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징어볶음밥을 하겠다고(요즘 나의 식단이란 갑자기 먹고 싶은 것 위주,가 되는 바람에, 뭘 해먹나 하고 요리책 뒤적이다가 발견한 메뉴였을 뿐이었다) 오징어 하나 사다가, 레시피 그대로 했다. 예전, 엄마가 전수한 오징어볶음,보다는 조금 더 맵고 자극적이었음 바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무튼. 그래서.
성공이었다. 그와 나는 정말 말 그대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징어볶음밥을 먹었다. 맛있다는 말을 그에게서 듣는 일은,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오늘은, 낮잠을 자다 벌떡 일어났는데, 역시나, 갑자기 닭볶음탕(닭도리탕,이라고 쓰면 안된단다;;)이 먹고 싶은 것이다. 이런 요리책에는 없는 메뉴(내가 가진 요리책은 '2000원으로 밥상차리기'다. 2000원이 넘는 재료는 메뉴에 들어가 있지 않은 모양이다). 인터넷을 뒤진다. 재료야 뻔하지만, 그걸 어찌 하는가 말이다. 엄마가 하던 방법이 떠오르기는 하다만서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엄마 방법과 다르다. 뭐 아무튼, 시장에서 닭을 사와(봐라, 4천이나 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닭볶음탕을 했다(물론, 처음은 아니다. 어느해 바닷가로 간 mt에서 뜬금없이 닭볶음탕을 해먹기도 했다;; 정말 맛 없어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절대 먹을 수 없던 안주였지만, 아무튼). 어쩔 수 없이 인터넷 정보와 엄마 특유의 방법(양파나 당근을 안 넣는다는)을 합작할 수밖에 없었고, 끙끙거리면서 만들긴 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맛있다는 말을 듣는다. 오, 이 감격스러움이란. 일주일에 이런 대박이 두 번이나!

그리고, 야참으로 남은 닭볶음탕을 먹었다. 작은 한 마리 사서, 두 번 먹으니 국물까지 싹- 사라졌다(뭐, 원체 국물이 적기도 했다). 그게 자정즈음인데, 아이쿠-
배가 또 고프다.

이 글의 핵심은 내가 오징어볶음밥과 닭볶음탕을 해먹었다, 그래서 성공했다, 가 아니라
지금 또 배가 고프다,인데
배가 고파서 먹는 생각만 계속 하다가
이번주의 메뉴 두 가지가 떠올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튼,

배가 부른데도 배가 고프다.
정말 그렇다.

아가가 부쩍부쩍 크는 단계에서는 뭐든 다 땡기고 그런다는데, 나는 왜 이제 10주밖에 안 되었는데 이러는 걸까(어떤 책을 뒤져봐도 이 시기에 식욕이 땡긴다,는 찾아볼수가 없다). 심히 걱정스럽다. 음식 조절을 해야하는 일,이 아가를 가진 후가 더욱 신경쓰이고 더욱 더 예민한 문제로 다가온다. 시도때도 없이 떠오르는 먹는 생각들. 왜 이러나.

그래서 지금 먹고 싶은 건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설탕 묻힌 꽈배기 도너츠, 같은 것.
그런 조악한 군것질용 제빵들이 먹고 싶다.
찹쌀도너츠, 고로케, 밤맛이 나는 앙꼬가 들어있는 도너츠(이름을 모르겠다) 같은 것들.
모두, 티슈를 잡고 먹으면 티슈가 금세 기름으로 쩔게 되는, 그런 빵들 말이다.
새벽 2시 36분인데, 편의점에 다녀와야하는걸까.

배가 부른데 배가 고프다니.
이런 날 좋은 봄밤에 이런 먹는 타령이라니.

