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스테리아를 구입 했을 때만 해도 계속 구입하게 될 줄 몰랐다. 관심 가는 주제가 보일 때마다 골라 읽는 재미가 있어 망설임 없이 주문하고 있다. 한편 잡지책이야말로 전자책으로 볼 수 있으면 더 좋을텐데..하는 마음도 든다. 책장의 공간을 생각하면 구입이 망설여지고..읽고 싶은 충동은 또 자제할 수 가 없고... 오이디푸스..왕 을 새롭게 읽고..다양한 시선을 만나고 있는 끝에 미스테이라 16호에 실린걸 보게 되었으니..오이디푸스 왕..찾아 삼만리 하고 있는 기분이다^^


"수많은 학자들은 소포클레스가 기원전 436~433년에 창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를 탐정의 원형으로 꼽는다"/114쪽 


미스테리아 잡지답게..오이디푸스..왕을 탐정의 원형으로 꼽는다는 시선자체가 놀랍다.자신이 범인이란 사실도 모른 채 오래전 미결(?) 사건으로 남아 있는 라이오스의 살인 사건을 수사해 범인을 찾아내려는 과정을..탐정의 원형으로 바라볼 수 도 있다니...두 번 읽으면서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생각이다. 다소 억지(?)는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지만...수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면,이전에는 이와 같은 스타일의 작품이 없었거나..이후 추리작가들이 그리스 비극에서 힌트를 얻었다면..원형이라 말해도 될 것 같다. 특히 심농의 추리소설을 떠올려 봐도..그의 추리물은 탐정의 능력도 물론 엿보이지만..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면이 더 도드라지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재미나게 읽을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잡지에 실린 '오이디푸스 왕' 에 관한 글은 길지 않다. 탐정 소설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설명이 길지 않았던 건 그래서 살짝 아쉽다. 그럼에도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를 더 만난것이 반갑고...두 번 읽는 동안 해 보았던 질문을 만난점은 반가웠다."여기에는 신탁을 두려워하여 태어난 지 사흘밖에 안된 갓난아이를 버린 비정한 부모의 죄는 정말 없을까?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이의 비극은 그저 정해진 운명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인가? 운명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아버지와 아들 양쪽의 오만이 공평하게 빚어낸 참극 앞에서 가련한 인간은 이런 운명을 마련한 신에게는 항의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죄만을 참회한다.개인의 비극은 공동체의 비극 앞에서 희생된다"/115쪽  그리고,부모의 원죄와 오만함에 대한 생각에 더해 한 가지 더...공동체의 비극 앞에 개인의 비극이 희생당하는가..라는 질문이 또 묵직하게 다가왔다. 작품이 씌여진 당시 역병이 돌았음을 다시 상기할 수 있는 대목인 셈이다. 역병이 돈 것이 왕의 부덕 때문이란 억측..은 지금 코로나를 겪으면서..공동체 비극 앞에 개인의 비극이 도드라지게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다시 탐정의 원형으로 돌아(?)와서...추리물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최근 심농과 아가사..의 작품을 읽으면서 죄인을 밝혀내는 과정 그리고 이후의 결과에서 다소 개운치 않다고 느낄때가 있었다.그런데...오이디푸스..왕에서 진실이 밝혀진 순간 찾아온 비극을 떠올려 보면....때로는 진실 보다 침묵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걸까..묻게 된다.저자는 오이디푸스 왕을 실패한 탐정이라 표현했지만,나는 실패한 탐정이라는 생각에 선뜻 동의할 수 가 없다.아직은....









<오이디푸스 왕>을 다시 읽으면서, 지난날 읽었던 독후기를 찾아보다가, 미스테리아에서도 만났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엇보다 진실보다 침묵이 더 중요한걸까..라는 물음을 내가 했었구나. 놀란 이유는, 스콧 터로의 <무죄추정>을 읽으면서, 진실이 이렇게 묻혀도 괜찮은 걸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20년 후)  <이노센트>에서 숨겨졌던 진실은, 또다른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걸 작가는 상기시켜주었지만... 

