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4색 대담회' ①]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너나 사!" 홀대받는 '사회과학', 왜 필요한가?

김민웅 : (한국에서) 1970~80년대는 사회과학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엔 '인문학이 대세'다 뭐다, 다들 입만 열면 인문학 얘기를 하고, 사회과학은 창백해진 느낌을 받는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은 그런 상황에서 나온 '사회과학서'다. 무엇을 담고 싶었나?

우석훈 : 1980년대엔 사회과학 책이 100만부씩 팔린다는 얘기도 있었다. 물론 금서가 많아 제대로 집계는 안 됐지만, 사회과학 책 내서 집이나 건물을 산 출판사도 있을 정도다. 물론 과거 얘기고, 지금은 내가 이 책을 쓴다고 했더니 하더라도 큰 출판사에서 하라고 주변에서 말리는 형국이었다. 1000권도 안 팔릴 거라고.

지난 10년간 잘 팔린 책들을 보면 "너의 미래를 위해 지금 욕망을 참아라!"라는 내용이 많았다. <마시멜로 이야기> 같은 게 대표적이다. 지금 달콤한 유혹을 견뎌내라는 얘기다. 거기서 "나 지금 놀고 싶은데? 왜 참아야 해?" 이런 반작용이 생긴다. 참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좀 하고 싶었다. 한편으론 우리가 미치지 않으려면 사회과학을 한번쯤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 책은 그 사이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처음 제목은 <사회과학 르네상스>였는데 거기서 너와 나, 우리 이런 단어를 강조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너와 나의 사회과학'이 맞는데, 이 제목은 줄이면 "너나 사!"가 된다고 마케팅 팀이 반대해서 '너'와 '나'의 위치를 바꾸었다. (웃음)

김민웅 : 사회과학이 인기가 없을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이 책을 냈다. 적어도 이건 건지겠다 싶은 게 있었을 법한데 무엇이었나?

우석훈 : 이게 실제론 대학생들과 함께 하다가 시작된 일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들 모아 놓고 글을 쓰게 했더니 기초가 너무 없더라. 예전에는 학부 1, 2학년생들이 내용도 잘 모르면서 잘난 척 하려고 책을 끼고 다니기라도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다. '목적론'이란 단어를 썼더니 못 알아듣는 친구도 있었다. 속으로 '네가 사람이냐?' 싶더라. (웃음) 그래서 이 정도는 알자는 차원에서 입문용이 될 만한 책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이니 선진화니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진짜 선진국 되려면 사회과학적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구성원 행위의 목적이 '돈'으로는 50%도 설명 안 된다. "영화 왜 만들어?"라고 물으면 "돈 벌려고"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돈으로 90% 이상 설명된다. 설명 기제가 경영학, 경제학뿐이다. 대통령이 토건 사업 하면서 "돈 벌어다 주니까"라고 설득하지 않나. '이렇게 해야 잘 팔려'가 만능이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그래서 한국에서 잘 설명이 안 되는 분들이다. (웃음) 그런데 이런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지는 사회여야지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김민웅 : 책은 굉장히 읽기 쉽게 쓰였다. 우리말로 사회과학적 사유를 해보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느껴졌다. 쉽게 쓰는 게 가장 어려울 텐데….


▲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우석훈 : 안 쓰는 것보다야 다 어렵다. (웃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말씀하신 대로 개념들을 우리말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책엔 철학 개념도 상당히 나오는데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 정말 많았다. 나도 석·박사 학위 받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쓰는 단어의 절반이 불어, 반의 반은 영어, 나머지는 독일어를 쓰는 이상한 언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장하준 교수가 한국어로 쓴 글을 보면서 우리말로 참 쉽게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되게 이상하게 살았구나 싶었다. (웃음)

김민웅 : 더 많은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 같다.

우석훈 : 원래 타깃 층은 대학교 1, 2학년생 혹은 인문사회계열 비전공인 대학원 1, 2학기생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에 주부들이 추가됐다. 책을 만들면서 공개 강좌를 했었는데 처음엔 (인원이) 대학생, 주부 반반이었으나 끝날 때 보니 주부들이 본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 생각한 건데 한국 주부가 전 세계 최고 학력이 아닐까 싶더라.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다보니 주부들만 모여도 최고 학력인 거다. 이런 분들의 힘에 대해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의도 주부들을 위한 습작 모임으로 바뀌어갔다.

