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진짜 적은 '똑똑한 얌체들'!" 

"한국 사회의 진짜 적은 '똑똑한 얌체들'!"


[공작의 꼬리 경쟁]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또 다른 예들 

 

나 혼자 아이스크림을 시킬까 말까

어느 모임에서 여러 명이 회식을 갔다. 인원은 10명이고 회식 비용은 누가 무엇을 주문해서 먹었는지에 상관없이 전체 합계를 사람 수 대로 나누기로 했다. 즉 각자는 총액의 10분의 1을 부담하게 된다.

회식의 마지막 단계에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하자. 아이스크림 가격은 3000원이다. 회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각자 최대로 2000원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하자. 아이스크림 가격이 3000원이니, 만약 각자가 3000원을 지불해야 한다면 아무도 주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내가 주문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그에 대하여 내가 실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10분의 1인 300원이다. 그러니 주문을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나만 주문하고 모두들 주문하지 않는다면, 나는 300원만 내고 아이스크림을 먹게 되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모두들 나와 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 그리고 결국 각자 부담하는 최종 비용은 3000원이 되고 만다. 만약 각자 주문한 아이스크림에 대하여 각자가 지불해야 했다면 아무도 주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비용을 나누기로 했기 때문에 모두가 주문하고 모두가 피해를 보는 결과로 나타난다.

위의 이야기를 두 사람, A와 B로 한정하면 그 상황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과 같다. 아래에는 가능한 모든 경우들이 나열되어 있다.

1. A는 주문하고, B도 주문하는 경우: A와 B 모두 후식을 먹고, 각자 3000원씩 지불.
2. A는 주문하고, B는 주문하지 않는 경우: A는 후식을 먹고 1500원을 지불, B는 후식을 먹지 않고 1500원만 지불.
3. A는 주문하지 않고, B만 주문하는 경우: A는 후식을 먹지 않고 1500원만 지불, B는 후식을 먹고 1500원을 지불.
4. A는 주문하지 않고, B도 주문하지 않는 경우: A와 B 모두 후식을 먹지 않고 돈도 지불하지 않음.

A와 B는 과연 주문을 해야 할 것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A의 선택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A의 경우에는 2의 경우가 가장 바람직한 것이고, 그 다음이 4의 경우, 그 다음은 경우 1의 경우이다. 3의 경우는 A가 가장 싫어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니 만약 B가 주문을 한다면, 가능한 것은 1과 3의 경우인데, A는 주문함으로써 자신에게 더 바람직한 1의 경우를 결과로 얻게 된다. 그리고 만약 B가 주문을 하지 않는다면, 가능한 경우는 2와 4의 경우인데, A는 주문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더 바람직한 2의 경우를 결과로 얻게 된다. 그래서 A는 B가 어떤 선택을 하던지 간에 주문을 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B 역시 A의 선택에 관계없이 주문을 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한다. 결국 A와 B는 1의 경우를 선택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만약 둘 다 주문하지 않는다면 4의 경우가 되는데, A와 B 모두 4의 경우를 1의 경우보다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잠깐 생각을 한 번 해보자. 왜 둘 다 4의 경우를 1의 경우보다 좋아하면서, 결국에는 1의 경우를 초래하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까? 그리고 과연 이런 선택이 우리의 일상에서도 나타나게 될까? 인간이 이성적이라고 했는데 왜 이런 열등한 선택을 하는 것일까? 이러한 열등한 선택이 아주 드문 경우이길 바라지만, 사실 이런 경우는 아주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우리가 현재 당면한 많은 문제들이 이 딜레마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또 이 문제는 우리가 이성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많은 학자들이 연구해왔다. 어떤 학자는 거의 모든 연구를 이 문제를 탐구하는 데에 바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묘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 수대로 비용을 나누는 회식의 예와 같은 문제가 보편적이며 또 중요한 여러 사회문제들이 그와 근본적으로 같은 성격의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더 들겠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한국에서 우리가 당면한 중요한 문제인 교육 문제가 바로 그러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도록 하자.

새치기

운전을 할 때나 버스를 기다릴 때, 또는 극장표를 살 때 새치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경우에는 혼잡한 교차로에서 서로 먼저 가려고 차를 들이밀어 결국 아무도 차를 빼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극장 같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불이 나거나 하면 서로 먼저 도망 나오려고 해서 오히려 출구가 막히고 화재보다는 밀리거나 남에게 밟혀 더 많은 사람이 다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때, 살짝 새치기해서 일을 빨리 마치고 나머지 시간을 즐겁게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이 다 새치기를 한다면, 더더욱 새치기를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면 모두가 적당한 시간에 끝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모두가 새치기를 한다면 거리의 교통이 막힌다던가, 버스를 타는 데 혼잡해서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던가 해서 모두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역시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상황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새치기가 이성적인 행위이다. 자신의 이기적 이해를 극대화하는 행위인 것이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이기적 행위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사회의 선으로 연결된다는 논리와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투표는 시간 낭비?

많은 사람들이 선거 때 투표를 포기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투표를 포기하는 행위가 개인의 이기적 이해를 극대화 하는 똑똑한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투표를 하기 위해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그 시간에 여가를 활용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각 개인들은 투표를 하나마나 결과는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투표를 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없게 된다.

그러나 투표를 포기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각 개인들에게 명확히 나타난다. 예를 들면 투표하러 가는 대신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든가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갖는 행위들은 개인의 이해를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자신의 이해를 극대화하는 이성적 개인들에게 투표는 결국 시간 낭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 구성원이 개인의 이기적 이해를 추구하는 이성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일 경우에 과연 그 사회는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 우선 많은 사람들의 의사가 사회의 의사 결정에 반영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의 의사가 골고루 반영되기보다는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이해가 강조되어 민주주의라는 말은 그저 과정만을 얘기하는 것일 뿐이고, 결과적으로는 그 취지와 상반될 수 있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투표나 정치 참여를 포기함으로써 얻는 직접적 이익과 그러한 포기 행위가 야기하는 정상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하는 손해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 다수의 복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들에 대한 영향력의 포기가 한 개인의 한 표의 포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각 개인이 감지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이다.

