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자 선언 - 공적 슬픔과 타인의 발견
최태현 지음 / 디플롯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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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를 돌아봅니다. 지금처럼 작은 존재들의 권리에까지 이토록 관심을 기울인 시대가 있었을까요? 과거에는 신분이 나뉘었고, 질서는 위계적이었으며, 어린이와 여성은 재산처럼 취급되었습니다. 동물? 자연? 오로지 왕과 귀족의 생명만이 가치 있던 오랜 역사를 지나 겨우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오랬동안 모든 존재가 시민은 아니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함을 존중하려고 많은 이가 땀 흘리는 시대는 인류 역사에서 지금이 거의 유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는 특별합니다. 노동과 기후가 충동하고, 장애인 인권과 동물권이 묘한 갈등을 빚고 , 다름과 차별이 복잡하게 얽혀 있더라도, 이는 모두 이 시대가 그만클 모두의 권리를 가장 멀리까지 배달하는 과정에서 모퉁이를 돌자 이제애 나타난 산과 강일 뿐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고뇌를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습니다. 

 윤동주는 <별헤는 밤>에서 패, 경, 옥 같은 '이국소녀'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뒤늦게나마 가느다란 인연이 된 저 나름의 이국소녀들이 있습니다. 별조차  잘 보이지 않는 이 밤에 그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봅니다. 누군가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고, 해낸 게 뭐가 있냐고 묻는다면 저는 대답하겠습니다.

   역사를 만들고 있어요. 이들은 역사를 만들고 있는 거예요. 질문대신 손을 내밀어보세요. 

       (152p)

 

 작가는 지금의 시대를 좋은 시대라고 말하며 우리의 고뇌마저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다고 한다. 

자랑하기에는 현실의 문제와 무게기 크지만 작가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글이 큰 위로를 준다.

우리는 손을 내밀어 함께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작가의 말이 널리 멀리 퍼져 나가 마주 잡은 손들이 함께 웃을 수 있기를. 그 웃음이 자랑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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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만 부 에디션, 양장)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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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조셉을 창문 쪽으로 데리고 가서 아메리카 전시관의 중정을 내려다본다. 조셉과 나는 지금 월스트리트 파사드를 통해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이 사람과 편안한 유대감이  느껴지고 그 벅찬 마음이 내 판단력을 흐린다. 나는 평소에 부끄러워 입 밖으로 껴내지 않았을 신념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빠른 말투로 이 일에 내가 얼마나 헌신적인지를 토로한다, 영원히 경비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다른 일을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너무도 단순하고 직관적인 일이고, 뭔가를 계속 배울 수 있고, 무슨 생각이든 전적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렇다고 이유를 덧붙인다, (184p)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작가는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에게서도 배우고 그들이 지키고 있는 예술 작품에서도 배운다, 그 배움을 통해 작가는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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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넘어지고, 싸우고, 울었다 - 한 지식인의 생생한 사회 현장 체험기
사이토 고헤이 지음, 조승미 옮김 / 오월의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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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에 와나타베 씨가 했을 석탄에 대한 생각, 항상 위험이 따르는 작업을 하는 가운데 광부들이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왔다는 노동에 대한 긍지를 느끼게 한다. 한편 그 성장 스토리가 원전으로  대체되는 변천 과정을 보면 다른 길은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조금만 파면 얼마든지 석탄이 나온다는 '우연'이 이 도시를 바꿔놓은 것이다, 

 고마쓰 씨의 안내로 알게 된 것은 잃어버린 역사다, 당연히 이와키시에는 석탄이 나오기 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소규모 어업과 농업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풍부한 전통과 문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근대화 이전의 역사는 싹둑 잘려나가고 있다., 남은 것은 도쿄로부터 강요받은 근대화 기억이다, (196p)


현장에 찾아가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지워지거나 훼손된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을 이어가려는 작가의 실천이 나라를 넘어 우리에게도 울림을 준다. 


 조금 공부하고 다른 문화를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쉽다, 내가 아이누의 책을 읽고 우포포이에서 전시를 봤을 때 바로 그랬다, 하지만 거기에 안주하다 하면 그런 이해하기 쉬운 이미지와 일치하는 소수자만 선별해서 포섭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거꾸로 그런 이미지에 일치하지 않는 이시하라 씨나 오카다 씨와 같은 존재에 대해서는 배제나 불관용의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리하여 일부 "당사자"도 관리하기 쉬운 주체 만들기에 안주해왔다는 이시하라 씨의 비판은 예리하다, 그래서 민폐다라는 말을 듣더라도 "국가 자본 가부장제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회복 치유를 원한다"라고 이시하라 씨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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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읽는 사람 - 식물분류학자가 채집한 초록의 목소리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허태임 지음 / 마음산책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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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통과한 누구에게나 봄은 찾아온다. 아름다운 봄을 모쪼록 모두가 누렸으면 좋겠다. 봄은 길지 않으니까. 내 작은 책이 누군가의 창가에서 오래 봄볕을 쬐어도 좋겠다.ㅡ들어가며 중. (9p)
봄볕같은 책이다. 그 마음이 내 마음도 데운다.

