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두고 온 곳, 세계의 구멍가게 이야기 - 양장 이미경의 구멍가게
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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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갤러리에서 화가의 그림을 보고 매력에 풍덩 빠져버렸다. 수많은 수식어 없이, 오로지 그림으로 따뜻한 마음이 전해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가. 단순히 노스텔지아를 떠올리게 해서 그런건 아니다. 누군가는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바라볼수도 있겠으나.보고 있는 것 만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는 건, 그림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게다가 가볼 수 없는 남의 나라 구멍가게를 만날수 있는 기회가 흔한가? (아니 쉽긴 하다. 걸어서 세계속으로와 세계테마다큐..등등^^)



몽골식료품점은 그 스케일(?)부터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식표품점이 사막처럼 보이는 한 가운데 있을 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또 편견 하나가 사라지게 되었음에 감사하며..그런데 무얼 파는지 궁금하긴 하다. 간판에 씌어진 글씨만으로 저 곳이 식표품점이란 걸 알 수 있었다는데... 구멍가게의 속사정까지 알지 못했다고 섭섭하진 않았다. 우리나라와 다른 모습일까를 먼저 상상했는데, 화가님의 특징일수..도 있겠지만, 묘하게 다른 나라 구멍가게들도 우리나라 구멍가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편안함과,고즈넉함..그래서 뭔가 구멍가게만의 단단한 힘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우리동네 구멍가게들과 다른 나라 구멍 가게과 너무 닮아 있어 놀랐다. 그런 곳들만 찾아 다니신 것일수도 있겠지만.^^




얼마전 베트남국수가게를 지나게 되었는데, 누군가 사진만 찍어서 보냈다면, 베트남에서 보내온 사진이라 믿겠구나 생각했다. 실제로 코로나 시절 그곳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고 하던데... 가게 이름만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면 나라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자그마한 가게 그러나 필요한 물건들은 전부(?)있고, 사람들에게 기꺼이 그늘까지 내워주는 공간... 마트들이 점점 공룡처럼 거대해지는 걸 안타까워한 1인이라 책으로 만나는 구멍가게도 반갑다. 



특히 좋아하는 구멍가게는 고산슈퍼다. 눈내린 날의 모습이라 더 정겹게 느껴진 것일수도 있겠다. 라면 하나 끊여 먹고 싶은 곳.. 지난달 동네 서점이 문을 닫았다. 나 부터 온라인 서점을 주로 이용하는 입장이라, 문을 닫는 것에 아쉽다고 말하는 것이 모순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동네 자그만 슈퍼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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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생전 마지막으로 쓴 글씨는 봉은사 판전의 현판이라고 했다. 세한도를 볼때도 더 깊이 추사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추사고택을 다녀오고 난 후 읽게 된 소설 <추사>는 자꾸만 나를 추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지 않느냐고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더 깊게 들어갈 자신은 없다. 다만 소설을 통해 인연이 될 역사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도시를 걷는 시간>은 그렇게..그런 인연으로 또 나를 찾아 오게 되었고, 고맙게도 추사의 다른 이야기가 아닌 '판전'이 소개되고 있었다. 봉은사를 소개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거다. 지금껏 봉은사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내 마음이 작가님의 마음과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그럼에도 찾아가 봐야 겠다. 글씨에서 품어낼 기운은 느낄수 없겠지만...









"추사의 흔적은 한반도 곳곳에 흩어져 있다. 태어난 충남 예산에 고택과 묘소와 기념관이 있고 귀양살이를 갔던 제주 대정에 추사관이 있으며 만 권의 책을 읽고 학예를 꽃피웠던 서울시 통의동 집터가 있고,귀양에서 돌아와 잠시 살았던 용산,다시 귀양살이를 했던 함경도 북청,그리고 생애 마지막 4년 동안 머물렀던 과천에 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177 쪽 통의동에 있는 미술관에 갔을 때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그 자리가 서울에서 살았던 곳이라니...다시 찾아가봐야겠다. 무엇보다 봉은사..먼저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글씨에 아이의 닮은 모습을 엿볼수 있다 하니...서예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어 감히 느낄 자신은 없지만...마음껏 상상하며 판전을 보고 싶다.