위의 아이스크림 예에서 마찬가지로, 투표를 포기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아이스크림을 먹음으로써 얻는 이익과 마찬가지로 개인화되어 계산되지만, 투표 포기로 인하여 사회 전체에 미치는 손해는 개인의 이익 계산에서 제외된다.

팁을 꼭 주어야 하나?

필자는 어느 한 경제학자와 캐나다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미국 또는 캐나다의 사람들의 팁을 주는 습관이 화재에 올랐다. 그 경제학자의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팁을 남기는 행위에 대하여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것이었다. 보통 팁은 약 음식 값의 15퍼센트(%) 정도를 주는데, 꼭 줘야 하는 것은 아니고 또 대우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서 더 주기도 하고 덜 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팁을 남기는 것이 보통이며, 드문 경우이지만 종업원이 무례했다거나 하면 팁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는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이성적(이기적) 인간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 호텔에 다시 올 것이 아니고, 다시 온다하더라도 그 식당에서 그 종업원을 다시 대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에서, 그에게 팁을 남기는 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는 낭비이며, 비이성적 행위라는 것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는 팁 문화가 서양에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발달되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팁 문화가 발달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 모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우월 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힘들며, 여기서는 그러한 비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통 팁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식당을 비교해 보면, 있는 곳의 종업원이 손님에 대한 대우가 그렇지 않은 곳보다 더 좋다는 것이다. 만약 다른 모든 사람들이 팁을 남기는 곳에서 나 한사람만 팁을 남기지 않는다면, 나는 좋은 대우를 받고 돈도 절약하게 된다. 그 경제학자의 말대로 이는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나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이성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이성적으로 행위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즉 각자는 종업원의 대우에 관계없이 팁을 주지 않는 이성적 행위를 함으로써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하자. 그러면 손님을 잘 대우하든 하지 않든 팁을 받지 못하게 되니, 종업원의 손님에 대한 대접도 역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사회가 갖는 팁 문화가 사라질 것이다. 물론 종업원들의 팁에 의존하는 수입 감소의 일부는 식당에서 부담해야 할 것이다.

식당의 부담 증가는 음식 값의 증가로 연결되고, 결국 손님은 팁을 지불하지 않는 대신 일정 부분의 음식비 지불의 증가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각 개개인의 이성적 행위로 인한 팁 문화의 파괴는 결국 종업원의 서비스 악화와 음식비의 인상을 초래하여, 사회 구성원에게 팁 문화 파괴 이전보다 훨씬 열등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ethisphere.com

똑똑한 얌체들

어떤 한 사회가 위의 몇 가지 예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상상해보자.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개인 이기주의에 기초한 경쟁 위주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자신만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성적 행위를 최선의 가치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사회, 그리고 각 개인들의 똑똑한 행위들은 자신들만의 이익을 고려하고 사회 전체가 잃는 손해는 어느 누구도 염두에 두지 않는 그런 사회를 상상해 보자.

위의 예에서 보듯이 종종 사회 전체가 잃는 손해가 너무 커서 각 개인들이 얻는 이익을 능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회가 잃는 손해는 결국은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부담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회적 손해는 명확히 보이지 않고 또는 개인의 이익에 직접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무시되곤 한다.

이성적 개인들의 행위들이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사회에 이익이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부터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성적 행위를 장려해야 할 것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보았듯이 많은 경우에 개인들의 각자의 이성적 행위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에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너무 어렵다. 핵심은 각 개인들의 이성적 행위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즉 문제가 이성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개인의 이기적 동기에 근거한 행위를 장려하기보다는 그와 반대로 사회 전체의 이해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이 근자에 경험한 경제의 논리 확산에 의한 이성적 행위의 강조, 그리고 경쟁의 강화로 과연 더 많을 것을 얻었을까? 과연 한국에도 경쟁의 강화와 함께 시장을 통한 개인들의 이기적 이해의 추구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구성원들을 더 행복하게 했을까?

현재 한국 사회를 둘러보면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이제 한국은 경쟁이 심화된 상황 하에서 개개인들의 이성적 행위들로부터 집단적으로 열등한 결과가 초래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서상철 캐나다 리즈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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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4색 대담회' ①]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너나 사!" 홀대받는 '사회과학', 왜 필요한가?

김민웅 : (한국에서) 1970~80년대는 사회과학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엔 '인문학이 대세'다 뭐다, 다들 입만 열면 인문학 얘기를 하고, 사회과학은 창백해진 느낌을 받는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은 그런 상황에서 나온 '사회과학서'다. 무엇을 담고 싶었나?

우석훈 : 1980년대엔 사회과학 책이 100만부씩 팔린다는 얘기도 있었다. 물론 금서가 많아 제대로 집계는 안 됐지만, 사회과학 책 내서 집이나 건물을 산 출판사도 있을 정도다. 물론 과거 얘기고, 지금은 내가 이 책을 쓴다고 했더니 하더라도 큰 출판사에서 하라고 주변에서 말리는 형국이었다. 1000권도 안 팔릴 거라고.

지난 10년간 잘 팔린 책들을 보면 "너의 미래를 위해 지금 욕망을 참아라!"라는 내용이 많았다. <마시멜로 이야기> 같은 게 대표적이다. 지금 달콤한 유혹을 견뎌내라는 얘기다. 거기서 "나 지금 놀고 싶은데? 왜 참아야 해?" 이런 반작용이 생긴다. 참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좀 하고 싶었다. 한편으론 우리가 미치지 않으려면 사회과학을 한번쯤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 책은 그 사이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처음 제목은 <사회과학 르네상스>였는데 거기서 너와 나, 우리 이런 단어를 강조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너와 나의 사회과학'이 맞는데, 이 제목은 줄이면 "너나 사!"가 된다고 마케팅 팀이 반대해서 '너'와 '나'의 위치를 바꾸었다. (웃음)

김민웅 : 사회과학이 인기가 없을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이 책을 냈다. 적어도 이건 건지겠다 싶은 게 있었을 법한데 무엇이었나?

