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가 12시를 넘어서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볼링 모임에 나가서 게임이 길어지거나, 혹은 함께 어울린 사람들과 술자리까지 가게 되면 자정을 넘기지만,
기실 결혼하고 그런 경우는 열 번도 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꼭 한 두번의 문자를 보내고,
답신여부와 상관없이,
다시 11시 반이나 12시 즈음에 꼭 그에게 전화를 한다.

들어오라는 말, 어디냐는 말을 건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있느냐 묻기 위해서다.
하지만 진짜 내 속내는 다른 데에 있다.
남편이 그 시간까지 밖에 있어도 챙기지 않는 와이프,는 마음이 넓은 게 아니라 무관심으로 보일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혹, 게임 중에, 혹은 건배를 하면서 받게 되는 와이프의 전화가 다른 이에게는 잔소리 하는 와이프처럼 보일까도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와이프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늘, 그는 조금 늦는 것 같다. 토요일이니까, 그도 사람들과 즐길 권리가 있으니까. 나는 그가 많이 활동적이고, 많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와이프를 배려하는 것과 스스로를 즐길 줄 모르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조금 전에 전화를 했다. 왁자한 볼링장 소리. 그 소리만으로 나는 그가 얼마나 활기차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지를 가늠한다. 그가 묻는다. 와, 심심하나?
나는 웃으면서 '꼭- 그렇지만은않아-' 라며 요즘 유행하는 개그우먼 말투를 흉내낸다. 그가 웃으면서 전화하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는다.
그런 통화를 하면, 마음이 좋다. 내가 한 남자의 와이프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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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틔운감자 2005-04-1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결혼 7개월 차로 슬슬 들어서려 합니다. 신혼 치고는 좀 맹맹한걸요. 그래도, 예쁘게 봐 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