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도망갈 곳이 없는 소년, 막다른  골목에서 뛰어든 '위저드 베이커리' 

생은 그에게 아무런 위로와 기쁨을 마련하지 않았으나 위저드 베이커리가 있어 잠시 피할 수 있었고, 삶을 관찰할 수 있었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 살아갈 힘을 얻었다.  

'나'는 그렇다.  주인공은 불행하고 불행했다. 

그러나 주인공의 불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아빠도 새엄마도, 누이동생 무희도 불행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나의 불행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모두의 불행을 보아야 했다.  

엄마를 자살하게 했던 고통에는 아빠의 행동이 있었을 것이다.  

아들의 삶, 고통을 보지 못한 아빠의 삶 또한 진정한 삶은 아닐 것이다.  

새엄마는 재혼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얻었으나 누군가 지독하게 증오하며 살았다면 그녀 또한 불행을 뒤집어쓰고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새엄마가 데리고 온 누이동생 무희. 새아빠에게 성추행 당하는 아이로 나오는데 무희는 가족의 모든 불행을 뒤집어 쓴 것이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다. 가족이 함께 빵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빵을 먹으며 웃었던 순간이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불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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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자리에 앉으면 도서관 옆 노적봉에 선 우람한 나무들이 뿜는 기운이 느껴진다. 

도서관이  있어 숨 쉴 수 있고, 나무들이 전해주는 기운이 있어 나도 기운을 차린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그루  

토끼 한 마리  

 

여섯살 겸이와 자전거 타고 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개나리 터널이 나온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라 물고요 병아리떼 뿅뿅뿅 봄나들이 갑니다. 

개나리 노란 꽃그늘아 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꽃가신하나  

아기는 살짝 신 벗어 놓고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 갔나  

가지런히 기다리는 꽃가신 하나  

 

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도서관 가는 길이 내가 부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던 충만한  시간들이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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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생각하기

- 오늘은 노무현대통령 영결식 날입니다. 그분이 애창했던 노래를 부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 이 노래는 안산 상록수와도 인연이 있지요. 누구일까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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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
                                             김종삼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생각하기

-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처럼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나요? 

 

- 살아온 기적이 살아올 기적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 삶에 기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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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스승

 

                                                                                                                                                    문태준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울음이 타는 가을 강’)라고 생전에 쓴 박재삼 시인.

박재삼 시인의 집은 가난했다.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막벌이 노동을 했고, 어머니는 어물장수를 해서 근근이 살았다. 기부금 3000원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못 하고 신설 여자 중학교였던 삼천포중학교에서 한때 사환으로 일했다. 초등학교 동창 여학생들이 공부하는 여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맞춰 종을 치고 교무실 잔심부름을 했다. 이 어려운 시기를 살면서도 박재삼 시인이 시를 쓰겠다는 꿈을 키우게 된 데에는 몇 분 스승과의 아름다운 인연이 있었다.

우선 삼천포중학교 국어 선생님이었던 김상옥 시인이 있었다. 박재삼 시인은 김상옥 시인이 펴낸 시조집 『초적(草笛)』을 사볼 형편이 아니어서 그 시조집을 빌려다가 공책에 쓰고 애송했다. 박재삼 시인은 스승 김상옥 시인 덕택에 중학 시절부터 부지런히 시를 쓰고 고치는 습작을 했다. 또 한 분의 스승은 이병기 시인이었다. 1952년 이병기 시인은 전북대 교단에 서고 계셨고, 고등학생이었던 박재삼 시인은 삼천포에 살았다. 박재삼 시인은 이병기 시인에게 자신의 습작을 봐달라는 편지를 냈다. 이병기 시인으로부터 네 차례쯤 답장을 받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일면식도 없는 고등학생에게 답신을 보낸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병기 시인은 그 일을 했다. 박재삼 시인은 후일 한 산문에서 이 일을 회고하면서 붓으로 쓴 이병기 시인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강한 서권기(書券氣)가 풍겼다고 썼다. 1954년 초봄, 보슬비가 내리는 밤에 박재삼 시인을 찾아온 한 시인이 있었다. 유치환 시인이었다. 갓 출간된 이영도 시조집을 전해주러 빗속을 뚫고 박재삼 시인을 찾아온 것이었다. 유치환 시인은 박재삼 시인보다 스물다섯 살이나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체면 같은 것을 중시하지 않았다. 유치환 시인은 다정다감한 스승이었다.

박재삼 시인의 스승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 나도 나의 스승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나는 경북 김천시 봉산면 태화초등학교를 다녔다. 한 학년당 학생이 마흔 명 남짓 되는 작은 시골 학교였다. 초등학교 5학년 점심시간이 떠오른다. 담임선생님은 제자들과 함께 교실에서 점심 식사를 하셨다. 시골 학생들의 도시락 반찬은 늘 먹는 반찬으로 뻔했고, 더러 점심을 챙겨오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선생님의 도시락은 유난히 컸고, 그것을 학생들과 나눠 드셨다. 학생들의 가정 형편을 속속들이 알고 계셨고, 결석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의 집을 찾아가 보셨다.

언젠가 나의 집에도 찾아오셨는데 내가 염소를 몰고 들로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내 곁에 선, 뿔이 막 솟는 어린 염소를 쓰다듬어 주셨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당신의 자제가 사용하던 참고서와 책을 나에게 물려주셨다. 학생들에게 늘 경어를 사용하셨고 무척 겸손하셨다. 선생님은 내게 맑고 푸른 하늘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스승은 나의 낙담과 관심과 꿈을 ‘있는 그대로’ 보셨다. 경청하셨다. 스승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경청의 은혜,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너무 큰 빚을 얻었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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