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가 12시를 넘어서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볼링 모임에 나가서 게임이 길어지거나, 혹은 함께 어울린 사람들과 술자리까지 가게 되면 자정을 넘기지만,
기실 결혼하고 그런 경우는 열 번도 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꼭 한 두번의 문자를 보내고,
답신여부와 상관없이,
다시 11시 반이나 12시 즈음에 꼭 그에게 전화를 한다.

들어오라는 말, 어디냐는 말을 건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있느냐 묻기 위해서다.
하지만 진짜 내 속내는 다른 데에 있다.
남편이 그 시간까지 밖에 있어도 챙기지 않는 와이프,는 마음이 넓은 게 아니라 무관심으로 보일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혹, 게임 중에, 혹은 건배를 하면서 받게 되는 와이프의 전화가 다른 이에게는 잔소리 하는 와이프처럼 보일까도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와이프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늘, 그는 조금 늦는 것 같다. 토요일이니까, 그도 사람들과 즐길 권리가 있으니까. 나는 그가 많이 활동적이고, 많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와이프를 배려하는 것과 스스로를 즐길 줄 모르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조금 전에 전화를 했다. 왁자한 볼링장 소리. 그 소리만으로 나는 그가 얼마나 활기차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지를 가늠한다. 그가 묻는다. 와, 심심하나?
나는 웃으면서 '꼭- 그렇지만은않아-' 라며 요즘 유행하는 개그우먼 말투를 흉내낸다. 그가 웃으면서 전화하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는다.
그런 통화를 하면, 마음이 좋다. 내가 한 남자의 와이프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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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틔운감자 2005-04-1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결혼 7개월 차로 슬슬 들어서려 합니다. 신혼 치고는 좀 맹맹한걸요. 그래도, 예쁘게 봐 주셔서 감사해요-
 



님, 보셔요.

님이 보낸 아가 옷은 잘 도착되었습니다. 아, 이런 선물이었다니요. 저는 정말 어쩌지를 못할 지경이에요.
소포를 받고서, 큰 상자여서 놀랐는데, 그 상자를 열어보니, 아주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들어있잖아요. 그래서 놀랐는데, 피터래빗(!!) 카드에요. 그래서 세 번째로 놀랐고요, 아까운 포장지를 살짝 뜯어 보니,
아, 아가 옷이 있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네 번 놀랐습니다.

님, 님이 보내주신 카드를 꼼꼼히 읽어요.
ㅡ 저도 님과 마찬가지지만, 현재 님께서 이쁜 아가를 간절히 바라시기에 지나다가 이쁘진 않지만 아기 내복 한 벌을 샀습니다. 애기 옷을 걸어두면 아기가 빨리 생긴다는 말이 있더군요. 혹시나! 해서요. ^^

아, 어쩔까요, 님. 제가 가진 작은 소망을 읽어주셔서, 그리고 그 소망의 기원을 함께 해주셔서, 저는 너무 고맙습니다. 님도 바라는 아가, 그리고 저도 바라는 아가, 그런데 이렇게 아가 옷을 직접 고르시고, 사시고, 포장하고 보내셨을 님을 생각하니, 저는 너무 고마운걸요. 안 예쁘긴요. 너무 예뻐서, 저는 만지는 것도 얼마나 조심스럽게 하는데요.

제가 받은 아가 선물입니다. 아직 아가는 없지만, 예쁜 아가 가지게 되라고 보내주신 님의 선물, 이 예쁘고 앙증맞은 내복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님과 제가 얼굴 한 번 뵌 적 없고, 그저, 마음 편히 내 보일 수 있는 친구를 얻은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이렇게 마음을 헤아려주시는 님의 마음이, 제게는 그게 더 감동입니다. 고맙다는 말,은 그래서 선물 때문이 아니라, 님의 마음에게 드리는 인사라는 걸, 그걸 꼭 말하고 싶었어요.