 

ㅡ 이 글은, 그저께 다른 공간에도 남긴 글이다. 야밤에, 그 기름기 가득한 도너츠가 먹고 싶어지다니. 그런데 그 다음날은 말끔히 그 증상이 없어졌다. 그런 걸 먹고 싶어하다니.
두 아이의 엄마인 친구 R은, 자신의 언니도 그걸 먹고 싶어했다고 해서 또 한참 웃었다. 입덧이 지났나봐, 그래서 영 아쉬운 거 있지, 그랬더니 친구 말이, 입덧을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난 거라고, 이제 먹고 싶은 것만 찾아먹는 일만 남았다고 한다. 어쩌나, 입덧이 벌써 끝나다니. 왜이리 아쉬운걸까. 조금 더 응석 부리고 싶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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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틔운감자 2005-05-22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 어머님은 고기삶은 물까지 드셨다는 분도 계시더군요. 어떤 아주머님은 다른 건 안 땡기는데 맥주가 그렇게 땡겨서 맥주만 마셨던 달도 있었다고(아, 그 얘기 듣는데 어찌나 아찔하던지요;;). 사람들마다 참 다른 증상들을 보여요^^
무언가 먹고 싶은 건, 아가에게 필요한 성분이 자연스럽게 땡기게 된다- 라고들 하는데, (맥주 같은 건 좀 안 맞겠지만요^^; ) 저는 당분이 필요했던 걸까요? ^^

싹틔운감자 2005-05-28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가 가지기 전에, 아프기 전에는 꼭 매운 음식이 땡기곤 했어요. 뭐랄까, 아플정도로 매운 음식. 그러니까, 매운 '맛'이 아니라 어떤 통증이 각인되어 그게 그렇게 땡기더라고요. 생리 할 즈음에는 단 음식, 스트레스를 받으면 고기가 땡기는 편이었고요^^
그러게요, 몸이 말을 해요-
 

엄마가 근 이주일에 걸쳐 앓으셨다.
나이 드니 감기도 오래가나- 전화 속 엄마 목소리는 도통 차도가 없어 애를 태웠다. 결혼 전에는, 그저, 병원에 안 간다고 짜증만 냈는데, 결혼하고 나니 당장이라도 달려가 밥이라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감기 옮는다고 말도 꺼내지도 못하고 했고. 아무튼.
그런데, 오늘 엄마가 모처럼 먼저 전화를 거셨다. 보니, 목소리가 조금 다르다. 차도가 생긴 모양이시다. 그러더니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다음주즘에 올라오라는 것이다. 당신 몸이나 먼저 추스릴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혹시 당신 때문에 입덧으로 더 고생하지 않으시나, 그게 더 걱정이셨던 것이다.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그와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가 근 이주일만에 차도가 조금 있으신 모양이라고. 그랬더니,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올라오라는 말이었다고-
내 이야기를 다 들은 그가 말하길,

당신 대신 앓으셨구나,

그런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다. 입덧이 수월히 가라앉는다 싶었는데, 그게 아가가 순하려니- 내가 순해서 많은 고생 하지 않는 거구나- 뭐 그런 생각만 했는데,
엄마가 나 대신 고생하신거라고 생각이 드니,
목이 메어 밥이 잘 안 넘어갔다.

그리고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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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틔운감자 2005-05-22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겠죠? 네, 많이 뵙고 싶네요. 그래서 다음 주에는 가려고요. 입덧은 가라앉았지만(입덧이 최고조일때 한 일주일 친정에 다녀왔었거든요) 그래도 엄마 보러 가야겠습니다. 신랑에게 휴가 얻어서 말이지요.
친정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그럼 다행이라고, 그럼 됐다,라고만 말 하시더라고요. 마음이 더 짠- 해졌죠. 네, 그립네요.

싹틔운감자 2005-05-28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열네 살일때의 제 엄마를 떠올립니다. 기억에 촌스러운 파마머리를 했던 것 같은데, 왜 그런 기억이 날까요^^
그럴까요, 그만큼 세월을 겪으면, 보고픔보다 아픔이, 그리움보다 아스라함이 먼저 떠오를까요. 엄마에게 뭔가 해드리고 싶은 건 결혼을 하고서 느끼기 시작했죠. 그런데, 여전히 '내가 니네보다 부자다!' 이러고 마시네요^^;
 