우석훈 : 이게 실제론 대학생들과 함께 하다가 시작된 일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들 모아 놓고 글을 쓰게 했더니 기초가 너무 없더라. 예전에는 학부 1, 2학년생들이 내용도 잘 모르면서 잘난 척 하려고 책을 끼고 다니기라도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다. '목적론'이란 단어를 썼더니 못 알아듣는 친구도 있었다. 속으로 '네가 사람이냐?' 싶더라. (웃음) 그래서 이 정도는 알자는 차원에서 입문용이 될 만한 책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이니 선진화니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진짜 선진국 되려면 사회과학적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구성원 행위의 목적이 '돈'으로는 50%도 설명 안 된다. "영화 왜 만들어?"라고 물으면 "돈 벌려고"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돈으로 90% 이상 설명된다. 설명 기제가 경영학, 경제학뿐이다. 대통령이 토건 사업 하면서 "돈 벌어다 주니까"라고 설득하지 않나. '이렇게 해야 잘 팔려'가 만능이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그래서 한국에서 잘 설명이 안 되는 분들이다. (웃음) 그런데 이런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지는 사회여야지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김민웅 : 책은 굉장히 읽기 쉽게 쓰였다. 우리말로 사회과학적 사유를 해보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느껴졌다. 쉽게 쓰는 게 가장 어려울 텐데….


▲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우석훈 : 안 쓰는 것보다야 다 어렵다. (웃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말씀하신 대로 개념들을 우리말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책엔 철학 개념도 상당히 나오는데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 정말 많았다. 나도 석·박사 학위 받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쓰는 단어의 절반이 불어, 반의 반은 영어, 나머지는 독일어를 쓰는 이상한 언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장하준 교수가 한국어로 쓴 글을 보면서 우리말로 참 쉽게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되게 이상하게 살았구나 싶었다. (웃음)

김민웅 : 더 많은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 같다.

우석훈 : 원래 타깃 층은 대학교 1, 2학년생 혹은 인문사회계열 비전공인 대학원 1, 2학기생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에 주부들이 추가됐다. 책을 만들면서 공개 강좌를 했었는데 처음엔 (인원이) 대학생, 주부 반반이었으나 끝날 때 보니 주부들이 본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 생각한 건데 한국 주부가 전 세계 최고 학력이 아닐까 싶더라.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다보니 주부들만 모여도 최고 학력인 거다. 이런 분들의 힘에 대해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의도 주부들을 위한 습작 모임으로 바뀌어갔다.

어쨌든 이 책을 읽고 조금 더 공부하고 싶은 분들, 특히 대학생들은 언급된 책을 꼭 원전으로 보길 바란다. <국부론> 같은 책들이 몇 쪽으로 압축돼 있는데, 원래는 전화번호부 두 권 정도 분량이다. 그걸 온전한 원본으로 보면 엄청나게 다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사회과학 백과사전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어떤 주제로 출발하든 그에 맞는 적절한 논의가 나올 수 있도록 돕는 백과사전. 단 제대로 그렇게 만들려면 목침 두께는 되어야 하는데,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정도의 두께로 맞추느라 좀 아쉽기도 했다. (웃음)

이지아와 신정아로 보는 우리 사회?

김민웅 : 이제부터는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됐던 이슈를 짚어보면서, 그 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엔 가수 서태지와 탤런트 이지아 얘기로 참 시끄러웠다. 그렇게 시끄러워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석훈 : 내가 10대, 20대, 40대에 대해선 책으로 쓰거나 책 속에서 얘기했지만, 유독 30대에 대한 얘기만 못 했다. 30대는 분석하기 어렵다. 서태지 얘기만 하면 그들은 이성을 잃는다. (웃음) 그의 캐릭터, 설명하기 어려운 카리스마, 그리고 대부분 30대인 팬들과의 독특한 관계 때문이다. 그런 아이콘이 사회적인 소모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불쌍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이건 그들이 선택한 삶이다. 사랑하고 헤어지는 데 있어 서로에게 피해가 아닌 관계가 과연 있을까. 서태지와 이지아 관계 속에선 상대적으로 평범했던 이지아가 피해를 봤겠지만, 이 일이 사회적으로 부각되면서 서태지 역시 피해자가 됐다고 생각한다.

김민웅 : 그보다 앞서 논란이 되었던 신정아 얘기를 해보자. 신정아의 <4001>은 어떻게 봐야 하나? 나는 두 가지가 흥미롭다. 하나는 소위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이 얘기를 불쾌해하고 피한다는 점이고 하나는 신정아가 낸 책의 주된 독자층의 변화다. 처음에는 40~50대 남성들이 많이 사가는 것 같더니 2주 뒤부턴 20~30대 여성들의 구매가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우석훈 : (신정아의 고향인) 경북 청송군에 가 봤는데, 그 시골 소녀가 서울에 올라와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더라. 아직 <4001>을 제대로 보진 않았다. 조용해지면 분석하려고 미뤄뒀다. 사실 그 사건과 미술계, 정치계에 대한 책을 한 권 쓰려고 한다. 이 사건이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껍질을 뒤집어 보면 현실이 보인다.

먼저 40~50대 남성들이 성적으로 얼마나 문란한가를 볼 수 있다.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 중에 애인이 없거나 바람을 피우지 않는 사람이 10%도 안 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10명 중 9명은 <4001>의 등장인물이 될 수도 있었던 거다. 또 하나는 명품이라는 욕망이다. 신정아의 이야기와 그걸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나도 저렇게 '톱클래스'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판타지가 존재한다.

김민웅 : 2007년 학력 위조 사건을 돌이켜 보면 언론은 신정아를 두 가지 차원에서 상품으로 팔았다. 하나는 선정성, 하나는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2011년에는 좀 다르다. 선정성으로 파는 건 변함없지만 다른 하나의 패턴이 바뀌었다. "신정아의 얘기가 허접하다"는 주장이다.