그 깊은 숲어서는 어쩐지 집착이나 미련 따위를 떨쳐낼 용기가 생겼다. 축구장 25배 면적인 그 천연림 안에서도 너도밤나무는 특히 압도적이다. 이른 봄 너도봄나무의 연둣빛 새순이 나올 때 그 숲에 가서 벝뉘를 받으며 와 하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고, 한여름 녹음 짙을 때 그 숲의 나무 그늘에 들어가서는 우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너도밤나무가 횡금빛으로 물드는 가을에는 단풍의 색감에 넋을 빼앗기곤 했다. 울릉도 너도밤나무 숲은 세상의 번잡한 일 따위를 순식간에 잊게 하는 마력이 있다. 사계절 내내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감동시키는 건 너도밤나무의 줄기와 뿌리다. 코끼리 다리의 질감과 색감을 닮은 회색빛 줄기와 시조새 발 모양으로 땅을 거머쥐고 지면에 노출된 뿌리는 웅장하다. ( 46p)

작가가 숲에서 만난 나무들은 작가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뿌리를 움켜쥔 나무처럼 작가도 숲을 움켜쥐고 살아가며 세상 사람들에게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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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김원영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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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휠체어 밑에 깔고 앉던 책은 한 권씩 늘어났다. 바지를 크게 입는 전략은 나중에는 '무재해' 벨크로와 플라스틱 파일 커버로 다리를 아예 조형하는 방법으로 발전했다.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을 가고, 직업을 얻고, 내게 주어진 무엇을 해내든 나는 그것이 프리데만의 멋진 신발이나 모자처럼 우스꽝스럽고 어색해보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내 삶은 진정한 생의 의지를 억누른 채 허약한 가상 위에서 전개되고 있는 게 아닐까?

 몸을 온전히 드러내고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춤을 추기로 한 것은, 말하자면 정면승부였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으니깨. 춤을 춘다는 건 인권, 평등, 교양, 문화 등의 이름으로 구저화된 삶의 밑바닥을 가장 노골적으로 들춰내는 것이다. 나는 장애를 주제로 삼아 꽤 그럴듯한 글을 쓰고, 장애인 인권에 대한 강의를 할 수도 있다, 이 활동들이 가치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장애가 있는 몸을 진실로 긍정하는 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320p)

 

휠체어에서 내려와 공연하는 몸이 되기도 하는 작가는 지루하고 흥미로운 연습시간을 지나기도 하고, 경이로운 순간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밀어가는 몸과 글과 말이 여기에 와서 또 다른 순간을 만들어낸다.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접촉 즉흥(Cntact improvisation) 두 사람 (또는 세사람 이상이)  신체의 한 점을 접촉한 채 상대의 몸에 반응하며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춤이다. 접촉하는 지점은 어디든 가능하다. 서로 손가락 끝을 연결하거나 머리를 맞대거나 등을 맞붙이거나, 필꿈치나 팔뚝을 맞댈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손가락과 상대방의 이마가 만날 수도 있다. 그 상태로 각자 자유롭게 윰직이면 된다. 유일한 규칙은 접촉한 면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춤의 원리를 정립하고 접촉  즉흥이라 이름을 붙인 미국 안무가 스티브 팩스턴(1939-2024)은 1960년대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이른바 '68혁명' 가운데 무용수로 활동했다. 유럽이 전쟁으로 퍠허가 된 동안 미국은 춤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 문화적 용광로에서 미국인 이사도라 덩건이 유렵에서 새로 시작한 새로운 춤의 사조, 모던 댄스가 정점에 이르렀다,. 권위와 전통, 엄격한 규율에 맞서며 탄생한 모던 댄스는 어느덧 또 하나의 거대한 예술적 전통이자 권위가 되어 있었다.(325p)

 

 더 평등한 춤을 원했던 팩스턴은 춤을 통해 사람들이 만나는 민주적인 춤의 공동체를 지향했다,

모든 사람이 창조하고 향유할 수 있는 춤의 지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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