‘판전 칠십일과 병중작‘
(...)
봉은사로 출가한 추사는 경판을 보존하는 건물인 판전의 현판을 쓰고 ‘71세의 과천 늙은이가 병중에 쓰다‘고 낙관했다.기교가 없고 어눌한 듯하지만 소박하고 예스럽다.유 선생은 71세 추사의 마지막 글씨가 7세 추사가 양자로 간 집에서 친아버지에게 쓴 편지의 글씨와 닮았다는데 부처는 아이의 모습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싶다/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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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찍으려다 눈에 들어온 가로등 빛..

반딧불이..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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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2 조선 천재 3부작 1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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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많은 것을 공부하고 왔습니다.운명은 구중궁궐의 다락 속에 숨어 있건 지하 천 길 아래에 숨어 있건 어김없이 찾아듭니다.이곳에서 끝까지 머물면서 이 풋 늙은이의 운명과 또 싸우는 데까지 싸워야지요"/209쪽



<동네공원>을 읽으면서 모든 건 '운명' 이라고 말했던 여자의 말을 부정했으나, 추사 김정희 선생이 말하는 '운명'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같은 단어인데, 다른 느낌은 뭘까... 뻔한 유추겠으나, 운명이라 읽고 '숙명'이란 의미를 생각해서는 아니었나 싶다. 노트르담 파리에서 절규하던 프롤로 신부의 '숙명'이란 단어가 각인된 탓일수도 있겠다. 추사김정희 선생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제주도 유배지에서 세한도를 그리게 된 사연과, 세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가에 대한 정보가 알고 있는 전부였던 거다.추사고택에 들렀을 때, 불쑥 궁금해진 이유는 소설 <추사>를 읽으면서 어쩌면...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의 글씨가 조선에 이름을 날리게 된 이유는 소설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중요한 재료였던 건 분명한데, 나는 서예가 김정희 보다, 인간 김정희에 대한 생각을 하며 읽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소설을 재미나게 읽을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인간 김정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인간 자체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조선 역사가 보인 이유도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권력과 모함으로 점철된 조선사회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예술가를 예술가로 존중해 줄 생각도 없는 듯 보인다.  물론 예술가 김정희가 아닌, 조선 사회에서 그가 가졌던 위치와 역활에 대해 따져 들어가게 되면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보일게다. 이하응을 임금 될 사람으로 생각했던 추사의 마음은,이하응의 어느 면에 탐복해서였을까...


"살아간다는 것은 화해 없는 영원한 싸움을 치르는 것이다. 싸움을 걸고 있는 모든 적의 얼굴은 비가시적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111쪽



추사의 생각에서 가져온 에피소드인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소설이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라하더라도. 추사가 상우에게 들려주는 말은, 이 소설 전체에서 한승원작가님이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추사에 관한 에피소드를 따져가며 읽을 필요가 없을 만큼 인상적이었다는 말일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추사가 완당이란 호를 갖게 된 사연, 세한도에 그려진 소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때는 흥미로웠고,두 여인과 나란히 묻히지 못한 초생의 마지막은 궁금해졌다.(소설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일수도 있겠지만..) 조선천재 3부작 시리즈가 있는 줄도 몰랐다. 추사고택을 여행한 덕분에 알았다. 7월에는 다산을 만나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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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평범한 다큐였다. 굳이 극장을 찾아가서 봐야 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다큐인가 싶은 마음이 살짝... 그럼에도 '수련'에 대해 미처 몰랐던,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된 건 고맙다고 해야겠다. 눈썰미가 있거나, 모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알았을 사실을 나는 이제서야 알았다. 수련이 제작되던 시기가 1차대전 기간이었다는 사실을.. 수련 작품 곳곳에 전쟁의 고통이 녹아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모네선생이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낸 코끼리 절벽(에트르타절벽) 풍경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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