▲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과연 어떨지 궁금해 하면서 이 책을 봤더니 언론이 떠드는 것과 차이가 크더라. 신정아는 아주 강렬하게, 자신의 큐레이터로서의 커리어를 주장하고 변호한다. 그러니 20~30대 여성들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다. 아까 주된 독자층의 변화 얘기를 한 건 이 때문이다. 젊은 여성들은 남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성(性)이라는 위기와 벽에 직면한다. 그 숲을 헤치고 위로 올라가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본인도 성을 이용한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도록 만든 사회는 누구의 사회인가?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그녀가 책 후반부에서 한국의 언론과 검찰을 맹렬히 공격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까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쉬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들은 모두 엘리트이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이 이 책을 읽으면 뜨끔할 것이다. 그래서 '허접하다'는 수사로 치부하려는 게 아닐까.

말하는 사람의 과거 행적에 비춰 보았을 때 신뢰도엔 문제가 있지만 그가 하는 말이 의미가 있을 때 사람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발화자는 불편하지만 지르는 내용은 부정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폭로자'들은 원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신정아라는 여인은 과거에도 지금도 자신이 한 짓에 비해 과도하게 짓밟히고 있다는 느낌이다.

"5만 명쯤 모여 자유롭게 얘기했으면 좋겠다"

김민웅 : 다른 얘기를 또 해 보자. 작년엔 사람들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다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자본주의의 폭로를 접했다. 이기적으로 욕망을 추구하면 성공이 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그럼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게 뭐지? 스스로 생각한다는 건 뭐지?

여기서 선거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지방선거와 최근 4·27 재·보궐 선거 결과를 보면 유권자들 사이에서 '한국 사회, 이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강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형태의 모델을 갈구하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중요할 텐데, 어떻게 전망하는가?

우석훈 : 개인적으로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집권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영남이 없으면 한나라당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번에 분당 선거 결과가 말해주었다. 강남 3구도 어렵지 않을까. 게다가 강경 대북 정책으로 인해 북한 장사정포 사정거리에 포함되는 수도권 북쪽 지역도 어려울 것 같다.

한나라당 재집권에 부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너무 웃기다는 것이다. 해방 이래 정치인 가운데 웃긴 걸로 치면, 건수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이기기 어렵다. 하지만 안상수 전 대표는 '뎁스'(depth·심도)로 YS를 넘었다. (웃음) 보온병, 정말 너무 웃겼다. 중독성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 6개월은 조선 왕조 500년"이란 말도 있듯 앞으로 판도가 수십 번은 바뀔 거라서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전혀 모르겠다. 또한, 정권 바뀌는 것과 별개로 정치가 좋아질까, 이것도 잘 모르겠다. 작년 지방선거 승리 후 민주당 후보들이 토건 개발 쪽으로 몸을 돌리지 않았나. 한-EU FTA를 한나라당과 함께 통과시키고. 너무한다 싶다. 정권 교체도 정권 교체지만 어떻게 해야 세상이 좋아질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김민웅 : 이 자리에 함께 한 강신주 박사는 현 대의제 자체에 회의를 표했다. 직접민주주의 주체가 강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어떻게 생각하나?

우석훈 :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먼저, 대통령제를 너무 오랫동안 지지했다. 한 정치학자는 한국인은 한 번에 모든 걸 결정한다는 걸 좋아한다면서 복잡한 의원내각제는 싫어할 거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2008년 촛불 집회를 보면서 '의원내각제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이 반대하면 총리(행정수반)를 물러나게 할 수 있다. 이게 오히려 훨씬 속 시원할 것 같다. 의원내각제가 직접 민주주의에 더 탄력성이 좋다.

두 번째로 만민공동회 같은 걸 하면 좋겠다. 온라인 모임? 아니다. 직접 봐야 맛이 난다. 잠실 체육관 같은 데서 5만 명이 모여 마이크 돌려가면서 조금씩 의논해 의결한다. 여기선 결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발언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여당도 그렇지만 야당도, 사람들 얘기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진짜 많은 개인들이 모여서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다. 그런 장이 필요하다.


ⓒ프레시안(최형락)


대담은 예정 시간을 지나 계속됐다. 10시를 넘어가는 늦은 시간에도 자리를 뜨는 청중은 겨우 서너 명 눈에 띌 정도였다. 마지막은 대담자들이 무대에서 내려가, 청중을 향해 직접 마이크를 건네는 순서였다.

시간상 우석훈 소장이 꿈꾼다는 '만민공동회'처럼 모든 사람에게 마이크가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저자와 독자가 눈을 맞추는 수평적인 시간이 이어졌다. 그들은 우석훈에게 무엇을 듣고 싶었나?

청중 : 이제 30대에 접어드는 나이다. 그런데 아직 친구들 중엔 대학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하는 애들이 많다. 잘 나가는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우석훈 : 공부하는 사람 말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하나 충고하겠다. 그렇게 공부한다고 그 회사 들어가긴 쉽지 않을 거다. 영어를 많이 본다고 해서 영어에 열심히 매달린다고 치자. 갑자기 '한국어 중시'로 바뀌면 했던 공부 다 엎어야 한다. 회사에서도 요즘은 창의적인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스펙' 맞추는 행위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틀어박혀 입사 준비만 하는 건)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개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은 없지만, 그냥 뭔가를 일주일쯤 해봐서 기분이 좋고 가슴이 뜨거워진다면 계속 하라. 반대로 자꾸 아프고 죽을 것 같으면 그만 둬라. 재미없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재미없는 일 참고 하라는 놈이 악마다.

스펙을 쌓으면서 누군가를 이기는 방법보다 다 같이 살아남기 위한 제도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사실 기본소득 100만원 씩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삼성 이런 거 안 무서워할 것 아닌가.


 



/안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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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시각이 매우 잘 드러난 글이다. 공감이 가는 측면도 있지만 포스트 디지털 시대라는 말에서는 뭔가 .......  

