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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3 (완전판) - 할로 저택의 비극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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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그녀에게 사랑이란 소유하는 것. 그리고 소유란 이용,  수익, 처분의 자유를 말한다. 그녀는 그런 사랑을 원했고 그렇게 밖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크리스토에 대한 그녀의 욕망은 그런 것이었다.


헨리에타: 그녀는 사랑에 소모할 일부를 따로 떼어두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에너지, 감정, 시간, 재능.....사랑에 쓸 만큼만 떼어놓고 그만큼만 사랑에게 허용했다. 그녀를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분배했다. 그리고 어떤 것도 할당된 그 이상을 넘보지 못하게 했다. 더 필요하다고 소리쳐도, 애원해도....그녀는 차갑게, 그리고 고요하게 지켜보기만 할뿐. 조금의 동정심도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그녀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에 대한 사랑에 올인할 수 없는 사람. 일부만을 사랑에 할당하는 사람. 그것이 그녀의 사랑이었다.


게르다: 그녀의 모든 것을 아낌 없이 주는 사람. 그녀는 그렇게 사랑했다. 하지만 조건 없는 사랑은 아니었다. 비굴함도, 비참함도 참을 수 있는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녀의 사랑은 숭배였다. 완벽한 존재에 대한 숭배. 그래서 기꺼이 헌신했다. 불완전한 존재인 자신은 응당 그러해야 하고, 또한 그것이 불완전한 존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과 행복이라 생각했기에. 완전한 대상에게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감사했다. 그것이 그녀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크리스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크리스토는 완벽한 존재이고, 그러해야만 했다. 그녀도 역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크리스토: 그에게 베로니카는 벗어날 수 없는 상처였고, 헨리에타는 영원한 목마름이었다. 그는 무조건(사실은 무조건이 아니었지만, 그는 그렇게 느꼈던) 헌신하는 게르다를 늘 무시하고 업신여겼지만, 진심으로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여자는 게르다 하나뿐이었다고 헨리에타는 말한다. 그리고....사람은 결국 자신의 것을 사랑하고 자신의 것을 지키고, 자신의 것에게 돌아간다고. 그가 베로니카를 잊지 못하는 것은 상처를 돌보지 못해서이고, 자신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영원히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게르다를 업신여기는 것은 게르다는 너무나 당연한 자신의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 크리스토가 사랑하는 사람은 게르다라고.


소유하지 못해서 분노하는 베로니카, 크리스토보다 크리스토의 진심을 더 잘 아는 헨리에타(그러니 섭섭했겠지), 숭배했던 대상에 대한 실망과 그로 인한 혼란의 게르다, 모든 것이 너무 늦어 버린 크리스토.....
어긋난 사랑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사람마다 가진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다. 그리고 한 사람이 가진 사랑의 모습도 한 가지가 아니다. 사랑이 고통스러운 것은 누구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선택할 만큼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자신의 그릇만큼 사랑하고, 상대방이 담을 수 있는 만큼만 줄 수 있는....그러니 사랑에 우월을 따질 수도, 점수를 매길 수도 없다. 다만, 그릇이 반듯하도록 열심히 다듬고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사랑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사람부터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2009.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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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펭귄클래식 4
조지 오웰 지음, 최희섭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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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 좀 들어봐. 내가 오늘 속상하고 답답해서 너한테 전화를 했어. "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있지....선배 A가 M에게 남에 학교에는 무슨 일로 왔냐며, 당신네 학교나 가보라고...후배들이 다 보는 앞에서, 자기가 동생이면서 그런 말을 하는거야. 내가 나설 일은 아니지만....예전에 들은 말도 있고 해서....예전에 A가 뭐라고 했냐 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M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고. 어떻게 OO대학 학부까지 졸업하고 대학원을 S대학으로 갈 생각을 다 하냐고....(해석하자면, 학부 서열이 낮은 대학원에 입학한 걸 비웃는 표현이었다. ) 그때도 내가 뭐라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아서 참았는데, 오늘도 깐죽거리는 거 보니까 못 참겠는거야. 후배들 다 보는 앞에서 그게 뭐하는 짓이니...그래서 한 마디 했지. 그랬더니, 후배들 보는 앞에서 후배인 나한테 한소리 들은 게 자존심 상했는지...사람들 앞에서 날 창피를 주는 거야. 후배들 앞에서 부끄럽고, 창피하고....그래서 속상해. 내가 속상한거면, 나도 후배들 앞에서 선배한테 그러지 말아야 했으니까 내가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내가 잘못한 거니?"


