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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면장 선거
(0610)
이라부 시리즈 3권을 발간한 즉시 다 읽었음에도, 리뷰는 이번에 처음 작성한다. 담아두고픈 표현을 여럿 기록한 소설이라던가, 특별한 영상을 그려나갔던 소설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다 읽고 나서 그리 나쁘다는 감각이 없기에, 다시금 이라부 시리즈가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어쩐지 후일담이 쭉쭉 이어질 것 같은 어느 한 ‘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척 보기에 터무니없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지극히 가벼운 소재와 분위기를 띄우기도 하는 소설이다. 통통거리다가 마구 엇나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을 보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꾸만 책을 뒤적거리게 만드는 원동력은, 내게는, ‘이라부’라는 인물의 특성덕분. 내게 비쳐지는 그는, 사람에 대한 차별대우가 전혀 없다. 그 상대가 누구든 평등하게 대한다. 그 사람이 정치가이든, 유명 연예인이든 일절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 위치가 어쨌단 말인가, 라는 뉘앙스가 팍팍 풍긴다. 간혹 철딱서니 없음에 살짝 꿈틀 반응을 하며 인상을 찡그리게 되었지만, 본능에 조건반사처럼 대범하고, 솔직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거침없다는 것에서 좀 더 점수를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자신이 가진 불안, 절망, 자괴감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 치유할 수 있다는 의식의 바탕. 나 자신이 다르게 해석한 건지 모르지만, 이라부의 대사들을 보고 있으면, 매번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예전에 미소 수프 리뷰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한 문제는 (그 증상이 같건 다르건)집합과도 같은 유형이 있긴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만이 소화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표출하는 이미지가 비슷비슷하다고 해도, 세부적인 면, 그러니까 껍질 안의 양상들은 제각각 복잡하게 얽혀 있을 테니까.) 카운슬링의 경우는 약간의 도움을 줄 뿐, 풀이하자면, 그 현재의 상태를 좀 더 완화시킬 수 있는 작용은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멀찌감치 방관만 하는 게 아니라(대개 소설의 초반에는 그런 분위기가 흐른다), 점점 추리소설에서 단서를 제공하듯 심리적으로 임시 안식처를 형성해가며, 함께 한다는 손 내밀기가 있다.
그리고 핵심을 찌르는 단어나 대사들이 속속 발견된다. 이라부의 처방이 바로 그러한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상담 과정에서 일단 이야기로 털어놓는다는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소법의 하나랄 수 있으니까.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한다면, 돌파구는 어디든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주위의 소소한 관심&사랑도 한몫을 하겠지. 나 자신도 그런 경험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소설에 드러난 인물들의 공포는 정말이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요소들이었다.
어쨌건, 나열한 사항들이 열광 모드에 발을 푹 담그고,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 계기다. 이 책의 하드커버를 덮고 난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재충전’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유쾌한 소설을 쓰며 매달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안 되고(우울의 바다에 풍덩 빠져 몸을 내맡긴 채였다.), 갑갑한 기분을 다소나마 풀고자 질렀던 소설이었다. 술술 읽혔던 것에 비해, 리뷰는 좀 더 신중한 자세로 쓰고 싶었다.
시종일관 이라부의 능청스러움에, 벌어지는 소동에 낄낄거리며, 전체적 스토리라인 자체보다는 작은 에피소드에 주목했다. 필수조건으로 따라붙는 ‘주사’는 자극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확정적 답변은 하지 않음에도, 스스로 미로 탈출을 위해 열쇠를 찾아보라는 그런 의미가 담긴. 손에 틀어쥔 것을 스르르 내려놓아야 강박증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가 가진 것을 과감하게 버리라는 거. 스스로의 선에서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기기란 밤하늘에 흐르는 별을 헤아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움을 동반한다. 나는 그런(책에서 말하는) 결단력을 아직 갖추지 않은 듯하다. (특히, 취미생활에 끌어들이는 소품에 한해서는.)
각각 단편에 등장하는, 어쩌다 쓸데없는 묘사(한 문장 혹은 두 문장)가 끼어들기도 했다. 책을 읽은 분이라면 짐작할 수 있는, 주사를 놓는 장면에서. 특별히 제시되지 않아도 아무 지장을 주지 않는 예시나 근거와도 같다. 연방 툴툴거리다가, 다시금 되짚고 했던 기억이 있다. 차라리 <카리스마 직업>의 마지막 풍경에서 밴드의 연주 묘사와 그녀의 가사가 내게는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밴드의 비판적인 가사 타입에 무척이나 열광해서인지는 몰라도.)
[이라부는 정말이지 불가사의한 인간이다. 이 섬에 온 지 불과 2주만에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아니,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건 너무 치켜세우는 걸까. 어쨌거나 이 섬에 희귀한 생물이 찾아온 것이다.]
밑줄 긋기 끝부분에 기록했던 것처럼, (나 자신의) 이라부에 대한 다른 각도의 판단이 깔끔하게 정리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