 

[야! 한국사회] 민주당 이후를 생각함 / 진중권 

 

재보선은 예상대로 민주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총선은 물론이고, 대선 가도에도 민주당에는 파란불이 들어왔다. 단일화만 된다면 “박근혜 대세론도 꺾을 수 있다”(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는 자신감도 생겼다. ‘단결하여 한나라당과 맞서 달라’는 게 이른바 ‘국민의 명령’이 되어버렸기에,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도 야권연대는 이루어질 것이다. 확실한 것은, 민주당이 잘해서 이긴 선거가 아니라는 점이다.

승리의 요인은 이명박 정권의 난폭운전이다. 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은, 일단 급한 대로 술 취한 운전자부터 갈아치우고 다음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 역시 가벼이 볼 수 없는 과제이기는 하나, 다음 운전자라고 전임자와 특별히 다른 내비게이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설사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아도, 그다음에는 또다시 한나라당이 돌아올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의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민주당이 잘못하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잖은가. 물론 그 대안은 진보정당일 것이나, 대중은 진보정당이 신뢰할 만한 대안이라 믿지 않는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대중이 어리석어서 그렇다’는 것이리라. 이 편리한 가설은, ‘따라서 선진적 의식을 가진 이들이 진보의 정체성을 가지고 대중을 계몽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과연 그럴까? 물론 대중이 ‘몰라서’ 진보를 지지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대중이 진보의 마인드를 ‘안다면’, 그나마 지금 하는 그 얼마 안 되는 지지도 철회할지 모른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호하며 ‘미 제국주의’ 운운하는 40년대 진보(NL)나, 이 와중에도 ‘사회주의 학습투쟁으로 위기를 돌파하자’고 외치는 80년대 진보(PD)나, 제정신 갖고 지지해주기는 힘들다.

지금 행해지는 진보통합의 논의는 (1)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통해 의석수를 좀 늘리거나, (2) 민중의 등대라는 같지도 않은 착각 속에 자신을 자폐시킨 채 개척교회 세우듯 사회주의 목회활동을 하거나, (3) 40년대와 80년대 진보를 다시 합쳐 10년 전에 했던 것을 재방송하자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거기에 빠져 있는 것은, ‘포스트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진보정당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대중은 몰라서가 아니라, 현재의 진보가 어떤 면에선 한나라당 뺨칠 정도로 수구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통합의 논의가 전제해야 할 것은, 대중에게 그들이 원하는 진보와 정당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다. 하다못해 떡볶이집을 해도 시장조사부터 먼저 하거늘, 집권을 목적으로 한 정당을 만들며 대중의 욕망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대중은 ‘지지할 만한’ 진보와 정당을 원한다. 그렇다면 대중이 지지할 만한 형태로 진보와 정당을 리디자인할 일이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영원불변한 진보의 이념이 들어 있다. 따라서 남은 것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대중의 무지를 계몽하거나, 자본주의나 제국주의의 유혹에 빠진 대중의 병든 영혼을 회개시키는 것뿐.

앞을 내다보는 것을 ‘전망’(pro-spect)이라 한다. 또 앞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것을 ‘기획’(pro-ject)이라 한다. 전망이라는 눈과 기획이라는 손이 없는 진보는 당연히 과거로 눈을 돌려(retro-spect) 자신을 뒤로 던질(retro-ject) 수밖에 없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향수, 1930년대 민족해방운동의 추억으로 먹고사는 것도 진보라 할 수 있을까? 정작 여기야말로 계몽과 회개가 이루어져야 할 지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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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일이 산적하다. 

그냥 쉬엄쉬엄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한겨레21에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토록 짜릿한 비밀 연애 [2011.04.08 제855호]  

 

비밀은 줄다리기다. 감추려는 쪽의 힘이 크거나, 감추려는 쪽과 밝히려는 쪽의 힘이 팽팽하면 비밀은 비밀로 남는다. 그러나 밝히려는 쪽의 힘이 커지면 숨기려는 쪽은 앞으로 넘어지기 마련이고, 숨기려는 쪽이 줄을 놓아버리면 밝히려는 쪽은 맥없이 무너지게 된다. 비밀의 줄을 잡고 있는 손은 잠시라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숨기려는 쪽의 손은 더욱 그렇다. 그 비밀이 사랑일 경우, 줄다리기는 더 흥미진진해진다.


“내일이 기다려진다”


30대 직장인 김희진(가명)씨는 2년이 다 되도록 같은 회사의 동료와 열애 중이다. 같은 부서는 아니었지만 업무상 만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서로 감정을 키워간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처음 1년 동안 둘은 아무도 모르게 만남을 이어갔다. 회사 휴게실이나 계단에서 회사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잠깐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나 몇 달 전부터 둘의 관계를 의심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남자친구가 속한 부서의 소식을 김씨가 잘 알고 있다는 점과 회사에서 간혹 부딪히는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주변 동료들은 둘에게 집요하게 물어보기 시작했고, 결국 몇몇 친한 동료들에게만 연애 사실을 털어놓았다. 결혼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결혼 계획은 아직 없는 시점에 서서히 소문이 퍼지자 둘은 고민에 빠졌다. 비밀이라서 더 짜릿했던 연애 감정은 이제 종종 불안감으로 엄습한다.


연애 사실을 밝힐 수 없는 대표적인 비밀 연애는 사내 연애다. 사내 연애는 회사마다 차고 넘치는 반면, 밝혀지는 경우는 드물다. 김희진씨는 “나도 사내 연애를 하고 있지만 주변에 내가 알고 있는 사내 연애만 세 커플이 넘는다”고 말한다.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이별을 맞은 커플까지 고려하면 생각보다 많은 수의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연애 중이라는 얘기다. 이제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20대 중·후반의 남녀부터 회사 생활이 슬슬 지루해지는 30대 초·중반의 남녀에게 사내 연애는 자연스럽고도 보편적인 연애 방식이다. 회사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인에게 옆자리나 옆 부서의 동료가 자연스럽게 이성으로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주인공 동진(감우성)은 이렇게 말했다.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1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 내일을 기다려지게 하는 것이 ‘어른들의 연애’인데, 내일을 기다려지게 하는 사람이 회사에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설레겠는가. 연애칼럼니스트인 ‘라이너스’ 김종오씨는 “아침 출근길 발걸음이 경쾌해지고 즐거워지기 마련”이라며 “원할 때 볼 수 있고, 회사에서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한다.


