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노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어요. 조각을 하다 보면 회화가 보이고 회화를 하다 보면 조각이 보여요. 삶도 마찬가지예요.기쁨과 슬픔,만남과 이별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져 있죠"/31쪽











소설<14일>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을, 다른 책에서 그대로 만나서 반가웠다. 몰랐던 예술가의 작품을 이렇게 만날수 있는 것도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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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전쟁만큼 가증스럽고 부자연스러운 건 없네. 전쟁이 훼손하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야.전쟁에서의 죽음은 피로 얼룩지고 동물적인 공포로 가득하고 언제나 폭력적이지(...)"/192쪽










에너지를 전쟁하는데 소모하지 말고, 환경을 지키는 것에 함께 집중하면 참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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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소포클레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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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었을 때는 왕의 '오만함'이 보였다.신탁을 비웃으며 자신의 지혜로 비극을 피해 갈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감이 오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두려움'을 느끼는 왕의 모습이 보여서 놀랐다. 미스테리아 잡지에서 작품이 씌여질 당시, 역병이 돌았고, 작품 배경에서도 전염병이 도는 상황을 왕의 부덕으로 고민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인것 같다.그러다 아버지를 죽인 자가 자신일수도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그런데 스스로 자신의 죄를 묻는 모습은 숭고하다기보다, 다시 그의 오만함이 보이는것처럼 느껴졌다. 애초에 오이디푸스에게 잘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듣게 된 라이오스가 오이디푸스를 산속에 버렸으니, 그것이 비극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연극이 올려진다는 뉴스를 듣고도 살짝 망설였는데, 오이디푸스 비극의 현대적 부활이란 문구가 보인 <호모 파버>를 읽다가, 연극도 보고 싶어졌고, <오이디푸스 왕>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막스 프리쉬 소설에서 '오이디푸스'를 어떻게 오마주 했을까 궁금했는데,소설 덕분(?)에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면서, 우리의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걸 신탁에 의지해서 살아간다는 건 인생을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일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이 살고자 아들을 죽이려 했던 라이오스는 결국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가 바란건 분명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또 인생은 순리대로 흘러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가 맞이한 파국은 신의 장난이 아니었다. 자식을 버리고 인간성을 배신한 라이오스의 죄가 인과응보가 되어 가문 전체를 파국으로 가게 한 것일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파국 끝에 닿은 오이디푸스 왕에게 현명한 지혜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비극은.완전한 비극으로 끝맺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자신의 딸까지 놓지 않으려는 오이디푸스에게 크레온은 차갑게 말한다.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하지 마십시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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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창작된 시기에 아테네에 세 차례에 대역병이 돌았던 사실을 몰랐다."전염병을 일종의 미스터리라 간주할 때 소포클레스의 서사에서 인간은 물론 동식물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그것의 원인은 과학 지식으로 밝혀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치유는 의술과 공중위생에 맡겨야 하는 것이 아니다.공동체를 파괴하는 병인은 공동체를 지도하는 이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동침함으로써 시민사회의 법도를 깨뜨렸다는 데 있다. 공동체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진실 규명과 범죄의 처벌이 필요하다.소포클레스는 현실에서의 대역병을 메타포로 취하여 정치 공동체의 위기와 해법을 극화한 것이다."/미스테리아30호,33쪽 '미스테리아'에 실린 글을 읽지 않았다면 저자의 시선으로 읽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솔직히 다시 읽으면서도 대역병의 메타포와 공동체 위기..해법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미났던 건..생각보다 '질병'이란 언급이 꽤 여러 번 등장했다는 사실과,처음 읽을때는 오이디푸스에게 오만함을 보았다면,다시 읽게된 <오이디푸스 왕> 두려움이 도르라지게 보였다는 점이다.(전염병에 대한 메타포였을까?) 그런가하면 아비를 죽인 오이디푸스 왕 보다..자신을 죽일수 있다는 신탁에 아이를 기꺼이 버렸던 라이오스에게 원죄를 먼저 따져 물어봐야 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다.그런데 다시 작품의 시작으로 들어가 생각해보면,나라의 역병이 도는 건 통치자의 책임이란 압박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면,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볼 필요도, 세상이 혼탁한 이유를 신탁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자의 글을 음미하면 약간 고개가 끄덕여진다.완전하게 수긍할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도 읽어볼 수 있었다는 점은 좋았다. 덕분에 오만함으로 가득했던 오이디푸스 왕이 가졌을 두려움과 원죄를 생각해 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오이디푸스는 묻고 답한다.오염을 "정화하는 의식은 무엇인가.그것은 어떻게 치러져야 하는가" 이 전염병을 불러온 자는 "우리를 오염시키므로 나는 모두에게 명해 그를 집에서 쫓아내도록 할 것이다.사태의 진실을 인식하자 그는 명령과 약속을 지켜 스스로를 징벌한다.로써 공동체는 병증에서 정화되고 회복될 것이다.전염병의 메타포도 정화되었고 그것이 대유행병뿐만 아니라 약자 혐오가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위협하는 현시점에 이 비극을 다시 읽는 이유다"/미스테리아30호,35쪽









