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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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라는 제목처럼 삶의 어떤 무기가 되어줄지 알고 싶다. 철학이 궁금해서 관련책을 읽으면 점점 미궁속에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글쓰기 관련된 책을 읽을때도 그렇다. 결국 더이상 돈낭비 하지말고 그럴시간에 한줄이라도 써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당연한 것을 몰랐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겠다. 바보처럼 눈앞의 것을 누군가 꼭 집어주어야만 아는 사람도 있다. 자신앞의 줄세워져 기다리는 문제들에 대해서 해결방법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몰라서일까, 정말로 몰라서. 아마도 그것의 혹독한 대가를 외면하고 싶어서일 확률이 크다.

 

예전부터 철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현명할 줄 알았으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상주의자나 각박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했던 것으로 느껴진다. 계급사회에서 이상을 꿈꿀수 있는 사람은 귀족출신이나 소수의 사람들뿐이였다. 그외에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철학따위 논할틈이 없었을테지.
내용중에서 현실의 쓸모에 기초한다는 부분에서 어떤부분이 쓸모있는 부분일지 잘 활용해보고 싶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사람도 있다지만 하나를 알려주면 간신히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방향을 알려줘도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무릎을 '팍'치면서 알았어 하는 반응을 해야하는 걸까. 알려만 주면 뭐하나 행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뛰어난 리더의 조건에서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이 등장한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희생은 어쩔 수 없다.' 라는 힘을 실어주기에 그시절 독제자들에게 바이블이였다고 한다. 철학책은 손에 꼽게 읽어 그 책은 그나마 인상깊게 읽었지만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카리스마 넘치는 강력한 군주가 멋져보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사람의 목숨이 파리목숨보다 못할때라 죽으라하면 죽어야 하고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절이란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 얼마나 살기좋은 세상인지 모른다. 책으로 읽은 민주주의는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체계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론과 현실은 동떨어져 있다. 유토피아를 읽으면서 얼마나 비웃었는지 모른다. 주변국가의 공산주의 체계가 어떤지 알기에(아는게 맞는것인지 의문이 든다.) 유토피아에서 말하는 생활은 정말이지 비현실적이라 이 이론에 반해 공산주의를 추구한 사람들은 자신의 오만이 하늘을 찔렀다는 것을 깨달았을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이 말해주듯, 민주주의 역시 수많은 문제를 안겨다 주었다.  민주주의를 앞세워(이또한 소수를 희생시킨다.)다수의 힘을 보여준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다수의 의견이 정답일 뿐이다. 군주론에서도 어떠한 비도덕적인 행위도 권력자에게 허용된다 하지 않았고 비도덕적 행위로 인해 미움을 사고 권력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부도덕성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리더란 절대권력이 아니라 때때로 고독하고 어떤 욕이라도 얻어먹을 각오로 책임을 떠안는 일이지만 그 자리에 오르면 그누구도 욕먹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떻게 시스템은 인간을 소외시키는가에서 '소외'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 귀결로 네 가지 소외가 발생한다고 하였다. 첫째는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로 자신의 노동으로 생산한 물품이지만 자신의 것이 아니며 생산품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둘째는 노동으로부터의 소외인데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어야 독립된 자신으로 설 수 있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요즘에는 노동을 심하게 피해다니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혹은 힘든일은 피할수 있으면 피하고자하는 마음이 크다. 편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크므로 딱히 뭐라 할말은 없다. 셋째는 유적소외로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노동자는 기계적인 부품이 되고 만다. 요즘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부품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넷째는 타인으로부터 소외로 노동의 대가나 기쁨보다는 생산성과 타인과의 경쟁으로 인해 인간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소외'가 현재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다. 규칙이나 시스템으로 사람을 통제하려 하면 여기서 자연히 '소외'가 발생하고 윤리정신이나 가치관은 이제 글로만 배우는 시대인가 싶어 걱정이 앞선다. 철학이론에 현재 문제점을 대입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철학적인 부분에서는 교과서처럼 말하고 현실에 반영되는 이론은 난제를 풀어주기보다 던져주는 듯하다.

 

 

교도소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교도관가 재소자의 역할 실험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역할에 충실하였을 뿐 상대방에게 나쁜 마음은 없었다는게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그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충격이였을 것이다.

나치정권시절 사람들을 경악케 했던 사람들은 평범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맡은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그리하여 더욱 세분화하여 일을 나누고 그 사람들의 양심의 짐을 덜어주었나 보다. 이 글을 읽으며 아무 생각없이 맡은일에 충실하다보면 어떤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특히 사회구조 관련 기업체계등 병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바꾸려면 사회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필요할텐데. 눈부신 변화의 바람을 기대하기에 시간이 걸리겠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어 적절한 대안방법이 될까 싶은 의구심이 든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상황에 따라서 절적한 대처가 필요하다. 47번째 조급해하지 마라, 세상은 그렇게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라는 글을 읽으며 역사를 돌이켜보면 선조님들도 이런날이 올꺼라 생각지 못하셨을 것이다. 최소한 100년은 걸리니, 후대를 위해서 우리도 행동해야 한다.


오늘날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만으로 살아내기엔 퍽 고달파졌다. 머리가 아닌 신체적 표지 가설에 더 귀를 기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예로부터 사람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지금이야 말로 두뇌가 아닌 마음을 열어야 할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부분에서 철학은 어렵지만 마음의 빗장을 열 수 있는 희망의 등불이 되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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