‘스릴 만점의 데이트’는 사내 연애를 하는 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재미다. 아무도 모르게 오가는 눈빛과 미소, 서로의 책상에 몰래 밀어넣는 음료수나 과자, 메신저나 휴대전화로 오가는 둘만의 대화, 회사 구석구석에서 잠시 만나 살짝 손을 잡고 지나치는 긴장감 등이 그렇다. 사내 연애를 포함해 주변인들 몰래 비밀 연애를 하는 커플의 감정이 더 깊어지는 건 두 사람만의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두 사람만이 통하는 언어나 표현, 신호 등은 둘 사이에서 자극적으로 작용해 애정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고, 심리적 거리를 단번에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비밀 연애는 이토록 짜릿하다.


사내 연애를 밝힐 수 없는 이유


짜릿함이 전부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비밀은 자발적 의지보다 주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내 연애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라는 일터에서 개인감정이 오가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 요소가 많다. 사내 연애 경험이 있는 이들은 대부분 “주변 동료들과의 관계”를 비밀의 첫째 이유로 꼽는다.

회사에서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만 직급은 낮은 남자 직원과 사귀는 한영선(가명)씨는 “남자친구가 부하 직원이다 보니 둘의 관계가 알려지면 주변인들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며 “내 눈치를 보느라 직원들이 남자친구에게 해야 할 말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것 같다”고 설명한다. 한씨는 같은 사무실에서 남자 동기가 후배인 여직원과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이미 목격했다. 동료 커플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회사에 연애하러 오는 거야?” 식의 비아냥이나 둘의 사적인 부분에 관한 도가 넘은 질문이 오갔다. 회사 안에서 오가는 ‘뒷담화’식의 이야기도 사내 연애 커플에게는 쉽지 않은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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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연애는 남자 직원보다 여자 직원이 공개를 꺼린다.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손해를 보는 건 여자 쪽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같은 회사를 다니던 동료와 회사를 그만두고 연애를 시작해 결혼한 이미진(가명)씨는 “같은 회사를 다녔던 상황이라면 절대 연애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회사 상사들은 이미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데, 같은 회사 직원과 연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나는 그들에게 직원도 여직원도 아닌 그냥 여자로 보일 것이 뻔하다”고 단언한다. “헤어지고 난 다음의 후폭풍이 두렵다”는 점도 사내 연애가 숨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역시 여직원에게 좀더 가혹하다. 사내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면 둘의 관계도 어색해지지만, 그 연애가 ‘과거’가 되어 ‘미래’의 발목을 잡는다.

사내 연애에 관한 회사의 눈총은 예전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해 12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인사 담당자 750여 명을 대상으로 사내 연애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결과 61%가 찬성한다고 대답했다. 찬성 이유로는 ‘직원들의 사생활 존중’ ‘직장 생활의 활력소’ ‘가족적인 분위기’ 등을 꼽았다. 반면에 반대하는 39%의 기업은 ‘사적인 문제가 업무에 이어진다’ ‘헤어진 뒤 이직률이 높다’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 ‘헤어지면 동료들까지 어색해진다’ 등을 이유로 들었다. 사내 연애에 반대하는 기업 중 15.4%는 사내 연애 커플에게 인사발령 등의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밀 연애 자체가 갈등 요소가 되기도


비밀 연애는 사내 연애뿐 아니라 친구의 오빠나 여동생 등 지인의 가족과 연애를 하거나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의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경우, 동호회 같은 모임에서 상대를 만나는 경우에 발생한다. 비밀 연애의 짜릿함이 지나고 나면 비밀 연애 자체가 연인 사이의 갈등 요소가 되기도 한다. 비밀의 무게 때문이다. 소설가 강지영씨는 “계속 주변인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고, 데이트는 남들의 눈을 피해 바퀴벌레처럼 숨어들게 되면서 연애 자체가 밝아지기 힘들다”고 말한다.

연애 사실을 밝힐지 말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면 서로에 대한 사랑 자체가 위험해진다. 일하며 만나게 된 사람과 사랑에 빠진 회사원 박상혁(가명)씨는 공개 여부를 두고 여자친구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여자친구에게 쏟아지는 뭇 남자들의 ‘러브콜’을 차단하기 위해 공개하고 싶었던 박씨와 사생활이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게 싫었던 여자친구는 이로 인해 몇 차례 갈등을 겪어야 했다. 연애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때로 ‘사랑의 확인’이 되기도 한다. 힘들더라도 연애를 밝혀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그만큼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여기게 되지만, 거꾸로 공개를 꺼리면 ‘이 사람이 나를 숨기고 싶어하나’ 혹은 ‘다른 사람이 있나’ 의심하게 된다.

유부남·유부녀 등 기혼자들끼리, 혹은 기혼자와 미혼자가 연애를 할 때 비밀의 무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다. ‘신정아 스캔들’이 터지고 8개월이 흐른 2008년 3월12일, 학력 위조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서울 서부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신정아씨는 이렇게 토로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두 가지 비밀은 있다. 몇 개월 동안 나는 완전히 발가벗겨졌고, 속에 있는 창자까지 모두 다 까발려졌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봄을 기다리는 초라한 여인이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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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의 항변처럼 누구나 비밀은 있다. 신정아씨의 비밀은 하필 외국 명문대학의 박사학위 위조와 정부 고위 인사와의 관계라는, 선정적 제목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그중에 언론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던 부분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사랑이었다. 30대 신정아와 50대 유부남 변양균의 비밀스러운 연애는 그들이 주고받았던 전자우편까지 모조리 세상에 공개되며 ‘까발려졌다’. 그리고 또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난 3월, 신씨는 사람들이 그토록 알고자 했던 자신의 비밀에 관한 책 <4001>(사월의책 펴냄)을 내놓았다.

