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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이 소리들을 다 들을 수 있을까? 하며 읽는다.
작가는 어찌 이 소리들을 찾아가서 듣고 쓸 수 있었는지 놀랍다.
전쟁터도 놀라운데.
어린 소녀들이 조국을 지키려 전쟁에 자원하고 전쟁을 목격하고 전쟁을 살았다.
죽은 여자들도 있고, 살아 돌아와 전쟁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살아간 여자들도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끄덕없이 살아간 그녀도 있고,
웃음을 잃어버린 그녀도, 조국에 대한 신념을 끝까지 간직한 그녀도
시를 외우며 걸었던 그녀도 트랙터를 몰고 다니던 그녀도
온종일 맨손으로 병사들의 빨래를 하던 그녀도
온종일 페치카 옆에서 빵을 만들던 그녀도
'이놈아!, 이런 우라질'욕을 배워버린 그녀도
스물넷에 자율신경계가 완전히 망가진 그녀도
열아홉에 머리가 하얗게 세버린 그녀도
귀고리를 하고 싶은 그녀도, 전쟁 내내 다리병신이 될까 봐 걱정하는 그녀도
뺨에 동상이 걸려 까맣게 된 그녀도
전쟁중에 염색을 하고 기뻐하던 그녀도
열여덟살이 되는 것이 꿈인 소녀 병사도
열여덟살이라고 우겨서 전쟁터에 나간 열여섯 소녀도
전쟁을 잊지 못해 비극속에 살아간 그녀도 있다.
그네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사소한 것이 위대한 것을 압도하는 순간을 여러 번 목도했다. 역사마저 제업해버리는 그 순간을.
"내가 전쟁터에서만 예뻤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그곳에서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이 지나가버렸어. 다 타버렸지. 그러고는 순식간에 늙어버렸어. ....."(안나 갈라이, 자동소총병) (339p)
작가는 그녀들을 찾아가 그녀의 소리를 듣고 기록한다.
그 소리들은 끔찍하지만 외면할 수 없다.
왜 나는 이 소리들을 듣고 읽고 있는가?
인류는 이런 전쟁을 겪으며 이어져 왔겠지. 인류의 슬픔과 기쁨들은 다시 반복되는 것 뿐일까.
세계대전이라는 이름의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세계에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고. 끔찍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려니 하고 넘어갈 수 없는 참담함과 만난다.
이 목소리들을 기억한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조금이라고 다르게 대응하고
전쟁을 피하려는 노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전쟁이라는 인류의 상처에서 배우고 다시 시작한다면 인류는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