마트에 갈 때가 되었는데도 나와 그는 주말에 빈둥거렸다. 이유인즉슨, 홈플러스 매장이 인터넷 주문 배송이 가능하다는 팜플렛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친구 R과의 통화 중에도 그런 얘기를 주억거렸던 터라, 이제는 남편 스케줄에 맞추거나, 혹은 혼자 끙끙거리고 잘 볼 일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야심찬 마음으로 홈플러스에 들어가 훑어보다가, 그것이 일시적인 서비스라는 것을 알았고, 지방은, 뭐, 대구 외에는 가능지역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서울은, 권역별로 시행하고 있는 지역이 전제의 80%정도 가능지역으로 나왔다.
이럴때. 나는 지방생활의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니까, 내가 지방 도시에 살아서 겪게 되는 불이익을 겪어서가 아니라, 서울이어서 너무 당연히 받게 되는 서비스를 인식하는 순간, 말이다. 서울에 살 때는 적어도 그런 서비스를 제공받는 일에 지역적인 제한은 못 느끼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둘 필요도 없거니와,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방 생활은, 종종 그런 지역적인 의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한다.

뭐, 서울공화국이 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그저 아줌마 스럽게, 그런 서비스를 못 받아서 어쩔 수 없이 끙끙거리며 장을 봐야겠다는 것(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다;;)과 그것이 아주 조금 억울한 기분이 되었다는 것. 제목처럼 대단한 고단함이나 불편함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구분화된 서비스 지역이라는 건 조금 그렇다. 그걸 처음부터 겪으며 살았더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겠지만, 이렇게 뒤늦게 알게 되는 느낌들이 그저 아무렇지 않다,일 수는 없으니까.

지방 생활의 고당함,이라는 게 뭐 있나. 서울에 비교했을 때,라는 잣대를 들먹어야 하는데, 분명 지방 생활의 장점도 많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불편한 것부터 떠올리는 것이니까. 장, 보면 돼지, 그걸 안 보겠다고 요령피우다가 여기까지 왔네. 지방 생활의 고단함을 운운할 게 아니라, 나의 게으름을 탓해야 하는 시간은 아닌가 모르겠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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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서 그와 함께 야구를 보았다. 나나 그나 꽤나 야구를 좋아하는 편. 오늘은 두산과 롯데가 아슬아슬한 3:4 경기 중이다. 그와 나는 소파에 둘이 비스듬히 누워 TV를 보면서, 저녁을 너무 과식했다느니, 참외를 먹을까 말까,로 구시렁거리다가, 문득 조용하길래 그를 돌아봤더니, 이런, 그는 이미 곤하게 자고 있는 것이다.
슬쩍, 일어나 나는 얇은 담요를 덮어주고, 어둑한 조명으로 바꾸고, TV를 끄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거실 소파에서 아주 곤한 잠에 빠져있고, 나는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가끔, 그렇게 재미있기만 한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잠이 든 그를 볼때마다 측은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늘 잠든 자리에서 더 깊고 편한 잠을 자도록 한다. 이불을 덮어주거나, 창문을 조금 여며주거나, 베개를 하나 더 갖다 준다거나, 하는. 오늘처럼 말이다.

혼자가 되니, 문득, 결혼 전이 주말이 떠올랐다. 금요일밤부터 시작된 주말, 다음날 출근하지 않는 날이 언제나 주말이기도 한, 그런 시간들. 나는 후배들과 미술관을 가거나, 시내에서 그녀들과 차를 마시거나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말그대로 일주일의 피로를 풀기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서 긴 잠을 자거나, 시큰둥하게 책을 읽거나 무심히 인터넷을 하면서 주말을 탕진했다. 혹은 뜬금없이 우발적인 여행길에 오르기도 잦았다. 역마살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들을 정도로, 그렇게 무심히 새벽에 나서 다음날 해가 져서야 피곤한 몰골로 돌아오곤 했던 주말들. 산을, 강가를 헤매고 다니다 돌아오면, 한동안의 나는 제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얌전히 앞을 보며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달에 세,네번 정도는 그를 만나기 위해 지방으로 떠나야만 했다. 이제 남편이 된 그를 만나는 주말은, 금요일부터 신이 나고, 토요일에는 반짝였다가, 헤어지고 오는 길에는 늘 아쉬움으로, 영영 못 만날 사람처럼 호들갑스러운 속상한 마음에 빠지기도 했었다.

