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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길귀신은 시인에게 시의 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합니다.
시인이 보낸 손편지 같은 글을 읽고 저도 손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손편지를 쓰던 시절 만난 친구들에게
인도의 산타니케탄입니다. 시인은 그곳에서 인력거꾼(릭샤왈라)을 만납니다. 그에게 반소리라는 악기를 배우는데 그가 손을 잡으며 '자이구루'라고 인사를 했답니다.
'지금 네 모습이 참 보기 좋은데 너를 이렇게 훌륭히 키워준 선생님은 누구인지 그 선생님을 위하여!' 라는 뜻으로 귀한 인간관계에 쓰인답니다.
아! '자이구루'하며 인사하고 싶어지네요
동시를 쓰는 친구에게 이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왜 우리는 시를 읽을까요.
아름다움을 만난 시인이 시를 쓰고
그 시를 읽은 사람이 다시 아름다움을 그리워합니다.
왜 시를 읽는냐는 물음은 왜 사냐는 물음처럼 어렵고도 쉽습니다.
생이 주어졌기에 살고 시를 만났기에 읽지요.
시를 만나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가끔 쓸쓸해지곤 합니다.
여기 시인이 쓴 길귀신의 노래가 있습니다.
그리운 이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시를 쓰는 선생님.
시를 쓰던 선배
시를 읽던 친구
시를 쓰고 문집을 내던 친구
이제 시를 안 쓰는 친구
이제 시도 안 읽는 선배
모두 여기에서 만납니다.
시가 없더라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서 그러겠지요
그럼 나는 왜 아직도 시를 읽는가? 하고 물어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시인이 쓴 글을 읽으며 끊어오르는 그리움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뿐.
지하철 풍경이었다. 오후의 지하철 안은 비교적 한산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승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 바로 앞의 할머니는 무슨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고 그 옆의 아주머니는 갓 꺽은 들꽃 한 묶음을 지니고 있었다. 아주머니 곁의 청년이 또 무슨 책을 읽고 있었고 그 곁의 아가씨 또한 꽃 한 묶음을 안고 잇었다. 나는 지하철 안의 풍경이 무슨 영화 촬영이라도 하기 위해 연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럴 것이 지하철 안의 거의 모든 승객이 책을 읽거나 꽃츨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꽃 책 꽃 책, 또다시 꽃 책 책 꽃 꽃 책 책 책 똧 ...... (37p)
어디일까요. 푸시킨을 사랑하는 나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풍경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시인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나고 있으면 막 엉덩이가 들썩입니다. 가고 싶고 보고 싶고 만지고 싶어집니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시인이 가장 사랑한 인사말은 '발로바쉬'였다고 합니다. 꽃나무 아래를 지날 때, 구름과 바람을 만날 때 시인 '발로바쉬'하고 인사를 했답니다. '좋아합니다'라는 뜻을 지닌 뱅골어라고 합니다.
시인은 뻥튀기 할머니에게 뻥튀기 한 봉지를 사고 받은 '복 받으시오'를 따뜻한 인사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인사말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발로바쉬 자이구루, 발로바쉬, 자이구루,
말만 해도 마음에 물이 오른 듯합니다. 고맙습니다.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안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반날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그리웠던 순간들이 불빛처럼 반짝이는 시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쓴 시를 낭송하는 신혼부부를 모스크바에서 만납니다. 시가 만든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그리고 네팔에서 만난 배낭여행자의 여권에서, 화엄사 옆 작은 암자의 스님의 컴퓨터에서 만납니다.
막차가 오지 않아도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요. 막막합니다. 그런 순간에도 우리를 구원해주는 불빛이 있다는 것일까요. 내가 불빛이 된다는 것일까요.
친구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네요.
순천만에 자리한 와온 바다. 따뜻하게 누워있는 바다. 참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와온 바다 개펄에서 만난 아낙 이야기입니다. 피눈물이 나는 노동을 하는 아낙들은 한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래도 시인은 그 아낙들의 노동이 따뜻하고 평온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노동을 하는 모습은 건강하고 순결한 아름다움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건강하고 순결한 아을다움을 기억하며 시를 씁니다.
와온바다 그 바다는 멀리 있지 않고 가까에에도 있을 듯합니다.
우리동네 붕어빵 아저씨네 붕어빵에도,
세탁소 아저씨의 다리미에도.
슈퍼 아줌마의 바쁜 손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