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펭귄클래식 4
조지 오웰 지음, 최희섭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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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 좀 들어봐. 내가 오늘 속상하고 답답해서 너한테 전화를 했어. "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있지....선배 A가 M에게 남에 학교에는 무슨 일로 왔냐며, 당신네 학교나 가보라고...후배들이 다 보는 앞에서, 자기가 동생이면서 그런 말을 하는거야. 내가 나설 일은 아니지만....예전에 들은 말도 있고 해서....예전에 A가 뭐라고 했냐 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M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고. 어떻게 OO대학 학부까지 졸업하고 대학원을 S대학으로 갈 생각을 다 하냐고....(해석하자면, 학부 서열이 낮은 대학원에 입학한 걸 비웃는 표현이었다. ) 그때도 내가 뭐라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아서 참았는데, 오늘도 깐죽거리는 거 보니까 못 참겠는거야. 후배들 다 보는 앞에서 그게 뭐하는 짓이니...그래서 한 마디 했지. 그랬더니, 후배들 보는 앞에서 후배인 나한테 한소리 들은 게 자존심 상했는지...사람들 앞에서 날 창피를 주는 거야. 후배들 앞에서 부끄럽고, 창피하고....그래서 속상해. 내가 속상한거면, 나도 후배들 앞에서 선배한테 그러지 말아야 했으니까 내가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내가 잘못한 거니?"


불의를 참지 못하는 내 친구는 그날도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해 한 마디를 하고는 상처를 받았다. 그 친구를 보니 내 자신이 살짝 부끄러웠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무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용히 속으로만 생각했을테지. A 선배와는 친하게 지내지 말아야지.  순수해서 발끈하는 내 친구, 그래서 나는 그녀가 좋다.


사실 선배A와는 개인적으로 전혀 친하지 않아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다만 의외였던 것은 그가 정치적으로 좌측에 치우친 주장을 하는 모습을 자주 봤었고, 진보를 주장해 왔기 때문이었다. 진보를 주장은 하는데 진보 성향은 아니었나 보다. 대학 서열화를 지지하고 계급을 나누어 하위계급(자신이 그렇게 규정한)을 비웃는 것을 보면. 그렇다면 그가 주장하는 것은 사회 평등과 진보가 아니라 기득권의 탈취이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누구도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받는 사회가 아니라, 자신이 기득권인 세상이었다. 잘 알지 못하면서 판단하는 것은 나쁜 행동이지만, 그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평가와 그의 모순적인 언행으로 볼 때, 아마도 나폴레옹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봐온 진보 세력들 때문에 나는 모든 진보를 불신했었다. 그들은 대부분 선배 A처럼 아이러니 투성이었다. 가지지 못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비난하면서, 자신이 가진 기득권으론 철저하게 덕을 보려고 드는. 그들이 진보를 주장하는 이유는, 기존 기득권에 대한 피해의식과 질투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존 기득권을 빼앗아 내가 가지겠다는. 그 수단으로 진보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대한 반발 심리로 나는 보수가 좋고 보수를 지지한다고 아주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다. 나폴레옹보다는 차라리 존스 씨가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의 위선은 악의 최고봉이다.)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는 순간, 그는 더이상 진보가 될 수 없는거야. 진정한 진보는, 자신이 진보라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만 가능해."
이전 리뷰에 등장했던 나의 아주아주 똑똑한 친구가 남긴 또 하나의 명언이다. 하지만 주장하지 않으면 진보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그리고 진보가 기득권이 되지 않으면 진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진보가 기득권이 되면 더이상 진보가 아니게 된다.
그래서 스노볼이라 해도 별반 다르지 못했을까?
진보의 불가피한 딜레마일까?


모든 진보를 나폴레옹이라 착각했던 '20대 초반의 나'는 진보에 적대적이었다. 지금도 진보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나폴레옹을 더 자주 보는 관계로, 진보에 대한 불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더이상 선의의 진보까지 더럽히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그들을 구별해 내기엔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간다.
진보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 바탕을 두어야 진보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나폴레옹이다. 진보를 수단으로 기득권을 탈취하려는,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의 소재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나폴레옹말이다.   

 

2009.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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