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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7월
평점 :
흔히 문학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고 한다. 따라서 나도 이 인물들은 펜로즈 계단에서 영원히 맴돌게 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러면 그들은 더 위로 올라가거나 더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항상 동시에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 (12쪽)
이 책은 1933년 2월 20일 그날 오후 국회 의장 궁전에서 독일 대기업의 총수 스물네 명이 모인 비밀 회동 이야기로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그들이 모여서 모의작전을 시작한 것이였다. 독일은 자금이 부족해서 초청 인사의 대다수가 곧바로 수천 마르크를 쏟아부었고 구스타프 크루프가 1백만 마르크, 게오르크 폰 슈니츨러가 4만 마르크를 헌금한 덕분에 두둑한 금액이 수금되었다. 책표지에 나온 인물은 1백만 마르크를 낸 구스타프 크루프라고 한다. 느낌상으로는 게오르크 폰 슈니츨러와 함께 나왔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들은 죽었지만 진정으로 죽지 않았다. 그 뼈와 살의 작은 덩어리가 흙 속에서 썩어 문드러져도 왕좌는 그대로 남는다. 그들의 이름은 바스프, 바이엘, 아그파, 오펠, IG 파르벤, 지멘스, 알리안츠, 텔레풍켄이다. 우리는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을 알고 있다. 심지어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사물의 형태로 도처에 존재한다.(25-26쪽)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범 기업들이 아닌척 하며 여기저기 우리 생활속에 친밀하게 살아가고 있다. 자각하지 않으면 망각하게 된다.
독일은 오스트리아에 손을 뻗쳤다. 온갖 권력을 쥐고 있던 돌푸스 총리가 나치당에 의해 암살당하고 후임자는 슈슈니크였다. 1938년 2월 12일 슈슈니크는 히틀러를 만나러 갔다. 거기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은 슈슈니크가 히틀러에 의해 농락당하고 모욕적인 조약에 합의하고 만 나약하고 바보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슈슈니크는 히틀러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의 고향을 내어주면 어떨지, 결국에는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치에 동조한 전범들이나 기업인들, 그리고 거기에 직접적인 동조를 하지 않았더라도 암묵적인 동의를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로인해 벌어질 끔찍하고 참혹한 일에 대해서 그들은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 악마와 손잡지 않아도 인간은 충분히 악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철강산업의 세계적 선두 기업티센 크루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크루프 가문에 대한 짧은 설명을 찾을 수 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나치 당원이 되었으며 마무리는 감동적 일화로 끝맺음을 한다. 브루클린의 유대인들이 보상을 요구했지만 그의 아들 알프레트는 보상금을 지불하기 전까지 장장 2년동안 협상을 지연시켰다고 한다. 생존자 한 명당 2,250달러를 지불하기로 했고 청산금치고는 아주 소액이였다.
오스트리아 병합을 인준하기 위해서 국민 투표가 실시되었는데 반대파들은 체포되고 오스트리아 국민 중 99.75%가 독일병합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그러나 병합 직전 단 일주일 동안 1천 7백 건이 넘는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곧바로 신문에 자살을 보도 하는 것이 저항 행위가 될 것이었다. 탄압이 그들을 침묵하게 했다. 그래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정확한 숫자는 미지의 영역에 남겨졌고 그들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도 말할 수 없지만 동일한 원인이 도사리고 있었다. (131쪽)
< 이책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