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런 선입관이 있다.

'나는 오늘 내 존재가 무척이나 하찮게 여겨졌다. 그래서 슬펐다.'

라는 문장 앞에서
화자가 미혼여성일 때와 기혼여성일 때의 전달되는 감정과 깊이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ㅡ 미혼일 경우, 저 문장은 한 개인의 실존에 대한 문제로 접근이 되지만, 그래서 '슬프다'라고 직설적으로 표현된 감정의 진술이 오히려 건조하게 들려 더욱 슬픈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만,
ㅡ 기혼자일 경우, 저 문장이 도래되기까지의 여성의 일상이 낱낱이 상상되고, 독자의 사고체계에 따라서 함부로 폄하될 가능성이 존재된다. 조금 무서운 직관적인 예를 들자면, 남편과 싸웠구나/아이들에게 시달렸나보다/하루종일 집안일에 힘겨웠나보다/맞벌이가 쉽지 않지 등으로 예상하기 쉽다는 것이다.
ㅡ 미혼일 경우, 실존의 흔들림으로 인한 고민이므로, 하나의 객관화된 객체의, 독립적 개인에 대한 의식, 그 의식의 진술로 작용되지만
ㅡ 기혼일 경우, 객체는 사라지고, 주변인과 주변상황에 묻혀버리는 사라진 존재의 고민으로, 그래서 허상적인, 허구의 고민처럼 들리기가 십상이라는 것이다. 혹은, 그것이 유한부인의 배부른 고민처럼 들리기까지 하게 하는 왜곡된 정서까지 불러 일으킬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기혼 여성이 실존에 대한 고민을 하면 어울리지 않고,
미혼 여성이 실존에 대한 고민을 하면 그 깊이가 있어, 한마디로 아우라가 있어 보이는.


어느 싸이트에 글을 올리면서 이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선입관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나는 잠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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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 스무살 무렵, 학원을 다니고, 필기시험까지 쳤지만, 코스(그 당시는 코스,와 주행,으로 나뉘어 있었다) 시험은 응시하지 않았다. 94년도였고, 그 당시 20만원이 넘는 운전면허학원비를 그냥 고스란히 날린 것. 그 뒤로 나는 운전 따위는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일도 없을거라, 장담하고 살다가, 이십대 후반이 되어 절실해졌지만 이래저래 차일피일 미루고, 게으름피우다가, 결국 결혼 전에는 꼭 따겠다고, 마치 지참금챙기듯이 신랑에게 공약하듯 선언을 했어도, 결국 못 하고 말았던 것이, 바로 운전면허였다.

여하튼, 나는 지난 주부터 학원 수강을 시작했고, 지난 주 목요일에 학과 시험을 보았고(90점이나 맞아버렸다;;), 오늘부터 기능 연습에 들어갔다.

강사는 내 또래의 남자. 고르지 못한 정지로 차가 쿨럭거릴 때 강사가 노총각으로 죽게 하지 말라는 하는 걸 보니, 미혼인 셈. 그가 나에게 물었다.

강사 : 학생이신가요?
나 : 아뇨.
강사 : 그럼 주부세요?
나 : 네.
강사 : 아, 그럼 신혼이시죠?

학생이냐고 묻는 말에, 그만 헤벌쭉이 되었다. 뭐, 노처녀이거나 아줌마로 보일 확률,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의 기분을 업시키는 멘트였겠지만서도 말이다. 그리고, 뒤이어 신혼이시냐 묻는 것도 그 일환 중에 하나이겠거니, 싶으면서도 기분은 괜찮더라는 것이지.

나이 들어보인다는 말이 싫고, 누군가 나를 지칭하며 '아줌마'라고 하는 것이 아직 싫은 걸 보니, 제대로 된 아줌마는 아닌 모양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아줌마 스러운 모습 같기도 하단 생각을 잠시 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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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에는, 손님이 있었다. 격주 금요일마다 참석하는 볼링 동호회가 있던 날이었고, 어제는 이래저래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술을 마셨던가보다. (원래 그 모임을 술 마시는 일이 드문 경우, 주로 밥을 먹고 헤어지는 건전? 모임인 셈이다) 그리고 2차를 우리집으로.