이 책에는 변양균과의 비밀 연애가 자세히 적혀 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둘만의 비밀 연애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신씨는 이렇게 적었다. “혹시라도 누가 알게 되면 자기는 끝장이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무섭고 두려우면 나쁜 짓을 안 하면 되지 왜 숨어서 나쁜 짓은 혼자 다 하면서 나만 이용해먹느냐고 큰소리를 냈다. 역시 힘든 사랑이었다.” 신씨가 학력 위조 의혹에 시달리다가 미국 뉴욕으로 떠났을 때에 관한 내용에도 밝혀져서는 안 되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똥아저씨(변양균)는 뉴욕에 도착하면 변호사 선임부터 하고, 그다음에는 반드시 매일 글을 쓰라고 했다. 단 ‘우리 두 사람 이야기만 빼고’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세상은 이들의 관계를 ‘스캔들’이나 ‘불륜’이라고 했지만 신정아씨는 “우리는 정말 ‘사랑’이라는 말, 또는 ‘불륜’이라는 말 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였다”고 적었다. 불륜이라는 비밀 연애는 이처럼 무겁고 복잡하다.


영원한 비밀 혹은 신중한 공개


무겁든 가볍든 비밀 연애가 갈 길은 두 가지다. 연애의 결론이 이별 아니면 결혼(혹은 계속된 만남)인 것처럼, 비밀 연애 역시 이별로 영원히 비밀이 묻혀지거나 결혼 등으로 세상에 밝혀진다. 비밀 연애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전문가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면 자연스럽게 공개하라고 조언한다. 김종오씨는 “둘 사이의 친밀한 모습을 단계적으로 주위에 공개하면서 서서히 밝히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한다. 다만 사내 연애의 경우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자칫하면 둘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갈 수도 있기 때문에 먼저 회사의 선례나 분위기를 참고하고, 되도록이면 결혼이 결정된 뒤 공개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비밀 연애로 상처받은 사람이나 이제 막 한 차례 비바람 같은 비밀 연애를 끝낸 이들에게는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강지영씨는 이렇게 말한다. “비밀 연애는 그로 인해 아파도 누구에게 위로받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비밀스럽게 시작한 연애를 끝냈다면 그것으로 인해 분명 깨닫고 배우고 성장하는 게 있을 거다. 비밀 연애는 수많은 연애 중 한 가지 방식일 뿐이다. 이런 연애 한 번쯤 해도 괜찮지 않나?”




 



사내 연애를 들키지 않는 방법

연인을 우선순위에서 제외할 것, 단 직장에서만!


사내 연애가 얼마나 많은 ‘위험 요소’를 안고 있는지 안다고 해도 상대에게 끌리는 마음을 제어할 수 없다면, 어쩌겠는가. ‘잘’ 하는 수밖에. 사내 연애에 임하는 자세, 또 사내 연애를 들키지 않을 방법으로는 뭐가 있을까.


△직장과 직장 밖을 구분하라.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눈에 밟혀도 직장에서는 동료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모든 일의 우선순위는 ‘연인’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한다. 대신 직장 밖에서는 ‘연인’을 오로지 ‘연인’으로만 대한다.


△아래 직급의 직원과 데이트를 할 경우에는 상대가 직속 부하가 아니거나 다른 부서에 근무하더라도 그 사실을 상사에게는 알려야 한다. 오직 당신의 직속상관에게만 이야기하라. 당신의 직급에만 공개되는 중요한 회사 정보는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며, 연인과 관련되는 결정 사항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당신의 연인이 직속상관이라면 둘 중의 한 명은 부서 이동을 요청해야 한다. 이는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이다. 사랑하는 당신의 연인이 상사와 잠자리를 같이했기 때문에 승진했다는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공적인 동료로서 대인 거리는 서로 양손을 뻗쳐서 몸에 닿지 않는 120cm 이상이다. 120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한다. 무턱대고 손을 대지 않는다. 뒤로 돌아서 어깨를 누르거나 접촉하게 되면 특별한 감정의 표현이나 섹슈얼한 행동으로 비친다. 되도록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서로 응시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이야기를 들을 때 열심히 수긍하지 않는다. 상대를 보면서 열심히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수긍하는 횟수도 많아지게 되어 자칫 친한 사이라는 느낌이 든다. 허물없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상대와 이야기하는 방법, 앉는 방법, 말씨 등이 노출되면 다른 사람이 알아채기 쉽다.

△함부로 심부름을 시키지 않는다. 늘 같은 사람에게 일을 부탁하면 편애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당연하고, ‘저 두사람은 수상해’라는 반응으로 이어진다.

△함께 휴가를 가지 않는다. 같은 날 휴가를 얻거나, 퇴근 시간을 맞추거나, 회식 중 둘이서 사라지는 것 같은 노골적인 행동을 하지 마라.


참고 문헌: <처세의 심리학>(제우스 존 지음·휘닉스 펴냄), <여자 직장인 잔혹사>(임기양 지음·마젤란 펴냄),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신시아 샤피로 지음·선돌 펴냄)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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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답답해서 퍼왔다.  

 

"상하이 치정 스캔들이 아니라 명백한 간첩 사건" 

  

중국 상하이 주재 총영사관 외교관들의 스캔들 및 기밀 유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총영사와 부총영사 간의 감정 싸움, 현지인 유부녀를 두고 벌인 영사들의 불륜과 암투, 정부·여당 핵심 인사들의 전화번호와 기밀 정보의 유출 등 수많은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거 중국 지역에서 4년간 영사 생활을 했던 한 인사는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을 불륜이나 치정 사건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며 "명백한 간첩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유출된 김정기 전 총영사의 자료가 있던 곳이 청사가 아니라 개인 사저이며, 중국 당국은 외교관 사저를 철저한 관리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보기관 배후설을 제기하는 김 전 총영사의 말을 반박했다. 중국 정보기관이 아니면 누구도 총영사의 사저에 침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번 일이 일어나게 된 근본 원인은 고위 외교관의 자질이 없는 인물을 중요한 총영사로 보낸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에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연합뉴스
-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나?

