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결혼 전의 일요일을 생각해 본다.
후배들과 미술관에 가거나 대형 서점을 기웃거리고서 차를 마시곤 했고, 그도 아니면 금요일밤에 출발하거나 토요일 새벽에 훌쩍 출발하는 즉흥적인 여행을 가기도 했는데. 아니면, 주중에 쌓인 피로를 풀겠다고 하루종일 침대 속에서 뭉그적거리거나, 엄마나 동생과 쇼핑을 하러 가는, 그런 하루.
그도 아니면, 지금 남편을 만나러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 곳까지 와 데이트를 하곤 했다. 데이트를 하러 가는 주말은, 아침부터 열에 들떠 괜히 콧노래를 부르거나, 설레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시간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운 주말이 되기 일쑤였다. 헤어지는 순간에는 다음 주말에나, 혹은 더 지난 일요일에나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아쉽고 속이 상해 그에게 찡얼거리기도 했고, 슬쩍 결혼 후의 생활을 상상해보며, 결혼하면 이렇게 헤어지는 일은 없을텐데,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서울로 돌아가곤 했을 것이다.

결혼 후의 일요일은, 그렇게 바라던 그와 헤어지지 않는 일상이 되었지만, 그 나머지를 모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미술관에 갈 수도 없고, 혼자 훌쩍 떠나는 즉흥적인 여행은 아예 꿈꾸어서도 안 되는.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고, 하루종일 한 공간에서, 하루종일 같은 걸 먹고, 하루종일 같은 걸 보고 듣고, 하루종일 함께 있는 시간, 절대 헤어지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가끔, 결혼 전의 일요일이 그립기도 한 것이다.

나는 오늘 작정을 하고 빨래를 했다. 베이지톤의 침대커버를 벗기고, 푸른색톤의 침대시트세트를 갈아 끼우고, 베이지색톤의 침대커버,깔개,이불,베개보를 빨았다. 그리고 흰빨래,검은빨래를 나눠 또 두 번 더 세탁기를 돌려야 했고, 내친김에 집안의 러그와 작은발깔개들을 빨았고, 손빨래 할 것들을 몇 가지 더 빨았다. 아, 그러니 하루종일 집안에는 섬유유연제의 상큼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게다, 빨래를 하는 사이 뽀독뽀독 소리가 날 정도로 집안을 청소하고 나니, 세상 그 무엇이 안 부러운 것 처럼 개운하다.

그런데, 해가 뉘역뉘역 지고, 벌써 마른 빨래를 개다가, 외출한 남편으로부터 조금 늦겠다는 문자를 받고나니, 마음이 조금 서걱거린다. 결혼 후의 일요일이 생각보다 참 싱겁구나, 싶은 생각. 다른 일요일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결혼 초 한 달은 양가 인사에, 집들이에, 이래저래 부부동반 나들이에 해서 두 달간은 주말이 더 바쁜 나날들이었다. 정말 주말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나와 그는 피곤하고 고단한 주말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나니, 일요일이 참 싱겁다. 일주일동안 고단했을테니 남편은 부족한 잠을 자야 하고, 나는 또 자는 남편 옆에서 같이 늦잠을 자거나 혹은 그가 깨지 않게 발소리 죽이며 서재에 앉아 있거나 했으니까. 일요일이라고 특별한 음식을 할 리도 없고(나는 요리를 못하니까, 그런 건 엄두도 못 낸다), 일요일이라고 야외로 나가자고 조를 만큼 나는 젊지도 않다. 그저 오붓이, 단둘이, 그렇게 집안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낄낄거리고, 단둘이 속닥속닥이는 것이 일요일의 참맛 같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헛헛하다. 아무래도, 오늘 정오 즈음에 김치찌개를 어떻게 끓이냐는 후배의 전화를 받고 그녀가 그리워 졌거나, 두 분다 결혼식에 다녀오느라고 고단한 일요일이었다는 친정엄마와 어머님과의 통화 이후, 엄마와 어머니가 그리워진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 아가도 없는데, 친정에서 사용할 것들도 필요하다면서 보행기와 유모차, 아가 그네까지 챙겨두었으니 이번 주 중으로 동생을 시켜 가지고 가라는 친구의 세심한 마음을 전하는 통화는 또한 그녀를 그립게 한 모양이다. 그래서 헛헛한가 보다. 하루종일 나도 바빴는데, 하루종일 나도 꽤 괜찮은 하루를 보냈는데 말이다.
그런데, 어디에도 나는 없네. 우리,는 있어도 나는 없고. 현재의 나,는 있는데 순간의 나,는 없는. 그런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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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틔운감자 2005-03-0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안녕하세요. 일요일에 쓴 글인데, 벌써 화요일이 저물어 갑니다. 네, 일요일은 조금 쓸쓸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시 주중이 되니, 쓸쓸할 틈이 별로 없네요. 바쁠 것도 없지만, 하루종일 혼자 있는 주중이 오히려 익숙해졌으니 말이지요. 똑같이 혼자 있는 하루인데, 일요일과 주중의 느낌이 달라지는 건 아무래도 마음의 문제같아요. 아마, 일요일에, 저는, 좀, 쎈치했었던 가 봅니다.
그래도, 저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아가 없이 신혼일 때가 가장 좋을 때라고, 배부른 소리라고 흉을 보더군요. 아가가 생기면 더더군다나 그렇게 '나'는 사라지는 일상이 태반이겠지요. 그런 걸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 배부른 투정은 정말 복에 겨운 소리라는 걸 알겠어요. 조금 부끄러워지는 마음. 아무튼.
혼자 즐길만한 취미는 꽤 있답니다. 십자수도 하고, 책도 읽고, 인터넷 생활도 하고, 나름대로 하는 일도 있는데도 말이지요.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남편에게 기대지 않겠다고, 남편에 따라서 감정 상태가 흔들리는 와이프는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이래요. 아마, 과정,이어서 그렇겠지요.
님의 따스한 마음 잘 받습니다. 고맙고요. ^>^

싹틔운감자 2005-04-1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 고맙습니다,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