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비주류의 이의신청 - 영화감독 켄 로치, 다른 미래를 꿈꾸다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는 시장을 멀티플렉스로 꽉 채운 대기업이나 거대 외국 배급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격렬한 전장이다. 영화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류의 예술영화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거나 컴퓨터 그래픽의 탁월한 능력에 힘입어 폭력과 파괴의 질서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켄 로치는 인접한 정치와 여러 분야에 부단히 자극을 주며 사회적 사실주의의 길을 일관되게 걸어왔다. 그것은 스트라빈스키의 무용음악 봄의 제전이 20세기 초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상연되는 일만큼이나 놀라웠다.

팝콘과 콜라에 너무 배불러 있어선지 속이 거북하다. 넷플릭스의 꿀맛을 뿌리치고 다시 켄 로치의 영화를 꺼내 보기 시작했다. 근작 중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마비 직전의 노인으로 수당을 타기 위해 악전고투하며 고용센터를 향한다. 그러나 그를 맞이하는 공무원들은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수당을 타려면 앞으로 가시밭길을 예고한다. 여기서 켄 로치의 문제의식이 다른 영화들과 갈라진다. 켄 로치는 허구지만, 영국의 실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사회보장제도의 맹점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어디까지나 예술로서의 영화 문법과 드라마 규격을 잘 지키고 있다.

영화는 왜 실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법제도 같은 사회의 구성요소를 다루면 안 될까? 아마 한국은 박근혜 정부나 그 이후에도 있을 블랙리스트의 자유 때문일지 모른다. 왜 두 시간 넘게 봐도 이해가지 않는 형이상학적 예술영화의 영상미학에 목매야 하나? 어쩌면 칸 영화제 수상이나 영화작가로서의 명성을 쌓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영화는 투자한 제작비 그 이상을 뽑아내기 위해 시리즈 6회분을 영혼이 다 털리도록 봐야 하나? 영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투자배급사나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제작사, 연예기획사와 스타 배우들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렴풋이 보이는 300억 한강변 아파트보다 켄 로치라는 좀더 진지한 영화를 가까이서 보고 있을 뿐이다. 저자가 예시한 2020년 국민연금공단과 수원시를 대상으로 한 최인기 씨 국가손해배상소송에서 보듯이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1년 한국인 사망 원인 1위인 자살과 질병에 대해서 좀더 관심 깊게 들여다보는 것뿐이다. 영화나 예술은 각자도생의 길이 있겠지만 우리의 실질적인 삶에서 더 이상 멀어져서는 안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