어쨌든 이 책을 읽고 조금 더 공부하고 싶은 분들, 특히 대학생들은 언급된 책을 꼭 원전으로 보길 바란다. <국부론> 같은 책들이 몇 쪽으로 압축돼 있는데, 원래는 전화번호부 두 권 정도 분량이다. 그걸 온전한 원본으로 보면 엄청나게 다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사회과학 백과사전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어떤 주제로 출발하든 그에 맞는 적절한 논의가 나올 수 있도록 돕는 백과사전. 단 제대로 그렇게 만들려면 목침 두께는 되어야 하는데,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정도의 두께로 맞추느라 좀 아쉽기도 했다. (웃음)

이지아와 신정아로 보는 우리 사회?

김민웅 : 이제부터는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됐던 이슈를 짚어보면서, 그 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엔 가수 서태지와 탤런트 이지아 얘기로 참 시끄러웠다. 그렇게 시끄러워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석훈 : 내가 10대, 20대, 40대에 대해선 책으로 쓰거나 책 속에서 얘기했지만, 유독 30대에 대한 얘기만 못 했다. 30대는 분석하기 어렵다. 서태지 얘기만 하면 그들은 이성을 잃는다. (웃음) 그의 캐릭터, 설명하기 어려운 카리스마, 그리고 대부분 30대인 팬들과의 독특한 관계 때문이다. 그런 아이콘이 사회적인 소모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불쌍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이건 그들이 선택한 삶이다. 사랑하고 헤어지는 데 있어 서로에게 피해가 아닌 관계가 과연 있을까. 서태지와 이지아 관계 속에선 상대적으로 평범했던 이지아가 피해를 봤겠지만, 이 일이 사회적으로 부각되면서 서태지 역시 피해자가 됐다고 생각한다.

김민웅 : 그보다 앞서 논란이 되었던 신정아 얘기를 해보자. 신정아의 <4001>은 어떻게 봐야 하나? 나는 두 가지가 흥미롭다. 하나는 소위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이 얘기를 불쾌해하고 피한다는 점이고 하나는 신정아가 낸 책의 주된 독자층의 변화다. 처음에는 40~50대 남성들이 많이 사가는 것 같더니 2주 뒤부턴 20~30대 여성들의 구매가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우석훈 : (신정아의 고향인) 경북 청송군에 가 봤는데, 그 시골 소녀가 서울에 올라와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더라. 아직 <4001>을 제대로 보진 않았다. 조용해지면 분석하려고 미뤄뒀다. 사실 그 사건과 미술계, 정치계에 대한 책을 한 권 쓰려고 한다. 이 사건이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껍질을 뒤집어 보면 현실이 보인다.

먼저 40~50대 남성들이 성적으로 얼마나 문란한가를 볼 수 있다.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 중에 애인이 없거나 바람을 피우지 않는 사람이 10%도 안 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10명 중 9명은 <4001>의 등장인물이 될 수도 있었던 거다. 또 하나는 명품이라는 욕망이다. 신정아의 이야기와 그걸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나도 저렇게 '톱클래스'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판타지가 존재한다.

김민웅 : 2007년 학력 위조 사건을 돌이켜 보면 언론은 신정아를 두 가지 차원에서 상품으로 팔았다. 하나는 선정성, 하나는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2011년에는 좀 다르다. 선정성으로 파는 건 변함없지만 다른 하나의 패턴이 바뀌었다. "신정아의 얘기가 허접하다"는 주장이다.


▲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과연 어떨지 궁금해 하면서 이 책을 봤더니 언론이 떠드는 것과 차이가 크더라. 신정아는 아주 강렬하게, 자신의 큐레이터로서의 커리어를 주장하고 변호한다. 그러니 20~30대 여성들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다. 아까 주된 독자층의 변화 얘기를 한 건 이 때문이다. 젊은 여성들은 남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성(性)이라는 위기와 벽에 직면한다. 그 숲을 헤치고 위로 올라가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본인도 성을 이용한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도록 만든 사회는 누구의 사회인가?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그녀가 책 후반부에서 한국의 언론과 검찰을 맹렬히 공격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까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쉬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들은 모두 엘리트이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이 이 책을 읽으면 뜨끔할 것이다. 그래서 '허접하다'는 수사로 치부하려는 게 아닐까.

말하는 사람의 과거 행적에 비춰 보았을 때 신뢰도엔 문제가 있지만 그가 하는 말이 의미가 있을 때 사람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발화자는 불편하지만 지르는 내용은 부정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폭로자'들은 원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신정아라는 여인은 과거에도 지금도 자신이 한 짓에 비해 과도하게 짓밟히고 있다는 느낌이다.