아가 옷은, 잘 두었다가, 정말 아가가 생기면, 그리고 그 아가가 이 세상에 예쁘게 태어나면, 그 때 꼭 입히겠습니다. 펼쳐보니, 참 작습니다. 이 작은 옷도 아가에게는 크겠지요. 그렇게 작은 생명을 얻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따스한 이웃, 마음 깊은 친구가 존재하는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므로, 미래의 아가도 분명 행복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고맙습니다, 님. 님 덕분에 아주 행복한 주말이 되었습니다.

 

p.s.
님의 아이디를 밝히고 싶었습니다만, 너무 큰 선물을 주셔서, 혹, 다른 친분있는 분들의 시샘을 얻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닉네임을 밝히지 못했어요. 물론, 괜찮으시다면, 제가 님의 이름을 크게 부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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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1)
최근 나의 친구의 남편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드디어 정규직으로 승진을 했다. 우람한 대기업은 아니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알짜배기 회사의 정규직 사원이 되었으니, 월급과 기타 생활에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정을 꾸리는 부부의 마음이 가장 안정적이고 평화롭게 변하겠지. 진급 심사를 할 때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면서 친구는 나에게 부탁을 했다. 나는 친구의 일(친구 남편의 일이니 친구의 일이기도 하다)이니, 무척 공을 들여 퇴고를 봐주었다. 자기소개서만으로 진급을 한 것이 분명 아니지만, 친구는 잊지 않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나도 내 일처럼 기뻤다. 내가 한 작은 일이 그래도 보람으로 끝이 나서. 그리고, 내 친구의 일상이 조금 더 풍요로워 질테니까.

경우 2)
남편 회사의 동료 하나가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서, 다른 곳에 취직을 했다.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의 일자리 찾기란, 게다 요즘처럼 흉흉한 세상에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지금껏 해 오던 일이 아닌 보험회사에 취직을 했다. 한 달여간을 교육을 다니고 하느라 분주하게 보내는가 싶더니, 얼마전부터는 정식으로 출근을 한다고 한다. 말끔하게 양복을 입고, 왼쪽가슴에는 회사 뱃지까지 차고 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일이 고단할텐데도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분으로 새해를 시작한 그의 표정은 무척 건설적으로 보였다. 그의 와이프 홈페이지에 남긴 남편을 응원하는 글을 보니 마음이 조금 짠했다.

경우 3)
예전, 함께 일하던 과학 선생님이 서울 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혼을 했고, 아가도 있고, 입시 학원과 과외로 제법 고수익이 보장받던 그였는데, 수능을 다시 보고서 한의예학과에 붙었다는 것이다. 올 해 그의 나이가 서른여섯. 나는 그가 졸업을 하고, 한의사로 개업을 한 후의 나이를 가늠해본다. 그 전에, 안정적인 모든 기반이 마련되어 있던 서울 생활을 모두 접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란다. 그리고 그를 마음 가득 응원하고 싶었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과감해 질 수 있는 것. 조금 더 멀리 보려 한 그의 결정과 그를 따른 그의 와이프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경우 4)
(이 경우는 친정엄마의 친구의 딸,의 이야기로 나는 그저 들은 이야기지만) 이제 결혼 2년차, 한돌된 아가가 있는 그녀와 남편은 서울 생활을 접고 시댁이 있는 마산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남편의 직업이 그리 안정적이지 않은 편이었고, 양가 모두 넉넉하지 않은 편이어서 부모님의 덕을 바랄 수도 없던 상황. 살림을 시댁으로 옮기고, 남편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 아가는 시댁에 맡기고, 여자는 일을 해 남편이 공부하는 동안은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네 경우 모두, 최근, 일주일동안 내가 들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벌이(수입), 더 안정적이고, 더 쾌적한 환경으로의 진입을 위해, 현재의 고생을 감수하는, 혹은 그 과정을 견뎌 낸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의 일상을 되돌아본다.
현재 나의 삶은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없는 모습,이라는 데에 마음이 걸린다. 그건, 사실, 감지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 위치가 위축이 된다. 저렇게들 열심히 사는데, 저렇게 애쓰는데, 나는 너무 거저 얻은 것들이 많다는 것과 그것으로 인해 너무 쉽게 안일함에 빠져 있다는 생각, 말이다. 그런 것들이 부끄럽다.
하루를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내일과 미래를 위해 살 수도 있는 삶, 내일을 위해서 오늘 조금 고단해도 보람될 수 있는 피곤함,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결여 되어 있다는 것이. 그것이 결국에는 도태의 길이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들 말이다.
그런 것들로 어수선한 요즘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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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결혼 전의 일요일을 생각해 본다.
후배들과 미술관에 가거나 대형 서점을 기웃거리고서 차를 마시곤 했고, 그도 아니면 금요일밤에 출발하거나 토요일 새벽에 훌쩍 출발하는 즉흥적인 여행을 가기도 했는데. 아니면, 주중에 쌓인 피로를 풀겠다고 하루종일 침대 속에서 뭉그적거리거나, 엄마나 동생과 쇼핑을 하러 가는, 그런 하루.
그도 아니면, 지금 남편을 만나러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 곳까지 와 데이트를 하곤 했다. 데이트를 하러 가는 주말은, 아침부터 열에 들떠 괜히 콧노래를 부르거나, 설레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시간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운 주말이 되기 일쑤였다. 헤어지는 순간에는 다음 주말에나, 혹은 더 지난 일요일에나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아쉽고 속이 상해 그에게 찡얼거리기도 했고, 슬쩍 결혼 후의 생활을 상상해보며, 결혼하면 이렇게 헤어지는 일은 없을텐데,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서울로 돌아가곤 했을 것이다.

