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창작된 시기에 아테네에 세 차례에 대역병이 돌았던 사실을 몰랐다."전염병을 일종의 미스터리라 간주할 때 소포클레스의 서사에서 인간은 물론 동식물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그것의 원인은 과학 지식으로 밝혀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치유는 의술과 공중위생에 맡겨야 하는 것이 아니다.공동체를 파괴하는 병인은 공동체를 지도하는 이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동침함으로써 시민사회의 법도를 깨뜨렸다는 데 있다. 공동체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진실 규명과 범죄의 처벌이 필요하다.소포클레스는 현실에서의 대역병을 메타포로 취하여 정치 공동체의 위기와 해법을 극화한 것이다."/미스테리아30호,33쪽 '미스테리아'에 실린 글을 읽지 않았다면 저자의 시선으로 읽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솔직히 다시 읽으면서도 대역병의 메타포와 공동체 위기..해법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미났던 건..생각보다 '질병'이란 언급이 꽤 여러 번 등장했다는 사실과,처음 읽을때는 오이디푸스에게 오만함을 보았다면,다시 읽게된 <오이디푸스 왕> 두려움이 도르라지게 보였다는 점이다.(전염병에 대한 메타포였을까?) 그런가하면 아비를 죽인 오이디푸스 왕 보다..자신을 죽일수 있다는 신탁에 아이를 기꺼이 버렸던 라이오스에게 원죄를 먼저 따져 물어봐야 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다.그런데 다시 작품의 시작으로 들어가 생각해보면,나라의 역병이 도는 건 통치자의 책임이란 압박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면,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볼 필요도, 세상이 혼탁한 이유를 신탁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자의 글을 음미하면 약간 고개가 끄덕여진다.완전하게 수긍할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도 읽어볼 수 있었다는 점은 좋았다. 덕분에 오만함으로 가득했던 오이디푸스 왕이 가졌을 두려움과 원죄를 생각해 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오이디푸스는 묻고 답한다.오염을 "정화하는 의식은 무엇인가.그것은 어떻게 치러져야 하는가" 이 전염병을 불러온 자는 "우리를 오염시키므로 나는 모두에게 명해 그를 집에서 쫓아내도록 할 것이다.사태의 진실을 인식하자 그는 명령과 약속을 지켜 스스로를 징벌한다.로써 공동체는 병증에서 정화되고 회복될 것이다.전염병의 메타포도 정화되었고 그것이 대유행병뿐만 아니라 약자 혐오가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위협하는 현시점에 이 비극을 다시 읽는 이유다"/미스테리아30호,35쪽









'오이디푸스 왕' 에 관한 언급이 있을 때마다 잡지를 구입했었나 보다. 코로나 시절이 아니었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작품의 배경에, 역병이 돌았던 시절이란 설명은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기엔 충분했다. 오만한 시선이,두려움을 가진 인물로, 역병의 문제를 오로지 통치자의 부덕으로 바라본다는 건 얼마나 우매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읽기는 <호모 파버>를 읽은 덕분인지, 우리..인생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다는 걸 생각하며 읽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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