불의를 참지 못하는 내 친구는 그날도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해 한 마디를 하고는 상처를 받았다. 그 친구를 보니 내 자신이 살짝 부끄러웠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무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용히 속으로만 생각했을테지. A 선배와는 친하게 지내지 말아야지.  순수해서 발끈하는 내 친구, 그래서 나는 그녀가 좋다.


사실 선배A와는 개인적으로 전혀 친하지 않아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다만 의외였던 것은 그가 정치적으로 좌측에 치우친 주장을 하는 모습을 자주 봤었고, 진보를 주장해 왔기 때문이었다. 진보를 주장은 하는데 진보 성향은 아니었나 보다. 대학 서열화를 지지하고 계급을 나누어 하위계급(자신이 그렇게 규정한)을 비웃는 것을 보면. 그렇다면 그가 주장하는 것은 사회 평등과 진보가 아니라 기득권의 탈취이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누구도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받는 사회가 아니라, 자신이 기득권인 세상이었다. 잘 알지 못하면서 판단하는 것은 나쁜 행동이지만, 그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평가와 그의 모순적인 언행으로 볼 때, 아마도 나폴레옹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봐온 진보 세력들 때문에 나는 모든 진보를 불신했었다. 그들은 대부분 선배 A처럼 아이러니 투성이었다. 가지지 못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비난하면서, 자신이 가진 기득권으론 철저하게 덕을 보려고 드는. 그들이 진보를 주장하는 이유는, 기존 기득권에 대한 피해의식과 질투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존 기득권을 빼앗아 내가 가지겠다는. 그 수단으로 진보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대한 반발 심리로 나는 보수가 좋고 보수를 지지한다고 아주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다. 나폴레옹보다는 차라리 존스 씨가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의 위선은 악의 최고봉이다.)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는 순간, 그는 더이상 진보가 될 수 없는거야. 진정한 진보는, 자신이 진보라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만 가능해."
이전 리뷰에 등장했던 나의 아주아주 똑똑한 친구가 남긴 또 하나의 명언이다. 하지만 주장하지 않으면 진보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그리고 진보가 기득권이 되지 않으면 진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진보가 기득권이 되면 더이상 진보가 아니게 된다.
그래서 스노볼이라 해도 별반 다르지 못했을까?
진보의 불가피한 딜레마일까?


모든 진보를 나폴레옹이라 착각했던 '20대 초반의 나'는 진보에 적대적이었다. 지금도 진보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나폴레옹을 더 자주 보는 관계로, 진보에 대한 불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더이상 선의의 진보까지 더럽히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그들을 구별해 내기엔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간다.
진보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 바탕을 두어야 진보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나폴레옹이다. 진보를 수단으로 기득권을 탈취하려는,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의 소재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나폴레옹말이다.   

 

2009.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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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 페론 - 부유한 자들의 창녀 가난한 자들의 성녀, 인물탐구 시리즈 4
알리시아 두호브네 오르띠스 지음, 박주연 옮김 / 홍익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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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지만 여자연예인의 스캔들, 미혼 여성들의 사생활, 기혼 여성들의 부정에 대해 가장 엄격한 잣대를 대는 집단은 여성이야. 한 여성이 사회에서 매장될 때, 가장 앞장서서 욕하고 가혹한 처벌을 바라는 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구. "
"그런가....? 아니에요.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
"생각해봐. 너는 똑바로 사는데 제멋대로 산 여자들이 너보다 결혼도 잘 하고 잘 살면 억울하지 않겠어?"