결혼 후의 일요일은, 그렇게 바라던 그와 헤어지지 않는 일상이 되었지만, 그 나머지를 모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미술관에 갈 수도 없고, 혼자 훌쩍 떠나는 즉흥적인 여행은 아예 꿈꾸어서도 안 되는.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고, 하루종일 한 공간에서, 하루종일 같은 걸 먹고, 하루종일 같은 걸 보고 듣고, 하루종일 함께 있는 시간, 절대 헤어지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가끔, 결혼 전의 일요일이 그립기도 한 것이다.

나는 오늘 작정을 하고 빨래를 했다. 베이지톤의 침대커버를 벗기고, 푸른색톤의 침대시트세트를 갈아 끼우고, 베이지색톤의 침대커버,깔개,이불,베개보를 빨았다. 그리고 흰빨래,검은빨래를 나눠 또 두 번 더 세탁기를 돌려야 했고, 내친김에 집안의 러그와 작은발깔개들을 빨았고, 손빨래 할 것들을 몇 가지 더 빨았다. 아, 그러니 하루종일 집안에는 섬유유연제의 상큼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게다, 빨래를 하는 사이 뽀독뽀독 소리가 날 정도로 집안을 청소하고 나니, 세상 그 무엇이 안 부러운 것 처럼 개운하다.

