김동춘 지음 / 사계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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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마따나 한국 사회에서 교육, 주거, 노동 문제가 가장 긴요하며 국가가 나서서 해결할 문제로 첩첩하다. 그런데 최근 국토부의 전세보증금 피해자 설명회는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도 응답하지도 않겠다는 듯이 보인다. 국토부가 보증금 회수 절차와 경매 절차를 설명한 자리에서 정작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 방안은 빈 손말고는 없었다. 피해자들을 두번 죽이는 건 국가가 조세 채권에 대한 우선권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사람도 폭발한다. 결국 경매가 진행돼도 피해자들에게 돌아오는 금액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근래 서울•수도권에서 전세사기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그나마 대비책이라던 전세보증보험도 한 사건의 경우 임대인이 사망하면서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다. 가입자도 보증금을 모두 받는 게 아닌데 하물며 미가입자는 어떻겠는가? 과연 전세보증보험이 궁극적인 피해 대책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의 전세보증보험은

1. 현재 3개의 보험 상품이 있으나, 주택금융공사의 경우 자사의 전세대출자에 한해서 보험 가입을 허용한다. 사실상 도시주택보증공사 포함 2개의 보험 상품밖에 없는 셈이다.
2. 보험 가입을 위한 절차나 조건이 각 회사마다 다르며 보험 가입이 상당히 까다롭다. 위험한 전세 물건은 사실상 가입이 안 된다고 보면 된다.
3. 보험 요율이 각 회사마다 다르며 가입 조건이나 보증 범위에 따라 요율이 올라간다. 물론 가입해도 전세보증금 전액이 보증되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보험료는 다달이 감당하기에 상당히 비싸게 느껴진다.

이를 모두 고려한 임차인은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포기할 것이다. 그래서 전세대출에 전세보증보험까지 가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본다. 현재로써는 대부분 월세를 선택하는 쪽으로 기울 것이다.

집을 사기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는 것도 문제지만, 전세 임차를 위해 대출을 받거나 보증보험을 드는 게 바람직할까? 무자본 갭투기의 빌라 매입은 필연적으로 전세 사기를 예고하고 있었다. 사후약방문식 대처로는 이런 악행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주거는 과도한 개발이익이나 시세차익에 기대는 사적 영역에서 자유방임주의를 거둬들여한다. 시의적절한 규제는 생명을 유지하는 면역 장치로써 반드시 필요하다. 이토록 허술한 전세 제도 하에서 현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국은 공공주택의 혜택을 받는 대상이 대체로 신혼부부나 청년, 저소득자, 노령자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장기간 (전 국민 대상의) 공공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한 싱가포르의 주택개발청과, 아직도 부동산 투기의 비명이 난무한 한국의 토지주택공사는 기막히게 각을 이룬다. 노량진의 원룸•고시원을 흉내 내듯이, 쪼개고 쪼갠 9평도 안 되는 주택에 아무리 행복을 갖다붙여봐야 과연 행복할까? 그것도 이 나라에선 아무나 줄설 수 없고 하늘만 보며 별 따야 한다. 다시 한번 국가에 기꺼이 묻는다. 국가의 조세 채권과, 건설사, 주택임대사업자, 은행의 안녕이 국민의 안전보다 더 중요할까?

