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는 분리수거 요일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니까 수시로, 언제든지 분리수거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서울 친정은 매주 수요일에 분리수거를 해, 일주일 동안의 쓰레기를 그 날 하지 않으면 베란다가 금세 어수선하게 변하기 일쑤였다. 엄마는 혹시 그 요일에 외출이라도 하게되면, 몇 번씩 전화를 걸어 분리수거를 해놓으라 잔소리를 하곤 했다.
그런 친정집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처럼 상시 가능한 분리수거 시스템은 정말 편리하고 신이 나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의외로 일주일에 한 번 하지도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 그동안 밀린 분리수거 쓰레기들을 정리하면서, 두어번에 걸쳐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말이다.
매일매일 가능한 이 일을 하는데 왜 그리 귀찮아하는 걸까.
어쩌면, 친정집처럼, 매주 정해진 요일에 하게 되어 있다면 지금처럼 게으름을 떨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가까운 아이들이 지각률이 높은 이유처럼 말이다(조금 이상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

아무튼, 그런데. 얼마전 친정에 갔다가 녹색 쓰레기봉투를 발견하고 물었다. 엄마의 설명인즉슨, 이제부터 비닐만 담은 쓰레기봉투를 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분리수거 항목에 비닐이 들어간 셈이다.

어- 내가 사는 도시는 그런 소리 없던데.

지난 주, 시댁에서도 비닐만 따로 분리수거하는 어머님을 보면서, 아하, 대구도 그렇구나를 알아챘다. 그런데 왜 내가 사는 도시는 그걸 안 하지?

사실, 분리수거는 꽤나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그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비닐까지 따로 분리수거를 해야한다면, 아마 나는 정말 인상을 벅벅 쓰면서 쓰레기통 앞에서 쩔쩔 맬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나에게 분리수거는 늘 그런 묵직한 숙제처럼 어렵고 난해한 일처럼 지레 겁을 먹게 하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대학 1학년 때(벌써 11년 전이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주회하는(기억이 맞았으면 좋겠다), 대학생 환경 자원봉사, 를 갔던 적이 있었다. 한여름, 성수기의 피서철에, 전국의 관광지에 파견된 자원봉사 대학생들이 환경운동(쓰레기 수거에서부터, 세미나, 일상 생활 속에서의 환경 지키기 등을 실천하는 일)을 했는데, 나는 그 해 여름 낙산해수욕장에서 일주일 정도를 보냈다. 낮에는 바닷가를 돌며 쓰레기를 주었고, 밤에는 환경 세미나를 했다. 매 끼니는 직접 해먹었고, 당연히 인스턴트 음식은 배제된 식단이었다. 물론 비누로 머리를 감았고, 세제도 쓰지 않았다.
그 활동이 기점이 되어, 하고 있던 공부방 활동 영역 중에서 환경파트 일까지 하게 되면서 지역의 폐유를 수거해 비누를 만드는 일까지도 하는 등, 나름대로 철저히 무장된 착한(!) 대학생이었다. 인류의 가장 시급한 문제이며,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문제 운운, 그리고 그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한동안 엄마 옆에 따라다니면서 꽤나 잔소리를 했던 듯 싶다. '기름은 그렇게 버리는 게 아니라-', '음식 찌꺼기가 최대한 나오지 않게 적게만 하든지-', 아니면 '아이 참, 이건 여기다 버리면 안 되지!' 이렇게 똑똑한 척 다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생활 속의 실천이란 얼마나 많은 유혹을 이겨야 하는 것인지, 나는 그리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그것이다. 간편하게. 쉽게. 빨리. 그 유혹을 버리지 못하면 비환경적인 생활인이 되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주부가 되어서, 음식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내가 참 많은 쓰레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또한 참 성의없는 분리수거를 한다고 자책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야쿠르트 병 뚜껑역할을 하는 비닐을 떼지 않거나, 우유팩을 닦아 잘 펴서 말린 후에 버리기를 실천하지 않거나, 등)
그때마다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린다. 초심의 반만이라도, 아니, 1/10만 가지고 있어도 나는 참 훌륭한 아줌마가 될 터인데. 실천,하지 않는 지성은 정말 하등 값어치가 없다. 그걸 늘상 떠올리면서 나는 나의 게으름을 자책하곤 한다. 내가 흉을 보며 안타까이 여겼던 엄마의 모습과 지금의 내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서 반성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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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바로 4주차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임신진단테스트를 했고, 양성 반응이 나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그날 병원에 가게 된 것.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병원에 갔다가, 병원에서 확실하다는 진단을 받고서야 그이에게, 그리고 시댁과 친정으로 연락을 했더랬다.