그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잘 하고 잘 산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그 자리가 공석이 되어도 내 자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자리라는 보장도 없다.(남에 떡일 때 커보이는 법이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삶을 사는 것이고 저마다의 자리를 찾는 것인데 억울하다는 건 말이 안된다. 그러니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자의 적이 여자라는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말대로 한 여성의 과오(혹은 과오가 아니더라도 과오라 강요되는)에 대해 더 차갑고 경멸에 찬 시선을 보내는 사람, 더 증오하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일 때가 많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여자가 복잡한 만큼이나 그 이유도 복잡하겠지만, 돌아보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에바는 아르헨티나의 벽촌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녀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그녀의 출생을 단 한 단어, '사생아'라고 표현하는 데서부터 말이다. 하지만 '사생아'라는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처럼 그녀는 출생부터 부정하고,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생명이었던 것이 아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주 떳떳한'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었다. 그 시절 아르헨티나에서 남자가 본처 외에 다른 여자를 두는 것은 비난받을 행동이 아니었고, 실제로 에바에게는 어머니가 같은 형제가 셋이나 더 있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녀는 아버지의 성을 사용할 수 없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어느날 갑자기 그들을 모두 버렸다. 그에게 에바의 어머니는 '현지처'의 의미 정도였던 것 같다. 자신이 두 가정을 영위할 능력이 없어지자 혼자 그만두겠다고 결정해 버렸고, 자신의 결정에 따라 그는 떠났다.
준비되지 않은 순간 갑작스럽게 버림받은 그녀의 어머니는 여자로서의 슬픔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녀에겐 먹여 살려야 할 자식이 넷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녀의 딸들은 빼어난 미인이었다. 그녀는 에바와 그녀의 언니들의 처신을 엄격하게 단속했다. 빼어난 미인이지만 몸가짐이 정숙한 여인이라는 점은 출생의 핸디캡을 '용서'받을 수 있는 면죄부가 되어 주었다. 에바의 두 언니는 일등 신랑감(전문직+책임감+....그래서 안락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을 만나 '평범한' 아내가 되었다. 에바의 어머니는 인생의 목표를 달성했다. 뿌듯했다. 그리고 이제 에바의 차례였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것을 원했다. 배우가 되는 꿈을 안고 살았다.


"나랑 자든지 아니면 다른 직장을 찾든지!"
극단에 들어간 이후 그녀는 끊임 없이 이 말을 들었다. 극단을 옮겨도 소용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힘도 없는 젊은 여성이(20살이 되기도 전이었다.) 처음 사회에 나와서 만난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었다.
꿈을 포기해야했을까? 누구도 그렇게 말할 권리는 없다.
에바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동료배우들은 그녀의 사생활을 폭로해서 그녀를 극단에서 쫓아냈다. 특히 여자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삶은 너무 버거웠다. 근래에 우리나라의 한 신인 여배우가 그 버거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했을 때, 예쁜게 죄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나마 동정심이 섞인 표현이 "예쁜게 죄다."였다. 죄가 없으면, 형벌 없다는 우리의 형법원칙을 생각해 볼때, 형벌(법적인 형벌은 아니지만, 그보다 가혹한 인생의 형벌)이 있는 걸 보니 죄는 죄인가 보다. 권력이 없는 아름다움은 형벌을 불러온다. 그리고 외롭다. (형벌을 피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거나, 아니면 이미 받은 형벌로 괴로워하거나, 어느 쪽이든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는 형벌을 홀로 감당해야 하니 외롭다. )


