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서 그와 함께 야구를 보았다. 나나 그나 꽤나 야구를 좋아하는 편. 오늘은 두산과 롯데가 아슬아슬한 3:4 경기 중이다. 그와 나는 소파에 둘이 비스듬히 누워 TV를 보면서, 저녁을 너무 과식했다느니, 참외를 먹을까 말까,로 구시렁거리다가, 문득 조용하길래 그를 돌아봤더니, 이런, 그는 이미 곤하게 자고 있는 것이다.
슬쩍, 일어나 나는 얇은 담요를 덮어주고, 어둑한 조명으로 바꾸고, TV를 끄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거실 소파에서 아주 곤한 잠에 빠져있고, 나는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가끔, 그렇게 재미있기만 한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잠이 든 그를 볼때마다 측은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늘 잠든 자리에서 더 깊고 편한 잠을 자도록 한다. 이불을 덮어주거나, 창문을 조금 여며주거나, 베개를 하나 더 갖다 준다거나, 하는. 오늘처럼 말이다.
혼자가 되니, 문득, 결혼 전이 주말이 떠올랐다. 금요일밤부터 시작된 주말, 다음날 출근하지 않는 날이 언제나 주말이기도 한, 그런 시간들. 나는 후배들과 미술관을 가거나, 시내에서 그녀들과 차를 마시거나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말그대로 일주일의 피로를 풀기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서 긴 잠을 자거나, 시큰둥하게 책을 읽거나 무심히 인터넷을 하면서 주말을 탕진했다. 혹은 뜬금없이 우발적인 여행길에 오르기도 잦았다. 역마살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들을 정도로, 그렇게 무심히 새벽에 나서 다음날 해가 져서야 피곤한 몰골로 돌아오곤 했던 주말들. 산을, 강가를 헤매고 다니다 돌아오면, 한동안의 나는 제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얌전히 앞을 보며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달에 세,네번 정도는 그를 만나기 위해 지방으로 떠나야만 했다. 이제 남편이 된 그를 만나는 주말은, 금요일부터 신이 나고, 토요일에는 반짝였다가, 헤어지고 오는 길에는 늘 아쉬움으로, 영영 못 만날 사람처럼 호들갑스러운 속상한 마음에 빠지기도 했었다.
생각을 해보니, 결혼 전, 그와 달콤한 데이트를 보내는 주말도 황홀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그를 만난다,라는 사실 보다는 '집을 떠난다'라는 의미에 더 큰 의미부여를 했던 듯 싶다. 그래서그랬는지, 터미널이나 기차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리고 버스나 기차 안에서, 그가 있는 지방 소도시에 도착했을 때, 다시 돌아오기 전에 표를 끊고, 서울에 도착해, 다시 집으로 오는 시간, 그 공간.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의 시간들, 이물스럽고 외롭기만 한 그 혼자의 길, 여행과 달리,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유독 그런 날이 선 감정 속에 있었다. 그를 만난 주말 중에서 그와 함께 있던 시간만 뎅강 잘라내면 나는 그렇게 유난스럽게 예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제는,
그와 함께 살면서, 이제 주말은, 정말 평온한 일상이 되었다. 하루종일 그와 함께 있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 심심하기도 하고 무료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싫지 않은. 그러다가 문득 결혼 전이 아주 조금 그리워지다가도, 곤히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면 그 그리움은 금세 사라져 무척 충만한 기분에 빠지게도 하는 시간.
그런 고요하고 조용한 주말이다.
함께 TV를 보다 잠든 남편, 그와 결혼 전의 데이트를 떠올리며 지금의 고요함을 충분히 즐기는, 그런 시간.
그런 주말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