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은 아닌데, 오늘(에서야, 지난 주 시댁에 다녀온 이후, 와이셔츠를 일주일이나 방치한 후에)
와이셔츠를 빨다가,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그 일의 제목을 붙이자면, 속도 차, 라 명명하면 될까.
예전, 와이셔츠를 빨 일이 있었다.
와이셔츠를 매일 입는 사람이 아닌지라, 가족행사에나 입는 와이셔츠, 돌아와 그걸 손빨래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아버지도 평생 넥타이를 매는 직업이 아니었고, 언제나 주말에 돌아온 아빠의 빨래거리를 한꺼번에 빠는 엄마를 보며 자란 나는,
문득 와이셔츠를 빨다가, 어머님을 떠올린 것이다.
평생 공무원이셨던 아버님, 어머님은 매일매일 남편의 와이셔츠를 빨아했구나, 라는 생각.
생각이 그렇게 번져, 와이셔츠를 빨면서, 거실에 있던 그에게
"그럼 어머님은-"
이라고 운을 떼자마자 그이의 말.
"응."
이라고 단호하게 맞받아친다.
"응?"
오히려 내가 되물어야 하는 상황. 그러자 그가 말한다.
"그래, 응. 엄마는 평생 아빠 와이셔츠 빨았다고."
극단적인 삽화지만,
그런 것. 속도의 차이.
이미 내가 운을 뗀 말 한마디에 내가 하고자 할 말을, 앞뒤전후사정을 통해 무의식중에 판단해버리고 마는,
그러니까, 그는 나와 다른 사고체계를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것이 새삼 놀랄 것은 아니었지만, 그걸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속도차,를 몸소 느끼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놀라게 된다.
가끔, 그 속도차를 따라가지 못해 그를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과속으로도 진행되어 내 생각을 추월해가곤 하는 그의 생각의 영역에 나는
기가 죽기도 하고, 혹은 먼저 달려가 나를 기다리느나 지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어, 나 혼자 숨이 차 헉헉거리기도 하지만
다행인건, 그런 그가 나와 자신의 속도 차를 이미 충분히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속도차이를 인정해,
보폭을 맞추려는 그의 생각들에도 나는 감사하곤 한다.
물론, 가능하다면, 나 역시 가속을 내어
그의 생각의 속도를 내가 따라가면 좋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평생 이런 속도로 살아온 내가 하루아침에 그이의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할 일이겠지.
다만, 인식하고,
그래서 기다리고, 그 기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가 조금 더 잰 걸음으로 다가가고, 그 역시도 그 기다림에 대해 너무 닦달하지만 않는다면
무난히 잘 걸어갈 것이다.
서로의 속도감을 위해서, 그렇게 말이다.
그런 서로의 속도감을 맞추는 일,
그게 살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와이셔츠를 빨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