처음, 임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 건, 고열과 생리통처럼 느껴지는 아랫배의 통증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리통같지는 않은 기분이 들었던 것. 그래서, 생리예정일의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급한 마음에 테스트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양성 반응을 보고도, 이제 갓 한달이 지난 이후인것이라 의심하게 되어 병원으로 가게 된 셈.

병원에서 찍어준 초음파 사진에 의하면, 그냥 검은 '점'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이 4주차에는,
머리가 전체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뒷부분에는 긴 꼬리가 생겨 꼬리 달린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크기는 0.36~1mm 정도란다. 1mm! 그러니 그저 검은 점으로 보일 수밖에.

친정식구들보다 시댁부모님이 환호를 하시며 좋아라하신다. 이제서야 말이지만, 하시면서 기다리셨다는 말을 하시는데, 자꾸 눈물이 비어져나오고, 뭐 그랬다. 오히려 친정 부모님에게는 덤덤했는데 말이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어머님 목소리 때문에 나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아, 아가를 갖는 일이란 이렇게 축하를 받고, 이렇게 기쁜 일이구나,를 몸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4주차의 나는 열이 자주 올랐고, 슬슬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비빔면을 달고 살았다. 글세,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임신 증상이었기 때문 같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스스로 '아가를 가졌다'라는 의식에서 생긴 의식화된 행동 같아서 스스로 혼자 배실배실 웃곤 했다. 그래도 여하튼, 내 매운 비빔면을 달고 살기는 했다. 어쩌면 그것이 입덧의 초기증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아랫배가 땡기는 통증이 심해 내 걱정을 했더랬다. 다음 주 병원에 가 물어봐야겠다고, 내 걱정하고 보낸 일주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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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서재를 또다시 방치했던 이유는, 바라던 아가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입덧 증세가 시작되었고, 이래저래 변화하는 몸에 내 스스로 적응하는 시간, 그것이 근 두어달을 소요하게 했다.
아직 두서없는 일상들, 아직도 내 안의 생명에 대한 인식을 잊게 되는 일상들, 그래서 부러 유난스럽게 보일지라도 기록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잘한 단상이라도 말이다.

이미, 여러 지인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고,
웹상의 지인들에게도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다.
축하의 일, 축복받은 일,이라는 것.
그래 나의 일상이 더없이 충만하고 화사하기만 하다.

그런 좋은 기억들을 기념해야 하니까.

 

이 페이퍼, <엄마되기, 요이땅>에는 겨울이 될때까지, 그리고 봄이 되어 아가와 함께 생활하는 일에 익숙해질때까지, 그래서 가능하다면, 육아일기까지 발전할 수 있도록. 그런 계획으로, 일단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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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틔운감자 2005-05-1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오랜만이지요? ^^
네, 축하 인사 감사합니다. 사실, 아가 가졌다고 해서 서재를 뜸할 이유는 하나 없지만^^;; 어쩌다보니요- 아무튼, 다시 조금 더 부지런을 떨려고요(실천까지 이뤄져야 할텐데요;; )
님의 기원 덕분에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고마워요, 님!! ^^

싹틔운감자 2005-05-22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그럴려고요^^ 올리브님도 안녕하셨지요? 님의 서재엔 늘 가는데, 늘 이렇게 제가 인사를 받아요. 게으르다고, 무심하다고 너무 뭐라 하지는 마시길요- ^^
고마워요, 올리브님!

싹틔운감자 2005-05-28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어느 날, 택배가 올 거라는 말만 남긴 그.
그날 하루종일 나는 초인종 소리만 기다렸다. 그리고, 도착한 택배 상자. 묵직하기도 하여라. 냉큼 열어보니,
세 가지 종류의 스타게티가 가득이다.
놀라 남편에게 묻는다.
"이거 우리 거야? 우리 먹자고 산거야?"
그러자 그의 답변,

"당신 스파게티 좋아하잖아. 그래서 샀어. 마음껏 먹으라고."

토마토소스, 미트소스, 카보나라 스파게티까지. 약 30~40 봉지는 되는 듯 하다. 전자렌즈에 2분만 돌리면 되는 스파게티. 맛도 아주 괜찮다. 인스턴트 음식을 실제 해먹는(사먹는) 음식과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참 뜬금없어라. 혼자, 그걸 결정하고, 배송을 시키다니. 본인은 별로 좋아라 하지도 않는 걸 말이다. 감동,받은 표정 짓기도 전에 남편은 얼른 먹어보자고 조리법을 읽기 시작했다.

 

**
오랜 외출에서 돌아왔다. 집은 생각보다 깨끗했고(일부러 안 어지르려고 애썼다한다), 설거지도 그리 많이 밀려 있지도 않았다.
돌아와 짐을 풀고 있는 내게 그가 아주 신이 난 표정으로 선물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냉동실을 열어 검은 봉지 한 뭉치를 꺼내 내게 내민다.

