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책방엘 갔다. 나란히 그림책 세 권이 놓여 있었는데, 표지 느낌이 비슷해서 메모를 해왔다. 그 가운데 한 권은 지난해 찾았던 평창책방에서 엽서로 받았던 그림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림을 그린 작가님에 대해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챙겨온 후 비로소 차근히 보게 되었더니, 두 권은 출판사가 같았고.세 책 모두 그림을 그린 작가님이 같은 사람이었다. '사랑의 모양' 과 '여전히 나는' 는 연작처럼 읽혀지기도 했다. 



평창책방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그림을 용인책방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는데, 그림의 진짜 이야기를 언젠가 만나게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함께 책방을 다녀온 지인에게 톡을 보냈다, 여행길 책을 챙겨 나선 풍경이라 생각했다. 보여지는 그대로의 상상.. 그리고 터보의 노래 '회상'을 상상했다. 그녀는 지금 이세상에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하면, 커플은 이별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즐거웠던 그 곳을 나는 여전히 가고 있는데, 왜 당신을 보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서로 어긋나고 있는 걸까.. 

<여전히 나는>과 <사랑의 모양>을 나란히 읽은 덕분에 어떤 이유로 남자와 만날수 없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사랑했던 순간을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위로해 주고 싶어졌다. <구름의 나날>을 읽어보라고 권해도 딜 것 같은 상상까지..


"어떤 아름다움은 왜 사라져 버리는 걸까

무언사를 망치는 사랑도 있는 걸까?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어.

'너 그 꽃들이 정말로 너 때문에 피고 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내가 한 일은 모두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말이야?"

목소리는 대답했어

"사랑이 널 기쁘게 한다면 그건 네가 무엇을 주어서도

무엇을 돌려받아서도 아니야

단지 지금 사랑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 '사랑의 모양'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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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엘 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누리는 소소한 기쁨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책의 출처가 궁금했다.









분명 재미(?)나게 읽은 책인데,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저런 이야기 끝에 나도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가는 대로 꼬리를 묻는 책들이 떠오르게 된 건 아닐까 싶다. <골동품 진열실>을 읽으면서도 두 권의 책이 떠올랐다. 건지.도 다시 읽어야겠지만, 발자크의 책과 앙드레지드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빅튀르니앵은 어둠이 그의 정신을 뒤덮는 망연자실한 마비 상태에 빠져 버렸다(...)"/142쪽


"아버님이 아무것도 모르신 채 돌아가시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젊은 분! 서류 위조자가 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부친 살해자는 결코 되지 마세요! 도피한다? 안 됩니다.그들은 궐석재판으로 단죄할 겁니다.불행한 분 같으니, 왜 저 제 서명을 위조하지 않으셨습니까? 저 저라면 지불했을 것입니다.저는 증서를 검사장 사무실로 가져가지 않았을 것입니다"/149쪽











읽지도 않은 책들이 왜 떠올랐을까..생각해 보면, 읽고 싶은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특히 지드의 소설은 제목이 쫌 성의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섣부른 착각은 아닐지..언제 다 읽을지 기약할 수 없지만.리스트가 쌓여가는 것도 나름 기쁨을 준다. 읽겠다는 마음..읽게 될 것란 암시..읽고 있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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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진열실 을유세계문학전집 13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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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까?"/ 220쪽


책표지를 보면서 마음대로 상상한 결과는, 제목을 마음대로 오독한 결과를 불러왔다.막연하게 예술을 다룬 이야기 일거라 생각했던 거다.  '골동품' 이란 말과 '진열실' 이란 단어에 조롱이 담긴 표현일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누구보다 작가 자신이 귀족의 부류가 되고 싶어 이름에 '드' 를 넣었단는 일화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장황한 프랑스의 역사는 머리가 아프다. 그 가운데 여전히 가문의 뿌리를 부여잡으려는 데그리뇽 가문 ,그 가문으로 어떻게든 들어가고자 했으나 뜻이 거절되는 순간 복수를 꿈꾸는 남자. 그 사이에서 충성(?)을 바치는 공증인 쉐넬. 처음에는 어떻게 저렇게까지 충성을 바칠수..있을까 생각했고, 이야기 끝에 가서는 그의 소망이 데그리뇽가문 끝트머리에라도 자리하고 싶어서는 아니였을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순간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인이 오버랩되는 기분이 들었다. <골동품 진열실>을 삐딱한 시선으로 읽은 탓일수도 있겠다. 어느 순간 온통 법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온다. 일부분일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페이지가 끝날때까지 다양한 색깔로 등장하는데, 어느 것 하나 흡족하다기 보다, 발자크선생이 살았던 시대나, 21세기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그러니, 발자크의 저 말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인 셈이다. 가문을 몰락시키는 곳에도,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도, 출세를 위해서도 법은 너무 훌륭(?)하게 사용된다. 일일이 열거 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뒤 롱스레 법원장의 부추김을 받은 뒤 크루아지에는 면소 판결에 대해 왕실 법정에 상소했으나 패소하고 말았다.현 전체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아들 데그리뇽이 위조의 죄를 범했다고 주장했다. 왕당파들 편에서는 '야비한 뒤 크루아지에'가 복수심때문에 꾸민 끔찍한 음모하고 얘기했다.(...) 두 당파 사이의 싸움은 더욱더 악화되었다.(...)왕실 법정에서의 판결 확정 한 달 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나 모두 타격을 입을 그 격심한 싸움으로 기진맥진한 쉐넬은 새끼 멧돼지의 어금니에 배를 물린 늙은 충견처럼 승리 가운데에서 죽음을 맞았다"/232쪽