그런데, 해가 뉘역뉘역 지고, 벌써 마른 빨래를 개다가, 외출한 남편으로부터 조금 늦겠다는 문자를 받고나니, 마음이 조금 서걱거린다. 결혼 후의 일요일이 생각보다 참 싱겁구나, 싶은 생각. 다른 일요일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결혼 초 한 달은 양가 인사에, 집들이에, 이래저래 부부동반 나들이에 해서 두 달간은 주말이 더 바쁜 나날들이었다. 정말 주말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나와 그는 피곤하고 고단한 주말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나니, 일요일이 참 싱겁다. 일주일동안 고단했을테니 남편은 부족한 잠을 자야 하고, 나는 또 자는 남편 옆에서 같이 늦잠을 자거나 혹은 그가 깨지 않게 발소리 죽이며 서재에 앉아 있거나 했으니까. 일요일이라고 특별한 음식을 할 리도 없고(나는 요리를 못하니까, 그런 건 엄두도 못 낸다), 일요일이라고 야외로 나가자고 조를 만큼 나는 젊지도 않다. 그저 오붓이, 단둘이, 그렇게 집안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낄낄거리고, 단둘이 속닥속닥이는 것이 일요일의 참맛 같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헛헛하다. 아무래도, 오늘 정오 즈음에 김치찌개를 어떻게 끓이냐는 후배의 전화를 받고 그녀가 그리워 졌거나, 두 분다 결혼식에 다녀오느라고 고단한 일요일이었다는 친정엄마와 어머님과의 통화 이후, 엄마와 어머니가 그리워진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 아가도 없는데, 친정에서 사용할 것들도 필요하다면서 보행기와 유모차, 아가 그네까지 챙겨두었으니 이번 주 중으로 동생을 시켜 가지고 가라는 친구의 세심한 마음을 전하는 통화는 또한 그녀를 그립게 한 모양이다. 그래서 헛헛한가 보다. 하루종일 나도 바빴는데, 하루종일 나도 꽤 괜찮은 하루를 보냈는데 말이다.
그런데, 어디에도 나는 없네. 우리,는 있어도 나는 없고. 현재의 나,는 있는데 순간의 나,는 없는. 그런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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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틔운감자 2005-03-0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안녕하세요. 일요일에 쓴 글인데, 벌써 화요일이 저물어 갑니다. 네, 일요일은 조금 쓸쓸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시 주중이 되니, 쓸쓸할 틈이 별로 없네요. 바쁠 것도 없지만, 하루종일 혼자 있는 주중이 오히려 익숙해졌으니 말이지요. 똑같이 혼자 있는 하루인데, 일요일과 주중의 느낌이 달라지는 건 아무래도 마음의 문제같아요. 아마, 일요일에, 저는, 좀, 쎈치했었던 가 봅니다.
그래도, 저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아가 없이 신혼일 때가 가장 좋을 때라고, 배부른 소리라고 흉을 보더군요. 아가가 생기면 더더군다나 그렇게 '나'는 사라지는 일상이 태반이겠지요. 그런 걸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 배부른 투정은 정말 복에 겨운 소리라는 걸 알겠어요. 조금 부끄러워지는 마음. 아무튼.
혼자 즐길만한 취미는 꽤 있답니다. 십자수도 하고, 책도 읽고, 인터넷 생활도 하고, 나름대로 하는 일도 있는데도 말이지요.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남편에게 기대지 않겠다고, 남편에 따라서 감정 상태가 흔들리는 와이프는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이래요. 아마, 과정,이어서 그렇겠지요.
님의 따스한 마음 잘 받습니다. 고맙고요. ^>^

싹틔운감자 2005-04-1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 고맙습니다, 님!
 



'책읽는나무'님 페이퍼에 올린 ㅡ

저의 집 베란다에 있는 화단이에요. 님이 보시고 온 그런 큰 평수의 아파트는 아닌데, 베란다와 주방 옆의 다용도실이 크게 빠진, 여자들이 살림하기에 좋은 구조로 된 집입니다. 화단은, 전 주인 내외가 만들어 꾸몄던 화단인데, 그대로 저희가 꾸미기로 했거든요. 이사를 올 때, 필요하지 않으시면 없애겠다고 하는걸, 그냥 두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키우고 있답니다.

사실, 화단을 고사하고 화분 하나 키워 본 적이 없는 지라, 처음에는 무척 당황스럽고 그러더니만, 그저 누런 이파리를 떼어주고, 물을 주는 일에만 부지런을 떨어도 제 스스로 잘 자라더군요. 몇 개의 화초는 그 사이 꽃도 피웠고, 벌써 하나는 분홍색 꽃망울을 피우고 있다지요.

식물이 자라는 걸 보면, 참 희한해요. 친정 엄마나 시어머니께서, 왜 화초꾸미기에 그렇게 정을 쏟으셨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이것들, 나 아니면 죽는 것들. 나만 보고 사는 것들' 이라는 혼잣말도 이제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고요.

사진에 보이는대로, 저희 집 화단은 저렇게 벽돌로 한쪽 구석을 막아 만들어놓았는데요, 희한하게 물 빠지는 구멍이 없어요. 아무래도 흙,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졌는가 봐요. 그래서 물을 흠뻑 주게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참 괜찮더군요. 아가를 생각하셔서, 님의 베란다 한쪽에 저런 공간을 꾸리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집에 초록 식물들이 저리 무성히 자라는 걸 보는 것도,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야, 이사를 잘 한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겠지만요- )

 

위, 사진과 글을 '책읽는나무'님 페이퍼에 올린 내용이다. 사진은 이사를 막 와서 찍은 사진이므로, 지난 해 여름 쯤이다. 그리고 뭐 지금도 저 사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가지치기를 좀 해준 것 외에는.



