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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보다 긴 하루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44
친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엄청난 숫자가 제목으로 들어간 책들을 차례로 읽고 싶은 유혹이 생겼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백년보다 긴 하루>는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을 때부터 내내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그래도 자신이 없어 도서관에서 먼저 빌려왔는데, 도저히 읽을수 없을 만큼 촘촘한 활자가 발목을 잡았고, 그럼에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냉큼 주문을 했더랬다.
예상(?)했던 대로 책의 상태는 아주 흡족하지는 않았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두꺼운 책으로 눌러 놓아도 효과는 미비하다. 읽는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실질적으로 이런 책은 판매되면 안되는 상태라고 본다.(약간의 불량품) 읽는데 전혀 문제되지는 않았지만, 책이 아파 보이는 느낌....
"무엇이 그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한 남자에 대해서 그런 증오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어쩌면 그것은 우리 역사의 그 시기에 사람들을 감염시켰던 어떤 질병,말하자면 유행병이 아니었을까? 혹시 사람들에게는 점차로 그들을 무자비하게 만들어 잔인하게 행동하도록 이끄는 악성 시샘증 같은 기질이 있지나 않을까?"/469쪽 '예전 방송에서 유시민작가님께서 21권에 달하는 토지를 한 마디로 정리해주었는데 공감했더랬다. 아니 그 덕분에 읽고 싶었고, 읽어낼 수 있었고 '연민'이란 화두를 읽는 내내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백년보다 긴 하루>는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데 사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아니 줄거리 조차 어떻게 보면 너무 심플하다.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단단해서 놀랐다. 우선은 누군가 견뎌낼 고통의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고통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은유였을 줄이야..다음으로는 탄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보니. 마치 지금 상황을 오버랩하게 하는 단어들이 보이는 것 같아서..증오심으로 차오는 인물에 대해 '악성 시샘증'이란 표현은 너무 가볍다는 생각을 할 정도다. 광기와 망상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병일까...까잔갑의 장례로 시작된 이야기는 500페이지가 다 끝나갈 즈음에야 마침표를 찍는다. 그것도 아주 개운하지 못한 방법으로..그런데 그러는 사이 까잔갑을 추억하면서 우리가 저마다 갖고 있을 고통의 시간이 끝임없이 흘러나온다. 자리빠를 향한 예지게이의 마음은 너무 당혹스러워서(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기분이라..) 한동안 멍한 기분이었다. 사랑에 대한 고통 가운데 가장 큰 형태인 것 같아서(물론 고민은 한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러니 그의 고통은 백년 보다 긴 하루 같은 기분이었을게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