'오이디푸스 왕' 에 관한 언급이 있을 때마다 잡지를 구입했었나 보다. 코로나 시절이 아니었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작품의 배경에, 역병이 돌았던 시절이란 설명은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기엔 충분했다. 오만한 시선이,두려움을 가진 인물로, 역병의 문제를 오로지 통치자의 부덕으로 바라본다는 건 얼마나 우매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읽기는 <호모 파버>를 읽은 덕분인지, 우리..인생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다는 걸 생각하며 읽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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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스테리아를 구입 했을 때만 해도 계속 구입하게 될 줄 몰랐다. 관심 가는 주제가 보일 때마다 골라 읽는 재미가 있어 망설임 없이 주문하고 있다. 한편 잡지책이야말로 전자책으로 볼 수 있으면 더 좋을텐데..하는 마음도 든다. 책장의 공간을 생각하면 구입이 망설여지고..읽고 싶은 충동은 또 자제할 수 가 없고... 오이디푸스..왕 을 새롭게 읽고..다양한 시선을 만나고 있는 끝에 미스테이라 16호에 실린걸 보게 되었으니..오이디푸스 왕..찾아 삼만리 하고 있는 기분이다^^


"수많은 학자들은 소포클레스가 기원전 436~433년에 창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를 탐정의 원형으로 꼽는다"/114쪽 


미스테리아 잡지답게..오이디푸스..왕을 탐정의 원형으로 꼽는다는 시선자체가 놀랍다.자신이 범인이란 사실도 모른 채 오래전 미결(?) 사건으로 남아 있는 라이오스의 살인 사건을 수사해 범인을 찾아내려는 과정을..탐정의 원형으로 바라볼 수 도 있다니...두 번 읽으면서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생각이다. 다소 억지(?)는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지만...수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면,이전에는 이와 같은 스타일의 작품이 없었거나..이후 추리작가들이 그리스 비극에서 힌트를 얻었다면..원형이라 말해도 될 것 같다. 특히 심농의 추리소설을 떠올려 봐도..그의 추리물은 탐정의 능력도 물론 엿보이지만..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면이 더 도드라지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재미나게 읽을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잡지에 실린 '오이디푸스 왕' 에 관한 글은 길지 않다. 탐정 소설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설명이 길지 않았던 건 그래서 살짝 아쉽다. 그럼에도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를 더 만난것이 반갑고...두 번 읽는 동안 해 보았던 질문을 만난점은 반가웠다."여기에는 신탁을 두려워하여 태어난 지 사흘밖에 안된 갓난아이를 버린 비정한 부모의 죄는 정말 없을까?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이의 비극은 그저 정해진 운명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인가? 운명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아버지와 아들 양쪽의 오만이 공평하게 빚어낸 참극 앞에서 가련한 인간은 이런 운명을 마련한 신에게는 항의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죄만을 참회한다.개인의 비극은 공동체의 비극 앞에서 희생된다"/115쪽  그리고,부모의 원죄와 오만함에 대한 생각에 더해 한 가지 더...공동체의 비극 앞에 개인의 비극이 희생당하는가..라는 질문이 또 묵직하게 다가왔다. 작품이 씌여진 당시 역병이 돌았음을 다시 상기할 수 있는 대목인 셈이다. 역병이 돈 것이 왕의 부덕 때문이란 억측..은 지금 코로나를 겪으면서..공동체 비극 앞에 개인의 비극이 도드라지게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다시 탐정의 원형으로 돌아(?)와서...추리물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최근 심농과 아가사..의 작품을 읽으면서 죄인을 밝혀내는 과정 그리고 이후의 결과에서 다소 개운치 않다고 느낄때가 있었다.그런데...오이디푸스..왕에서 진실이 밝혀진 순간 찾아온 비극을 떠올려 보면....때로는 진실 보다 침묵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걸까..묻게 된다.저자는 오이디푸스 왕을 실패한 탐정이라 표현했지만,나는 실패한 탐정이라는 생각에 선뜻 동의할 수 가 없다.아직은....









<오이디푸스 왕>을 다시 읽으면서, 지난날 읽었던 독후기를 찾아보다가, 미스테리아에서도 만났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엇보다 진실보다 침묵이 더 중요한걸까..라는 물음을 내가 했었구나. 놀란 이유는, 스콧 터로의 <무죄추정>을 읽으면서, 진실이 이렇게 묻혀도 괜찮은 걸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20년 후)  <이노센트>에서 숨겨졌던 진실은, 또다른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걸 작가는 상기시켜주었지만... 

그런데 이번에도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면서 탐정소설의 기원으로 보는 시선은 생기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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