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에 성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김소희 기자의 글이다. 레즈비언들의 어려움을 소개하는 글인데 상당히 의외의 지점이고 또 관심을 가질 만한 영역인 듯 싶어서 퍼왔다. 레즈비언은 문제는 가부장적인 사회와 이성애주의 속에서 다른 폭력을 낳게 된다.

 

 

 

 

 

한겨레21 2007. 7월 26일.

‘아우팅’의 괴로움을 아십니까

사귀던 사람이 이별을 통고받자 스토커로 돌변하거나, 소속된 집단 안에서 폭력·협박을 당했다면? 사람들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일군의 사람들에겐 그런 기회가 막혀 있다. 2차, 3차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이하 상담소)가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1년간의 상담사례 1113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성정체성 상담(33%)에 이어 교제 관계나 커뮤니티 안에서 벌어진 폭력에 대한 고통(19%)이 많았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본인의 의사에 반해 성정체성을 폭로하는 ‘아우팅’, 아우팅을 매개로 한 범죄 등이 대표적이다. 나랑 헤어지면 너의 정체를 폭로하겠다며 관계를 유지하려 하거나, 강제로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이를 빌미로 금품을 갈취하는 일이다.

수사 과정에서조차 “여자들끼리…”

동성애자에게 아우팅은 삶의 뿌리를 뒤흔드는 일로 ‘사회적 살인’에 해당한다. 여성 동성애자인 레즈비언은 이 과정에서 ‘복합적인 고통’을 겪는다. 레즈비언 커뮤니티 밖에서 성정체성을 숨기고 지내는 이들이 많은데, 이런 취약한 지위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관계에서 파생된 갈등을 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조력자나 지지 집단이 부족하다 보니, 폭력을 통해 ‘손쉽게’ 욕구를 해결하는 위험에 노출되거나 피해자가 또 다른 폭력에 기대는 일도 반복된다. 형사 절차를 밟으려면 커밍아웃이 불가피하고, 가족과 소속 집단, 언론에 이 사실이 알려지기도 한다. 수사 과정에서 욕이나 수치심을 유발하는 말을 듣기도 한다. “아니, 여자들끼리 연애를 해요?” “요즘은 동성애가 유행인가봐, 여자들까지….”
상담소를 찾은 한 내담자는 레즈비언 커플이었다가 깨지고 채무관계에서 다툼이 일었는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사귄 지 얼마나 됐냐” “왜 사귀었냐” 식의 사건 경위와 관련 없는 질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가 가해자를 걱정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그 결과 신고를 꺼리거나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박은우 상담소 대표는 “폭력 상황은 어떤 일이 있어도 벗어나야 하고, ‘사적 해결’은 한계가 있다”면서 “상담소에서는 내담자에게 수사기관 의뢰를 권유하고, 여성 경찰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본인이 원할 경우 사건지원팀이 동행도 한다”고 밝혔다.
성정체성과 관련한 상담 가운데에는 어린 시절의 성폭력 피해 경험과 성정체성을 연관짓는 사례가 눈길을 끌었다. “그때 그 일 이후 내가 레즈비언이 된 것 같다”면서 수치심과 상실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성애자 여성은 어린 시절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어도 내가 왜 남성을 좋아하나 고민하지 않지만, 레즈비언은 동성애자가 된 ‘원인’을 어떻게든 찾으려고 긴 시간을 보낸다. 때론 상담 과정에서 남성 혐오와 자기 혐오를 복합적으로 표출하며 다짜고짜 “내가 레즈비언인 게 맞죠? 레즈비언이 안 될 수 없는 거죠?”라고 확인받고 싶어한다. 가부장적 정서와 이성애주의가 공고한 상황에서 이중의 고민을 떠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상담 방침은 △성폭력 피해 경험에 대한 고통 공감과 치유 방법 안내 △레즈비언은 남성 혐오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이끌림이라는 사실 알리기 △성정체성은 타인이 규정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주지시키기 등이다. 자신을 ‘비정상’이라 규정하고 복합적인 고통을 겪던 레즈비언들은 상담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빠른 ‘자기 긍정’을 하기도 한다. 고립무원의 상황이 그만큼 깊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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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3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오 마이 섹스> 쓰시는 김소희 기자 글 이잖아요.
제가 왕팬이죠 ㅎㅎ
제 페이퍼에도 이 칼럼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도 있어요
아유 반가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