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운전을 한 남편은 저녁을 먹기도 전에 잠이 든다. 그런데 그 잠결에도 나에게 11시에 꼭 깨워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러더니, 안되겠는지 10시 40분에 깨우란다. 계속 자도 모자를 시간에 깨우라니. 깨우라니 깨우겠다 했다. 생각해보니,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
덕분에 저녁이 늦어졌다. 10시 반 쯤 식탁을 차리면서 남편을 깨운다. 남편이 후두둑 일어나더니 공비디오테이프를 챙겨 거실로 나간다. 그 때 남편의 핸드폰 알람소리. 도대체 무슨 일인데? 남편은 저녁 먹을 생각도 안 하고 내 TV앞에 앉아 있다. 그러다가, 혼자 실망의 비명을 지르더니, 그제서야 식탁 앞에 앉는다.
이유인즉슨, NG 에서 상어 스페샬을 하기로 했단다. 11시에. 그런데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란다. 혹시 잊어버릴까봐 핸드폰에 일정저장까지 해 두었다는 것이다. 녹화하려고 비디오테이프까지 대령했을 정도니, 정말 보고 싶은 프로였던가보다.
남편은 동물프로의 광팬이다. 그래서 NG채널을 즐겨보고, 여하튼, 동물이 나오는 화면은 그냥 못 지나친다. 파충류를 좋아하고 상어를 좋아하는 남편. 전반적으로 '동물'을 좋아한다,가 맞는 표현이다. 연애 시절부터 그런 남편의 기호를 알아왔지만, 그 당시에는 별로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도 코끼리와 가오리는 좋아하는 동물이어서, 사람마다 그렇게 좋아하는 동물들이 하나 쯤은 있기마련이구나, 싶었던 듯 하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좀 각별하다. 동물의 세계에 대해서 꽤나 해박한데다가, 유별날 정도로 동물 다큐 프로에 집중한다. 지금의 나는, 그런 남편 덕에 나도 즐겨보는 프로가 되었지만, 사실, 처음에는 참 달갑지 않은 모습이었다.
내 아버지는 동물의 세계,라는 프로에 심취되어 있는 남자였다. 물론 이건 현재형이기도 하다. 역시나, 동물 프로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질 않으셨다. 어린 날의 나는 재미없는 걸 열심히 보는 아버지가 다른 채널을 안 바꿔줘서 싫었고, 이런 걸 좀 봐야 된다고 강요해서 짜증을 내던 사춘기를 보냈고, 그러다 아버지의 취향정도로, 그저 동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정도로 인식하는 과정을 겪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아버지가 사자나 호랑이, 맹금류의 세계에 유독 관심이 많은 것을 보고 나는 아버지를 관찰했던 듯 싶다.
아버지는 동물의 생태,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물의 세계를 지배하는 양육강식과 본능적 생애,라는 것에만 관심이 몰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보며 나눈 대화들을 통해, 나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가장 컴플렉스, 소시민 컴플렉스가 그렇게 표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리만족,이라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여하튼, 그런 강한 동물들을 통해 보상심리를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동물 프로를 보는 것이 싫었다. 나약한 부모를 목도하는 걸 좋아할 자식은 없으니까. 언제나 큰 사람으로, 언제나 강하고 굳건한 아버지로 서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도 남자고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다. 나는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동물 프로에 심취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아버지를 떠올린다. 나의 남편도 아버지와 같은 심리인것은 아닌가 싶어서, 혹여 그런 나약한 보상심리는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러다, 남편과 함께 동물의 세계를 즐겨보면서 나는 마음을 고치기로 했다. 설사, 내 아버지와 같은 이유여도 상관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듯 싶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어쩌지 못하는 모습일테니까 말이다. 취향이든, 기호이든, 혹은 심리의 표출이든지간에, 내가 관여하고 뭐라 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같이 프로를 시청하고, 남편의 해박한 지식을 확인하며 똑똑한 남편이라고 괜히 부추겨 주는 일, 그리고 속으로 아버지를 떠올리는 일, 그렇게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된 것이다.
아무튼, 내일(이제 오늘이 되었지만) 11시에 한다는 그 프로를 위해서 나도 핸드폰에 알람을 설정한다. 뭐든, 좋아하는 게 있다는 것, 심취할 수 있다는 게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