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묻고 고전이 답했다 -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한 삶을 이기는 68가지 고전문답
김헌.김월회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금 고전 철학 책이 쏟아지고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혼란의 시대에 스토아 학파과 꽃피는 이유가 있다. 현명한 행동주의라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이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는 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집착 때문에 고통이 따르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어찌 내려 놓을 것인가?


인생에 있어서 정해진 해답은 없으니까, 책만 읽는다고 해서 답안을 얻는 것도 아니다. 책은 뭐라고 해야할까?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혼자 걷고 있는데 혼자가 아니라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지도 못했다. 요즘엔 이북이 잘 나오고 읽어주니까 귀로 듣는 게 큰 도움이 된다. 눈으로 책을 읽는 것과 귀로 듣는 것은 또 같은 듯 다르기도 하다. 예전엔 책장을 넘겨야 맛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드라마처럼 읽어 주는 책도 마음에 든다. 무슨 말이 듣고 싶어서 이 책을 들었을까? 소크라테스는 정해진 답이 있다고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리스인들이 왜 싫어했는지 이해가 간다. 


책 띠지에 보면 저자 두분의 사진이 보인다. 워낙 유명한 분들이시고 말씀도 잘하시고 책도 잘 쓰신다.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한 삶을 이기는 68가지 고전 문답에 대해서 질문하듯 고전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1부는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2부는 누가 시대를 움직이는가, 3부는 세상은 왜 이토록 불완전한가, 4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낼 것인가,로 나누어져 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듯이, 당연하게도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마음이 아프니까 몸도 덩당아 안좋고 몸이 아프니까 마음까지 우울해진다. 제우스는 자신을 도와 큰 공적을 세운 프로메테우스를 져버렸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잘 알았기에 그가 가진 예언 능력을 활용해서 제우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어 자신을 풀어 줄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 줄 동아줄은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는데 혼절 상태면 어쩌지. 


뽀로로가 노는 게 제일 좋다고 했는데 의대 갔다며 사람들의 울분을 산 적이 있다. 이게 이렇게 논란이 될 일인가 싶어서 기사를 보며 좀 황당했다. 띄어쓰기가 잘못되어서 뜻이 잘못 전달된 것이 다양한 밈으로 확산되어 일이 커져 버렸다고 한다. 결국 뽀로로가 나와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말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그만큼 지금 교육 문제가 심각함을 체감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창 놀아야 할 나이에 학원을 몇 개 다니는 지 모르고, 최소한 9시간은 자야 할 아이들이 피곤에 절어 있다. 공자가 공부의 최고봉으로 친 것은 배움이 아니라 '놂'이었다고 한다. 공자는 그렇게 알아주면서 공자의 사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다. 이럴땐 아마 공자는 구시대 유물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잘 논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노는 게 공부에 이론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확실하게 써주셨어야지. 20대는 이제 150세 시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단기전 달리기를 통해서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버티어 나가야 할지, 우리 세대도 남은 세월이 길다면 길겠지. 


매일의 힘든 일상을 이야기하다 보면 신화 속 인물이 등장하는데 시시포스다. 집채만 한 바위를 높은 산 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일, 그리고 계속 반복된다. 시시포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지만 제우스의 미움을 사고 끝까지 저항한 끝에 결국 끝나지 않는 형벌을 받게 된다.그런 시시포스도 죽고 고전에 나온 인물들 모두 끝까지 버틸 만큼 버티다 죽었다. 조조가 살아서 현재에 있었다면 그는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지 않아서 다행인 것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전쟁 좋아하고 그런 인물들에게는 영생이 주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사람은 다 죽지만 말이다.  





해가 뜨는 것처럼 밤이 되면 지고 일인자도 자신이 추락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죽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에 있으면 아래가 잘 보일 것 같지만 전혀 아닌 것 같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은 욕심 뿐인가 보다. 정치적 동물은 언어로 통치한다. 다만 그 언어가 거짓 화술이 아닌,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진심이 몇 퍼센트나 담겨 있을지 의문이다. 하긴 남 탓할 입장은 아니다. 


아리스토파네스와 플라톤은 정치 지도자의 길에 여성을 막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그리스에서는 철학적 논의 안에서만 그 뜻을 펼칠 수 있었다. 21세기에 여성이 얼마나 능력을 펼치며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느냐에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그런 척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합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그냥 해도 될 일을 더욱더 힘에 부치게 해야한다. 죽는 소리를 해야 힘들구나 싶은데 말을 하지 않으면 당연히 모를 수 있다. 그렇다고 말하면 '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다. 대화도 서로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가능하지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말이 대화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요즘엔 사람들이 인공지능과 대화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사람을 대체하는 부분이 많아져 우리가 설 자리가 없을 까봐 걱정하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아직은 이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모든 지식에 대한 증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것 같다. 관련된 책을 읽으며 아직은 꽤 부리는 인공지능 느낌을 받았다. 인공지능이 말하는 지식이 다 맞지 않을 수 있고 확실한 증명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고 있는지 모른다. 점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든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거기에 맞는 전문 지식을 가져야 하고 거짓에 현혹되지 말고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의 해답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있다고 해도 싫을 꺼면서, 거부할 거다. 철학은 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을 오늘은 그냥 삼켜버리겠다. 오늘은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이라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라고 하지만 매일 그러면 너무 지친다. 인공지능 나오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다리가 되어주고 병도 빨리 치료해주고 영화속에서만 가능한 일인가? 조금 더 지나면 좋아지려나. 


지금이 바로 제일 좋을 때니까 잊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