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신 날에 - 이시영 

가로수 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길을 걸으며 나는 문득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그 옛날 우리가 새로 태어났던 날의 초록잎새처럼
아직은 푸르름이 채 가시지 않았을
당신의 맑은 얼굴을


 이 시를 보면서 필애를 생각한다, 그 필애를 떠올리는 내 마음은 잊혀진 존재가 되어가는 것에 대한 서글픔은 아닌지 가끔 의심한다,




나무에게

어느날 내게 바람 불어와
잎새들이 끄떡끄떡하는구나
내가 네 발밑에 오줌을 누고 돌아설 때
수많은 정다운 얼굴로 알은체를 하는구나
그러나 오늘은 돌아서자
수많은 오늘 같은 내일의 날이 지난 뒤
내가 불현듯 참다운 네가 되어 돌아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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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배나무

문태준



백담사 뜰 앞에 팥배나무 한 그루 서 있었네

쌀 끝보다 작아진 팥배들이 나무에 맺혀 있었네

햇살에 그을리고 바람에 씻겨 쪼글쪼글해진 열매들

제 몸으로 빚은 열매가 파리하게 말라가는 걸 지켜보았을 나무

언젠가 나를 저리 그윽한 눈빛으로 아프게 바라보던 이 있었을까

팥배나무에 어룽거리며 지나가는 서러운 얼굴이 있었네

<맨발>(창비)

 

백담사 가고 싶다   

팥배나무 보고 싶다  

거기 서 있고 싶다  

그럼 무엇이 보고 싶을까. 가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없어지는 그런 마음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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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오규원



빗방울이 개나리 울타리에 솝-솝-솝-솝 떨어진다





빗방울이 어린 모과나무 가지에 롭-롭-롭-롭 떨어진다



빗방울이 무성한 수국 잎에 톱-톱-톱-톱 떨어진다



빗방울이 잔디밭에 홉-홉-홉-홉 떨어진다



빗방울이 현관 앞 강아지 머리에 돕-돕-돕-돕 떨어진다

                              <두두>(오규원, 문학과지성사, 2007)




빗방울이 여주초등학교 운동장에 쉭-쉭-쉭-쉭 떨어진다
빗방울이 아이들 없는 놀이터에 툭-툭-툭-툭 떨어진다
빗방울이 우리가 놓아준 개구리 등에 틱-틱-틱-틱 떨어진다
빗방울이 우리 교실 창턱에 쏙-쏙-쏙-쏙 떨어진다
빗방울이 비가 와도 축구하는 아이들의 어깨 위에 빅-빅-빅-빅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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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길


-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드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                  가을에 보내는 시로 하고 싶다. 이 시를 읽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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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실 살아있는 교육 16
강승숙 지음 / 보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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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공부, 시감상 읽다가 눈물이 난다

도시 아이들에게도 시를 읽히고 그 감상을 함께 한다는 사살만으로도 놀라운데  

아이들이 달라진다는 걸 느낄 때 교사는 기쁨을 느낄 것이다.  

 고추 잠자리   

  권태응 

 

혼자서 떠 헤매는  

고추 잠자리. 

어디서 서리 찬 밤 

잠을 잤느냐? 

 

빨갛게 익어 버린  

구기자 열매 

한 개만 따 먹고서  

동무 찾아라  

 

별  

  이병철  

하늘에 별이 하나  

땅 위에 내가 하나 

 

하늘에 별이 반짝  

땅 위에 내 눈에 반짝 

 

별하고 나하고  

나하고 별하고  

서로 눈짓하는 밤  

 

아, 하늘에 별이 없으면  

얼마나 이 밤은 어두울까요 

  

귀뚜라미  

     김철수 

귀뚜라미  

귀똘 귀똘 

나도 귀똘 귀똘 

 

귀뚜라미 

귀똘 귀똘 

나도 귀똘 귀똘  

 

불 끄고 누워  

달 보는 마음이야  

  

귀똘똘 귀똘똘 

나도 귀뚜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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