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시각이 매우 잘 드러난 글이다. 공감이 가는 측면도 있지만 포스트 디지털 시대라는 말에서는 뭔가 .......  

 

[야! 한국사회] 민주당 이후를 생각함 / 진중권 

 

재보선은 예상대로 민주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총선은 물론이고, 대선 가도에도 민주당에는 파란불이 들어왔다. 단일화만 된다면 “박근혜 대세론도 꺾을 수 있다”(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는 자신감도 생겼다. ‘단결하여 한나라당과 맞서 달라’는 게 이른바 ‘국민의 명령’이 되어버렸기에,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도 야권연대는 이루어질 것이다. 확실한 것은, 민주당이 잘해서 이긴 선거가 아니라는 점이다.

승리의 요인은 이명박 정권의 난폭운전이다. 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은, 일단 급한 대로 술 취한 운전자부터 갈아치우고 다음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 역시 가벼이 볼 수 없는 과제이기는 하나, 다음 운전자라고 전임자와 특별히 다른 내비게이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설사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아도, 그다음에는 또다시 한나라당이 돌아올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의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민주당이 잘못하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잖은가. 물론 그 대안은 진보정당일 것이나, 대중은 진보정당이 신뢰할 만한 대안이라 믿지 않는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대중이 어리석어서 그렇다’는 것이리라. 이 편리한 가설은, ‘따라서 선진적 의식을 가진 이들이 진보의 정체성을 가지고 대중을 계몽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과연 그럴까? 물론 대중이 ‘몰라서’ 진보를 지지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대중이 진보의 마인드를 ‘안다면’, 그나마 지금 하는 그 얼마 안 되는 지지도 철회할지 모른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호하며 ‘미 제국주의’ 운운하는 40년대 진보(NL)나, 이 와중에도 ‘사회주의 학습투쟁으로 위기를 돌파하자’고 외치는 80년대 진보(PD)나, 제정신 갖고 지지해주기는 힘들다.

지금 행해지는 진보통합의 논의는 (1)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통해 의석수를 좀 늘리거나, (2) 민중의 등대라는 같지도 않은 착각 속에 자신을 자폐시킨 채 개척교회 세우듯 사회주의 목회활동을 하거나, (3) 40년대와 80년대 진보를 다시 합쳐 10년 전에 했던 것을 재방송하자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거기에 빠져 있는 것은, ‘포스트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진보정당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대중은 몰라서가 아니라, 현재의 진보가 어떤 면에선 한나라당 뺨칠 정도로 수구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통합의 논의가 전제해야 할 것은, 대중에게 그들이 원하는 진보와 정당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다. 하다못해 떡볶이집을 해도 시장조사부터 먼저 하거늘, 집권을 목적으로 한 정당을 만들며 대중의 욕망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대중은 ‘지지할 만한’ 진보와 정당을 원한다. 그렇다면 대중이 지지할 만한 형태로 진보와 정당을 리디자인할 일이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영원불변한 진보의 이념이 들어 있다. 따라서 남은 것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대중의 무지를 계몽하거나, 자본주의나 제국주의의 유혹에 빠진 대중의 병든 영혼을 회개시키는 것뿐.

앞을 내다보는 것을 ‘전망’(pro-spect)이라 한다. 또 앞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것을 ‘기획’(pro-ject)이라 한다. 전망이라는 눈과 기획이라는 손이 없는 진보는 당연히 과거로 눈을 돌려(retro-spect) 자신을 뒤로 던질(retro-ject) 수밖에 없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향수, 1930년대 민족해방운동의 추억으로 먹고사는 것도 진보라 할 수 있을까? 정작 여기야말로 계몽과 회개가 이루어져야 할 지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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