"5만 명쯤 모여 자유롭게 얘기했으면 좋겠다"

김민웅 : 다른 얘기를 또 해 보자. 작년엔 사람들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다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자본주의의 폭로를 접했다. 이기적으로 욕망을 추구하면 성공이 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그럼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게 뭐지? 스스로 생각한다는 건 뭐지?

여기서 선거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지방선거와 최근 4·27 재·보궐 선거 결과를 보면 유권자들 사이에서 '한국 사회, 이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강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형태의 모델을 갈구하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중요할 텐데, 어떻게 전망하는가?

우석훈 : 개인적으로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집권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영남이 없으면 한나라당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번에 분당 선거 결과가 말해주었다. 강남 3구도 어렵지 않을까. 게다가 강경 대북 정책으로 인해 북한 장사정포 사정거리에 포함되는 수도권 북쪽 지역도 어려울 것 같다.

한나라당 재집권에 부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너무 웃기다는 것이다. 해방 이래 정치인 가운데 웃긴 걸로 치면, 건수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이기기 어렵다. 하지만 안상수 전 대표는 '뎁스'(depth·심도)로 YS를 넘었다. (웃음) 보온병, 정말 너무 웃겼다. 중독성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 6개월은 조선 왕조 500년"이란 말도 있듯 앞으로 판도가 수십 번은 바뀔 거라서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전혀 모르겠다. 또한, 정권 바뀌는 것과 별개로 정치가 좋아질까, 이것도 잘 모르겠다. 작년 지방선거 승리 후 민주당 후보들이 토건 개발 쪽으로 몸을 돌리지 않았나. 한-EU FTA를 한나라당과 함께 통과시키고. 너무한다 싶다. 정권 교체도 정권 교체지만 어떻게 해야 세상이 좋아질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김민웅 : 이 자리에 함께 한 강신주 박사는 현 대의제 자체에 회의를 표했다. 직접민주주의 주체가 강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어떻게 생각하나?

우석훈 :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먼저, 대통령제를 너무 오랫동안 지지했다. 한 정치학자는 한국인은 한 번에 모든 걸 결정한다는 걸 좋아한다면서 복잡한 의원내각제는 싫어할 거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2008년 촛불 집회를 보면서 '의원내각제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이 반대하면 총리(행정수반)를 물러나게 할 수 있다. 이게 오히려 훨씬 속 시원할 것 같다. 의원내각제가 직접 민주주의에 더 탄력성이 좋다.

두 번째로 만민공동회 같은 걸 하면 좋겠다. 온라인 모임? 아니다. 직접 봐야 맛이 난다. 잠실 체육관 같은 데서 5만 명이 모여 마이크 돌려가면서 조금씩 의논해 의결한다. 여기선 결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발언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여당도 그렇지만 야당도, 사람들 얘기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진짜 많은 개인들이 모여서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다. 그런 장이 필요하다.


ⓒ프레시안(최형락)


대담은 예정 시간을 지나 계속됐다. 10시를 넘어가는 늦은 시간에도 자리를 뜨는 청중은 겨우 서너 명 눈에 띌 정도였다. 마지막은 대담자들이 무대에서 내려가, 청중을 향해 직접 마이크를 건네는 순서였다.

시간상 우석훈 소장이 꿈꾼다는 '만민공동회'처럼 모든 사람에게 마이크가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저자와 독자가 눈을 맞추는 수평적인 시간이 이어졌다. 그들은 우석훈에게 무엇을 듣고 싶었나?

청중 : 이제 30대에 접어드는 나이다. 그런데 아직 친구들 중엔 대학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하는 애들이 많다. 잘 나가는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우석훈 : 공부하는 사람 말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하나 충고하겠다. 그렇게 공부한다고 그 회사 들어가긴 쉽지 않을 거다. 영어를 많이 본다고 해서 영어에 열심히 매달린다고 치자. 갑자기 '한국어 중시'로 바뀌면 했던 공부 다 엎어야 한다. 회사에서도 요즘은 창의적인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스펙' 맞추는 행위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틀어박혀 입사 준비만 하는 건)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개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은 없지만, 그냥 뭔가를 일주일쯤 해봐서 기분이 좋고 가슴이 뜨거워진다면 계속 하라. 반대로 자꾸 아프고 죽을 것 같으면 그만 둬라. 재미없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재미없는 일 참고 하라는 놈이 악마다.

스펙을 쌓으면서 누군가를 이기는 방법보다 다 같이 살아남기 위한 제도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사실 기본소득 100만원 씩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삼성 이런 거 안 무서워할 것 아닌가.


 



/안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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