그런데 이번에도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면서 탐정소설의 기원으로 보는 시선은 생기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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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ㅣ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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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녹나무의 파수꾼>을 흥미롭게 읽지 못했다. 해서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가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 무작정 한 권을 골랐다. 빨간 표지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제목...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앞뒤가 맞는다고 꼭 정답이란 법은 없지"/ 290쪽



형의 죽음을 직접 추리해 가는 다케시의 모습은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그가 우문현답처럼 내놓은 말은, 마치 이 작품을 읽으며 내가 느낀 마음을 정확히 표현한 것 같아 놀랐다.중학교 교사이자 마을에서 존경 받던 마요의 아버지가 살해당했다.경찰이 기동력 있게 추리해 나가야 겠으나.갑자기 나타난 동생이 완벽에 가까운 추리를 진행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완벽함을 선호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부연 설명이 많은 것처럼 느껴질때마다 피로감이 느껴졌다.그럼에도 범인이 누군인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알고  싶어서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주기적으로 언급된 단어가, 스모킹 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속단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은 돈이 문제였던 걸까.라고 생각한 순간, 표절이란 문제가 언급되서 놀랐다. 조금은 뜬금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들로 세상에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 수없이 목격하고 있으니,뜬금없는 상황이 아닐수도 있겠다.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도, 살해이유도,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과 비교하면 너무 간단하게 정리된 것도 아쉬웠다.  자신의 성공과 비밀을 지키기 위해 스승을 살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더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심리적인 주제로 접근하는 방식을 선호하다보니,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에 섭섭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가 왜 죽였는가를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보다, 이 소설의 에필로그를 더 인상적으로 읽은 기분이다. 겐타의 민낯은 미처 거기까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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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파버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3
막스 프리슈 지음, 정미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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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비극의 현대적 부활" 이 한 문장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호기심을 자극해서' 구입(만) 하고 오랫동안 묵혀두었더랬다. 호기심과는 별개로 잘 읽혀지지 않았던 것 같은 기억..(오류일수도 있겠으나...) 무튼 8월 연극 오이디푸스왕을 예매해 두고 보니,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기에 앞서 이 책을 먼저 읽어 보고 싶어졌다.


운명도 숙명도 믿지 않는 발터 파버는 모든 것을 수학과 확률 그리고 과학적으로만 상대를 바라본다.그런데 그가 부정(?)하고 픈 '운명' 과 '숙명'이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온다. 비행기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는 자신이 알고 있었던 남자의 동생이었다. 그를 통해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그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를 찾아 가지만, 그는 이미 목숨을 끊은 상태다.20년 전 사랑했던 여인의 딸과 우연히 사랑에 빠지게 된다(자신의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오이디푸스적 비극을 맞는다) 당연히 한나의 딸 자베트가 자신의 딸일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한나의 딸이란 사실도, 자신이 그의 아버지란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다시 그는 왜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 모든걸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남자. 그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한 건 역설적으로 자신의 과거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몸부림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은 그렇게 계획한대로 흘러가주지 않는 다는 사실을...


소설은 파버의 처절한 파멸을 통해 인간의 원죄를 묻는다.이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비겁한 무지는 결국 소중한 자식을 파멸로 이끌고 말았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오이디푸스 왕' 보다 더 '숙명'이란 올가미가 크게 느껴져서..그런데 '원죄'라는 단어를 곱씹어 볼수록 단순히 신화를 새롭게 오마주한 것이 아니라,세상을 방정식으로만 정리하려는 남자에게 그것은 결코 정답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까 생각했다. 숙명이나, 운명이나 믿지 않는 다는 말 속에는, 그 속에서 자신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현실을 마주하기보다 가면 속에 숨어 살고 싶었던 열망이 결국 그를 더 고통스러운 삶으로 이끌었다는 느낌을 받았다.파버는 세상을 방정식으로 통제하려다 비극을 맞았다.순리대로 살아간다는 건,무언가를 체념하거나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오만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어느 때 보다 더 필요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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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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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관심을 두었던 소설은 아니었다.'스콧 터로' 의 소설을 마침 재미나게 읽고 난 후라, 반가운 마음에 골랐다. 당연히 소설집인 줄 알았다. 방대한 분량이라, 스콧 터로의 이야기부터 골라 읽어봐야지 생각했는데..맙소사!! 여러 명의 작가들이 마치 하나의 목소리를 내듯 써내려간 이야기였다. 편집자의 능력도 있었을게다.그러나,한명의 작가가 썼다고 해도 나는 의심하지 않았을 것 같다. 도저히 서로 다른 작가들이 써내려간 소설이란 느낌을 받을수 없었다. 간혹 흥미가 덜한 에피소드가 그려지기도 했지만,테피스트리가 떠올랐다.서로 다른 색깔이 모여,하나의 멋진 작품이 완성된 모습.