* 4월 17일 인천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가 3번째로 생을 마감했다. 아마 대출금 상환에 허덕이다가 끝내 생의 절벽에 스스로 섰을지 모른다. 사실상 정부와 지자체의 피해 대책이 거의 없거나 제대로 먹히지 않는듯 보인다. 지역마다 다르겠으나 전세보증금이 1억 이상이 아닌데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최우선변제금 범위에 들어도 금액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실질적인 구제책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경매와 소송, 피해자에게는 생지옥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국가는 주택시장을 건설사, 부동산개발 및 임대사업자, 금융기관, 부동산 투기꾼의 안녕을 위해 맡겨서는 안 된다. 장기적으로 전 국민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개방하고 공공주택 중심의 공급 정책으로 옮겨가야 한다. 아무리 좋은 민영주택들이 시장에 쏟아져도 이미 대출 없이 집을 사기 어려운 탓이다. 생애주기에서 주택을 매입하거나 임차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 대출은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언제든 독酒가 될 수 있다. 최근 포르투갈의 치솟는 집값 상승은 남일이 아니다. 주택의 가격이 치솟는 것도 떨어지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기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공공주택 공급은 부동산 버블에 대한 위기관리 방법 중의 하나라고 본다. 대출로 떠받든 민영주택의 기울어진 운동장으로는 결코 주거안정을 이룰 수 없다. 안타깝게도 공공주택에 대한 정치인의 태도는 대체로 그들이 사는 지역이나 주택의 가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좀더 정확하게는 그들의 재산등록내역을 보면 분명해진다. 문재인 정부 장하성 전 정책실장의 강남 발언은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자유는 절대로 가진 자의 잔치이자 놀이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 전혀 고통에 응답하지 않던 정부가 두 달 새 청년 3 사람이 죽고 나니 조금씩 움직인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경매중단, 우선매입권, 공공매입, 전세보증금 채권매입 등 실질적인 대책을 왜 진작 꺼내놓지 않았을까? 이 사태가 서울 화곡동, 인천시 미추홀구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여당과 국토부의 특별법이 최종적으로 처리되는 걸 지켜봐야 한다. 피해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보상 후청구 안인 전세보증금 매입은 빠질 수 있다. 얼마 전 악성 미분양주택이던 강북 칸타빌 수유의 고가매입 논란을 보며 피해자들은 분노를 느꼈을지 모른다. 왜 정부는 국민의 안전은 안중에 없고 건설사의 도산을 걱정하며 이토록 챙기는 걸까? 피해자들은 대부분 2억 미만의 전세보증금을 날리는데다 대출금 상환으로 고통받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번 사태는 부동산개발 및 임대사업자들의 부도덕성에서 시작하여 느리고 둔한 법제도가 자유에 의해 마음껏 농락당하며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금융기관의 대출이 자유에 의해 무분별하게 독酒가 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임대사업자들이 대출과 세입자의 보증금을 가지고 2000년대 초반 규제완화를 등업은 투자은행들이 그랬듯이 멈출 줄 모르는 부동산 투자를 늘려나간다. 결국 독주를 마신 사람들은 대출상환과 생활고에 끊임없이 고통받게 된다. 정부와 국회는 독주로 희생된 사람들을 겨우 뒤처리하는 정도로 이번 일을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

*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심정에 공감한다고 말한다. 일단 깡통주택은 제외하고 전세사기 6가지 조건을 필히 만족하는 건만 추려 특별법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물론 피해자들이 추앙하는 전세보증금 채권매입은 빠져 있다. 겨우 고통에 응답한 것 같던 피해 대책은 여전히 고통에 공감하고 있지 못하다. 정부 대책을 긴 시간 기다리다가 오죽하면 전국에서 대책위원회를 꾸려 국회까지 찾아갔겠는가? 정부는 겉으로는 특별법으로 피해자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하나 지원 범위와 그 대상자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속셈이 보인다. 전세사기는 국민의 주거권에 대한 침해로 다른 사기사건과 평등하게 논할 바가 못 된다. 주거권은 국민의 안전과 긴밀히 묶여 있어 생명권과 더불어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피해자들은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적 재난을 대하는 공공서비스의 허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다.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이 아니라는 주장은 재난안전관리법의 정의를 열거적으로 해석할 정도로 고지식하다. 왜 법률상의 수많은 기타와 예외를 굳이 피해가며 사회적 재난이 아니라고 고집하는가? 결국 피해자들은 경매와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얻는 게 별로 없음을 이미 깨달았다. 긴 시간 해방일지를 쓰며 버틴 그들은 뒤늦은 특별법을 통해서라도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 이익 추앙하는 미국과 일본보다, 자기들 이익 추앙하는 건설사, 부동산개발 및 임대사업자, 금융기관, 부동산 투기꾼보다 쉽게 외면당한다. 고통에서 외면당하며 쉽게 해방될 것 같지 않다.

* 전세사기 사망자가 4번째로 늘어나자 정부가 무자본 갭투기의 깡통전세도 지원 대상에 포함시킨다고 한다. 이로써 자국민이 죽거나 상당한 정도의 질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쉽게 움직이지 않겠다는 걸로 오해할 수 있겠다. 물론 여야가 갑론을박을 지르며 모두가 기다리는 특별법의 진통은 진행 중이다. 가해자의 권익을 챙겨주다 피해자가 죽어가듯이 느리게 구르는 법제도의 무게에 얼마나 더 버텨야 할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기막힌 1심 재판도 지켜봤지만, 법률 제개정은 물론 흔히 체감하는 법제도의 집행 속도는 까무라칠 정도다. 재심 재판이 열리려면 10년을 훌쩍 넘어 강산이 여러 번 바뀌기도 한다. 일본군 위안부 배상 판결의 경우 정권이 바뀌고 피해자의 대다수가 사망한 이후에야 겨우 법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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