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그것은 왜 그토록 변덕스러운가? 왜 그것은 그토록 맹목적으로 사실들과 맞서는가? 평생 동안 우리는 그것을 구축하려고 그것을 확보하려고 고정시키려고 애써왔으며 그것을 값진 자산이자 행복을 위한 거부할 수 없는 요소로 알아왔다.그때 갑자기 음험하게 소리도 없이 바닥의 뚜껑이 열리고 우리는 그 끝모를 곳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있었던 모든 사실들이 신기루로 변해버린다"/53쪽









<언어의 무게>를 읽은 덕분에.. <레아>까지 찾아 읽게 되었다. 표지만 보면, 손이 가지 않을 책인데..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이라면... 이제 시작인데, 언어의 무게 속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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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긴 방 ㅣ 마르틴 베크 시리즈 8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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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잠긴 방>>을 처음 읽었다. 매혹적인 시리즈물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아쉬움도 잠시, 나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정주행이 아닌 역주행으로 읽게 되었다.살짝 당혹스러웠지만 타임머신을 탄 기분으로 시리즈를 읽어갔다. 오히려 처음부터 읽었다면 끝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후반 시리즈로 갈수록 몰입도가 좋았다.

최근에 '어느 끔찍한 남자'(지붕위의사나이)를 영화로 보게 되면서, 베크 형사의 사고를 마주한 순간 <잠긴 방>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조금은 염세적이라 생각했던 베크형사의 모습은, 다시 읽으면서 ,직업적 트라우마에 대한 관점으로 시선이 바뀌었다. 현재에서 과거를 보는 것과,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모습은 이렇게나 다를수가 있구나.


"십 분도 안 걸려요. 나는 음식을 뚝딱 만들거든요. 전혀 번거롭지 않아요. 그리고 맛있죠. 주어진 사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잖아요. 세상이 나빠지기만 하는 것처럼 보여도 언제나 맛있는 걸 요리할 수는 있어요(...)"/278쪽



처음 읽었을 때는 '부조리'한 세상으로 가득해 보였다.책임감 없는 경찰들의 수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은행 강도짓을 향한 그녀가 처벌받지 않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마음이 복잡했다.온갖 나쁜짓을 저질렀으니 처벌받아 마땅한 마우릿손의 죄목이 변경된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피해자인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던 스베르드의 죽음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하는 것이 맞는지..회의감이 들었다. 부조리하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답답함.. 그런데 다시 읽으면서, 베크 형사 같은 경찰들이 존재해서 부조리한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수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즈음 레아의 생각을 읽었다.

혹 '잠긴 방'이란 제목은 도저히 열릴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견고한 성을 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굳건하게 닫힌 그곳을 열기란 쉽지도 않을 뿐더러, 의도와 상관없는 결과물과 마주할 수 도 있을지 모른다(마우릿손처럼...) 만약 타성에 젖어 일을 처리한다면 쉽게 열 수 있는 문도 더 견고하게 닫힐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사건 현장을 처리하는 형사 입에서 '포기'라는 말은 나오면 안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 그 사건요 그것참. 이해가 안 되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일 말입니까?"

"설명할 수 없는 일.답이 없는 수수께끼.그래서 그냥 포기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되는 일 말입니다"/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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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일류 범죄자는 붙잡히지 않는다'/149쪽










너무도 선명하게 들어온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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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돌연사라고 가정했습니까?"

"그 경찰관이 내게 그렇다는 뜻으로 말했어요."

(..)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아니면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그런 식으로요"

또 하나의 기막힌 오판이었다. 스베르드가 죽기 전에 마비되거나 무력한 몸으로 그곳에 며칠이나 누워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정황은 없었다"/ 59쪽









다시 읽게 되면서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되는 것들이 있다. 습관적으로 처리하는 문제들..은 얼마나 위험한가 생각했다.그럼에도 바르게 생각하려는 이들도 여전히 있어,균형은 또 유지되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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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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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아주 힘겹게 읽었던 기억 때문인지 <언어의 무게>를 읽겠다는 용기를 선뜻 내지 못하고 있었다.그런데 찾아 가는 책방마다,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분홍 표지가 나를 유혹하는게 아닌가.해서 냉큼 구입했다. 언젠가는 읽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거라 믿으면서.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서사 자체의 흡입력과 소설로서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다시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번역가 레이랜드가  시한부판정을 받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가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소설 읽으면서 거의 울지 않는 편인데..그만큼 레이랜드 삶 속으로 내가 들어간 모양이다) 레이랜드의 시한부판정이 오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라 풋..하고 웃음이 났고,정신을 차리고 나니 화가 났다. 그리고 단지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는 장치게 그치지 않고  '언어의 무게'라는 핵심 주제로 나아가기 위한 '무엇' 이란 느낌을 받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로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보니, 나 역시 언어가 갖는 무게에 대해 아무런 생각없이 살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표현하는 문장에서, 단어 하나에서, 저마다의 가치와 의미..그리고 언어가 갖는 무게를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나만의 목소리(언어)를 갖고 있는가 라는 질문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언어들에는 이런저런 것들이 있고, 사라졌으면 하는 단어들이 있고, 소중히 지켜야 할 언어들이 있다는 사실... 을 찾아가는 여정이 매력적이었다.


조금은 추상적인 제목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읽어갈수록 그렇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어가 가진 무게와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나만의 목소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결국 언어라는 것이 우리의 인생, 혹은 삶을 담아내고 드러내는 또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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