코로나 시절이 언제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지금, 소설은 다시 그 시간으로 독자를 불러왔다. 소설의 제목이 '14일' 인 이유가 바로 생각났다.거리두기 라는 사회적 제약이 단지 서로를 위한 최선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낡은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답답한 감금에서 숨을 쉬고자 옥상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각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순간 단테의 <신곡>이 생각났다. 그 시절 나도 읽어보려 시도했고, 읽다가 포기했던 기억이 나서.. 그런데 아파트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는 가짜 같은 가짜..가짜 같은 진짜..이야기가 그려진다. 자연스럽게 인종차별, 빈부격차, 젠더 갈등,이민자문제 등등..타인의 입을 통해 나의 슬픔을 보고 나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받는다. 


옥상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목소리를 나누며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이다.바이러스가 우리를 단절 시켰던 그 순간에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었던 셈이다. 스콧 터로 소설 매력에 빠져 한 편 더 읽어 보려고 골랐다가,수많은 이웃의 목소리를 들었다.무엇보다 서로 다른 색깔의 작가들이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경이를 표하고 싶어졌다. 코로나 시절을 겪지 않았다면, 조금은 작위적인 구성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테지만,그 시절을 함께 겪어온 입장에서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했다. 다른 어느 때보다 경청과 공감이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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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U. R. - 로줌 유니버설 로봇 ㅣ 이음스코프
카렐 차페크 지음, 유선비 옮김 / 이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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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를 애정하지만,딱 한가지, 책 읽으면서 여유롭게 커피 마실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점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찾았다. 도서관.숲가까이 자리한 도서관이라 좋았다.크지 않은 도서관이라, 한 눈에 책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좋았지만,서가를 둘러보다, 읽어야겠다고 생각만 했던 < R.U.R >이 보여서 반가웠다.



소설인줄 알았는데, 희곡(연극대본)이다. 읽는 내내 100년 전 체코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미래를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예견할 수 있었을까 경외감이 들었다.(미래형 소설도 아니었을텐데..)

엄밀히 말하면 작픔 속 로봇은 지금 우리가 쓰느 기계공학적 '로봇' 개념과는 결이 다르다. 체코어로 강제노동을 뜻하는 '로보타'에서 유래했듯,작가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기계처럼 소모되는 자본주의 부속품으로 인간을 상상했던 건 아니였을까 그러나 놀랍게도 오늘날 로봇과 AI가 인간의 자리를 점점 대신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우리는 지금 로봇 기술이 가져올 장및빛 그림만 상상한다.그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가난이 없어지는 겁니다.그래요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지겠죠.하지만 앞으로는 일이라는 것 자체가 없을 겁니다.모든 일을 살아 있는 기계들이 할 테니까요.사람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들만 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더 완벽해지기 위해서 살게 되겠죠?"/57쪽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가난이 사라질까? 작품 속 로봇은 인간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지만, 지금 현실에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야금야금 대신하고 있는 현상 자체가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미 소리 없느 '로봇 혁명'으로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덫에 걸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는데, 여전히 로봇을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로봇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인간이 자리는 더이상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로봇이 점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된다면...책 속에서 언급된 것처럼 저주받은 낙원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그러니까.인간은 로봇의 편리함을 지혜롭게 다스려야 한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로봇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빼앗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파트너같은 존재로..나아가게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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