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아는(?) 미술관인걸까...영화 '초상화의 이면,아카데미아 카라라의 보물들'을 보면서 궁금했던 그림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해 보았더니... '이탈리아 작은 미술관 여행' 에서 미술관 이름을 찾았다. '작은 미술관' 이란 표현이 내게는 당혹스러웠다. 이탈리아 미술관들은 얼마나 커서 아카데미아 카라라 미술관을 작은 미술관이라 표현한 걸까 하고. 책을 찾아 보고 나서야 이곳이 미술사가를 위한 미술관이란 사실을 알았다.



"세바스찬은 자신의 순교의 상징인 화살을 들고 새끼손가락을 우아하게 위로 쳐들었다.화려한 붉은 망토와 금실 자수가 박힌 옷을 입고 잘 다듬어진 머리카락에서 신앙 때문에 고문을 받은 흔적이라곤 찾아 볼 수 없다"/398쪽


'초상화의 이면' 이란 제목에 걸맞는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영화에서는 초상화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초상화 보다는, 예술 전반에 관한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 기분..그래서 책을 찾아보게 된 것인데, 라파엘로 초기작을 보면서, 세바스찬을 아름답게 그린 이유에는, 자신이 모습이 투영된 기분을 받았다. 



피사넬로의 '리오넬로 데스테의 초상'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전시장을 둘러보듯 슬라이드로 넘어갈 뿐이다. 그런데 책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이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지네브라 데스테의 초상>과 짝을 이루는 작품으로 추정된다. 피사넬로는 주화와 메달의 주형을 제작하는 장인이기도 했다"/394쪽 추정이긴 하지만 왠지 짝을 이루는 작품이란 말에 찬성표를 던지고 싶어진다. 다만 왜 두 작품이 서로 다른 공간에 있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모렐리는 보티첼리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초상>도 기증했다. 이 그림은 1478년 부활절에 피렌체 대성당에서 일어난 암살 사건과 관련된다.이때 로렌초는 살아남고 줄리아노는 열아홉 군데 자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아래로 향한 줄리아노의 모습은 그의 이른 죽음을 암시하며 머리 뒤로 열린 창문은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상징한다"/398쪽


책..을 찾아본 덕분에, 영화의 제목을 이해한 건 아니다. 오히려 영화에서 초상화의 이면을 만나고 싶었던 거다. 그러나 초상화는 전시를 보듯 지나쳤고, 그림에 대한 세세한 설명은 없었다. 기억나는 몇몇 그림 가운데 기억하고 싶었던 두 그림은, 분명 초상화의 이면(?) 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줄리아노와 연인 관계였던 여인을 보티첼리도 사랑했다고 한다. 보티첼리가 초상을(추정이라고 해서..) 그리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그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보티첼리에게 있었다고 봐야 하는 걸까... 영화는 아쉬웠지만 덕분에 <이탈리아 작은 미술관 여행>을 찾아 보는 기회가 되었으니 고맙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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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산책을 하다가,흐르는 물이 아닌, 자갈로 흐르는 강을 연출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발상의 전환이 느껴져서..일본에서는 돌을 보면서 명상하는 공간도 있다고 하던데..강물 아래 돌들이 있던 모습도 상상하다가...내 시선은 다시, 하얀 백곰이 풀을 조용조용 먹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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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은 방울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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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역사는 늘 어떤 이들의 염원에 응답하면서 다른 이들의 염원에는 등을 돌리며 진행된다. 아무리 비참한 미래라고 해도 만인의 바람을 저버리지는 않는다/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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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울프의 세련된 글솜씨에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다"/86쪽


<올랜도>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기분이었다.영화는 힘들었던 기억, 책으로는 아주 재미나게 읽혀져서 놀랐다. 세세한 줄거리까지 기억할 수 없지만, <올랜도>를 재미나게 읽었다는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덕분에 울프의 다른 책들을 읽을수 있게 되었으니까.










너무 잘 읽혀서 놀랐다.어쩌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과 다른 지점에서 보물찾기 하는 기분을 종종 느낀탓일 수도 있겠다.서른이 되는 순간,남성이었던 올랜도가 여성으로 바뀐다는 설정만 놓고 보면  이해될 수 없는 이야기일텐데..묘하게 빨려들어간다. 환타지 속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여성에 관한 문제를 풀어 놓고자 함이 보인 탓일게다.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 알수 없으나,독자에겐 올랜도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순간,당시 여성이 받아야 했던 부당함들이 보였다.심지어 여성을 위해(?)서 하는 듯한 것들에서 조차 실은 불편한 것 투성이...였다.결국 이런 물음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심오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사랑에 관한 질문은,이제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뭔가 존재론적인 질문이라고 해야 할까? 쉬운 듯 어려운 질문인 진정한 자아에 대한 물음.그리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물음들.. 그러나 3백년을 가까이 살아(?)온 올랜도는 여전히 행복을 찾고 있었고,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토로한다.

 소설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읽었다. 올랜도의 결말이 궁금했지만,꾹(?)참아가며 페이지를 넘겼다. 다 읽고 나서야,친구 비타 색크빌 웨스트의 삶에 기반을 둔 소설이였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에 대해 알지 못해도,소설을 전지적 독자만의 시점으로 읽어내는 재미가 있었다.후반부는,울프에 대해 아주 깊은 이해도가 있어야 몰입할 수 있겠지만,소설의 2/3 정도는 남성과 여성에 관한 문제,사랑에 관한 문제,창작의 고통,문학에 대한 풍자를 찾아 읽는 재미가 있었다. 2020년 읽었음에도 <올랜도>는 퍽 강렬했던 것이 분명하다. 다른 이야기보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열린책들에서 나온 <올랜도>를 읽을 때도 솔출판사의 표지가 유혹했더랬다.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솔출판사 버전으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2025년에도 <올랜도>는 여전히 진행중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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