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왕은 연산군, 광해군, 인조였다. 폭군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던 연산군에 대해서 먼저 읽어 보기로 했다. 광해군은 시대를 앞서갔지만, 안타까운 인물이였고, 인조는 화가 치미는 왕이였기에 읽어 보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랬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왕을 말하다>는 목적지향성이 강한 자들에 의해 쓰여지거나 주관적인 입장이 많이 들어간 역사서가 아닌 사료를 중심으로 그 시대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더욱 읽어 보고 싶었던 책이다. 그동안 배워왔던 역사와 역사서들은 일방통행이 많았다.


이 책을 간단히 소개하면 1부에서는 악역을 자처한 두임금 - 태종과 세조, 2부에서는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 - 연산군과 광해군, 3부에서는 전란을 겪은 임금들 -선조와 인조, 4부에서는 절반만 성공한 임금들 -성종과 영조에 대해 나와있다. 영조 다음의 사도세자와 정조등 이 책의 두번째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연산군의 가장 큰 문제는 학문을 싫어 했다는 점이다. 왕이 된 이후로는 더욱 학문을 등한시 했다고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지식이 많은 부분에서 근간이 되는것을 안타까운 일이였다. 연산군은 폭군도 아니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 여러사례들을 근거로 제시해준다. 연산군이 왕좌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절대적인 이유는 재산 몰수와 공신들은 물론 사림까지 적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세조와 예종은 정적들에게 빼앗은 재산을 공신들에게 나누어주었으나 연산군은 자신이 차지했다.  게다가 연산군은 사대부 전체를 적으로 만들었다. 공신 집단을 해체하기로 결심했다면 그 대체새력을 찾아야 했는데 이 경우 공신세력의 정적인 사림세력이 대안이었다. (109쪽)


연산군이 조금만 대세를 알았더라면 공부를 등한시 하지 않고 무엇이 중요한지만 알았더라도 그리 밀려나지 않았을 것이다. 

 

광해군은 아슬아슬하게 왕위에 오를수 있었다. 선조는 두살인 어린 영창대군을 올리려 하였으나 자신의 병이 깊음을 알고 광해군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선조가 죽지 않았다면 광해군은 왕좌에 앉아 보지도 못했을 확률이 높다. 


모든 권력은 독접 추구의 속성이 있다. 그러나 국왕은 각 당의 당론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왕권을 행사해야지 한 당파의 권력 독점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즉위 초 광해군은 연립정권을 구성해 전란의 상처 극복에 나섰으나 곧 소수 강경파에게 경도되어 조정자의 지위를 포기했다. 그 결과 광해군은 대북을 제외한 당파의 공적이 되었고 몰락하고 말았다. (133-134쪽)

모든것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광해군 역시 강경파에 의해 휘둘릴것이 아니라 여러 당파의 균형을 잘 맞추어야 했다. 원래 왕좌는 힘든것이여. 그렇게 광해군은 15년(1623년) 3월 12일 쿠데타로 인해 끝나버렸다.


한치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왕좌 역시 참으로 허무한 것이다. 그 당시에 그들도 그렇게 스러질 줄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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