봉지를 열어보니, 손바닥 세 개를 붙인 것만큼 큼직함 쥐포가 묵직하다.

하하, 이 남자 그러더니, 어떻게 이 쥐포를 사게 되었는지 막 설명한다. 신이 난 그를 보니, 나도 신이 난다.
결혼하고서 얼마 안 되어, 친정에서 내가 쥐포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그,가 기억해냈다는 걸. 술안주로 쓰기 위해서 군것질용을 자제했던 그동안을 기억했다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나는 감동받는 표정 짓기도 전에 한 마리를 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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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틔운감자 2005-04-1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제 신랑의 성격이 원체 다정다감하지 못한데, 가끔 이렇게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어요. 더 큰 감동을 받는 와이프들이 들으면, 인스턴트 음식과 쥐포만으로 무슨 감동이냐 하지만, 경상도 싸나이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무장된 신랑에게, 이런 일은 극히 드문 일이거든요. ^^
 

아가야!
겨우 한 달 남짓 지났는데 수년이나 된 것만 같구나. 거의 매일이다 싶이하는 너의 안부 전화, 네 시어머니는 속으로는 너무나도 좋아하면서도...
힘들지? 삼십년이 넘게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 온 너희들이 새로운 생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무던히도 어려움이 많으리라.

네가 어느 사찰 같은데를 나와 함께 걷고 싶다고 했지? 나는 너와 함께 걸으면서 이런 말들을 하고 있을 것 같애.

남자란 말이다.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마는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지없이 약한 게 남자이기도 하단다.
그 남자도 가끔씩 자기를 칭찬해주기를 바라고 턱없는 호기까지 부리면서도 용서와 격려도 은근히 바라고. 어디 그 뿐이랴. 너무나도 게으르고 형편없이 이기적이기도 하단다. 무엇이든지 아내가 해주길 바라고. 쉬는 날이면 꼼짝도 하기 싫어하고.
내가 볼 떄 용재도 삭삭하고 재치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이러한 범주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때 앞이 캄캄하냐?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게 완벽한 사람이라면 이 生이 얼마나 재미 없겠냐.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고.
들판에서 제멋대로 자란 야생마도 주인이 조련하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더냐. 그러한 야생마를 잘 진단하고 보살펴서 날로 길들여져 가는 그 모습게 진정한 삶의 보람을 느끼면서 흐뭇해 하는 데 그 살가운 심성을 나는 기대해 보련다.
네 남편을 야생마로 키우고 또 야생마에 비유해서 미안하다만.

그러다가 힘에 겨우면 언제든지 요청만 해라. 네 뒤에는 항시 든든한 원병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부족한 것은 서로 채워가면서 같이 걱정하고 같이 의논하고 같이 노력하면서 하루하루를 돌아보아 후회를 가장 작게 하는 삶을 위해 애쓰려는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한 게 아닐까 싶다.

모든게 생소하고 마음에 차지 못한 부분이 많은 시집이지마는 항상 밝은 얼굴을 잃지 않는 네가 정말 고맙고 대견스럽다.

사돈 내외분께 자주 문안 드리고 안부 말씀 전해 주기 바란다.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고.

2005. 3.
대구에서 아비가.



아가야,
로 시작되는 편지가 한 통 도착되었다.
외출하는 길, 우편함이 꽂혀 있는 시원시원한 글씨체와 겉봉에 인쇄되어 있는 문화회관장,이라는 수신자주소를 보고서 아버님이 보낸 편지라는 것을 알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나는 그 자리에서 한숨에 편지를 다 읽는다.
아, 아버님이 보내주신 편지라니!

한 글자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장, 성의를 다 해 꼼꼼히 적어내려간 아버님의 필체와 내용에 나는 비죽, 눈물이 고였다. 내가 받는 사랑이 너무 커서, 그 사랑의 충만함에 기뻐서 말이다.

아랫사원에게 부탁해 얻은 편지지인가. 편지지는 빨간 딸기가 그려진 귀엽고 앙증맞은 편지지. 큼직한 글씨로 세 장을 채운 내용. 아버님이 며느리에게 이 편지를 쓰기 위해서 몇 번이고 수정을 하고, 다시 쓰시고를 반복하셨겠지, 하는 마음이 드니, 참 감동스럽다. 참 고마워서 몸둘바를 모르겠다.

오늘 밤은 아버님에게 답장을 써야겠다. 당신의 사랑을 받는 며느리의 일상에 대해서, 당신의 아들을 내가 얼마나 믿고 따르는지, 그런 남편의 부모님이자, 나의 또 다른 부모님의 인생을 귀감삼아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또 다시 하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그리고, 완연한 봄풍경과 그 일상속에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롭게, 그리고 얼마나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사는지, 그래서 내가 더더욱 겸허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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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틔운감자 2005-04-1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올리브님. 아마도 저는 근사한 아버님을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