법이 (언제나) 정의롭기만 한 건 아니란 건 알았지만...<골동품 진열실>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진 바람에, 음..고유한 문화재와 골동품의 차이는 확실히 알겠더라는. 골동품은 정리가 되어야 하는게 옳다. 그러나 견고한 골동품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쉐넬의 죽음만 봐도 그렇다. 처음에는 법을 권력 삼아 놀려고 하는 뒤 크루아지에가 보였는데, 어느 순간 쉐넬이 보였다. 그가 정말 충성스러운 인물이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계속 따라온 탓인데, 그의 죽음을 묘사한 장면에서 충성심만 있었던 건 아니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뒤 크루아지에와 그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건 아닐까...독자가 쉐넬의 충성을 곡해한 것일수도 있겠지만...몰락하는 가문을 위해 쉐넬처럼 충성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충성을 바칠 만큼 위대한 가문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노후작이 자기 누이동생의 간청을 받아 그에게 자신의 우정 전체를 돌려주었던 것이다. 그 거대한 인물이 뒤 베르카유가의 작은 집으로 가서 자기 옛 종복의 침대 머리맡에 앉았다.그 종복의 모든 희생을 그로서는 알지도 못했지만(...)후작은 성의 예배당 안 데그리뇽의 거의 마지막 손인 자기 자신이 쉬게 될 묘혈의 아래쪽에 시신을 가로로 눕혀 쉐넬이 매장되는 것을 허락했다"/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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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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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클레어 키건은 인연이 깊은 걸까..

지난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겨울날 읽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추운 겨울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읽고 있다.<너무 늦은 시간>을 읽고 났더니 자연스럽게(?) '푸른 들판을 걷다'가 눈에 들어온 탓이다. 역시 단편집이다. '너무 늦은 시간' 보다 더 힘겹게 읽었다. 미묘하게 전해지는 그 '빛'을 희망이라고 애써 이해하려고 해도 쉽지는 않았다.


특히 '작별 선물'이 가장 힘들었다. 현실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일인것 같아서...그럼에도 그녀가 남자에게 날리는 '작별 선물'이 잔혹하지 않은 방식으로의 복수(아버지의 말을 몰래 팔았다는...)를 선택한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영화 '세계의 주인'이 다시 생각났다. 피해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들..은 또 한 번의 상처가 될 수 있다. 소설 속 '당신'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을 스스로 뛰어 넘으려고 한다. 해서 '푸는 들판을 걷다' 단편집은 서로 다른 이야기이면서 뭔가 연결되는 기분이 든다. 작별 선물 속 '당신'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전을 선택했고,'물가 가까이' 속 할머니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냐 하면 그시절은 그렇게 참고 살아야 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러고 보니 고통 받는 여성들의 녹록함이 단계별로 진화된 듯 한 기분도 든다. 참고 살았던 여인이 있고, 이야기를 만들어 남편의 모습을 폭로( 삼림 관리인의 딸) 하는 그녀가 있고, '작별 선물'에서의 '당신' 처럼 참고 사는 것 보다, 스스로의 삶을 선택해서 떠나는 모습으로..그 가는 길이 결코 '푸른 들판' 길..처럼 푸릇푸릇 하지만은 않겠지만,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고통에 비할수 있을까 싶다.자신의 이기심에 여인이 떠나고 (검은 말) 후회 속에서 살아가는 삶 보다야....


"바람이 강할수록 나무도 강해진다"/21쪽


감담할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표현, 좋아하진 않지만(무서운 가스라이팅이 될 것 같아서..) 그러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는 중요하다. 일방적으로 참기만 고통은 위험하지만,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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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한때 바라던 일이었지만 세상에서 두 사람이 같은 순간에 같은 것을 바라는 일은 거의 없다. 때로는 그 점이 인간으로서 가장 힘든 부분이다/52쪽 ‘푸른 들판을 걷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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