위 사진은, 저 화단 속의 아주 작은 난이 꽃을 피운 모습니다. 처음, 실같은 줄기가 나오길래, 나는 다른 잡초인줄 알고 두어번을 뎅강 잘라주었더랬다. 화초를 키워 본 적이 없으니, 그게 꽃대인지, 뭔지 알 수가 있나. 그러나 친정 엄마가 와 보시더니만 꽃대같다고, 그냥 두라시길래 그렇게 했더니만, 어느새 저렇게 꽃을 피운 것이다. 지금은 꽃망울을 다 피었고(사진은 그 중간 무렵에 찍은 사진), 저 가느다란 꽃대에 무려 스무개가 가까운 작은 꽃을 피워냈다. 실제 크기는 손톱반보다도 작은 크기, 마치 기름종이로 만든 꽃처럼 저리 앙증맞게 다닥다닥 모여 피워냈다.



  이건 바이올렛. 친정엄마가 이파리에서 뿌리를 내려 화분으로 심어 준 것이다. 그런데 저 두 화분도 우리 집에 와서 모두 꽃을 피워 주었다. 둘 다 보라색 꽃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물만 주고, 햇빛을 쬐게 하고, 추우니까 집 안에 들여 놔 준 것 밖에 없는데, 저들이 알아서 꽃을 피우고 이파리에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걸 보니,

무언가를 키우는 재미가 어떤 건지 나는 조금 알겠다. 알 것 같다.

처음 나는, 엄마가 화분을 주겠다는 것도, 그리고 화단을 그대로 받아 꾸미는 것에 반대를 했다. 저것들도 생명이 있는 것들인데, 나의 게으름이나 미숙함으로, 경험없음으로 누렇게 잎이 죽는 모습을 보게 될까봐 그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게다 주변을 보면 이상하게 화분을 죽는다,는 토로를 하는 주부들을 보았기도 했고. 나도 혹시 그런 주부에 포함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이도, 고만고만하게 자라주는 저 식물들을 보니 마음이 참 좋다. 그이는 꽃이 펴도, 이파리가 새로 나도, 내가 가서 한 번 보라고 해도 시큰둥이지만, 나는 마냥 신기하다. (하긴,남편은 손님들이 화단과 화초 이야기를 할때마다, 저게 다 죽을 줄 알았고, 그러면 상추나 키울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 잘 자라네- 라고 말해서 나의 눈총을 받아야 했지만)

저것들도 다 생명이 있는 것들. 정말 내가 물 주기만을, 내가 이파리를 한 번 닦아주기만을, 햇빛을 잘 쬐게 블라인드를 걷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들. 그리고 그런 최소한만 보여주면 제 스스로 알아서 크는 것들. 내 집에 유일하게 살아 있는 것들처럼 보이는 저들이 나는 때론 감사하다. 컨디션이 안 좋아 늘어져 있는 어느날에도, 저것들 물 줘야 돼, 하고 끄응- 소리를 내며 일어나게 만들어 주는 것들. 그리고 물을 주다보면 어느새 나도 마음이 밝은 연둣빛이 되는 일. 식물을 키우는 재미는 그런 것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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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틔운감자 2005-04-16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분보다 화단이 더 쉬운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시원시원 물을 죽죽 뿌려주면 되니까요. 화분은 옮겨야 하고, 물 양도 조절해야하고, 오히려 더 번거로운 것 같더라고요. 저 역시 처음인 식물기르기,인데 사실 지금도 조마조마하면서 키워요. 그런데 봄이 되니, 저것들이 알아서 새 잎을 내보이더라고요.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요. 아, 그래요, 오늘 화단에 물 주는 날인데, 이 글 올리고서 얼른 베란다로 나가야겠어요.
주말, 잘 보내시고 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