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니토
빅터 D. O. 산토스 지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이지원 옮김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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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는 사실이지만..그래도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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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제주도우다>를 읽지 못했다.

내년 4월에는 꼭 읽겠노라 약속한다.(2025년에 같은 약속을 했었더랬다ㅠㅠ)








4월이 가기 전 영화 '내 이름은' 이라도 보고 왔다. 영화에 온전하게 몰입하지 못해서 살짝 화가 나긴 했지만 ( 피자 한판을 사가지고 들어온 관객은, 위생장갑을 끼고 피자를 먹는다. 중간중간 음료도 마시는지 위생장갑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이렇게 큰 소음이 되는지 상상 못했다. 더 놀러웠던 건,1시간 가까이 스마트폰으로 여러가지를 하는 게 아닌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불빛.이야기를 했더니..) 그 때부터 영화에 몰입(?)하셨다. 화면을 보며 눈물을 흘려서 또 놀랐다. 4.3을 다룬 영화인지는 알고 오셨던 걸까.. 이 모든 것이 나의 편견이었기를 바란다. 그냥 배가 고팠고, 영화의 도입부가 살짝 지루해서 그랬을 거라고...그럼에도 우린 지금까지 이런 무지와 지나친 아량으로 인해 역사적 문제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건 아니였을까... 여전히 내 이름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고통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였지만, '이름' 이란 화두가 의미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4.3 앞에 붙는 혐오적인 표현들을 생각해보면... 아직도 이름을 온전히 갖지 못한 아픔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한강작가의 소설 제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4.3은 아직 온전히 작별할..수 없는 역사라는 반증.









<순이삼촌>을 읽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더랬다. 앞서 <무명천 할머니>를 읽으며 읽어 볼 용기가 났던 것 같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전혀 소설 같지 않은 느낌..4.3에 대해 비로소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소설을 통해서 겨우 만나고 있는 것 같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도 살짝 힘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독후기는 차마 쓰지 못하고,올해와 닮은 느낌의 포스팅...을 했던 기록의 흔적. 여전히 <제주도우다>를 읽지 못했을 뿐 만 아니라 <사월에 부는 바람>도 읽지 못했다는 사실까지 알아버렸다. 내년에는 부디 이 읽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내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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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친절이 아니라 존중이다.

서열과 계급을 바탕으로 한 관계는 결코 모두에게 좋은 관계가 될 수 없다. 주고받음의 크기와 상관없이 관계는 공정할 때 비로소 평화로워진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친절이 아니라 존중이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존경받는 정상 사회가 되려면 친절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복종의 강요를 멈춰 세워야 한다/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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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중요한 것...

....오늘 나는 어떤 여자 거지에게 동전 한 닢을 줬는데 그거지가 왜 그렇게 슬퍼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랐다. 내가 모든 선과 악을 가진 채 항상 혼자 있기 때문에 그런 슬픈 표정을 짓는 것 같다. 손을 내밀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은 필요 없고 내가 원하는 사람은 지나쳐 버린다/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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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관령 자연휴양림을 찾았다.  금강송정에서 도둑재로 이르는 길..내내 꼿꼿하게 ..

하늘도 뚫을 기세로 뻗어 올라가는 금강소나무 기세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느껴졌다.

그리고 도둑재에서 다래터를 지나 원점으로 회귀하려는 순간 보인 피나무..다 이름표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투르게네프 소설에서 언급된 피나무..가 궁금했기 때문에 마치 나를 위해

기다리고있었던 것 같아 반가웠다. 금강소나무 만큼이나 높아.. 두 젊은이가 누워 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한참을 올려다 보았다.



"1853년 가장 무더운 어느 여름날, 쿤체보에서 멀지 않은 모스크바 강변의 키 큰 피나무 그늘 아래 풀밭에 두 젊은이가 누워 있었다"/7쪽









무엇도 상상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왠지 앞으로도 '피나무'가 종종 언급될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산길을 걷다가, 만난 피나무가 반가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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