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 1)
최근 나의 친구의 남편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드디어 정규직으로 승진을 했다. 우람한 대기업은 아니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알짜배기 회사의 정규직 사원이 되었으니, 월급과 기타 생활에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정을 꾸리는 부부의 마음이 가장 안정적이고 평화롭게 변하겠지. 진급 심사를 할 때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면서 친구는 나에게 부탁을 했다. 나는 친구의 일(친구 남편의 일이니 친구의 일이기도 하다)이니, 무척 공을 들여 퇴고를 봐주었다. 자기소개서만으로 진급을 한 것이 분명 아니지만, 친구는 잊지 않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나도 내 일처럼 기뻤다. 내가 한 작은 일이 그래도 보람으로 끝이 나서. 그리고, 내 친구의 일상이 조금 더 풍요로워 질테니까.
경우 2)
남편 회사의 동료 하나가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서, 다른 곳에 취직을 했다.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의 일자리 찾기란, 게다 요즘처럼 흉흉한 세상에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지금껏 해 오던 일이 아닌 보험회사에 취직을 했다. 한 달여간을 교육을 다니고 하느라 분주하게 보내는가 싶더니, 얼마전부터는 정식으로 출근을 한다고 한다. 말끔하게 양복을 입고, 왼쪽가슴에는 회사 뱃지까지 차고 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일이 고단할텐데도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분으로 새해를 시작한 그의 표정은 무척 건설적으로 보였다. 그의 와이프 홈페이지에 남긴 남편을 응원하는 글을 보니 마음이 조금 짠했다.
경우 3)
예전, 함께 일하던 과학 선생님이 서울 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혼을 했고, 아가도 있고, 입시 학원과 과외로 제법 고수익이 보장받던 그였는데, 수능을 다시 보고서 한의예학과에 붙었다는 것이다. 올 해 그의 나이가 서른여섯. 나는 그가 졸업을 하고, 한의사로 개업을 한 후의 나이를 가늠해본다. 그 전에, 안정적인 모든 기반이 마련되어 있던 서울 생활을 모두 접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란다. 그리고 그를 마음 가득 응원하고 싶었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과감해 질 수 있는 것. 조금 더 멀리 보려 한 그의 결정과 그를 따른 그의 와이프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경우 4)
(이 경우는 친정엄마의 친구의 딸,의 이야기로 나는 그저 들은 이야기지만) 이제 결혼 2년차, 한돌된 아가가 있는 그녀와 남편은 서울 생활을 접고 시댁이 있는 마산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남편의 직업이 그리 안정적이지 않은 편이었고, 양가 모두 넉넉하지 않은 편이어서 부모님의 덕을 바랄 수도 없던 상황. 살림을 시댁으로 옮기고, 남편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 아가는 시댁에 맡기고, 여자는 일을 해 남편이 공부하는 동안은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네 경우 모두, 최근, 일주일동안 내가 들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벌이(수입), 더 안정적이고, 더 쾌적한 환경으로의 진입을 위해, 현재의 고생을 감수하는, 혹은 그 과정을 견뎌 낸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의 일상을 되돌아본다.
현재 나의 삶은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없는 모습,이라는 데에 마음이 걸린다. 그건, 사실, 감지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 위치가 위축이 된다. 저렇게들 열심히 사는데, 저렇게 애쓰는데, 나는 너무 거저 얻은 것들이 많다는 것과 그것으로 인해 너무 쉽게 안일함에 빠져 있다는 생각, 말이다. 그런 것들이 부끄럽다.
하루를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내일과 미래를 위해 살 수도 있는 삶, 내일을 위해서 오늘 조금 고단해도 보람될 수 있는 피곤함,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결여 되어 있다는 것이. 그것이 결국에는 도태의 길이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들 말이다.
그런 것들로 어수선한 요즘이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