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라며 읽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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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서 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손톱깎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도 크고 선명하게 손톱깎는 소리... 카페라는 공간이 모두를 위해 열린(?) 공간이라,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발상이 나는 적응하기 어렵다. 최소한의 예의라는 개념 자체가 이제는 사라진 시대인걸까...

그런데 구보씨도 손톱 깎을 목적(?)으로 끽다점을 찾았다는 사실에 놀랐다.(내가 이상한 사람인걸까..)


그가 가끔 드나드는 끽다점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은 휴식을 위함도 저차를 먹기 위함도 아니었던 듯 싶다.오직 오늘 새로 구한 것으로 손톱을 깎기 위해서 만인지도 몰랐다. 그중 구석진 테이블 그중 구석진 의자(...)/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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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이 시를 썼다는 사실을 몰랐다.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시리즈를 애정하기도 해서, 읽게 되었다. 시는 어려웠지만, 에세이는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단편소설 느낌을 불러오는 에세이 글도 있어서 읽는 기쁨이 있었다.











오웰의 에세이를 읽고 난 후 보이는 신간(?)들이 보이길래,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나는 왜 쓰는가>를 꺼내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당혹스러웠다는 말이 맞을지도... 언제 구입한지도 모를 정도로 색이 바란 오웰의 책. 작가의 소설을 몰아 읽을 즈음 아마 구입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정작 표지와 제목에서 주는 무게감이 페이지를 넘겨 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한순간 여름 같은' 에 실린 에세이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왜쓰는가> 제목에 '조지오웰 에세이'란 부제가 보인거다. 휴머니스트에서 읽은 에세이가 모두 보인다. 심지어 휴머니스트에 실린 에세이 보다 훨씬 더 많은 에세이가 담겨 있다. 최근 한겨레에서 개정판이 나온 모양이다. 그리고 또다른 출판사에서도 에세이와 리뷰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









개정판의 유혹을 참고,오래전 구입해 놓은 <나는 왜 쓰는가>에 실린 에세이를 차근차근 읽어볼 생각이다. '한순간 여름 같은'에 실린 에세이를 읽으면서 더 읽고 싶었던 마음이..이렇게 이어지게 될 줄이야. 


'서점의 추억'을 읽었다. 낭만적인 시선으로(만) 서점을 이야기하지 않을 거란 예상은 맞았는데. 그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책방지기를 한 적은 없지만....그러다 요즘 애정하는 책방 사장님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해졌다. 책만 팔 수 없어 빵과 커피를 그리고 북스테이까지 하는 곳이지만 책방에 꼿혀 있는 책들은 물건처럼 보이지 않는다. 각자가 하나의 진짜 '책' 처럼 보이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느낌. 책방을 하기 위해 다른 것들에서 오는 수고로움이,책향기를 맡기 위해 기꺼이 할 수 있는 노동이라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은 나의 욕심이려나...


"내가 서점 일을 평생 하고 싶지는 않은 진짜 이유는그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책에 대한 애정을 잃었기 때문이다.서적상은 책에 대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책이 싫어지게 된다.(...)"/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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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일을 한 사람에게 조차 '사람은 착한데... 라고 말하는 상황이,언제나  모순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아서..이제 할 수 있는 말이 생겼다.착한 사람 보다는 성숙한 사람!!


이십여 년간 이연이 여러 인물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며 깨달은 사실은 단순했다.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거였다.그리고 그로부터 오해와 갈등이,드라마가 생겼다/24쪽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을,실수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자들을 변명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약한 이들을 깊이 응시하게 되었다.우선 이연부터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연은 착한 사람보다 성숙한 사람에게 더 끌렸다/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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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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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에는 기필코 여백서원을 다녀오고 싶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시 꺼내 읽었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포스티잇을 보면서 열심히(?)읽었던 모양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페이지를 시작하고 나서,서간문형식이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두 번째 읽기에도 같은 마음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 읽고 나면 어떤 형식으로 씌여졌는지를 똑똑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2018년 8월에도 같은 마음이었다니...


2010년에도,2018년에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명인의 기사가,'젊은베르테르의 슬픔'을 생각나게 했던 모양이다.2010년에는 베르테르를 이해하기 버겁다 생각했더랬다.2018년에는 자살할 운명이라고 스스로 생각한 그의 삶이 왠지 가여웠다. 물론 2018년 내가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 줄 몰랐다.2025년에 마주한 베르테르..는 역시 버겁고,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있기도 하지만, 이성적으로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늘어나는 스토킹범죄가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사랑을,조금은 삐딱하게 보고 싶게 만든 모양이다. 사랑과 집착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세 번 읽기를 지나오면서 비로소 하게 된 질문이란 것도 신기하다. 사회가,읽기에 미치는 영향은 이렇게나 큰모양이다. 인간의 존재에 대해, 사랑에 대해, 운명에 대해 풀어놓는 베르테르의 말은 기억하고 싶은 말들로 가득하다.함정은 거기서 시작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덧씌어진 궤변. 사랑하면 안되는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남자 베르테르 라고 스스로에게 당위성을 부여하는 듯한 행동.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몹쓸짓을 너무 많이 접하는 사회에 살다보니, 사랑으로 버거워하는 베르테르의 슬픔은 오로지 괴테의 고통일 뿐이란 생각을 했다.사랑과 집착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읽는 내내 생각했다.지금의 생각은, 문제적 인물 베르테르다.다만,자신안에 있는 내적인 광란과 불만을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어 몸부림쳤던,질문들에 대해서는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그의 화살은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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