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겨우 한 달 남짓 지났는데 수년이나 된 것만 같구나. 거의 매일이다 싶이하는 너의 안부 전화, 네 시어머니는 속으로는 너무나도 좋아하면서도...
힘들지? 삼십년이 넘게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 온 너희들이 새로운 생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무던히도 어려움이 많으리라.
네가 어느 사찰 같은데를 나와 함께 걷고 싶다고 했지? 나는 너와 함께 걸으면서 이런 말들을 하고 있을 것 같애.
남자란 말이다.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마는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지없이 약한 게 남자이기도 하단다.
그 남자도 가끔씩 자기를 칭찬해주기를 바라고 턱없는 호기까지 부리면서도 용서와 격려도 은근히 바라고. 어디 그 뿐이랴. 너무나도 게으르고 형편없이 이기적이기도 하단다. 무엇이든지 아내가 해주길 바라고. 쉬는 날이면 꼼짝도 하기 싫어하고.
내가 볼 떄 용재도 삭삭하고 재치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이러한 범주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때 앞이 캄캄하냐?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게 완벽한 사람이라면 이 生이 얼마나 재미 없겠냐.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고.
들판에서 제멋대로 자란 야생마도 주인이 조련하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더냐. 그러한 야생마를 잘 진단하고 보살펴서 날로 길들여져 가는 그 모습게 진정한 삶의 보람을 느끼면서 흐뭇해 하는 데 그 살가운 심성을 나는 기대해 보련다.
네 남편을 야생마로 키우고 또 야생마에 비유해서 미안하다만.
그러다가 힘에 겨우면 언제든지 요청만 해라. 네 뒤에는 항시 든든한 원병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부족한 것은 서로 채워가면서 같이 걱정하고 같이 의논하고 같이 노력하면서 하루하루를 돌아보아 후회를 가장 작게 하는 삶을 위해 애쓰려는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한 게 아닐까 싶다.
모든게 생소하고 마음에 차지 못한 부분이 많은 시집이지마는 항상 밝은 얼굴을 잃지 않는 네가 정말 고맙고 대견스럽다.
사돈 내외분께 자주 문안 드리고 안부 말씀 전해 주기 바란다.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고.
2005. 3.
대구에서 아비가.
아가야,
로 시작되는 편지가 한 통 도착되었다.
외출하는 길, 우편함이 꽂혀 있는 시원시원한 글씨체와 겉봉에 인쇄되어 있는 문화회관장,이라는 수신자주소를 보고서 아버님이 보낸 편지라는 것을 알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나는 그 자리에서 한숨에 편지를 다 읽는다.
아, 아버님이 보내주신 편지라니!
한 글자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장, 성의를 다 해 꼼꼼히 적어내려간 아버님의 필체와 내용에 나는 비죽, 눈물이 고였다. 내가 받는 사랑이 너무 커서, 그 사랑의 충만함에 기뻐서 말이다.
아랫사원에게 부탁해 얻은 편지지인가. 편지지는 빨간 딸기가 그려진 귀엽고 앙증맞은 편지지. 큼직한 글씨로 세 장을 채운 내용. 아버님이 며느리에게 이 편지를 쓰기 위해서 몇 번이고 수정을 하고, 다시 쓰시고를 반복하셨겠지, 하는 마음이 드니, 참 감동스럽다. 참 고마워서 몸둘바를 모르겠다.
오늘 밤은 아버님에게 답장을 써야겠다. 당신의 사랑을 받는 며느리의 일상에 대해서, 당신의 아들을 내가 얼마나 믿고 따르는지, 그런 남편의 부모님이자, 나의 또 다른 부모님의 인생을 귀감삼아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또 다시 하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그리고, 완연한 봄풍경과 그 일상속에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롭게, 그리고 얼마나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사는지, 그래서 내가 더더욱 겸허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