그녀의 사생활은 그녀가 페론을 만나고 결국엔 영부인 자리에까지 올랐을 때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그녀의 정적들에겐 아주 좋은 무기였다. 사람들 참 치사하고 비겁하다. 하지만 가장 치사하고 비겁한 사람들은(내가 생각하기에) 그녀의 정적이 아니라 따로 있었다. 사회주의 성향의 여성단체들.
에바는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사회의 가장 밑바닥 인생들, 가장 힘없고 약한 존재들을 구원하려 애썼다. 페론 정부의 사회주의 정책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녀의 신념과 의도만은 순수했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진정으로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정책이었다. (물론 지도자는 신념과 의도가 숭고한 것만으로 책임을 다하였다고 할 수 없다. 지도자의 한 마디와 행동은 그 영향력이 큰 만큼 신념, 의도뿐만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도 막중하다. 그래서 페론 정부의 정책들이 비난을 받은 것을 부당하다 말할 수는 없다. ) 그녀는 여성단체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권리들을 인정하는 정책들을 파격적으로 시행했지만(정치적 부담이 큰데도 말이다.), 엘리트 여성들로 구성된 사회주의 성향의 여성단체는 거부했다. 그녀들은 말했다. 여성의 권리는 여성의 힘으로, 여성의 손으로 쟁취할 것이라고. 몸을 팔아 얻어낸 정책은 우리에게 수치일뿐이라며 그녀들은 에바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지난 10년간 법조계에 수많은 여성이 진출하고, 여성 국회의원, 여성 장관, 여성 총리가 탄생해도 정작 나아진 건 별로 없어. 사회는 물론 변했지. 하지만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것,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변하지 않았어. 왠줄 알아? 변화를 이루어낼 힘이 있는 여자들은 정말 여성으로서 억울한 건 경험해 보지 못한 여자들이니까. 나와 너도 마찬가지야. 그녀들은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만 요구했을 뿐이야. 호주제 폐지, 종중 권리, 양성 평등 할당제....물론 다 필요한 것들이야. 그만큼도 대단한 업적이지. 하지만 최우선 순위는 아닐거야. 엘리트로서, 같은 계급의 남자에게 느끼는 불편함과 핸디캡을 해결했을 뿐이잖아. 생존과 인권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어.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건, 아직 가진게 없고 젊다는 것 뿐이야. 우리도 뭔가를 가지고 나이가 들면 똑같아지겠지. 지금도 생존과 싸우고 있는 여성의 눈엔, 우리도 똑같을 뿐이야. "
아주아주 똑똑한 내 친구가 이런말을 했다. 그래서 결국 여성도 여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에바 시대의 여성단체가 선례가 되어 주었다. 정말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그래서 나의 20대 초, 중반은 정치적 중립을 지향했었다. 정치에의 중립을 포함한, 모든 정치적 문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가치판단의 유보. 나의 아고라는 일기장으로 그쳤다. 사회에 대한 나의 부채의식은 헌혈과 봉사활동(헌혈에 좀 치우친)으로 갚아보려 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20대의 사고라고 하기엔 비겁한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다지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숲이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살아서 모든 것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변화에 한 손 거들며 살아야겠다. 그것이 꼭 적극적인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도 선대의 그런 노력으로 세워진 세상이기도 하니까. 


에바 페론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성녀라고 불리기도, 누구는 세기의 악녀 또는 창녀라고 부르기도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에바의 죽음 직후 그의 세력들은 남김 없이 숙청당했고 오래지 않아 페론마저 실각했다. 그녀가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겠지만,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기록을 신봉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녀는 정말로 열심히 살았고 운명 앞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했다. 어려운 시절을 잊지 않았고, 그래서 그 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 애썼다. 지도자로서의 실책은 엄하게 비판 받아야겠지만, 운명에 맞서 싸우고 가혹한 삶을 견뎌낸 그녀의 모습은 박수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에바 페론에 대한 책 중(내가 읽어본 바로는) 가장 에바 페론을 옹호하는 책이었다. 한쪽에 치우친 감도 없지 않으니, 다양한 견해를 접해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2009.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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