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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 그래픽 노블
아메 데용 그림, 이수은 옮김, 윌리엄 골딩 원작 / 민음사 / 2024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 에서 '파리대왕' 읽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콕 찍어 소설의 장면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길버트가 어느 인물에 관심을 두었을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오래전 읽었다는 기억과, 섬뜩함에 몸소리친 기억만 남아 있으니, 다시 읽는 것 같지만, 실은 처음 읽는 마음으로 읽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그래픽노블로 읽었다. 처음에는 너무 심플하게 흘러가는 건 아닌가..싶었다.그러나, 페이지가 뒤로 넘어갈 수록 내가 느꼈던 섬뜩함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읽은 것이 2013년 4월이라 놀랐다. 얼마전 읽은 것 같은데, 십년이 훌쩍..그럼에도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 오히려 신기했다. 심지어 당시에도 영화 속 한장면 때문에 '파리대왕'을 읽었다는 기록. 어느 영화인지 알 수 없으나, 영화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고전이라면..읽을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너무 섬뜩했고, 여러 시선으로 읽어낼 수 있다는 역자후기를 읽으면서 사회적인 시선으로 읽었다는 나의 독후감은,십년이 흘러도 여전하다. 힘있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허상에 흥분하는 군중들이 오버랩되어 그랬던 것 같다.

시간을 멀리까지 가져갈 필요가 없다. 탄핵의 시간이 증거다. 허상을 만들어내고,사람들은 흥분했다.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광분이 나는 무서웠다. 처음 읽을 때는 추상적인 공포와 섬뜩함을 느꼈다면, 탄핵의 시간은,광분의 실체를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는데, 이제는 저 섬뜩함에 앞서, 우리는 왜..이토록 보이지 않는 실체를 토론하듯 살펴볼 생각없이,맹목적인 믿음과 불신으로 칼춤을 추려고만 할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소설의 앤딩은 기억나지 않았다. 아이들만의 시간을 주고 기다렸다는 어른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텍스트를 다시 찾아 보았더니, 내가 생각한것처럼 방관하는 듯한 모습은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지저분한 몸뚱이와 엉킨 머리칼에다 콧물까지 줄줄 흘리는 아이들 속에서, 랠프는 뚱보라 불렸던 지혜로운 친구와 진실의 창공으로부터의 추락,인간의 마음속 어둠,그리고 순수의 끝을 애통해하며 울었다./이러한 소리들에 둘러싸이자 장교도 울컥했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랠프는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
소년들의 울음소리에 둘러싸인 장교는 감동하여 약간 난처해했다. 그는 그들이 기운을 회복할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 외면을 하였다. 멀리 보이는 산뜻한 한 척의 순양함에 눈길을 보내며 그는 기다렸다"/303쪽
보이지 않은 실체가 우리 삶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변할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읽었다면, 다시 읽은 덕분에 결말이 내가 생각한 것 만큼 섬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우리 마음 속에는 여전히 사악함이 있을 테지만,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욕심으로 만들어내는 허상에 대해서 만큼은 의심할 수 있는 눈을 랠프가 알게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지금도 여전히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은 것을 사실인냥 믿고 흥분하는 군중들이 있지만...그또한 우리 속에 있는 본성 가운데 하나일터.해서 권력자들은 끝임없이 우리의 사악한 본성에 스며들려고 하는 걸게다. 스스로 생각하고, 확증편향으로 기울지 않게 스스로 노력하는 것 밖에는..그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