"상하이 총영사관 주재 외교관들에게 접근하는 중국 사람들은 거의가 국무원 산하 국가안전부(MSS) 사람들이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정보기관인데 직원들이 엄청나게 많다. 김정기 전 총영사 등은 상하이 총영사관에는 국가 기밀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없고, 등 씨가 비자 문제로 접근했기 때문에 스파이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사실이 아니다.

상하이는 중국의 실질적인 수도다. 경제, 금융, 무역, 정보 전쟁의 총본산이다. 중국공산당 상하이 당서기는 총서기로 가는 통로다. 상하이시장은 서울시장 격이다. 그런 사람들한테 직보되는 정보를 모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외국에서 온 외교관들을 철저히 감시한다. 총영사한테는 기본으로 4명이 붙고, 일반 영사는 2명씩 붙어서 뒤를 밟는다. 그 외교관이 친중인지 반중인지 경향을 파악하고 장점과 약점, 가족관계를 계속 보고한다. 청소부까지 다 간첩이라는 소리도 있다. 중국은 도청의 왕국이고 스파이의 천국이다. 영사 생활을 오래 하면서 인간적으로 친하게 된 현지인들이 '다 도청된다'고 귀띔해 줬다.

따라서 비자 이권을 챙기기 위해 벌어진 치정·불륜 사건 정도로 축소할 수 없는 큰 일이 있을 것이다. 치정 사건이 아니라 국가 기밀을 유출시킨 간첩 사건이다. 비자 장사여행사를 통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물론 등 씨가 비자 관련 이권을 챙기려는 행태도 보였지만 그건 작은 부분일 뿐이다."

- 중국의 정보 수집 활동에 관해 겪은 일이 있다면?

"비일비재했는데 일화 하나만 얘기해 보겠다. 영사를 하던 시절 어느 날 차를 몰고 가다가 타이어가 터졌다. 차량 통행도 거의 없는 길이었고 밤 11시 30분이었다. 그런데 3분도 안 돼서 경찰차 2대가 나타나더니 타이어를 바꿔줬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우리를 목격하고 도와줬다고 했는데, 누군가가 내 뒤를 밟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나가다가 발견했다'던 사람들이 내 타이어를 교체해주더니 지나가지 않고 돌아갔다. 당시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베이징에 와서 진실을 알 수 있었다.

국가 통치의 효율성 면에서 중국은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도 철저히 잘 돼있고, 집행도 엄격하고, 정보 수집도 아주 세련되어 있다. 중국하면 엉성할 것 같지만 무시무시할 정도로 철두철미하다. 상하이 홍차오공항에 가면 수색대도 별스럽지 않고 검사도 제대로 안 하는데 마약밀수범이 딱딱 잡힌다. 그게 중국이다."

- 김정기 전 총영사는 한국 정보기관 배후설을 말한다.

"언론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총영사관 청사가 아니라 총영사의 관저에서 정보가 유출됐다는 점이다. 김정기 전 총영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비상연락망(정부·여당 인사 200여 명의 연락처)은 나를 음해하려는 누군가가 상하이 관저에 침입해서 촬영해 유출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보기관 인사가 배후일 것으로 본다고도 말했다. 국정원 출신의 부총영사를 지목한 것이라고 언론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관저는 총영사 개인의 집이다. 청사에 있는 총영사 사무실에 있는 자료가 유출됐다면 부총영사를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개인의 집에 몰래 들어갈 수는 없다. 서울 주재 외교관들의 집도 경찰이 지키고 헌병대가 지킨다. 중국은 외교관들의 집에 관한 보안을 더 강하게 한다. 관저에 괴한이 침입하면 총 맞아 죽을 수도 있다."

- 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보나?


▲ 김정기 전 상하이 총영사 이임식 장면. ⓒ연합뉴스
"김정기 같이 자질 없는 사람에게 총영사 자리를 준 게 문제의 뿌리다. 한나라당 총선 공천에서 떨어졌으면 청와대 비서관이나 시킬 일이지 왜 상하이 총영사에 보내나. 상하이 총영사는 이미 대사를 지낸 고위급을 보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자리이고 전문적인 외교 역량이 필요하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외무부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자리 중 하나다.

그런데 '엠비맨'이라고 해서 낙하산으로 보냈다는 게 문제다. 총영사를 했다는 사람이 그 여자의 신분도 확실히 모르면서 '믿을 만했고 네 번이나 도와줬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얼마나 고급 정보들이 흘러 나갔겠나. 외교관이 왜 특정 정당 정치인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나. 중국 같으면 총살감이다. 국가 기밀 누설죄를 저지른 것이다. 스파이한테 놀아 난 것이다. 중국 탓도 아니고 대한민국 탓이다.

그 여자의 정체가 불분명하다느니 그런 식으로 은근슬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몇몇 영사들의 아랫도리 문제로 덮어버려도 안 된다. 최소한 김정기 전 총영사 이상의 문제다. 왜 그런 사람을 거기에 보냈으며, 문제가 있으면 냉큼 소환해야하는데 '엠비맨'이라고 백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또, 김정기 전 총영사는 4월 분당(을) 재보선에 생각이 있다고 한다. 총영사를 하고 있으면 거기에 전념해야지 국내 정치에나 기웃거리다니 한심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총체적으로 망조가 들었다. 이런 막장이 없다.

상하이에는 임시정부 청사가 있다. 윤봉길 의사가 일제에 저항해 폭탄을 던진 곳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조상탓을 못하게 하는 곳이다. 조상들은 그곳에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국가의 녹을 먹는 외교관들이 방탕 무도한 생활을 하고 은폐하려고 했다는 게 개탄스럽다. 국격이 땅에 떨어졌다. 우리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되어 있다. 임정이 있던 곳에서 그런 짓을 했다니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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