생각을 해보니, 결혼 전, 그와 달콤한 데이트를 보내는 주말도 황홀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그를 만난다,라는 사실 보다는 '집을 떠난다'라는 의미에 더 큰 의미부여를 했던 듯 싶다. 그래서그랬는지, 터미널이나 기차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리고 버스나 기차 안에서, 그가 있는 지방 소도시에 도착했을 때, 다시 돌아오기 전에 표를 끊고, 서울에 도착해, 다시 집으로 오는 시간, 그 공간.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의 시간들, 이물스럽고 외롭기만 한 그 혼자의 길, 여행과 달리,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유독 그런 날이 선 감정 속에 있었다. 그를 만난 주말 중에서 그와 함께 있던 시간만 뎅강 잘라내면 나는 그렇게 유난스럽게 예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제는,
그와 함께 살면서, 이제 주말은, 정말 평온한 일상이 되었다. 하루종일 그와 함께 있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 심심하기도 하고 무료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싫지 않은. 그러다가 문득 결혼 전이 아주 조금 그리워지다가도, 곤히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면 그 그리움은 금세 사라져 무척 충만한 기분에 빠지게도 하는 시간. 

그런 고요하고 조용한 주말이다.
함께 TV를 보다 잠든 남편, 그와 결혼 전의 데이트를 떠올리며 지금의 고요함을 충분히 즐기는, 그런 시간.
그런 주말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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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은 아닌데, 오늘(에서야, 지난 주 시댁에 다녀온 이후, 와이셔츠를 일주일이나 방치한 후에)
와이셔츠를 빨다가,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그 일의 제목을 붙이자면, 속도 차, 라 명명하면 될까.

예전, 와이셔츠를 빨 일이 있었다.
와이셔츠를 매일 입는 사람이 아닌지라, 가족행사에나 입는 와이셔츠, 돌아와 그걸 손빨래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아버지도 평생 넥타이를 매는 직업이 아니었고, 언제나 주말에 돌아온 아빠의 빨래거리를 한꺼번에 빠는 엄마를 보며 자란 나는,
문득 와이셔츠를 빨다가, 어머님을 떠올린 것이다.
평생 공무원이셨던 아버님, 어머님은 매일매일 남편의 와이셔츠를 빨아했구나, 라는 생각.
생각이 그렇게 번져, 와이셔츠를 빨면서, 거실에 있던 그에게

"그럼 어머님은-"
이라고 운을 떼자마자 그이의 말.
"응."
이라고 단호하게 맞받아친다.
"응?"
오히려 내가 되물어야 하는 상황. 그러자 그가 말한다.
"그래, 응. 엄마는 평생 아빠 와이셔츠 빨았다고."

극단적인 삽화지만,
그런 것. 속도의 차이.
이미 내가 운을 뗀 말 한마디에 내가 하고자 할 말을, 앞뒤전후사정을 통해 무의식중에 판단해버리고 마는,
그러니까, 그는 나와 다른 사고체계를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것이 새삼 놀랄 것은 아니었지만, 그걸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속도차,를 몸소 느끼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놀라게 된다.

가끔, 그 속도차를 따라가지 못해 그를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과속으로도 진행되어 내 생각을 추월해가곤 하는 그의 생각의 영역에 나는
기가 죽기도 하고, 혹은 먼저 달려가 나를 기다리느나 지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어, 나 혼자 숨이 차 헉헉거리기도 하지만
다행인건, 그런 그가 나와 자신의 속도 차를 이미 충분히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속도차이를 인정해,
보폭을 맞추려는 그의 생각들에도 나는 감사하곤 한다.

물론, 가능하다면, 나 역시 가속을 내어
그의 생각의 속도를 내가 따라가면 좋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평생 이런 속도로 살아온 내가 하루아침에 그이의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할 일이겠지.
다만, 인식하고,
그래서 기다리고, 그 기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가 조금 더 잰 걸음으로 다가가고, 그 역시도 그 기다림에 대해 너무 닦달하지만 않는다면
무난히 잘 걸어갈 것이다.
서로의 속도감을 위해서, 그렇게 말이다.
그런 서로의 속도감을 맞추는 일,
그게 살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와이셔츠를 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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