전화를 건 남편은 잤느냐고 확인하더니(자정이 넘어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갈 것이다, 소주를 마실 예정이다(안주 준비의 힌트 제공), 자신까지 네 명이다, 등의 중요 정보를 흘려준다.
부랴, 김치찌개를 끓이고, 파전을 할 요량으로 있는데, 들이닥친다. 처음 예상과 달리 소주가 아니라 맥주란다. 다행히 집에는 마른안주는 풍성하니 걱정은 없고, 찾아온 사람들이야 워낙에 잘 아는 지인들이니 부담도 없다. 간단한 맥주상을 차려주고, 나는 살짝 서재로 들어왔다. 가끔은 이렇게 그들만의 자리도 필요할테니까.

물론, 함께 어울려 술자리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렇게 멀찍이서 도우미 역할만 하는 것도 괜찮다. 그들도 그들의 세계를 나누고 싶을 때가 있겠지. 그들도 그들끼리의 대화가 필요하기도 하겠지. 와이프 때문에, 친구 와이프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 참거나, 할 이야기를 거르거나 하는 건, 나도 그리 원치 않는 일이니까. 아무튼,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나는 살짝 비껴가있는.
때로,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하는 일이 가장 큰 존재성을 가지는 일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제 밤 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해장라면을 끓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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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지난 주 주말에는 친정에 다녀왔다. 나는 곱게 한복까지 차려입고.
세배하고, 저녁먹고서, 그 다음 일정을 잡는데, 원래대로라면 신랑과 동생의 볼링시합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이래저래, 여차저차한 후에 당구장으로 가게 되었다. (결혼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너무 천연덕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자정까지만 치고서, 젊은 축들은 볼링장으로 가라,는 계획이었다. 아무튼, 그 당구장 멤버가

아버지(56), 외삼촌(45), 신랑(32), 남동생(26)

였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외삼촌이 한 편, 신랑과 남동생이 한 편으로 junior : senior로 편으로 갈라 당구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의자에 앉아 남자들의 당구게임과, 그들이 당구를 임하는 자세나, 게임을 하면서 던지는 말투, 농담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처남팀 매형팀으로 나누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고 생각했지만, 아무튼, 친숙도에 기인한 편,으로 나뉘었고, 게임이 의외의 상황으로 펼쳐져, 결국, senior의 고집대로 자정을 넘기고(볼링시합은 무산이 된 것이다), 새벽 3시까지 당구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신랑과 동생은 그렇다쳐도, 외삼촌과 아버지의 체력도 대단하다.
담배 피우지 못해 짬짬히 바깥에 나가 피우고 돌아오는 동생과 신랑의 모습도 재미있고,
다른 당구게임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아주 특이한 구성원으로 모여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도 했는데,
그렇다. 20대, 30대, 40대, 50대의 남자들이 당구,라는 게임으로 저리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참 희한하면서도, 참 좋기도 했다.
물론, 신랑이 제일 힘겨웠다는 걸 안다. 아직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울리기에 얼마나 어렵고 어색하고, 낯선 무리인가. 게다, 그런 걸 해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즉각 나오는 상황,이라는 걸 신랑 스스로도 모르는 바가 아니니, 너무 잘 칠 수도, 너무 못 칠 수도, 결과에 연연하기도, 그렇다고 심드렁할 수도 없이, 그렇게 고생은 했겠으나,
나는 좋았다는 것이다. 사위와 함께, 조카와 조카사위와 함께, 아버지와 함께, 매형과 함께 하는 시간들. 저들의 저 특이한 구성원들의 조합이 나는 참 좋더라는 것이다.
쉰여섯의 아버지가 제일 못 치셨지만, 그래도 위엄이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함께 어울려주시니, 나는 그게 또 고맙고
마흔다섯의 외삼촌은 특유의 실력으로 게임의 변수로 작용하게 만들고, 장인-사위의 어색할 시간에 대한 완충자역할을 충실히 해주셨으니 고맙고
서른둘의 신랑은 끝까지 활짝활짝 웃으면서 어른들과, 어린 처남과 잘 어울려서 듬직했고
스물여섯 동생은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헌신적인(?)인 노력을 해주어서 고마웠다.

