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면 기회가 온다는 걸 알고 있는 (똑똑한) 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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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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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아주 재미나게 읽고 난 후,작가의 책을 계속 읽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읽어야지'..라는 생각이 '읽었다'는 착각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지난해 <오 윌리엄>을 읽으면서...루시바턴 시리즈, 두서 없이 시작했다는 당혹감을 느꼈다. 해서 <내이름은 루시바턴>을 읽겠노라..했으나 다른 책들에 밀리는 사이 <바닷가의 루시>가 나와버렸고. 먼저 읽어버렸다. <바닷가의 루시>를 읽으면서 올리브 키터리지와 다시 올리브..를 읽겠노라 생각했는데, <내이름은 루시바턴> 과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먼저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 일은 나를 겸손하게 했다.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하게 했다. 내 무릎을 꿇렸다.그리고 내가 겸손해진 것은 그런 일이 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355쪽



<오,윌리엄>을 읽은 건 지난해 인데,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읽기에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물론 <오, 윌리엄>이야기를 모르고 있다고 해도, 읽는데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소설의 배경에 코로나..가 있다. 바이러스 공포를 경험하게 될 줄..상상도 못했다. 그녀의 말처럼 내 인생에..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못한 이유다. 덕분에 우리는 많은 것들이 변했다. 여전히 겸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도 있겠지만.무튼 코로나를 겪으면서,바이러스를 다룬 소설은 왜 나오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바닷가의 루시>에서 만났다. 만약 바이러스를 경험하지 못한 입장에서 소설을 읽었다면, 카뮈의 <페스트>를 처음 읽을 때처럼 이성적으로만 공감했을게다. 그런데 묘사되는 장면이 특별하지 않아도, 공포와 불안이 느껴졌다. 물론 <바닷가의 루시>를 읽으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묘사보다,내게 더 와 닿은 건, 누군가를 '이해' 한다는 문제였다.얼마나 어려운지,동시에 꼭 불가능한 것만도 아닐수 있다는 환기.온전히 상대방 입장이 되어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내 '경험'이 녹아 들지 않는다면 한계점이 있다는 거다. 이 사실만 기억해도,이해한다는 말은 쉽게 하지 않을 것 같다. 이해한다는 말 보다, 상대방은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 정치견해가 다른 이에게 함부로 강요하지 않고, 종교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는 선에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보다 서로에게 덜 혐오적이고 적대적으로 대할수 있지 않을까.. 윌리엄이 그녀를 바이러스에서 구해 내기 위해서였을지, 아니면, 자신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서였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중요할수도...)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꼭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했으니까. "내가 바람을 피울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윌리엄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나는 나 자신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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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은 커피가격과 ,맛없는 커피맛이 용서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카페..

북한산을 가까이서 한없이 감상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으니... 가격이 비싼 만큼 맛이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북한산이 보고 싶을때면 가게 되지 않을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바갓가의 루시>의 한 구절을 지인에게 들려주었다.격하게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라 위로가 되었고..나는 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12월에 나는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오빠의 죽음과 연관이 있었다.비키가 나를 이기적이라고 했기 때문은 더이상 아니었고 피트의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무서운 사실 때문이었다.그 일로 내 어린 시절 전체가 죽은 것처럼 느껴졌다.내가 어린 시설의 모든 부분이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당신은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하지만 나는 내 어린 시절의 모든 부분이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았다.(...)"/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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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자신이 없어 망설이다 놓쳤던 영화를 이제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감독이 누구인지..모르고 본 덕분에 편견을 거두고 볼 수 있었다.

감독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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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를 얼만큼 읽으면 체호프의 희곡에서 나온 대사라는 걸 알까.. 소설 속 등장 인물 하나 조차 온전히 기억하기가 쉽지 않은 입장에서는 마냥 부럽다는...^^




연극으로 '갈매기'를 볼 예정이라 오래전 읽었던 갈매기를 다시 꺼내 읽었다.그리고 역시나 처음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것들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우선 '갈매기'의 가장 큰 바탕에는 '사랑'있다.그러나 아주 복잡한 사랑의 관계도가 보일 뿐이다.서로 눈을 맞추며 달콤한 사랑을 하는 이들은 보이질 않고 (처음에는 보이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했으나..) 불륜이 있고,짝사랑이 난무하고,자신의 허전한 무언사를 채워 보려고 '사랑'이란 미끼를 물려고들 할 뿐이다.그러니 그 사랑이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을까?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아파하고,후회로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그리고 사랑과 예술이 참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사랑에 목말라 예술이란 것에 매달리기도 하고,반대로 예술을 위해 오로지 예술만을 사랑하고 싶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작가도 만나게 되었다는 거다.작가의 자전적인 요소도 물론 담겨 있겠지만(창작자의 고통 같은) 그런데 이번에도 이런 느낌을 받았다.사랑과 예술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 사이의 유사한 점들. 연애도 누군가 나를 사랑해 줘야 빛날수 있고,예술도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을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는 것.그러나 반대가 되었을 경우.우리는 또 어떤가? 그럴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게 되지 않던가? 해서 짝사랑에 지친 그녀는 그럭저럭 남자를 선택하게 되기도 하고,창작자는 비평가과 대중들의 갑론을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갈매기처럼 호수를 사랑하고 갈매기처럼 행복하고 자유롭죠.그런데 우연히 한 사내가 와서 보고는 이유도 없이 그녀를 파멸시킵니다.마치 이 갈매기처럼 말이죠"/431  '갈매기'를 처음 읽었을 때는 스타 배우인 엄마의 그늘에서 힘겨워 하던 트레플료프가 보였다면 다시 읽는 '갈매기'에서는 사랑에 힘겨워 하는 다양한 이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저마다의 사랑으로 몸부림치는 이들을..연극 '갈매기'에서는 어떻게 그려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2016년의 기록인데, 연극에 대한 감상을 남기지 않은 걸 보면 그닥 강렬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무튼 <바닷가의 루시>에서 '애도'라는 단어와 만나고 보니.. 저다마의 사랑에 모두 힘들어한 이들이..자신에게 애도의 마음을 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거라..생각하며,이제는 <바닷가의 루시>와 체홉의 <갈매기>를 함께 기억해 보고 싶은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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