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김정남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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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의 공기는 아직 차고 맹맹하다. 도시에서는 맞을 수 없는 맑은 바람은 그저 멀겋고 싱겁다. (7쪽) 아버지와 아들은 여행을 떠난다. 돌아갈곳이 없어 보여서 자꾸 위태로워 보인다. 한 발만 잘못 내딛으면 벼랑끝으로 떨어져 버릴것만 같다. 생각보다 위태로워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에 대한 집착이 아직은 남아 있어 보여서였다. 그에게는 힘겹게 삶을 버티어내고 있는 누나가 있다. 어릴적부터 자신을 키워준 하나 남은 혈육이다. 부모님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씁쓸했다. 


아들 겸이는 (허준의 아들 겸이가 뜬금없이 생각난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사는 아이이다. 처음 자폐를 알게 되었을때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유치원에 다녔을때부터 아들은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꺼라 생각했지만 겸이는 점점 나빠졌고 학교생활도 당연히 적응하지 못했다. 그런 아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평범하게 만들려고 부인은 피나게 애를 썼고 삶은 고단해졌다. 그러다 부인이 집을 나갔다.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언제 떨려날지도 모르는 임시 교수직에 매달리고 교수가 되었으나 그 앞길은 자갈밭이였다. 그와중에 그는 딴데로 눈을 돌렸다. 지금은 차안이다. 겸이는 밥을 먹지 않으면 짜증이 심했다. 복스럽게 밥을 잘 먹었다. 경기를 심하게 일으켜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어야 했다. 그런 아들을 보면 안쓰럽다가도 주체할수 없는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반복해서 말하는 것도,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도, 갑자기 하는 행동은 아버지를 당황케 만들었다. 누나를 찾아 떠나는 길은 마음이 복잡했다.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누나에게 들렀으나 그곳은 오래 머물곳이 아니였다. 차마 입밖으로 아무 이야기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는 죽을 자리를 찾아서 떠나왔다. 고생만하던 누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쓰라렸다. "누나 왜 이러고 살아?" 라며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해줄수 없기에, 그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매형이 누나한테 잘해주냐고, 어떻게 지내냐고 안부를 묻는 말도 차마 입밖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매형에게 누나를 잘부탁한다는 말 한마디만 할 뿐이다. 다른말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덤덤해 보이는 저자의 필체를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우울하거나 슬픈 결말은 싫었는데 질척이지 않는 느낌이였다. 두 사람이 좀 괜찮아 졌으면 좋겠다. 11살 겸이는 말을 자꾸만 반복한다. 크게 말하고 불안한듯 눈동자를 굴린다. 아이의 그런 행동이 뭔가를 알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스러웠다. 엄마가 얼마나 애를 썼을지 겸이를 통해서 느껴졌다. 


그는 또 다시 추억에 빠진다. 첫사랑 그녀를 만났던 그 시절로 흘러간다. 세명이서 뭉쳐다니던 그 시절에 그는 그녀를 절친에게 뺏겼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으면 배가 아파서 쓰러질뻔 하였는데 그의 바램처럼 그 친구는 잘 살지 못한다. 허울뿐인 교수였으나 정교수가 되어 그녀를 만났을때는 돌땡이처럼 불어난 빚으로 인해 친구녀석은 해외로 도피중이라고 한다. 얼씨구나 하고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었을까. 좋아하면서도 서로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람의 못난 마음이란. 


사람의 죽음은 느닷없이 닥쳐 오는 것 같다. "당신은 부인이 힘든시간을 보낼때 딴짓도 했으면서 부인욕할 수 있어?" 라고 묻고 싶지만 그 역시 너무나도 잘 아는 것 같다. 부인이 죽으면서 남긴 돈을 들고 첫사랑 그녀한테 가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죽음의 순간까지 갔다가 갑작스럽게 모든 일들이 실타래 풀리듯이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도 험하겠지만, 이 여정을 다시 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 



<작가정신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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