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1825일의 기록 - 이동근 여행에세이
이동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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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처없이 길을 떠나 본적이 없다. 한번쯤 햇살 좋은날 떠나볼걸 그랬나. 날씨가 많이 추워서 그런지 지금은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학창시절부터 가출을 하는 친구들이 대단해보였다. 어차피 나가도 다시 끌려오곤 했는데 어디서 잡아오는지, 그런 선생님도 매우 대단해 보였다. 아는 친구는 집 나가면 반찬이 달라진다며 웃었던 녀석이 있었는데 학교라는 갑갑한 곳에 매여서 자유분방한 영혼이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장난끼 많고 햇살처럼 눈부셨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때는 몰랐는데 정말 뽀송뽀송 했구나 싶다.

 

허름한 창문과 지저분한 담벼락이 반듯해지고 깨끗해지면 좋아 보일꺼라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니였다. 사람 손때가 묻어도, 좀 허름해 보여도 정이 느껴지는 곳이 더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번듯하고 점점 높아져만 가는 건물을 바라보면 목도 아프고 눈도 아리다. 초등학교때 친척집에 놀러갔다가 아파트를 처음 가보았는데 그때 충격이 좀 심했던 것 같다. 나가서 놀다가 친척집이 몇호인지를 잊어 버려 머리속이 하얗게 되버렸다. 이집이나 저집이나 다 똑같은 회색 대문이였던 것이다. 당연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때는 촌스럽게도 아파트가 그런곳인지 알지 못했다. 나이를 많이 먹지 않아도 익숙하곳이 좋구나. 어린시절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때부터 아빠를 따라서 여행을 다녔다. 배도 타고 싶지는 않았을 꺼라 생각이 들었지만 거부할수 없는 나이라서 얼떨결에 배도 타 보았던 것 같다.

 

오래되고 낡았어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과 사람에게 버려진 집은

확실히 다르다. (29쪽)

 

드디어 우리집 뒷편으로 도로가 난다. 아버지께서 도로가 난다고 말씀하신지 30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야 그곳에 '도로'가 생긴다. 아버지께서는 곧 도로가 생긴다고 하셨다. 30년전부터 금방이라도 도로는 깔릴것만 같았다. 도로도 깔리고 우리집은 3층집이 되어 있어야 맞다. 아직은 자갈밭이다. 집 뒷편에 어설프게 도로 공사중인 바람에 우리집은 처량맞기 그지없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20년전부터 할머니께서는 아프셔서 오늘 내일 하셨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할머니께서 정말 내일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내일 하기에는 꽤 긴 시간이 흘러 버렸지만 아버지는 매번 일관성 있으시다. 여전히 할머니께서 아프시다며 걱정하시고 오늘 내일 하곤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가족이 함께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할때면 웃고 만다. 오늘 내일이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길 위에서의 추억은 오늘과 내일 그리고 과거가 계속 이어지는 곳이다. 그런곳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 아쉽다. 비슷한 골목일지라도 내가 살았던 곳과 아닌곳은 너무나 다르다. 많은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때 보았던 눈높이가 달라져 버려서일까, 아니면 그곳에 살지 않아서 그런건지, 또 아니면 그곳에 살던 사람이 바뀌어서 인지, 달리 보인다. 변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비켜서지 못하고 조금씩 달라져 가는 곳을 바라보면 예전의 모습을 사진속에 담아둘것을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지금은 낯설지라도 사진속에서는 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테니까. 사람 사는 모습을 사진속에서 조금씩 느껴진다. 비슷하고 개성없는 건물속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음에도 언제쯤부터인지 점점 색을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계절에 몸을 맞추는게 아니라 시스템이 계절의 변화를 못 느끼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자연이 아픈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람이 변한건지도.

 

책속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멈춘듯 하다. 어느곳도 그런곳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책이나 사진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는 또 다른 모습이듯이.

 

<yes24 리뷰어 클럽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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