아무튼, 20,30,40,50대가 어울린 당구게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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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운전을 한 남편은 저녁을 먹기도 전에 잠이 든다. 그런데 그 잠결에도 나에게 11시에 꼭 깨워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러더니, 안되겠는지 10시 40분에 깨우란다. 계속 자도 모자를 시간에 깨우라니. 깨우라니 깨우겠다 했다. 생각해보니,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 
덕분에 저녁이 늦어졌다. 10시 반 쯤 식탁을 차리면서 남편을 깨운다. 남편이 후두둑 일어나더니 공비디오테이프를 챙겨 거실로 나간다. 그 때 남편의 핸드폰 알람소리. 도대체 무슨 일인데? 남편은 저녁 먹을 생각도 안 하고 내 TV앞에 앉아 있다. 그러다가, 혼자 실망의 비명을 지르더니, 그제서야 식탁 앞에 앉는다.

이유인즉슨, NG 에서 상어 스페샬을 하기로 했단다. 11시에. 그런데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란다. 혹시 잊어버릴까봐 핸드폰에 일정저장까지 해 두었다는 것이다. 녹화하려고 비디오테이프까지 대령했을 정도니, 정말 보고 싶은 프로였던가보다.

남편은 동물프로의 광팬이다. 그래서 NG채널을 즐겨보고, 여하튼, 동물이 나오는 화면은 그냥 못 지나친다. 파충류를 좋아하고 상어를 좋아하는 남편. 전반적으로 '동물'을 좋아한다,가 맞는 표현이다. 연애 시절부터 그런 남편의 기호를 알아왔지만, 그 당시에는 별로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도 코끼리와 가오리는 좋아하는 동물이어서, 사람마다 그렇게 좋아하는 동물들이 하나 쯤은 있기마련이구나, 싶었던 듯 하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좀 각별하다. 동물의 세계에 대해서 꽤나 해박한데다가, 유별날 정도로 동물 다큐 프로에 집중한다. 지금의 나는, 그런 남편 덕에 나도 즐겨보는 프로가 되었지만, 사실, 처음에는 참 달갑지 않은 모습이었다.

내 아버지는 동물의 세계,라는 프로에 심취되어 있는 남자였다. 물론 이건 현재형이기도 하다. 역시나, 동물 프로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질 않으셨다. 어린 날의 나는 재미없는 걸 열심히 보는 아버지가 다른 채널을 안 바꿔줘서 싫었고, 이런 걸 좀 봐야 된다고 강요해서 짜증을 내던 사춘기를 보냈고, 그러다 아버지의 취향정도로, 그저 동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정도로 인식하는 과정을 겪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아버지가 사자나 호랑이, 맹금류의 세계에 유독 관심이 많은 것을 보고 나는 아버지를 관찰했던 듯 싶다.
아버지는 동물의 생태,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물의 세계를 지배하는 양육강식과 본능적 생애,라는 것에만 관심이 몰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보며 나눈 대화들을 통해, 나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가장 컴플렉스, 소시민 컴플렉스가 그렇게 표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리만족,이라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여하튼, 그런 강한 동물들을 통해 보상심리를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동물 프로를 보는 것이 싫었다. 나약한 부모를 목도하는 걸 좋아할 자식은 없으니까. 언제나 큰 사람으로, 언제나 강하고 굳건한 아버지로 서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도 남자고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다. 나는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동물 프로에 심취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아버지를 떠올린다. 나의 남편도 아버지와 같은 심리인것은 아닌가 싶어서, 혹여 그런 나약한 보상심리는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러다, 남편과 함께 동물의 세계를 즐겨보면서 나는 마음을 고치기로 했다. 설사, 내 아버지와 같은 이유여도 상관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듯 싶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어쩌지 못하는 모습일테니까 말이다. 취향이든, 기호이든, 혹은 심리의 표출이든지간에, 내가 관여하고 뭐라 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같이 프로를 시청하고, 남편의 해박한 지식을 확인하며 똑똑한 남편이라고 괜히 부추겨 주는 일, 그리고 속으로 아버지를 떠올리는 일, 그렇게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된 것이다.

아무튼, 내일(이제 오늘이 되었지만) 11시에 한다는 그 프로를 위해서 나도 핸드폰에 알람을 설정한다. 뭐든, 좋아하는 게 있다는 것, 심취할 수 있다는 게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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